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중심(2) >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중요한 내용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생각을 간추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조각가를 위한 공모전을 꾸준히 열 생각이긴 합니다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일정 주기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가를 위한 공모전을 차례대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아...!"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도록 할 생각이에요."
"멋지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주기는 어느 정도나 될까요?"
"1년은 되지 않을 겁니다."
"반년이 될 수도 있나요?"
"네, 개인적으로 6개월이 최적의 기간이 아닐까 싶지만 조금 더 고민해볼 문제겠죠."
"답변 감사합니다."
기자의 표정에 미소가 그려졌다.
진심에서 우러난 감탄이었다.
류성도 그 마음을 느꼈기에 더 솔직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상금도 엄청나던데 이렇게까지 상금을 높게 책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최측이 아무래도 재단법인이니까요.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한 겁니다. 어려운 예술가들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였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아...!"
막힘없이 대답하는 류성의 모습에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더 인터뷰를 이어갔다. 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그때마다 성심을 다해 대답했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
"끝난 건가요?"
"네. 공모전 관련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근데, 여담이지만 다른 질문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그러시죠."
기사의 눈이 초롱해졌다.
"알아보니 소년 소녀 가정도 후원하고 계시던데요."
"네, 맞습니다."
"상당한 금액이 주기적으로 지출될 게 분명할 텐데요. 그런 후원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가 뭘까요?"
공모전과는 궤가 다른 질문이었다.
그래서 여담이라고 한 건가.
이런 질문을 받는 게 처음이라 생소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음, 이런 말 해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이거 인터뷰에 안 실리죠?"
"대답 여하에 따라서요?"
"이상한 대답이면 안 실린다는 의미로 알게요."
그에 기자는 웃었고.
류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년 되진 않지만 저도 힘든 시절이 있었거든요. 목표도 목적도 없는 그런 삶이었죠. 취업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도전했는데, 열정이 없으니 잘 될 리가 있나요. 그때 느꼈어요."
"어떤 걸요?"
"나도, 꿈이 있었는데."
무거웠던 표정은 빠르게 지워졌다.
"뭐, 자주 바뀌긴 했지만요."
"어머, 저도요."
기자가 센스있게 그 분위기를 또 맞춰줬다.
"그냥 그렇게 나이가 들고 살아갈 줄 알았어요. 그렇게 아빠가 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요."
"보통 그렇죠."
"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까 제 부모님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어머니, 아버지도 분명 꿈이 있었을 텐데."
기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말이 생략되었지만.
그러나 이해될 수밖에 없는 그런 말이었기에.
"그래서 후원하게 된 거 같아요. 기대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기대라면...?"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아이들이 꿈꿀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그 아이들은 자라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꿈을 이뤄내지 못한 쓸쓸한 청춘이 아니라 꿈을 이뤄가는 과정 속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겠죠."
"그럴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 모습을 보고 싶거든요.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잠시 숨을 골랐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러니까..."
류성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꿈을 포기하거나 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그건, 이제 제 꿈이 되어버린 거죠."
목표가 생겼으니까.
*
인터뷰가 마무리 되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기사에 사진을 올려도 될까요?"
"가능하면 측면으로요. 정면은 좀 별로라서요."
그 말에 기자가 웃었다.
"그렇게 할게요."
"고맙습니다."
"음, 일단 내용 자체가 워낙 깔끔해서 크게 수정할 것도 없겠어요. 이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저희 인터넷 잡지 홈페이지에 올라갈 거 같네요."
"기대하겠습니다."
"네, 그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뵐게요."
생각보다 힘들었다.
쉬운 게 없네.
정신적으로 적잖게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럭키를 보는 순간 절로 기운이 솟구쳤다.
냐아아아.
류성이 미소를 지으며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아이고, 그래. 잠깐만."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손, 발부터 씻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자마자 럭키를 품에 안고서 턱 아래에 얼굴을 비볐다.
"럭키, 잘 있었어?"
냐아아앙.
"그래그래, 이제 놀아줄게."
인형을 가지고 럭키와 놀아주다가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오늘도 음식이 맛있었다.
다들 체력이 늘고 기운이 넘쳐서 그런지 화기애애하기도 했고.
"히히."
특히 류현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했다.
"연애하냐?"
"에? 아니. 뭔 헛소리야."
"근데 왜 그렇게 실실거려."
"아, 그런 게 있어."
"흐음."
"어휴, 바보."
"뭐래."
그때 폰으로 문자가 왔다.
사악한여동생 : 요즘 연기 배우는 게 좋아서 그런 거거든. 학원 같이 다니는 친구랑 깨톡하다가 웃은 거야, 멍청아!
나 : 아, 그래?
사악한여동생 : 그렇다! 엄마 아빠 앞이니까 모르는 척 좀 해달라고!
나 : 오냐. 누구 덕분인지는 알지?
사악한여동생 : 알지! 아니, 알죠ㅠ
나 : 잘해라?
사악한여동생 : 넵...!
대충 문자를 끝내고 남은 밥을 깔끔하게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뒹굴거리던 중이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드라큘라 스튜디오였다.
"네, 여보세요?"
(작사가님. 잘 지내셨죠?)
"아주 잘 지내고 있죠."
(다행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달에 앱플릭스에 드라마가 방영되거든요.)
"아아, 기사로 소식은 보고 있었어요. 축하드립니다."
(하하, 뭘요. 아무튼, 그거 때문에 이번 주말에 조촐하게 모여서 대박 기원 모임을 하려고 하는데요. 참여하실 수 있으세요? 배우분이랑 가수분, 이번 공모전에 당선된 작사가분들도 다 오시거든요.)
"그래요?"
(네. 괜찮으실까요?)
"저야 좋죠."
(알겠습니다. 그럼 참여하시는 거로 알고 있을게요.)
"네."
통화를 종료하고 노트북을 눈에 담았다.
모임이라.
유명 배우랑 가수도 온다는데 당연히 가봐야하지 않겠는가. 특히 마이유는 워낙 좋아하는 가수였기에 한 번 더 보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
늦은 밤이 되어도 세상은 흘러갔다.
특히 공모전 이슈.
해당 사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그 열기가 더해져만 갔다. 무려 초록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상태기도 했고 공모전 규모 자체가 역대급이었던 까닭이었다.
총상금 7억 원.
심지어 전시까지 해주고 거기서 판매가 되면 판매금 전부를 참가자에게 전해주는 말도 안 되는 공모전이었다.
꿈이 아닌가 싶었지만.
명백한 현실이었다.
이름에 이미 '지원'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공모전이었으니까.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이들은 역시나 예술가였다.
자그마한 예술가 모임 카페.
최근 조용하던 그곳에 새로운 게시글 수백 개가 올라왔다.
제목 : 와, 진짜 부럽네요.
본문 내용 : 여기도 조각가분 꽤 계시죠? 축하드려요!
제목 : 조각 공모전이라...
본문 내용 : 그간 힘들었을 텐데 좋은 기회가 왔네요. 잘 되길 바랄게요ㅎㅎ
제목 : 부럽기도 하네요ㅎㅎ
제목 :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ㅠㅠ 공모전 소식 듣고 헐레벌떡 들어왔어요.
제목 : 역대급이네요, 진짜ㄷㄷ
제목 : 대기업도 아닌 거 같은데 신기해요!
제목 : 참여하고 싶은데...ㅠㅠ
제목 : 아, 조각... 접으려고 했는데... 마지막 기회인가 봅니다ㅠ
그때 운영진이 게시글을 하나 올렸다.
제목 : RS 재단법인 인터뷰 내용
본문 내용 : 아래 인터뷰 전문입니다.
순식간에 조회수가 불어났다.
댓글도 무수하게 달렸다.
[댓글]
포동조각가 : 허얼, 이게 끝이 아니었네요?
ㄴ운영진 : 네, 꾸준히 공모전을 이어갈 거라고 하네요. 매번 다른 주제로 이어간다고 하니까 다들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무지개 : 와...ㅠㅠ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차이콥 : 도대체 RS가 어디에요, 근데?
ㄴ운영진 : 저도 잘 몰라서 찾아봤는데 제대로 알려지진 않았더군요. 그나마 찾아낸 건 RS 재단법인이 소년 소녀 가정을 후원한다는 정도. 그리고 RS투자사도 하나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ㄴ나나나 : 오, 그러면 투자사로 벌어들인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거네요?
ㄴ운영진 :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ㄴ아이디어 : 세상에...
그룹 : 리스펙합니다ㅠㅠ
냠냠 : 진짜 이런 곳도 있군요. 소년 소녀 가장도 후원하고 예술가도 지원하고...!
365일 : 와, 꿈이 되었다라... 멋지네요ㅠㅠ
열혈조각가 : 내 생에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도전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ㄴ쿠쿠쿠 : 수상하길 바랄게요!
ㄴ사진올인 : 파이팅ㅎㅎ
그들끼리의 소소한 응원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제목 : 대박 사건! 미쳤어요, 무조건 보세요!
본문 내용 : 링크가, 링크가 걸렸습니다...!
유명 가수 한 명이 해당 공모전을 본인 별스타그램에 올려버린 것이다.
[재밌는 공모전이 보여서^^]
간단한 말이었지만 영향력은 어마무시했다. 이제는 존재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마이유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으니까.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 소식과 단절되어 지내던 은둔형 조각가들 또한 해당 공모전 소식을 접하기에 이르렀다.
공모전 접수 신청이 폭발했다.
*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마이유가 링크를 걸어준 여파였다.
"어후, 바쁘네요."
"홈페이지도 터질 뻔했어요."
류성이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터진 게 더 용한데요?"
"아무래도 홈페이지를 직접 검색해서 오는 사람은 드물거든요."
"그래도 접수는 많죠?"
"네, 이렇게 조각가가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많은 분이 참여해주니 좋네요."
"저두요. 참, 그리고 조각상 전시 가능한 곳 위주로 컨텍했고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었어요. 이제 제대로 조건 따지면서 진행하면 될 거 같아요."
"오호, 다행이네요."
부사장이 미소를 머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번 자리가 없다면서 거절만 당했었는데 이제는 협약을 맺어달라고 난리에요."
"그래요?"
"네. 저희가 선택해도 될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명확한 을의 입장에서 이제는 동등한 입장, 혹은 갑의 위치에 서게 된 거니까.
물론 갑이 되었다고 갑질을 할 생각은 없겠지만 대우나 조건을 고를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일하는 의욕이 다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부사장님만 믿을게요."
"네! 이사장님!"
아무튼, 공모전도 순조로웠고.
(작가님. 드디어 오늘 저녁에 코코페에 입점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무라고 하셨죠?"
(네. 기간 한정 매일 매일 무료로 풀리게 되고 단독 배너에 각종 이벤트까지 걸리니까 유입이 꽤 될 겁니다. 독점이 아닌데 이 정도로 밀어주는 건 엄청 드물거든요. 인기가 정말 많을 거라고 보는 거죠.)
"좋네요."
(웹툰화도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1, 2화분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건 마무리되는 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기대할게요."
웹소설 역시 분위기가 좋았다.
이건 놓칠 수 없지.
치맥을 마시면서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업무를 보다가 오후 5시가 되자마자 바로 퇴근을 종용했다.
"자,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이신우의 가게로 향했다.
분주한 움직임.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주문이 꽤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어? 무슨 일이냐?"
"치맥 한잔하려고."
"저기 구석에 대충 앉아 있어 봐."
"오케이."
류성은 구석에 곳에 자리를 잡고서 코코아페이지 어플을 열었다.
올라왔으려나.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를 검색하자 작품 하나가 딱 떠올랐다.
같이 보기 19명.
이제 막 올라온 모양이었다.
어라, 댓글이 벌써 있네.
댓글란을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고인독자 : 와, 이게 여기에...! 이거 진짜 갓작입니다! 꼭 보세요!
뭉뭉이 : 무조건 읽으세요, 한 번. 아니, 두 번 읽으세요!
두 개의 댓글 모두 칭찬이었다.
좋긴 한데.
너무 이러니까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곧 이벤트를 받으면 엄청난 유입이 쏟아질 테니까.
"신기하네, 참."
어떤 이벤트도 없는데 독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보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어느새 같이 보기 27명.
벌써 8명이나 늘어났다.
"프라이드에 맥주면 되냐?"
"좋지."
"근데 난 바빠서 같이 못 앉아 있겠는데?"
"치킨 튀기면서 이야기나 하는 거지. 그리고 오늘은 조용히 뭐 좀 보려고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이나 봐라."
"그렇다면야. 근데 뭐 보려고?"
류성은 맥주를 들이켰다.
크흐으으으.
그러면서 슬쩍 웹소설을 언급했다.
"내가 말했던가, 웹소설 쓴다고."
"어어, 전에 말했었지."
"그게 코코페에 들어갔더라고, 오늘."
"그래?"
"어. 이벤트도 걸린다고 해서 이거나 좀 보려고."
"크으, 코코페라니. 엄청난데? 어, 잠깐만."
이신우는 주문을 받으면서 치킨을 튀겼고 류성은 편안하게 치맥을 즐겼다. 그러면서 코코페 웹소설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잘 팔리는 중?"
"아직. 이제 35명 보고 있어."
"으음...?"
"이벤트는 조금 뒤에 들어가니까 기다려 봐, 인마."
"아하, 오케이."
그렇게 말하며 새로 고침을 누른 순간이었다.
같이 보기가 급증했다.
무려 3,811명으로 말이다.
"어? 들어간 모양인데?"
생각보다 이벤트 효과가 놀라웠다.
다시 새로 고침을 누르자.
이번에는 같이 보기가 무려 9,500명으로 증가했다.
"...미친."
또 한 번 누르자 1만 2,177명이었다.
확실히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조회수도 아니고 무려 사람 숫자였으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치맥을 즐긴 뒤 간식 삼아 코코페 독자의 증가추세를 즐기는 것. 색다른 느낌을 주는 또 다른 방식의 힐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