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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95화 (95/277)

< 전화(1) >

사무실에 출근해 본격적인 공모전 홍보를 위한 업무를 진행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젤트리온의 상황을 체크했다.

"이야."

금요일에 상한가를 치고 어제, 월요일에는 7퍼센트 가량 가격이 올라갔다.

시총이 너무 커져서 움직임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 분위기 역시 나쁘지 않았다. 시작부터 3퍼센트나 가격이 오른 상태였으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올라갈 거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럴수록 수익은 더욱 거대해질 터였다. 지금은 생방송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심적인 여유도 생겨서 한결 편했다.

"이사장님."

"아, 네?"

류성은 증권사 어플을 종료하고서 부사장을 쳐다봤다.

"다음 주부터 지하철 역사에 홍보가 이뤄질 거라고 하네요."

"오호, 좋네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부사장의 표정이 밝았다.

"홍보처를 하나 더 물어왔죠."

"어디요?"

"초록창 포털 사이트요."

"와우...!"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이트니까 효과가 좋을 거 같아요. 메인 배너에 걸어주기로 했거든요. 확실히 돈을 많이 쓰니까 안 되는 게 없네요."

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하셨어요. 아주 제대로 홍보가 되겠네요."

"네, 기대해도 될 거 같아요."

"그러면 전시관은 그 이후에 접촉하죠."

"알겠습니다."

"포털 메인에 올라가기 직전에 RS 재단법인 홈페이지에 공모전 공지도 올리고요."

계획을 정리하면서 초록창 포털 사이트를 확인했다.

여기에 걸린다는 말이지?

검색란 바로 아래, 거대한 베너가 보였다. 그곳으로 익숙한 영화 제목 하나가 떠올랐다.

"어?"

이제 곧 개봉하는 영화 '탈출'이었다.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부사장님."

"네?"

"영화 탈출 아세요?"

"아, 네. 요즘 홍보를 많이 하더라고요."

"어때 보였어요?"

"음, 가볍게 보기에 좋을 거 같던데요. 코믹 재난 영화였던가."

"맞아요. 그러면 애들이랑 보기에도 괜찮을 거 같으세요?"

그 물음에 부사장의 눈빛이 원장의 그것으로 돌아갔다.

"보육원 애들 말씀이시죠?"

"네."

"너무 좋죠. 어렵지 않은 내용에 코믹하기도 하고 재난 영화라 그 상황을 탈출하려는 긴박함도 느낄 수 있을 테고. 그걸 전부 떠나서 사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자극이 되겠죠."

"좋네요. 그러면 아이들이랑 영화나 보러 가실까요?"

원장님이 환하게 웃었다.

벌써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장이 아닌 부사장이었다.

재단의 입장에서 그녀는 고민했다.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거니까 고민하지 말죠. 참고로 저도 아이들 반응이 궁금하기도 해서요."

아이들의 솔직한 반응이야말로 영화의 재미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테니까.

"그러면, 준비할까요?"

"네. 조용한 동네 영화관은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까 문의해서 상영관 하나 빌리면 되겠네요. 학교 다니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시간은 저녁으로 하고요. 아, 나가는 김에 애들한테 고기도 먹이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직원 여러분한테는 강요하는 거 아니니까 자유롭게 결정하시면 돼요.“

그 말에 직원이 눈치를 조금 보다가 대답했다.

"음, 저는 참여할게요."

"저도요!"

"전 약속이 있어서..."

"네, 그러면 두 분만 참여하는 걸로."

그렇게 정리를 하고 다시 업무를 보려는데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어, 저기. 안녕하세요?)

스마트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듯한 음성.

류성의 입꼬리가 말리듯 올라갔다.

정감가는 이 느낌.

미묘한 어투.

단번에 전화를 건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홍민기?"

(아, 네. 맞아요.)

"이렇게 전화까지 주고 고맙네. 어제 선물은 잘 받았고?"

(네, 그래서 인사드리려고요.)

"짜식."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든단 말이지.

(정말 고맙습니다. 학원 다니면서 열심히 배울게요.)

"그래, 제대로 한 번 해봐."

(네...!)

"그렇다고 부담은 갖지 말고. 그저 원하는 만큼만 하면 돼. 괜히 보답하겠다는 생각으로 무리하지 말라는 얘기야. 무슨 말인지 알 거라고 믿는다."

(네, 저만 생각할게요.)

"그래, 그거야."

(정말로... 고맙습니다.)

"오냐. 인사는 그만하면 됐으니까 다음에 보자."

가볍게 대화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가장 처음으로 전화를 준 녀석이 홍민기라는 사실은 조금 묘했지만 말이다.

다시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

전화가 또 걸려왔다.

(안녕하세여.)

"어, 누구더라...?"

(저, 하영이라고 해여.)

류성은 다급히 서류를 확인했다.

"아, 그래. 하영이구나. 안녕?"

인사를 하는 동안 류성의 손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노트북 인적사항 파일에 들어가 다급히 검색한 것이다.

<하영>

그러자 두 개의 이름이 떠올랐는데 성이 달랐다.

누구지?

나이를 확인해보니 다행스럽게도 한 명은 어린 하영이었고 한 명은 중학생 하영이었다. 덕분에 통화의 주인이 어린 하영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캐치할 수 있었다. 혀가 조금 짧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마도 맞으리라.

"안하영이구나, 그렇지?"

(어, 아녀. 김하영... 인데여.)

순간 류성의 표정이 굳었다.

김하영이라고?

중학생 김하영?

"아, 아아. 그래. 중학교 2학년 김하영. 맞지?"

(네에. 알고 계시네여.)

"그럼, 당연하지."

그래, 중학생이건 어른이건 혀가 짧을 수 있지. 이상한 고정관념으로 큰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크흠. 아무튼, 선물은 잘 받았고?"

(네. 정말 감사해여. 노래 정말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거든여. 나중에 제대로 배우면 꼭 한 번 들려 드릴게여.)

"좋지. 기다리고 있을게."

(네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사장과 직원들이 눈을 초롱하게 빛냈다.

"이사장님, 아이들이에요?"

"네, 맞아요."

"아, 좋으시겠다."

순간 류성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 생각을 못 했네.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분명 궁금했을 텐데,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게 고마웠다.

"너무 저만 들었네요."

"아뇨, 뭘. 괜찮아요."

"다 같이 한 일인데 같이 들어야죠.“

"사실... 궁금하긴 했어요.“

"그러면 다음에 전화 오면 꼭 스피커 폰으로 바꿀게요."

이후로도 몇 통의 전화가 더 걸려왔다.

전부 아이들이었다.

이번에는 스피커 폰으로 바꿔서 직원들과 함께 감사 인사를 들었다.

(고맙뜹니다아!)

명함을 나눠주긴 했었는데 이렇게 쉽게 전화를 걸어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의외긴 한데. 뭐, 직접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애들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그래, 다음에 보자."

(안녕히 가세여!)

"크큭, 그래. 너도 잘 가고."

(네엡!)

통화를 끊자 부사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고 홍보직원 백성욱은 귀여운 조카를 바라보는 삼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업무직원 최송이와 경리직원 임나연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발을 동동거렸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

"꺄아아아악!“

"안녕히 계세요도 아니고, 가세요라니. 실수도 귀엽게 하네요."

"그러니까요, 정말."

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이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뒀다.

좋구만.

일하는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11월의 마지막 날.

1억 1천만 원을 투자했던 영화 '탈출'이 개봉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곧바로 임나연, 최송이, 그리고 부사장님과 함께 보육원으로 향했다. 아이들과 가볍게 인사하고서 빌려 놓은 버스 한 대에 우르르 탑승해 예약했던 영화관 근처로 이동했다.

"다들 배고프지?"

"네!"

"근처에 식당 예약해뒀으니 거기부터 가자. 갈비랑 삼겹살, 좋지?"

"좋아요!"

"우와, 갈비...!"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모두 다 함께 나가서 고기를 먹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기대될 수밖에 없으리라.

50분 정도 이동했을 무렵. 의정부 영화관 근처에 있는 식당에 버스를 주차했다. 이후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니 이미 상이 차려진 상태였다.

"어서 오세요."

"네."

"바로 앉으시면 됩니다."

사장님이 친절하게 맞이해줬다.

"자, 차례대로 앉자."

"네에!"

아이들은 자리에 앉으면서 입을 벌렸다.

"우와아...!"

고기의 자태가 참으로 아름다운 까닭이었다.

류성도 반할 정도였다.

삼겹살은 두툼하면서도 색이 영롱했고 갈비는 양념에 재워진 상태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참으로 좋았다.

"그럼 구워서 먹을까?"

"잘 먹겠습니다!"

각각의 자리에 앉은 어른들이 고기를 구웠는데 어른이 없는 곳에는 나이가 조금 있는 아이가 집게와 가위를 잡았다.

"내가 구워줄게."

"응, 형아!"

그중에서도 도유종과 예지은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류성은 바로 옆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도유종과 맞은편 왼쪽에 앉은 예지은의 고기 굽는 솜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종이랑 지은이. 둘 다 잘 굽는데?"

"집에서 많이 구워봤거든요. 어머니가 고기 준비하면 항상 저랑 지은이가 굽고는 했어요."

"오호, 그랬구만."

가볍게 수다를 떠는 사이 고기가 아주 잘 익었다.

음? 뭐지.

그런데 어째 아무도 고기에 손을 대질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원장님과 아이들, 심지어 함께 온 두 명의 사무실 직원까지 류성만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왜들 그러세요?"

그 말에 원장님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이사장님."

"네?"

"먼저 드셔야 아이들이 먹죠."

"아...?"

원장님이 저렇게 말하는 순간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사장이란 직위, 그리고 아이들을 돕는 위치에 선 지금.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본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요, 맛있게 먹읍시다."

류성은 웃으며 고기를 먹었고 그제야 아이들 역시 고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맛있어...!"

"대박!"

아이들의 감탄은 조금도 과하지 않았다.

어우, 끝내주는데?

갈비도 맛있었지만 삼겹살이 정말 일품이었다. 소금에 찍어 먹어도 좋았는데 불판 중앙에 자리 잡은 액젓에 찍어서 먹으면 그야말로 천하일미였다.

"와, 여기... 최곤데요?"

"어머, 엄청 맛있어요."

원장님도 그렇고 함께 온 임나연, 최송이도 동의했다.

"제가 먹은 삼겹살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요."

"저도요!"

"저는 여기가 최고네요."

모두가 만족하는 기분 좋은 식사였다.

*

배를 채우고서 영화관으로 향해 3관으로 진입했다. 작은 상영관이었는데 미리 전 좌석을 예약한 터라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에티켓은 지켰다.

조용하게 영화를 감상했다.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시나리오에서 봤던 코믹한 분위기를 배우가 잘 살린 덕분이었다. 대사와 표정이 더해지니 확실히 다채로웠다.

"푸훕...!"

"크크크큭."

"푸하핫!"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 많았다. 스토리 전개 역시 나무랄 게 없었다. 중반이 지나면서 위기가 쉴 새 없이 찾아왔는데 덕분에 집중력이 최고조로 끌어올랐다.

특히 반대편 건물로 넘어가기 위해 남주와 여주가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은 채 벽을 탈 때는 그 긴장감에 숨마저 죽여야했다.

100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영화가 끝난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류성은 옆자리에 앉은 도유종에게 말을 걸었다.

"어땠어, 영화?"

"최고에요. 엄청 재밌었어요."

"그래?"

"네! 재난물 중에서는 역대급인데요?"

"어떤 면이?"

"어, 그건..."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물어보는 이유가 있었다.

도유종이 지닌 잠재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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