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86화 (86/277)

< 공매도 전쟁(4) >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무수한 카드가 보였다.

카드가 참 좋단 말이야.

생각해보면 카드야말로 퀘스트 보상의 정점이 아닌가 싶었다. 재능이나 정보권, 특이한 물약은 물론이고 ‘운명의 타로카드’같은 상상도 못 한 물품까지. 그 모든 것이 바로 카드에서 나왔으니까.

"그러니까..."

카드 보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얻어내는 게 중요했다.

별로여도 좋으니까.

조금은 특별한 게 나와주기를.

투욱.

손을 뻗어 카드 하나를 선택했다.

[최하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체크메이트’를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재능이라 상점에 갱신되지 않습니다.]

순간 행동이 멎어버렸다.

와, 씨.

오랜만에 보는 재능이었다.

"대박 터졌네."

설레는 마음으로 해당 재능을 확인했다.

[체크메이트]

[서양 장기라고도 불리는 체스 게임에서 발동할 수 있습니다. 해당 재능을 사용할 경우 체크메이트로 나아가는 길과 흐름이 자연스레 인지됩니다. 하루에 3시간만 사용할 수 있으며 사용하지 않으면 시간은 최대 30시간까지 누적됩니다.]

[사용 가능한 시간 : 3시간]

류성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체스, 체스라...?"

군대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또 재미를 붙였던 게임이었다.

할 줄은 아는데.

그렇다고 또 잘하는 건 아니었다.

휴대폰도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의 군대라 사실상 할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남을 때는 동기나 선, 후임과 체스게임을 하거나 구석에서 통기타를 치거나 그것도 아니면 운동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랬었다. 그러니 실력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을까. 짧은 시간 동안 즐겼던 취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분명 좋은 일이기는 했다.

재능이었으니까.

그것도 영구적인 재능이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문제는 하나였다.

과연 이 재능을 쓸 일이 있을지였다.

"대회라도 나가야 하나?"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내디뎠다.

당장은 모르겠네.

어떤 방식으로 해당 재능을 사용해야 할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하기로 했다. 지금은 젤트리온에 집중해야 할 시기였으니까.

*

젤트리온 매수 3일 차.

이제 1주일 남았던가.

메모장을 열어 간략하게 적어뒀던 공매도 일지를 확인했다.

[11월 25일 장 막판에 숏스퀴즈 발생.]

[11월 26일부터 상승세.]

[12월 13일, 최고점 가격 24만 7,500원 달성.]

18일인 오늘까지 쓴 금액이 총 30억이었다.

170억이 남은 상태고.

주말을 제외하고 매수할 수 있는 날짜는 오늘을 포함해서 정확히 6일이었다.

속도를 조금 높여도 되겠는데?

1일 차에 10억.

2일 차에 20억.

그렇다면 오늘은 30억을 매수하면 되리라.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이후 가면을 착용하고서 생방송을 시작했다.

[젤트리온 30억 매수 들어갑니다.]

강력한 제목이었다.

사람들은 어그로라고 여기면서도 흥미를 느낄 터였다.

예상대로였다.

엄청난 속도로 시청자가 진입했다.

"다들 반갑습니다. 많이들 오셨네요."

10분 만에 3천 명을 돌파했다.

이거 아무래도.

유명 너튜버의 홍보가 생각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 모양이었다.

"제목 덕분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오늘은 유독 많이들 오시네요. 방송 시작하고 20분도 안 지났는데 무슨 일이죠? 매일 기록을 경신하는 느낌이라서 이젠 조금 무서울 정도인데요?"

알탕 : 제목을 저렇게 해놨는데 어떻게 안 와요ㅋㅋㅋ

초봅니다 : 와, 30억...? 진짜에요?

탱글이 : 에이, 농담일 듯?ㅋㅋ

다솜 : 전, 다른 너튜버 영상 보고 왔어요ㅎㅎ

글로벌 : 저도요! 근데 예전 영상 보니까 믿음이 화악!ㅋㅋ

나우 : 기대합니다!

콘솔러 : 클라스가 역시ㅋㅋ

롤롤 : 워, 시청자도 역대급이고ㅎㅎ

"채팅을 보니까 어제 영상을 올려주신 유명 너튜버 분의 영향이 크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그럼 9시 넘었으니까 일단 젤트리온 가격부터 볼까요."

젤트리온 호가창을 화면에 띄웠다.

현재 가격 7만 7,500원.

어제보다 더 하락한 상태였다.

"좀 내려가긴 했네요."

류성은 대수롭지 않았으나 시청자는 또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망고 : ㅠㅠ진짜 계속 떨어지네요

대추꽃 : 하, 죽겠음...

알탕 : 공매도 심하긴 하군요, 쩝

짝발 : 그래도 1주 매주 갑니다!

냄새꼬 : 이게 공포인가요...?

참새짹 : 무섭긴 하네요, 에휴

꽃등심 : 다들 힘냅시다!

반도체갓 : 매수 가즈아아아!

물한잔 : 후우, 언제 오를런지

충분히 무서운 상황이었다.

각자의 돈이 걸린 문제였으니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휘둘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어제도 말했었는데요. 저는 최저 구간을 7만 원 정도로 보고 있거든요. 거기에 점점 근접하고 있습니다. 해당 가격을 혹시라도 찍으면 저는 풀베팅을 할 의향이 있어요. 근데 쉽지 않을 거예요. 일단은 가볍게 7만 6,000원에 30억 정도 매수 예약을 걸어볼게요."

정확히 39,473주가 매수 대기에 돌입했다.

"기존에 쌓인 물량까지 더해서 4만 5천 주 정도고요."

30억 정도의 거금을 사용하니까 확실히 시작부터 벽이 두터웠다.

알탕 : 우워...ㅋㅋㅋ

라리라 : 거의 4만주ㄷㄷ

꽃등심 : 저도 7.6만에 매수 걸어둡니다ㅎㅎ

짝발 : 가쥬아아아악ㅋㅋㅋ

모래알 : 아니, 진짜 30억을...?

미미린 : 실화에요?ㅋㅋㅋ

물병자리 :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매수걸어버리시네ㅎㅎ

"내일릉 더 많이 매수할 예정입니다. 만약 오늘 장 마감까지 매수체결이 안 되면 그냥 위로 긁어서 매수할 겁니다."

미미린 : 미쳐따, 미쳐써...!

알탕 : 역시 우리의 가면남님!

오공잉 : 멋지네요...! 저도 매수 동참합니다!

알알이 : 오늘은 좀 오르자!

"요즘 너무 하락만 이어가는 중이긴 하죠. 반등 한 번 주면 좋긴 하겠네요. 공매도하는 녀석들 혼을 쏙 빼줘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만들어야 했다.

"장 초반이긴 하지만 좋습니다, 좋아요. 근데 계속 호가창만 보고 있으면 심심하니까 제가 왜 젤트리온을 매수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조금 공유해볼까 합니다. 당연히 매수를 추천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매수하는 이유를 알려드리는 겁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류성은 메모장을 열어서 글을 작성했다.

[젤트리온 공매도와의 전쟁]

1. 실적이 너무 좋다.

2. 공매도 현황이 안정화되는 중이다.

3. 매수세가 증가하고 있다.

4. 언제까지 공매도를 칠 수는 없다.

5. 반드시 환매수 해야 할 시기가 온다.

6. 역대급 거래량이다.

작성하면서 하나씩 설명을 해줬다.

"실적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공매도 현황을 보면..."

개미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끝없이 나열되었다.

"거래량이 역대급으로 많은데 7만 원대부터는 생각 이상으로 잘 버텨주고 있죠. 왜일까요? 당연히 그만큼 많이 매수하니까 그런 거죠. 그럼 누가 매수했을까요? 바로 개미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라는 의미에요."

알탕 : 맞습니다, 맞아요!

짝발 : 나도 한 팔 거들었지ㅋㅋ

주린잉 : 좋네요^^

"그럼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젤트리온을 굳이 매도하려고 들까요? 지금 가격에? 아니죠. 우리는 숏스퀴즈가 나올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틸 겁니다. 그걸 위해 참고 인내하는 거니까요!"

알탕 : 옳소!

키키킥 : 고렇쥐, 고거지!

"자연스럽게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줄어들게 되고 공매도 세력들도 주식을 빌려오는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게 될 겁니다. 지금 개미들, 똑똑하거든요. 증권사 옵션에 들어가면 기관에 주식 빌려주는 거 막을 수 있어요. 다들 알고 계시죠? 혹시 모르실까 봐 설명을 드리자면..."

근거와 이유가 정말 다양했다.

"모든 상황이 긍정적입니다. 제가 여기서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이게 카운터 펀치가 되리라.

"길어도 다음 주 금요일이 되기 전에 무조건 숏스퀴즈 발동합니다. 흐름이 그래요. 그 흐름이 제 눈에는 명확하게 보입니다. 이건 제 닉네임 정보꾼을 걸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각종 커뮤니티와 게시판에 공유했다.

작성자, 정보꾼.

그 이름이 지닌 무게감은 생각보다 강했다.

*

2년 넘게 젤트리온을 모아 온 정한열.

그는 젤트리온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니, 의심치 않았었다.

"하아..."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견디기 힘들었다. 실적이 좋음에도 내려가는 주가를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회사에 취업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젤트리온에 투자해왔다. 그런데 벌써 고점 대비 30퍼센트나 하락하면서 평단가에 근접했다.

"조금만 더 떨어지면 마이너스."

얼마 전 수익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버텨야 하나?

지금까지 해온 투자를 믿고 싶었지만 쉽지가 않았다.

상승은 더뎠고.

하락은 생각 이상으로 급격했다.

그냥 본전이라도 건질까.

그런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인간이기에.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야야, 요즘 젤트리온 난리던데 괜찮아?"

"힘내라."

"벌써 30퍼센트나 빠졌는데?"

"어휴, 힘들겠네.“

그가 젤트리온에 투자한 걸 아는 회사 직원들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수시로 물어왔다.

괜찮냐고.

안 괜찮은데 그걸 표현할 수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종토방이나 가볼까...“

그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종목토론방에 시선이 갔다.

예전에 몇 번 들리긴 했었다.

하지만 오직 싸움만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인지한 뒤로는 발길을 완전히 끊었었다.

다만, 오늘은.

누구라도 좋으니 위로를 받고 싶었다.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을 보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어...?"

손이 절로 움직였다.

본인도 모르게 종토방에 접속한 것이었다.

뭐야, 이거.

게시글이 이상했다.

왜 농락하는 글이 없는 걸까.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숏스퀴즈가 코앞이라고요!]

[정보꾼님, 게시글 봤죠?]

[다들, 다음 주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매수 가즈아아아아!]

[참고로 정보꾼 투자 성공률 100%]

[오늘도 1주 매수 동참합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젤트리온을 매수해야 하는 10가지 이유!]

다시 확인해봐도 종토방은 농락과 비웃음이 아닌 투쟁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이게, 무슨...?"

하나같이 절망에 빠져있으리라 생각했다.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지쳐있는 이들을 보면서 킬킬거리거나 조롱하는 이들로 가득하리라 여겼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부분의 게시글에서 의지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허어..."

정한열은 서둘러 게시글을 하나씩 확인해봤다.

아아...!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사람 ‘정보꾼’이라는 너튜버가 만들어낸 흐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가 언급한 근거와 이유.

마음을 충분히 가라앉힌 상태에서 읽어보니 매우 논리적이었다.

틀린 말이 전혀 없었다.

합리화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러했다.

이건 그냥 팩트였다.

있는 현상 그대로를 설명한 것뿐이니까.

"맞아, 내가 공부한 거였잖아."

흔들렸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래, 의심하지 말자.

잠시 반성을 하고서 현재 남은 돈을 확인했다.

"월급...!"

마침 월급이 들어온 상태였다.

망설일 게 없었다.

그는 곧바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돈을 증권사에 보냈다.

내일 9시.

모든 돈을 사용해 젤트리온을 매수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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