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재벌(1) >
12월의 주말.
토요일 아침부터 류성은 강제로 이신우를 불러내어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아오, 추워 뒈지겠네."
"따듯하게 입었구만."
"그럼 힘들어 뒈지겠네."
"전에 같이 운동하기로 약속했잖아, 인마."
"그건 그런데..."
"체력이 국력이야. 벌써부터 골골거리면 프랜차이즈 운영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수시로 전국 곳곳으로 움직여야 할 텐데."
"크흠, 그래서 가고 있잖아."
"부족해. 속도 더 높인다."
"으어어..."
1시간 정도 오르자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다.
"좋지 않냐?"
"흐어, 흐억. 조, 좋긴 좋네."
"이거나 마셔라."
류성은 미리 준비한 음료수를 내밀었다.
"어우, 안 그래도 목말랐는데 땡큐."
거기에 노화 회복 물약 두 방울을 넣어둔 상태였다. 신체 나이를 거꾸로 돌려버리는 묘약이니 당연히 체력 향상에도 효과가 있을 터였다. 그 상태로 운동을 지속하면 사업이 궤도에 올라도 체력적인 문제는 크지 않으리라.
"어때, 뭔가 좀 느낌이 오냐?"
"느낌은 무슨...?"
말을 하던 이신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갑자기 좀 살만한데."
"그래?"
"어, 신기하네. 음료수가 비싼 건가?"
"비싸지, 더럽게 비싸지."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물약이니까 비쌀 수밖에 없었다.
새끼,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물론 이신우는 평생동안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다시 올라가 보자고."
"어휴, 미친놈."
"미친놈 따라서 정상까지 고고!"
그래도 이신우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등산을 하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으니까.
공기도 맑고.
"후으으읍. 후아."
선선한 공기를 폐부 깊이 들이마시면 깨닫고는 한다.
아, 지쳐 있었구나.
상쾌함이 오염된 영혼을 씻겨주는 느낌이었다.
"으으, 한계야. 더는 못 가."
"거의 다 왔는데."
"아, 몰라. 난 포기!"
정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올라온 상태였다. 너무 무리해도 좋지 않았기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등산하기로 했다.
"오늘만 봐준다. 뭐, 여기도 경치는 끝내주네. 어떠냐?"
"쥑이긴 하네. 흐어, 나도 죽을 거 같고."
"오버하기는."
널찍한 돌멩이에 앉아 경치를 즐겼다.
절로 치유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지나자 거칠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이제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
"콜이다. 가자!"
내려가면서 보이는 나무에선 산 내음이 풍겼다. 벌레가 사방에서 날아다녔지만 등산하는 순간에는 무섭지도 징그럽지도 않았다.
그저 생명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등산로의 중턱까지 내려왔을 무렵이었다.
"꺄아아아악!"
누군가의 깨질듯한 고함이 들려왔다.
[띠링!]
동시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발동!]
[위급한 상황에 놓인 할아버지를 구하라!]
[할아버지 한 분이 등산하던 중에 발을 헛디뎌 아래로 미끄러졌다. 경사도가 심해 크게 다친 상태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노화 회복 물약을 사용해 상처를 치유하고 위중한 상태를 회복시켜라!]
[남은 시간 : 6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시 발목이 삐끗합니다.]
류성은 떠오른 퀘스트를 빠르게 훑었다.
등산, 할아버지, 미끄러짐.
위급한 상태라는 단어와 노화 회복 물약까지 확인한 뒤 서둘러 움직였다.
"신우야, 가보자!"
"어어, 그래!"
소리가 난 곳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간 운동을 열심히 한 덕일까.
류성은 무서운 속도로 소리의 진원지로 향했다.
"야, 같이 가!"
뒤에서 이신우가 쫓아오며 소리쳤지만 류성은 일단 위험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먼저 갈 테니까 따라 와!"
머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에요!"
류성의 외침에 누군가가 설명해줬다.
"저기, 사람이...!"
"쯧. 발을 헛디딘 모양인데. 어찌 내려가나, 저기를."
확실히 심한 경사였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질 수 있는 수준.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신고는 하셨죠?"
"했지. 근데 괜찮으려나."
"일행이신가요?"
"아니, 일행은 아니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일행은 없는 모양이었다.
혼자 등산을 온 모양이었다.
그러다 실수로 미끄러졌고 그걸 뒤따라오던 등산객이 확인하고서는 소리를 지른 것이다.
"으음."
짧은 고민이 이어졌다.
되려나?
아무리 봐도 가능할 거 같은데.
나이가 있는 노인에겐 극히 위험한 수준이지만 류성은 아직 20대였다. 체력 물약을 먹은 덕분에 모든 면에서 예전보다 더 나아지기도 했고.
"제가 내려가볼게요."
"아니, 야, 괜찮겠어?"
뒤늦게 도착한 이신우가 만류했지만.
"어, 괜찮아."
류성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스스슥, 슥.
미끄러지듯 내려가다 나무기둥에 착지했다. 다시 다음 목적지를 정한 뒤에 경사도를 조심스레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듯 또 다른 나무기둥에 안착했다.
아찔하긴 하네.
그래도 예상보다는 수월했다. 그렇게 몇 번 반복을 한 끝에 드디어 바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 으으..."
신음을 흘리는 노인이 보였다.
"괜찮으세요?"
"으으..."
머리에서 피가 조금 났고 다른 곳은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신음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내부가 심각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게 되려나?
류성은 표정을 굳힌 채로 물약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한 방울을 노인의 입술 위에 뿌렸다.
토옥.
다시 한 방울을 더.
토옥.
물약이 잘 흡수되는 걸 확인하며 뚜껑을 닫고 품에 다시 넣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서 노인의 상태를 체크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으음..."
어쩐지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이어서 눈까지 떴다.
아무래도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괜찮으세요?"
"조금..."
"등산하다가 미끄러졌어요. 기억 나세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나는구먼."
"일단 제가 내려오긴 했는데 모시고 올라가진 못할 거 같고요. 여기서 같이 구조대 올 때까지 기다려 드릴게요. 그리고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요. 어디가 어떻게 다쳤을지 모르니까요."
"알겠네."
그런데 노인의 눈빛이 묘했다.
"신기한 젊은이군."
"네?"
"아니, 아닐세. 내 착각일지도..."
그때 위에서 이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아아아! 류서어어엉!"
산이가 그런지 메아리가 컸다.
"왜에에에에!"
"괜찮냐아아아아!"
고개를 돌려 노인을 다시 확인했다.
표정을 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괜찮아아아아!"
"곧 구조대 온다고 하니까아아! 기다려어어어!"
"알았어어어어!"
조금 시간이 지나고 구조대가 도착했다.
"도착한 모양이에요."
"그렇구먼. 근데 괜찮은 거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요. 괜히 움직였다가 상처 심해지면 안 되니 그냥 계세요."
"알겠네. 그래도 말이야."
"네."
"손은 멀쩡한 거 같으니..."
할아버지가 품에서 지갑을 꺼냈다.
"내 명함일세. 받아두게."
"괜찮습니다."
"그래도 은인인데 그냥 지나칠 순 없지."
이렇게까지 권하니 일단 받아두기로 했다.
"이 늙은이가 꼭 은혜를 갚을 테니 반드시 연락을 하시게."
"알겠습니다."
"자네는 명함 없나?"
"아, 있기는 합니다만."
"나도 하나 부탁하지."
별 수 없이 류성도 RS 재단법인 명함을 건넸다.
"재단 법인 이사장이라? 멋진 젊은이구만."
"감사합니다."
그 사이 구조대가 내려왔다.
다행스럽게 안정적인 구조가 이어졌다.
"고생하셨습니다. 같이 올라가시죠."
"네, 감사합니다."
류성도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라갔다.
그제야 현실감이 들었다.
한 사람이 죽을 뻔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이 해일처럼 밀려든 것이다.
"후아..."'
이신우도 마찬가지였는데 숨을 크게 토해내며 다가왔다.
"어휴, 진짜 겁나 놀랐잖아, 새끼야."
"나도."
"미친 놈. 그걸 그렇게 막 내려가냐?"
"사람은 살려야지."
"네가 뭐 의사냐? 뭘 살린다고 그래?"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 눈에는 그냥 무작정 내려간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노화 회복 물약이면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 한 행동이었는데 말이다.
"몰라, 그냥 내려간 거야. 우리도 가자."
"어어, 그래야지."
산을 내려가는 동안 획득한 보상을 확인했다.
[생명을 구했습니다.]
[정산 중...]
[정산 완료.]
[중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10점을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선행포인트가 많았다.
게다가 카드까지.
심지어 최하급이나 하급이 아닌 중급이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렸다는 그 자체를 아무래도 높게 평가해준 것 같았다.
"후, 오늘 진짜 스펙타클했네."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아, 당연하지. 배고파 죽겠다."
둘은 근처 맛집으로 이동했다.
*
식당 내부로 들어서니 직원이 반겼다.
"어서 오세요."
"아, 네."
"몇 분이실까요?"
"두 명이요."
"그럼 이쪽으로 모실게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서 음식을 주문했다. 기다리면서 방금 전 있었던 사건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크, 그래도 그 사람한테는 생명의 은인일 수도 있겠다."
"뭔 소리야."
"산에서 떨어졌는데 혼자라고 생각해 봐. 무섭지 않냐? 그때 누군가가 내려와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지. 사람이 옆에 있는 거랑 없는 건 엄연히 다르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서 뭐 좀 받았냐?"
"뭐를?"
"명함 같은 거 말이야."
"받기는 했는데..."
류성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렸다.
검은색 바탕에 금색 테두리.
그것만으로도 꽤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봐도 되냐?"
"마음대로."
이신우가 명함을 쥐었다.
"CL 인베스트먼트?"
해당 투자사가 궁금했는지 폭풍검색을 했다.
"와, 여기 유명한데?"
"그래?"
"어. 여기 회장이 부동산 투자 하나로 국내 현금왕에 올랐다는 기사도 있고."
부동산이라는 말에는 조금 관심이 갔다.
잘 모르는 분야였으니까.
상점에도 부동산 정보권이 존재했으니 언젠가는 구매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고.
"부동산으로 현금왕이라..."
"막 뒷 세계의 큰손, 이런 건가?"
"상상하는 거하고는."
"혹시 모르잖아."
뭐, 진짜로 그럴 수도 있긴 하지만.
"관심없어."
"할아버지가 연락해달라고 준 거 아니냐?"
"그렇긴 한데."
진짜로 연락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정말 필요하면 그쪽에서 연락을 해오던가 할 터였다.
"일단 들고는 있어 봐."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자."
할아버지에 관한 생각을 지워버린 채 음식을 즐겼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
병원에 도착해 온종일 검사를 받은 CL 인베스트먼트 투자사의 회장, 박순흠. 그는 본래 다니던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를 받았다.
"회장님,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 어떻던가?"
진료를 본 주치의가 차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상태가..."
"심각한가?"
"아뇨, 아닙니다. 상태가 너무 좋습니다."
그 말에 박순흠의 눈빛이 묘해졌고 뒤에서 지켜보던 원장은 표정을 굳히며 나섰다.
"김과장, 확실한 겁니까?"
"네, 원장님. 심지어 올해 검진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상태가 좋으십니다."
"허어."
"요즘 뭐 드시는 거라도 있으신지요?"
"그런 건 없네."
"으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렇군."
박순흠은 크게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게 더 의아했다.
김과장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괜히 선을 넘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
"일단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다음에 다시 한 번 검사 받으시길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하지."
박순흠은 납득한 듯 병실을 나섰다.
그리곤 자신의 몸을 살폈다.
주먹을 쥐고, 빠르게 걷는 등.
"가볍군..."
이런 느낌이 도대체 얼마 만인지.
기적?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RS 재단법인 이사장 류성]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와중, 투명한 무언가가 입술에 떨어지는 걸 느꼈다. 정신이 거의 없었지만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 돌아왔고 두 방울이 떨어질 때는 흐릿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주는구나.
이걸 먹으면서 상처가 호전되고 있구나.
"착각이라 여겼건만."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나니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신기한 젊은이야."
그러나 굳이 아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이 몸은 저물어가는 해.
새로운 활력을 조금 얻은 것으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과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었으니.
그래도 은혜는 갚아야겠지.
"흘흘."
노인은 오랜만에 생기가 깃든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