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알 준비(1) >
자원봉사 빌런녀, 상소리는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카페를 오픈했다.
xx샵.
동네에서는 나름 유명한 맛집이었다.
너튜브에서 떠도는 영상과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테러글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 어차피 익명에 기댄 겁쟁이들이라 여길 뿐이었다.
"흥, 결국 내 앞에서는 말도 못 할 거면서."
중얼거리며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고요함만 이어졌다.
이제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마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찾아올 피크타임이었는데 어째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질 않았다.
"아니, 오늘 왜 이래...?"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딸랑.
그때 드디어 손님이 들어왔다.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손님의 대화가 고막에 꽂혔다.
"여기서 마시게?"
"어, 왜?"
"여기 난리 났잖아. 자원봉사 빌런녀라고 소년 소녀 가장한테 밥 왜 처먹냐고 막 그랬대."
"뭐어? 진짜?"
"그렇다니까."
순간 손님과 상소리의 눈이 마주쳤다. 시선과 표정에 역겨운 감정이 서려 있었다. 상소리는 화가 났지만 차마 뭐라 한마디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휴, 나가자. 빨리. 기분 더러워."
"어어, 알았어."
손님이 나가고 홀로 남은 곳에서 괴성을 내질렀다.
"아아아아악! 짜증나!"
그러나 짜증은 잠깐일 뿐이었다.
막연한 상상이 몰고 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뇌리를 지배한 까닭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누가 해코지라도 하는 거 아냐?"
그런 걱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때부터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전부가 카페샵 내부를 바라보면서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욕을 퍼붓고 손가락질하는 기분이었다.
따르릉.
갑작스레 가게 전화가 울렸다.
흠칫,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전화를 받았는데 바로 욕이 들려왔다.
(와, 장사를 하나 보네? 미친...)
상소리는 놀라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서웠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둘러 영업을 종료했다.
가게 문을 닫고 카페샵에서 나오는데 바로 앞을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맞지?"
"맞네. 영상에 나오는 그 빌런녀."
"사진 찍어서 올려야겠다."
"간덩이가 부은 모양인데? 이 와중에도 장사할 생각을 하네."
"공지 봤잖아. 제정신 아니라니까."
눈빛에 서린 역겨움이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상소리는 다급히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
집에 도착한 빌런녀 상소리는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고선 상황을 파악했다. 아마도 점심 장사를 준비하다가 손님들의 대화나 눈길 혹은 걸려오는 전화 테러를 참지 못하고 장사를 접은 모양이었다.
"당신도?"
그 물음에 남편이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상소리를 노려봤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왜, 왜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데!"
"그럼 누구한테 그래! 그러니까 얌전히 카페 장사나 하라고 했지! 되지도 않는 봉사활동이나 처하더니, 어휴. 그 미친 짓거리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다고! 알겠어!"
"아, 몰라! 모른다고!"
상소리가 발악했지만 남편 역시 지지 않았다.
전투력이 상당했다.
"이 상황에서도 모른다는 말이 튀어나와!"
"그럼 어쩌라고! 당신도 공지 올릴 때는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그랬으면서! 정작 그 공지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된 건 모르지? 멍청해서는!"
"뭐, 이, 이 빌어먹을 년이!"
"빌어먹을 년?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그래, 했다! 어쩔 건데!"
"그래, 죽자! 죽어보자고!"
"그러던가!"
격렬한 부부싸움 이후 하루를 더 버텨봤다.
명백한 한계였다.
손님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한 명도 없었고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어제보다 한층 더 심해졌다.
전화도 더 자주 걸려왔다.
(와, 멘탈 끝내주네요? 크큭.)
(장사 안 접어요?)
(애들한테 그러는 건 선 넘었죠, 아시죠?)
비난의 강도가 조금씩 높아졌다.
버티면 버틸수록.
더욱 심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어느 날은 카페샵 건물 벽에 빌런녀라는 글자와 죽으라는 글자가 낙서처럼 적히기도 했다.
이제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좀 해보라고!"
"뭘 어쩌라는 건데? 사고는 지가 쳐놓고는."
"그래, 공지! 공지라도 좀 올려!"
"젠장할."
공포에 잠식된 일상이었다.
이대로는 살 수가 없었다.
결국 사과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합니다. 그간 잘못된 행동을 해왔습니다. 오랫동안 반성하면서 깊게 뉘우쳤습니다. 제가 한 행동이 많은 분께 불쾌함을 심어드렸다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사과를...>
-ㅋㅋㅋㅋ이제와서?
-응, 이미 늦음^^
-고소한다더니, 안해요?
-웃긴 사람들이네ㅎ
-이미 신상 다 퍼져서 님들 인생 망했어요ㅎ
-ㅉㅉㅉ
-진즉 사과했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늦었다
-절대 안감!
-장사 요즘 안하던데 망했나요?
-다른 곳에 가게 열어도 안가요ㅎ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사과문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접자."
"뭐라고?"
"접자고!"
"가게를 내놓자는 거야?"
"그럼 내놔야지. 안 내놓으면 뭐 어쩌려고?"
"그건..."
"답 없어, 그냥 접어. 손해는 엄청나게 보겠지만 별수 없지. 버티면 버틸수록 빚만 늘어날 테니까. 인생 망가지는 거보다는 나아."
"아, 아아..."
그들은 결국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이미지는 생각보다 더 긴 시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터였다.
"그리고 우리도 끝내고."
"뭐? 뭘 끝내?"
"이혼하자고, 이혼."
"다, 당신...!"
"아, 시끄럽고!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 준비나 해! 남아 있는 재산이라도 전부 내가 가져야겠으니까!"
"뭐어!"
"귀책사유는 전부 당신한테 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아니, 그건...!"
그러나 상소리도 허망하게 질 생각은 없었다.
"흥! 첫 번째 공지는 당신이 올렸거든?"
"그거야..."
"아, 난 몰라! 정말 이혼하고 싶으면 반반으로 하던가!"
"이런 미친."
결국은 파국으로 끝이 날 모양이었다.
인과응보였다.
*
류성은 공매도 전쟁을 대비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매도란 주식 하락을 예상하여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것. 즉, 언젠가는 갚아야 할 주식이다.
누군가에게 빌렸으니 돌려줘야만 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매수를 해서 갚아야 하는데 그걸 환매수 혹은 숏커버링이라고 부른다.
다만, 공매도를 치는 상황인데 주가가 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공매도를 치던 이들이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 매수에 동참하면서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는데 그걸 숏스퀴즈라고 부른다.
류성은 공매도 정보권을 다시 확인했다.
11월 25일, 숏스퀴즈 발생.
그러니 이미 젤트리온에 투자한 이들은 공매도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리라.
확인도 해볼 겸.
젤트리온 종목 토론방에 들어갔다.
예상대로였다.
제목 : 빌어먹을 공매도 ㅅㅋ들!
제목 : 실적 역대급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공매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거 참
제목 : 공매도 잔고 역대급!
제목 : 버티세요! 계속 매수하면 언젠가는 공매도 친 애들 되갚기 위해서라도 매수할 겁니다!
제목 : 이건 전쟁임!
제목 : 무조건 추매로 대응할 것!
제목 : 우리나라는 이게 문제!
제목 : 공매도 갚아야 할 기간이 없잖아! 무한 공매도 가능하다고!
제목 : 진짜 빡친다ㅠㅠ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이 투쟁은 25일이 되어야 성과를 보게 될 테니까.
목표는 두 가지였다.
시일을 당기는 것.
그리고 최고점을 더 높이는 것.
"25일보다 빠른 날에 숏스퀴즈가 나오게 하면 된단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매수에 동참하는 게 맞으리라.
시청자들을 끌어들여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함께 말이다.
"어라?"
문득 흥미로운 글 하나가 보였다.
제목 : 아, 정보꾼님이 여기 오면 짱일텐데ㅠ
궁금해서 제목을 클릭해봤다.
본문내용 : 정보꾼님ㅠㅠ 젤트리온 좀 살려주세요. 생방 매번 보는데... 그 신의 촉으로 한 번만 젤트리온 선택해주세요, 제바류ㅠㅠ
류성을 언급하는 글이었다.
댓글도 재밌었다.
많은 이들이 가면남, 혹은 정보꾼을 비롯한 다양한 주식 너튜버를 원하고 있었다.
"호오."
어쩌면 생각보다 수월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류성은 보다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 가장 인원이 많은 주식 카페에도 들렀다. 슬슬 미국 증시가 열릴 시간이라 그런지 주식 너튜버에 관한 게시글이 간간이 보였다.
검색이나 해볼까.
류성은 아래 검색란에 정보꾼을 쳐봤다.
제목 : 아직도 소름...ㅋㅋ
제목 : 생방에 참여는 못했지만 저점에서 매수한 거 신의 한 수!
제목 : 매매 타이밍 보면 미쳤다니까ㅎㅎ
제목 : 요즘은 코인 안하고 주식만 해서 좋음ㅋㅋ
제목 : 코인은 뭔가... 너무 도박이라
제목 : 오늘 미국 증시도 가즈아아아!
제목 : 나스닥, 날아라!
제목 : 정보꾼 매도하기 전까지는 존버!
생각보다 더 많은 게시글이 떠올랐다.
오늘 하루, 올라온 글만 해도 수십 개가 넘어갔다.
류성의 눈이 빛났다.
되겠어, 이건.
며칠 뒤에 젤트리온 매수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면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전에 TQQQ를 먼저 매도해야 하리라.
현재 시각 10시 20분.
모든 준비를 마치고 가면을 착용한 뒤에 생방송을 틀었다.
시청자가 속속 들어왔다.
"가하!"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시청자가 더 늘어나기를 기다렸다.
500명이 넘어갈 즈음.
최근 급상승하는 나스닥 지수를 화면에 띄웠다.
"자, 그럼 가볍게 증시부터 좀 볼까요? 제 예상대로 증시가 무섭게 상승하고 있네요. 전에 언급했던 대로 V자 반등이 나왔네요. 지난 주에 TQQQ를 매수했던 게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습니다. 다들 수익 잘 보고 계시죠?"
알탕 : ㅋㅋㅋ초대박이죠
한손 : 진짜 수익률 대박ㅠㅠ
대검 : 오랜만에 부모님 소고기 사드렸어요!
주린잉 : 히잉ㅠㅠ
"아니, 주린잉님은 왜 우세요?"
주린잉 : 너무 소액만 사서요ㅎㅎ 후회 중!
"그래도 벌면 된 거죠, 축하드립니다. 다른 분들도 수익 축하드리고요."
짝발 : 역시 매매의 신...!
반도체갓 : 너무 행복함ㅠㅠ
뱅블 : 쏴리질러어어!
류성은 사람들이 즐기는 걸 지켜보면서 슬쩍 현재 수익 현황을 체크했다.
종목명 : TQQQ
매입금액 : 10,000,000달러
수익률 : 43.7%
평가손익 : 4,370,000달러
총평가 : 14,370,000달러
며칠 사이에 50억이 넘어가는 순수익을 내는 중이었다.
끝내주네.
류성은 가면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은 계속 오를 거 같기는 한데요. 아쉽게도 저는 오늘 주식을 매도할 생각입니다."
알탕 : 아니, 왜요!
짝발 : V자 반등 이제 시작인데요?
"네, 시작이긴 한데 그래도 허리 언저리는 되는 거 같네요. 제가 볼 때는 여기서 더 올라봐야 지금보다 50프로 정도 더 먹으려나요? 그것도 단기간이 아니라 꽤 장기로 두고 봐야 나올 수 있는 수익인 거 같군요."
시청자가 경악했다.
치쏠 : 50퍼를 저리 쉽게 말하다니...ㄷㄷ
워터맨 : 근데 ㅇㅈ할 수밖에ㅋㅋ
스닥이 : 최근 급격히 오르긴 했지ㅎㅎ
단서 : 어쨌든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보다 50퍼는 먹을 수 있다는 얘기죠?ㅋㅋ 존버가야지!
"네. 두어 달 정도 지켜보면 충분히 지금보다 50프로는 더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저는 아까 말했던 대로 매도하도록 할게요."
알탕 : 이유 알려주세요!
짝발 : 왜 매도하는 거임?
"아, 이유요?"
현재 젤트리온은 가격이 겨우 8만 2천 원이었다. 정보권에 나온 역사적 최고점인 24만 7,500원에 도달하면 그것만으로도 200퍼센트에 이르는 수익률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