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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87화 (87/277)

< 숏스퀴즈(1) >

젤트리온 매수 4일 차.

어제보다 매수세가 훨씬 더 강해졌다.

"오늘은 좀 오르네요."

7만 7,500원.

7만 8,000원.

7만 8,500원.

불이 붙었는지 매수세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이윽고 7만 9,500원에 이르렀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8만 원에 놓인 매도벽을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8만 원에 물량이 2만 주 정도 걸려 있거든요."

알탕 : 어후, 금액으로 따지면 16억!

짝발 : 공매도 녀석들인가...!

대박사건 : 누가 저거 한 방에 좀 먹어주면 좋겠네요ㅋㅋ

맛점 : 갉아먹자, 가즈아아아!

"지금 물량 아주 잘 먹고 있습니다. 호가창에 매수하는 물량 보이죠? 11주, 97주, 27주. 2주, 1주, 9주, 56주. 생각보다 매수세가 강해요. 좋습니다, 좋아요."

이 모든 것이 오직 개미의 힘이었다.

소액 매수 동참.

그 열기가 오늘은 더 강력해진 느낌이었다. 정보꾼이라는 닉네임을 걸고서 젤트리온 매수의 이유를 논리 있게 풀어낸 게 유효했던 모양이었다.

한 방이 더 필요한데.

가만히 지켜보던 류성이 눈을 빛냈다.

"아직 8만 원에 매도벽이 1만 주 이상 남았거든요? 이거, 그냥 제가 사버리고 매수벽 세울게요."

류성은 곧바로 8만 원에 대량의 매수 주문을 넣어버렸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

40억 원을 사용한 것이다.

무려 5만 주였다.

알탕 : ㅋㅋㅋ대박이다, 대박!

낄끼리 : 와, 존멋^-^

근육몬 : 진짜 개 멋잇다ㅋㅋㅋ

밥스트롱 : 반했습니다, 하앍...!

아앗 : 앗, 아앗...!

까막눈 : 양자로 삼아주세요, 아버지!

단번에 1만 주 거래가 체결되었고 남은 4만 주와 개미들의 소소한 물량이 더해지면서 매수벽이 세워졌다. 그러나 공매도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81,500원까지 가격이 올랐을 즈음 다시 대량의 매물이 튀어나오면서 8만 원의 벽을 무너트렸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공매도 녀석들, 이제 정말 힘들 텐데 대단하네요."

도대체 어디서 빌려오는 건지.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류성의 눈에는 그게 분명하게 보였다.

"그래도 끝이 보이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요."

머지않아 속보가 하나 나왔다.

정말로 끝장을 내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식이었다.

알탕 : 대박, 속보에요, 속보!

젤트가즈아 : 오오, 미친. 미쳤다!

세자 : 허얼, 드디어...!

왕남 : 회장 납시오! 길을 비켜라!

"어, 저도 보고 있는데요."

류성은 시청자와 함께 속보 내용을 확인했다.

"내일 오후 2시에 젤트리온 회장 허전진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네요. 최근 실적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비전까지 발표할 거라고 적혀 있네요."

중요한 존재의 등장이었다.

모든 이들이 기대했다.

이건 그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공매도에 관해서도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이건 일지에 없었는데.

그냥 언급되지 않은 내용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없던 일이 발생한 것인지도 몰랐다.

짧은 고민이 이어졌다.

빠르게 결과로 이어졌다.

뭐, 상관은 없지.

애초에 이건 정답을 알아낼 수 없는 문제였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신경을 써봐야 무의미한 심력만 소모할 뿐인 것이다. 중요한 건 회장의 등장이 젤트리온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라는 사실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짝발 : 무조건이죠! 공매도 얘기 나올 듯!

곰발바닥 : 공매도 세력들 각오해라!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음ㅠㅠ

우르르 : 사실 자사주매입 한다고 그러면 끝인데ㅎㅎ

"오, 자사주매입. 그것도 좋죠. 거기에 소각까지 추가할게요."

그러면 정말 당장이라도 숏스퀴즈가 발생할 터였다.

그 정도 임팩트였으니까.

알탕 : 자사주 매입 후 소각ㅋㅋ 지리네요

포에버영원 : 말만 들어도 소름...ㅋㅋ

"뭐, 사실 그런 기대는 좀 과하고요. 그냥 공매도에 관해서 한 마디라도 해주면 좋겠네요.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럴 때 제대로 나서줘야 투자자들도 믿음을 보일 테니까요."

알탕 : 당근! 완전 기대 됨ㅋㅋ

하꼬시청자 : 가즈아아아!

냄비 : 진짜 제바류ㅠㅠ

철밥통 : 싸우자! 물리치자!

수도 : 공매도 척결!

진심러 : 어서 내일이 오길ㄷㄷ

"저도 내일이 기대되네요. 그런 의미로 오늘 20억 정도만 더 매수하겠습니다. 왠지 느낌이 좋아서요."

이번에는 그냥 위로 긁어버렸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시원한 매수였다.

*

11월 20일, 금요일.

매수 5일 차.

류성은 시청자들과 함께 젤트리온 회장의 기자회견을 기다렸다.

"5분 정도 남았네요."

기대감 덕분인지 현재 젤트리온의 주가는 8만 4,500원이었다. 류성은 시청자와 수다를 떨면서 슬쩍 수익현황을 체크했다.

종목명 : 젤트리온

보유주식 : 150,376주

매입금액 : 11,999,983,750

수익률 : 5.69%

평가손익 : 682,799,075

총평가 : 12,682,782,825

수익률 5.69퍼센트.

수익금 6억8천.

거금을 굴리기 시작하니 움직이는 돈의 크기가 참으로 비현실적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익숙해졌다.

이런 거금을 봐도 크게 떨리지 않았다. 물론 수익률이 수십 퍼센트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또 말이 달라지겠지만.

"자, 이제 나오고 있습니다."

회장 허전진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젤트리온 회장 허전진입니다. 먼저 분기실적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올해 1분기부터 빛을 보기 시작한 젤트리온의 신약...]

인사와 함께 본론에 들어갔다.

감금 : 아직은 다 아는 내용ㅋㅋ

에피소드 : 오, 그래도 다음 실적도 좋을 듯!

인정 : 강력한 한 방을 다오!

멘트 : 부족하다, 부족해!

마무리 : 주가 하락하는 중ㅋㅋㅋ

쏘핫 : 기대감 소멸임?ㅠㅠ

알탕 : 아따, 빨리 공매도 얘기나 좀 해달라구요!

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기대되는 실적, 비전, 그리고 미래라..."

어느 정도 발표가 끝난 것 같았다.

[자, 이제 질문받겠습니다.]

기자가 손을 들었다.

지목을 받은 이가 질문을 던졌다.

[동xx의 기자입니다. 기대되는 미래, 잘 들었습니다. 다만 미래가 중요한 만큼 현재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많은 투자자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최근 공매도가 너무 극심한 탓에 주가가 30퍼센트나 빠져버렸으니까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질문이었다.

"떴네요. 과연..."

젤트리온 회장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클로즈업되는 회장의 얼굴.

지그시 감고 있는 눈과 굳은 표정이 그의 고심을 대변했다. 짧은 적막이 깨어진 것은 그가 눈을 뜬 직후였다.

[좋은 질문입니다.]

허전진이 말을 이어갔다.

[공매도, 매우 심각한 부분이죠.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기업은 결국 실적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젤트리온의 가치를 믿습니다. 공매도는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흡족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부족했다.

[Kmb 방송국 기자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말로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군요.]

그에 허전진이 마이크를 다시 쥐었다.

[당장은 지켜볼 겁니다만, 공매도가 계속해서 주가를 억누르고 기업의 가치를 무너트린다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 자사주매입 및 소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흘러내리던 주가가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와우, 벌써 8만 5천 원까지 올라왔는데요? 솔직히 제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좋은아요. 당장은 아니어도 어쨌든 이런 공매도 추세가 이어지면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도 할 거라는 얘기니까요. 희망적이네요."

회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이야기였다.

이건 의미가 있었다.

개미들을 단합시키기에도 충분했고.

짝발 : 가즈아아아아아악!

트리온갓 : 팬티벗고 쏴리질러어어엌ㅋㅋ

집도리 : 지, 지려따ㄷㄷㄷ

탕수육 : 크흡, 드디어 왔구나!

알탕 : 올인 매수 갑니다^^

주린잉 : 저도 한 발 걸칠게요ㅋㅋ

류성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분위기가 반전되었으니까.

본래라면 다음 주 수요일에 숏스퀴즈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으로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숏스퀴즈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확신할 순 없었다.

어쩌면 월요일 9시 장이 시작되면 다시 가격이 흘러내릴 수도 있었다. 그때야말로 세력이 주가를 흔들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으니까.

어차피 12월 13일이 되면 24만 7,500원에 이르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지.

남은 돈을 분할로 사용하면서 방송을 하루라도 더 이어가는 게 이득이었다. 그게 달라질 미래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황이 참 재밌네요. 장 마감까지 주가가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보자고요."

현재 오후 2시 30분.

장이 마감되기까지 겨우 50분이 남은 상태였다.

*

젤트리온 공매도 세력의 주력으로 꼽히는 EX투자사.

"팀장님, 이거 어떡하죠?"

"기다려."

"이러다가 다른 곳에서 먼저 숏스퀴즈 시작할 거 같습니다만."

팀장이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아앙!

그의 일그러진 표정이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알려줬다.

"빌어먹을, 뭔 이런 경우가 다 있어!"

공매도의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었는데.

"젤트리온 회장 그 자식, 진짜 싸워보자는 거지?"

"그렇긴 한데, 이번엔 졌습니다."

"알아, 안다고!"

이번 사태는 정말 이례적이었다.

먼저 개미들부터 달랐다.

절대 뭉치지 않을 개미가 뭉쳐버렸고 상당한 자금을 가진 너튜버가 대거 투입되었으며 심지어 회장까지 나서서 불을 질러버렸다.

"어이가 없군, 정말."

이미 분위기가 넘어갔다.

이대로 공매도를 이어가 봐야 손해만 커질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지금이라도 매수를 해야 그나마 손해를 덜 보게 될 테니까.

"팀장님, 다른 곳에서 먼저 매수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그래도 자금이 가장 큰 곳이 바로 여기였으니까.

"우리가 주도해왔고 우리가 주도한다. 일단은 최대한 가격 떨어트려. 나머지 공매도 녀석들도 따라올 수 있게끔."

"시작하는군요."

"그래. 모든 전력을 동원해서 가격을 하락시키고 최대한 싼 가격에서 매수를 시작해야지."

"그럼 공매도가 아닌 들고 있는 주식으로 매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기존에 들고 있던 평단가가 낮은 젤트리온을 매도하여 수익을 내고 짓눌린 가격의 젤트리온을 새롭게 매수해 빌린 주식을 갚는다. 그렇게 하면 전산상으로는 크게 손해를 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거였다.

"매도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들고 있는 젤트리온 주식을 무자비하게 던졌다.

3천주, 1만주, 2천주, 5천주.

나름대로 두텁다고 여겼던 매수벽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렸다.

84,000원.

83,500원.

83,000원.

82,500원.

5분도 지나지 않아 8만 원까지 하락했다.

"다른 곳도 매도에 동참한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내려, 더...!"

"남은 물량 계속 풀겠습니다."

가격이 계속 하락했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다 8만 원에 박힌 매수벽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매수벽이 상당한데요, 어쩔까요?"

"쯧. 그냥 깨트려!"

그렇게 무수한 물량이 쏟아졌다.

8만 원의 벽이 부서졌다.

공매도를 하는 다른 투자사나 기관도 마찬가지로 가격을 억눌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졌다는 것을.

그러니 이제부터가 진정한 눈치 싸움이었다.

누가 먼저 사들이느냐.

누가 먼저 숏스퀴즈를 실행하느냐.

누가 덜 손해를 보느냐.

이젠 개미와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들끼리의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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