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80화 (80/277)

< 빌런녀(2) >

제목부터가 노골적이었다.

<소년 소녀 가장을 핍박하는 아줌마>

도저히 눌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생하는 순간 모자이크가 된 아이가 먼저 보였다.

이후 등장하는 아줌마.

그녀가 삿대질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 애들, 왜 여기서 밥을 먹어요?]

[네?]

그게 시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말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5만 원짜리 비싼 밥 먹으면서 기분 좀 내는 중인데 저런 애들 보이면 그 기분이 깨지잖아요. 안 그래요? 제 말이 틀렸어요?]

[나, 참. 다른 저렴한 식당에서 먹어도 배는 차거든요? 그러라고 세금 아껴서 식권 나눠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저런 애들은 그냥 적당한 곳에 가서 먹으라고 해요. 알겠어요?]

황당한 표정의 직원과 주변 사람들. 굳어있는 아이들의 형태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흐릿하게 잡히더니 화면이 어두워졌다.

[해당 식당은 착한 영향력 스티커가 붙은 곳입니다.]

그 위로 글자가 떠 올랐다.

[평소에도 식권을 들고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비싼 백반을 제공하는 선행을 베풀고는 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이 되는 세상인 모양입니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글자.

영상은 그렇게 끝났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상이 올라온 것은 어제 저녁.

그런데.

이미 댓글이 수천 개가 넘어갔다.

[댓글]

워터생산 : ㅅㅂ장난치나? 저게 사람이냐?

무림고수 : 와, 이건 진짜... 남자 여자를 떠나서 그냥 인간이 덜 됐구만! 영상 보면서 ㄹㅇ 오랜만에 분노 폭발하네?

잔챙이 : 심각한데?

의미 : 애들한테 저러는 건 아니지...!

열쇠 : 진짜 천벌 받아라!

카드당 : 빌런이네, 빌런!

ㄴ두드림 : 빌런녀 좋다!

ㄴ카드당 : 자원봉사 빌런녀라 불러라!

그렇게 여성의 별명이 정해졌다.

자원봉사 빌런녀.

이후 신상 또한 밝혀졌다.

관찰자 : 역대급이네?

평온하다 : 나 앵간한 걸로는 화 안나는데 이건 심한데? 진짜 열받는다!

Killyou : 저런 인간은 대체 뭐하고 살까?

ㄴ애버빔 : 궁금하냐?

ㄴKillyou : 당연히 궁금하지, 뭐 아는 거라도 있음?

ㄴ애버빔 : 이미 신상 까인지 오래임

ㄴKillyou : ㄹㅇ? 뭐하는 놈임?

ㄴ애버빔 : 별거 없음. 남편은 삼겹살 팔고 있고 영상 속 아줌마는 커피샵 하나 운영하는 거 같던데?ㅋㅋ

ㄴKillyou : 오호, 링크 없음?

ㄴ애버빔 : 여기 링크 남김, 들어가서 보셈!

ㄴKillyou : 땡스!

링크 덕분일까.

해당 댓글에 좋아요가 빠르게 늘어났다.

답댓글도 증가했다.

ㄴ둔둔 : 와ㅋㅋㅋ 진짜 별거 없는 인간이구만

ㄴ삼일삼 : 물론 별 거 있어도 저딴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지만ㅋㅋ

ㄴ둔둔 : 아, 그러치. 말을 잘못했네ㅈㅅ

ㄴ큐빅 : 빠른ㅇㅈ은 언제나 좋다

버내너 : 그래서, 저 여자 카페 위치가 정확히 어디?

ㄴ용감시민 : 가산동 xx샵임

ㄴ버내너 : 땡큐, 거긴 절대 안가야지ㅎㅎ

크레이지 : 저 여자 남편 식당은 어디냐?

ㄴ용감시민 : 가산동 yy고깃집

ㄴ크레이지 : 닉네임대로 사네ㅋㅋㅋ 용감하구만!

ㄴ버내너 : 오, 거기도 안가야지ㅎㅎ

ㄴ용감시민 : 난 용감하니까^^

네티즌들은 지독했다. 해당 커피샵과 식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테러를 자행했다.

-여기가 그 자원봉사 빌런녀 카페임?

-이야, 여기 사장이 그 노답 빌런녀라면서요?

-대단하네ㅋㅋㅋ

-저런 마인드로 장사는 잘 하나보네ㅎ

-더럽다 진짜

-역겨워 우웨에애애엑!

-어케 사람이 그런 마인드를 지닐 수가 있음?

-ㄹㅇ궁금하네ㅋㅋㅋ

-여기 식당 찾아오는 어린 애들한테도 그러려나?

-ㅎㅎ망해라!

여성이 운영하는 카페.

그리고 남편이 운영하는 식당에까지.

-안타깝네요, 여긴!

-나름 맛집인데... 그래도 다신 안 갈 듯ㅠ

-기분이 더러움ㅎㅎ

-대단한 사람들...^^

-여기 근데 갈때마다 기분 별로였음 사장 말투라고 해야 하나, 뭔가 아니꼬웠음!

-어라, 나도 그런 느낌 자주 받았었는데!

-여기 예전부터 불친절하기로 유명했던 곳임!

-그나마 맛이 있어서 갔는데 이제 손절!ㅎㅎ

-망하세요 부디ㅎㅎ

-애들한테 그따구로 행동하는 건 아니죠!

영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크게 이슈가 되었다. 논란을 다루는 다양한 너튜버들의 무한 재생산이 이어진 까닭이었다. 결국 해당 카페와 식당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많은 이들이 일말의 기대를 했다.

사과문이겠구나.

얼마나 구구절절할지 상상하면서 공지를 확인했는데.

<말도 안 되는 영상으로 명예훼손을 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 전부 고소할 겁니다. 거짓에 현혹되어 선량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고 적당히들 하세요. 경고는 한 번입니다.>

상상하던 그 이상의 내용이 떠올랐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건 명백한 악수였다. 공지가 올라온 이후 중립을 박고 지켜보던 대부분의 사람마저 해당 식당과 카페샵 주인을 비난하기 시작했으니까.

-와... 공지에서 인성이 보이는데?

-대단하네 이건...

-상상도 못한 공지 ㄴㅇㄱ

-ㄴㅇㄱ

-오우야ㅋㅋㅋㅋ

-이게 맞아?ㅋㅋㅋ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을 지경인데?

-제대로 상대해줘야겠네ㅎ

-오랜만에 진심모드 들어갑니다

-진심 펀치 대기중

-ㅋㅋㅋㅋ

-개웃기네 이 ㅁㅊ놈들ㅋㅋ

-기대해라, 진짜 괴롭다는 게 뭔지 보여줄 테니까

빌런녀의 실수였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네티즌을 너무 쉽게 여겼다.

-니들이 뛰어든거야, 지옥불에...!

-후회하게 될 거다ㅎㅎ

-나 ㄹㅇ빡쳤다, 기대해

-내가 애들 대신 복수해준다고 생각해야지!

어느 날은 냄비처럼 빠르게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어버리기도 하지만 또 어느 날은 지독스럽게 물고 늘어지는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빌런녀 퇴치하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

류성은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먼저 홍민기네 집을 찾아갔는데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동!]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라!]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 중이신 할아버지를 서둘러 병원으로 모셔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다!]

[남은 시간 : 3일]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뼈가 시립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하는 퀘스트였다.

이건, 뭐.

그냥 류성이 하고자 하는 일에 퀘스트가 꼽사리를 끼는 수준이었다.

물론 좋은 일이긴 했다.

보상이 떨어지는 퀘스트였으니까.

일거양득이긴 하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해야 할 일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병원에 가셔야죠."

"그래야지, 그래야 하는데..."

"움직이기 힘드시죠?"

"너무 아퍼서. 미안허이, 아무래도 병원은 힘들겠지...?"

"아뇨, 제가 업어드릴게요."

류성은 할아버지를 업고서 방에서 나왔다.

"무거울 터인디..."

"하나도 안 무거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옆으로는 홍민기가 따라붙었다.

저 멀리 차량이 보였다.

먼저 할아버지를 조심스럽게 조수석에 앉혀드리고서 운전석에 올랐다. 뒷좌석에는 체구가 작은 편인 홍민기가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는 제가 병원이랑 협업해서 집으로 의사가 찾아올 수 있게 해드릴게요."

"으응? 그게 되는가?"

"되게 해야죠."

뒤에서 듣고 있던 홍민기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넌 내가 언제 형이라 부를지 지켜본다,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휙하고 돌리는 녀석의 모습에 류성도 가볍게 웃고 말았다. 이어서 시동을 걸고서 운전을 시작했다.

"허허, 민기 저 녀석이 보기엔 그래도..."

가볍게 수다를 떠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 왔네요."

병원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 다시 할아버지를 업었다. 관절이 너무 안 좋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터라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몸무게가 어찌나 가벼운지 걱정스러운 마음만 한가득 올라올 뿐이었다.

곧 도착한 1층.

접수를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가 대기실에서 잠깐 기다리자 순서가 찾아왔다.

"홍순늠 환자분, 들어오세요."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었다.

거동이 힘들고 통증이 상당할 것이 분명한데도 할아버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최선을 다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모든 검사를 끝마친 뒤에 가볍게 진료를 봤다.

"음, 검사 결과가 다 나온 건 아니지만 일단 당장 확인 가능한 부분으로 보자면 당뇨가 심하세요. 그 부분은 알고 계실까요?"

"잘 알지요."

"어휴, 그럼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고거시, 참..."

"일단 관절통이 심하다고 하셨죠? 그것도 당뇨 합병증의 일종이거든요."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정말. 오늘부터 제대로 치료받으면서 약도 드시면 조금씩 좋아지실 거예요. 대신 제가 말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아이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할아버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홍민기 또한 마찬가지.

"일단 음식부터 제가 알려드릴게요. 먼저..."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류성은 해당 정보를 서류로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보내드려야죠."

"감사합니다."

"뭘요, 사전에 이야기는 들었거든요. 재단법인 RS의 이사장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좋은 일 하시는 거니까 저도 한 손 보태야죠."

병원 협업을 요청한 게 어제였다.

그런데 벌써 알고 있다고?

아무래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었다.

평판이 좋은 상급종합병원이라 신뢰할 만한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곳과 협업을 할 수 있으면 류성에게도 아주 좋은 일이었다.

더불어서.

할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조금 더 진료를 봤다.

그 순간.

퀘스트가 클리어되었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2점을 획득합니다.]

카드는 바로 까버렸다.

[꽝입니다.]

오랜만에 꽝이 등장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그러던 와중에 류성은 병원 측 연락을 받고서 원장실로 향했다.

부사장이 이미 말을 잘 끝내놓은 사안이라 원만한 조율만이 남은 상태였다. 덕분에 원장과의 대화가 순조롭게 풀렸다. 금천구에 한하여 방문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장은 아니고, 다음 주부터 가능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병원장님."

"허허, 병원 이미지에도 좋은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요."

병원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처음에는 좋은 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죠. 그래서 돈도 안 받을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또 그게 아니더군요. 방문 진료하는 의사들, 안 그래도 힘든데 돈이라도 더 쥐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덕분에 어깨 한 번 펼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재단법인 RS측에서 이렇게 거금을 제안할 줄은 몰랐거든요. 거절할 수도 없겠더군요."

의사들도 쉬운 직업이 아니었다.

아니, 정말 힘든 직업이었다.

이런 상급종합병원은 기본적인 사명감이 없으면 더더욱 버티기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통크게, 제대로 질러버렸다.

그게 아무래도 병원장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병원장님."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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