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알 준비(2) >
잡념을 멈추고 말을 이어갔다.
"최근에 관심이 가는 국내 기업 하나가 생겨서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해당 기업의 주식을 좀 매수해볼까 싶어서 매도하는 겁니다."
시청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강남걸 : 무슨 종목인가요?
길키스 : 오호? 다른 주식 사려는 거였구나
알탕 : 와, 오랜만에 뭔 종목일지 기대됨ㅋㅋ
팬다 : 알려줘요, 빨리! 하아아악!
영하당 : 따라가야지ㅋㅋㅋ
류성은 일단 매도부터 진행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정확히 1,437만 달러였다.
원화로 계산하면 대략 167억 원 정도였다.
이 정도 금액이면.
공매도하는 이들을 조금은 당황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
"흐흐."
너무 재밌을 거 같아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사실 이번에 공매도 전쟁이나 한 번 해볼까 싶어서요. 너무 기대가 되다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네요."
키플레이엉 : 공매도랑 전쟁을...?
연구실 : 헠, 설마...! 설마아아아!
장마 : 감이 온다, 감이 와!
카이카이 : 대박, 생각만으로도 지려버렸네ㅋㅋ
일부 눈치챈 사람이 존재했다.
그들은 후원을 이어가면서 본인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드러냈다.
[젤트갓님이 5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젤트리온 맞죠?!?!?! 맞죠?!?! 맞죠?!]
[무조건이긴다님이 10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젤트리온이구만! 승리 기원합니다!ㄷㄷ]
[1일1매수님이 3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젤트리온 가쥬아아아앜!!!]
[젤트갓님이 70,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드디어...! 엄청 기다렸다고요ㅠㅠ]
음성 메시지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소리를 조금 낮추고.
류성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진정하시고요. 네, 젤트리온이 맞습니다. 실적도 좋고 비전도 좋더라고요. 다만 이번에 공매도가 심해서 주가는 내려가고 있던데. 뭐, 결국에는 실적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기업의 속성이니까요. 한동안 꾸준하게 매수하면 분명 공매도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알탕 : 미쳤다...!
하수 : 저도 관심은 있는데 공매도가 진짜 역대급으로 심하던데요?
"맞아요. 공매도가 좀 심하긴 하죠. 그래도 전 젤트리온을 믿습니다."
프렌드쉽 : 매수 추천하시나요?
깔창 : 따라서 매수하면 됨?
부들부들 : 오랜만에 종목 추천인가?
"어우, 아뇨. 절대로 아닙니다. 이거 매수 추천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저 혼자서 방송 틀고 매매하는 거니까 따라서 매수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솔직히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아시겠죠?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요. 아, 물론 투자는 개인의 몫이니 더 뭐라고 하지는 않을게요."
이건 호양TV를 보면서 배운 거였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심리.
깔창 : 아하, 사지 말라고요? 그럼 사야지!
부들부들 : 각자 알아서 합시다ㅋㅋ
아앗 : 뭐지, 사지 말라니까 사고싶네ㅎㅎ
예상대로 그런 시청자가 꽤 보였다.
"참고로 미리 금융감독원에도 문의를 해봤는데요. 제가 직접적으로 시청자에게 매수하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방송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 마음 놓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젤트리온에 진입할 생각입니다. 제 손에 들린 현금, 제대로 사용해서 천천히 매수할 테니까 다들 많은 기대 바랍니다."
주린입니다 : 근데 왜 내일 바로 매수 안하세요?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요. 그 일정을 고려한 겁니다."
주린입니다 : 아하...!
"자, TQQQ도 매도했고 월요일부터 젤트리온 매수한다는 이야기도 전해드렸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알탕 : 아니, 벌써요?ㅠㅠ
짝발 : 너무 짧다...!
"젤트리온 매수 시작하면 생방송으로 자주 찾아뵐 거 같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고요. 전투를 벌이기 전 짧은 휴식이라 생각해주세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다들 가하!"
그렇게 생방송을 종료했다.
고요해야 할 저녁.
주식 관련 커뮤니티가 뜨겁게 타올랐다.
*
많은 커뮤니티가 존재했지만.
역시나.
젤트리온 종목 토론방이 가장 활기찼다.
제목 : 왔다, 왔어! 신이 오셨다!
본문 내용 : 드디어 왔습니다, 정보꾼 다들 아시죠? 모른다고요? 그러면 너튜브가서 쌓여 있는 영상부터 보세요! 자, 보셨나요? 네, 그 위대한 분께서 드디어 이 누추한 곳에 오시겠답니다! 다들 쏴리 질러어어어! 드디어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고요!
댓글
헬로이 : 오셨다, 오셨어ㅠㅠ
류우 : 헠, 대박. 가능성이 생겼다...!
꾹꾹이 : 공매도 타파하자!
기웃남 : 누군데, 이럼?
크크크 : 요즘 제일 핫한 투자자임ㅋㅋ
ㄴ기웃남 : 고래요? 구독자는 이제 겨우 2만 넘은 거 같던데
ㄴ크크크 : 지난 영상을 보셈. 진짜 몇 개 안 됨. 근데 벌써 2만 넘은 거임!
ㄴ기웃남 : 오호라... 보고 옴!
랩티비 : 와씨, 내일부터 매수 시작해야지!
어느덧 달성한 놀라운 기록이었다.
구독자 2만 명.
사실상 방송하는 텀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의 가파른 성장이었다. 게다가 투자 좀 한다는 사람들은 사실상 대부분 구독을 누른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 실력과 능력이 압도적이었으니까.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제목 : 월요일부터 시작인가...ㅎ
제목 : 구세주 오셨네요^^
제목 : 와, 공매도 ㅅㅋ들 진짜 제대로 전쟁해보자!
제목 : 시작이다, 시작!
제목 : 흥분된다, 으으, 떨려...!
제목 : 나 벌써 지림^^
제목 : 와씨, 그 사람 시드머니 봤음?ㅋㅋ
시드머니 관련 게시글도 보였다.
제목 : 와씨, 그 사람 시드머니 봤음?ㅋㅋ
본문 내용 : 정확하게 보여주진 않았는데 매도하는 수량이랑 가격이랑 계산했더니 ㅁㅊ, 원화로 환산하니까 150억은 그냥 넘던데?ㅋㅋㅋ 그걸로 젤트리온을 매수한다 이거지? 크흐, 살 떨린다...! 공매도 녀석들! 이거 정보 듣고서 엄청 쫄았다에 한 표!
댓글
아앗 : 아아앗, 그, 그런!ㅋㅋㅋ
몽롱함 : 지금 증권사 난리났을지도ㅎㅎ
커피향 : 너무 좋다...!
얼뜨아 : 시드 미쳤네ㄷㄷ
해당 글을 보고 있던 류성은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관심이 있을까.
"흐음."
마냥 무시하기에는 확실히 거금이기는 했다.
167억 원.
그 돈을 앞에 두고 누가 쉽게 여길 수 있으랴.
하지만 주체는 기관이었다.
그들이 운용하는 자금을 생각한다면 167억 원은 사실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니까..."
류성이 해야 할 일은 그 돈을 한 방에 사용해서 매수하는 게 아니었다.
매수벽을 세우고.
시청자를 비롯한 개인 투자자의 흥미를 끌어내어 그들이 1주라도 젤트리온을 매수하게끔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 자그마한 돈이 결국에는 기관조차 항복하게 만드는 거대한 흐름으로 바뀔 테니까.
*
재능 강의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보육원 근처에 비어있는 소규모 강단을 대여했고 몇 명의 강사를 초청했다. 이미 순서를 정한 상태였는데 오늘, 주말을 맞이하여 최초의 강의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첫 강의는 저도 흥미롭네요."
"그런가요?"
"네, 제 여동생도 배우가 꿈이라서요."
류성의 말에 원장님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멋지네요."
"뭐,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멋지긴 하죠."
그러면서 아이들을 눈에 담았다.
의외로 즐거워 보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이번 강의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재밌겠다, 그치?"
"근데 누굴까?"
"글쎄. 그래도 강의라고 하니까 조금 떨려."
"나도, 히히."
슬쩍 스마트폰 메모장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연기 재능은...
몇 명의 아이가 연기에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과연 흥미도는 어떨까. 슬쩍 연기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희진이지?"
"아, 네. 안녕하세요."
"그냥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솔직하게 대답해줄래?"
"네, 뭔데요?"
"오늘 연기 강의 어떨 거 같아?"
"어, 음..."
중학교 2학년인 최희진.
그녀가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활짝 웃으며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상할 거 같아요!"
"으응?"
"이런 강의는 들어본 적도 없는걸요."
"아, 그렇긴 하지?"
"네. 그래서 잘 모르겠어요."
일리 있는 말에 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면 강의 끝나고 다시 물어봐도 될까?"
"그럼요!"
"고맙네, 그럼 이따가 보자."
"네에!"
꽤 재밌는 아이였다.
이상할 거 같다라.
사실 류성도 연기 강의는 처음이라서 어떻게 진행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수업처럼 하려나.
참관해 보면 알게 되리라.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늘 보육원, 아름드리 보육원, 희망찬 보육원 세 곳의 아이들이 강단으로 들어갔다.
머지않아 등장한 강사.
TV에서 꽤 자주 봤던 중견 배우, 안정기였다.
조연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잘 모르는 거 같지만 류성이나 보육원 원장님들은 안정기 배우를 보며 눈을 빛냈다. 본래 강의는 거의 안 하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보육원 아이들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흔쾌히 수락했다고 들었다.
"반갑습니다. 대부분이 저를 모를 겁니다. 그렇죠?"
"네에!"
"아이고, 대답은 씩씩한데 내용은 마음에 안 드는걸?"
안정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큰 변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 손놀림이나 표정, 그리고 눈짓이나 발끝이 묘하게 가벼웠다.
장난스럽다고나 할까.
"그래도 영화나 드라마에 꽤 자주 나오는 편인데, 정말로 나 아는 사람 없어요?"
그러자 몇 명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저 알아요!"
"저두요!"
그에 안정기가 장난스레 웃었다.
"고마운 아이들이네요. 네, 저는 배우 안정기라고 합니다. 자, 그러면 간단한 질문부터 해볼까요? 배우는 뭘 하는 사람들일까요?"
아이들이 다시 열심히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안정기의 존재감이 어느새 강단을 가득 채웠다.
"연기란 단순하면서도 명료하죠. 다른 존재를 본인의 내면에서 끄집어내어 형상화하는 거니까요. 결국, 모든 것이 본인 안에 존재하는 거거든요."
전문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언제부터였지?
정확한 시점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친근했던 느낌이 사라지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전문가로서의 그만이 오롯이 존재했다.
"여기 있는 학생 중에 배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도록 하죠."
그 탓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은 쉽사리 손을 들지 못했다.
"이야, 이거. 생각보다 너무 적은데요?"
그때였다.
또다시 무언가가 바뀌었다.
"정말로 이게 전부인가요? 이 많은 사람 중에 배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더 없다, 그 말이죠."
눈빛은 차갑고 표정은 무심했다.
"다시 묻겠어요. 배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손을 드세요."
비슷한 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무거웠다.
무언가 억압하는 느낌.
손을 들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강압이 그에게서 뿜어졌다.
스르륵, 들리는 손.
위압감에 이끌린 아이들이었다.
"조금 늘어났군요."
안정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놀랐죠?"
아마도 저게 그의 진짜 모습이리라.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알아차렸겠네요. 과연 정답을 알고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네요. 자, 제가 강단에 서고서 몇 명이나 연기했을까요? 정답을 얘기하면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주도록 할게요."
그제야 아이들은 강단에 있는 안정기가 계속 연기했음을 깨달았다.
달라진 것만 같은 사람.
어느새 바뀐 분위기.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흐름.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