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오픈(1) >
가면남이 젤트리온을 전부 매도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가면남, 젤트리온 전액 매도!]
[정보꾼님 매도 완료ㅠㅠ]
[아, 님은 떠났다고 합니다...!]
[크흡, 단타 더 하고 싶은데 어쩌지?ㅋㅋ]
[30마넌 돌파했다고!]
[왜 가는데, 왜에에에에엨!]
[조금만 더 가즈아!]
[난 아직 믿는다, 포기 못했다고!]
개미들은 포기를 몰랐다.
그들끼리 뭉쳐서는 대거 달라붙었다.
가격이 다시 올라갔다.
30만 1,500원
30만 2,000원
30만 2,500원
화요일 증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모두가 환호했다.
가면남이 매도했어도 젤트리온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아직 더 올라갈 여지가 충분하다고.
[숏스퀴즈가 장난인 줄 아냐고!]
[멍청이들아, 40만 원까지 간다니까?ㅋㅋ]
[미국 숏스퀴즈 지표 가지고 옴! 보임? 아직 시작도 안했음!]
[ㄹㅇ, 50만 원도 꿈이 아닌듯?]
[가즈아아아아!]
수요일은 거래량이 터지면서 30만원을 끝까지 지켰다.
사람들은 또 열광했다.
큰 손이 바뀐 것이라 착각하면서.
[손 바꿈 지리고요^^]
[와, 내일부터 떡상 예약인데요?ㅋㅋ]
[두근, 두근. 오랜만에 심장이 떨림...]
[이게 도박인가...?ㅋㅋ]
[맛 쥑이고요ㅎㅎ]
[설렘을 넘어서 심장이 터질 거 같다...!]
목요일 오전 9시.
장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다시 거래량이 터졌다.
[자, 오늘도 가즈아아앜!]
[31만원 어서, 어서!]
[가면남 필요 없어, 없어도 간다고!]
[할 수 있다, 으어어어엌!]
가격도 솟구쳤다.
30만 4,500원
30만 5,000원
30만 6,500원
당장이라도 양봉을 그려낼 것처럼 힘을 쌓아올리는 젤트리온의 주가. 그에 홀린 개미가 대거 모여드는 순간, 역대 최고점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31만 원을 돌파하고야 만 것이다.
[넘었다, 넘었다!]
[31만 돌파!]
[이럴 줄 알았다고ㅋㅋㅋㅋ]
[간다, 간드아아아!]
[자, 다시 가자! 이미 한 번 넘은 산이잖아!]
[두 번은 쉽다고ㅋㅋㅋ]
개미들이 게시글을 작성하는 그 짧은 순간.
와르르.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처럼 주가가 무너졌다.
[어...?]
[뭐지?]
[흔들려는 건가ㅋㅋ]
[개미털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30만 원을 뚫고 내려갔다.
29만 9,000원
29만 5,500원
29만 3,000원
이윽고 29만 원마저 깨트리고 말았다.
급락이었다.
1분도 걸리지 않아 31만 원에서 29만 원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것도 제대로 된 거래량조차 터트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 어어...?]
[거래량 뭐에요? 어케 된 거임?]
[뭔데, 형들 뭐냐고!]
[이렇게 조용히 내린다고?]
[이거 설마 30만 원에서 세력이 물량 턴 거 아님?]
[ㅁㅊ, 이미 다 털었다고?ㅠㅠ]
[아니 세력은 숏스퀴즈 해야 해서 물량을 못 터는데?]
[뭔 일이냐고 이게!]
[아, 개미들 다 곡소리 나겠네ㅠㅠ]
[오늘 처음 매수했는데ㅠㅠㅅㅂ]
[살려주세요... 제발...!]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28만 원을 부서트린 채 주저앉았다.
돌이킬 수 없을 수준이었다.
[아니, 이게, 이게...?]
[아, ㅅㅂ 안되겠다 손절!]
[ㅠㅠ젠장]
[나도 손절해야겟네ㅁㅊ]
[난 익절ㅋㅋㅋ]
[아쉽지만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야겠다! 그래도 수익이긴 하니까ㅎ]
지켜보던 개미가 손절을.
혹은 익절을 시작했다.
물량이 크게 쏟아졌으니 가격은 당연히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매수할 주체가 사라졌으니.
단번에 하락 VI에 걸려버렸다.
[돌았네...?]
[가면남이 떠났다는 건, 증시 호재가 사라졌다는 것...ㅠㅠ]
[호재 끝났다, 다들 던져라!]
[아니, 가면남 사라졌으면 바로바로 던졌어야지, 그걸 아직도 들고 있었다고?]
[으휴, 멍청이들ㅋㅋㅋ]
26만 8,500원.
마이너스 10.5퍼센트에서 잠깐 거래가 중단되었다. 몇 분이 지나 VI가 풀리면서 가격이 다시금 줄줄이 흘러내렸다.
26만 5,500원
26만 3,000원
26만 1,500원
결국 25만 7,000원에서 겨우 하락세가 멎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의 상승은 없었다.
매일 조금씩.
꾸준한 하락을 이어갔다.
외국인 투자사는 고점에서 물량을 넘겼고 공매도 세력은 매수해서 갚았으니 매수 주체가 사라진 것이다.
한 마디로.
숏스퀴즈의 끝이었다.
*
오랜만에 재단법인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특전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젤트리온의 최고 주가가 달라졌습니다.]
[추후 보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전 퀘스트 클리어!]
[미래를 크게 바꾸어냈습니다.]
[정산 중...]
드디어 젤트리온 특전 퀘스트가 종료되었다.
끝났구나.
정산을 기다리면서 슬쩍 현재 젤트리온 주가를 확인해봤다.
23만 2,000원.
가격이 생각보다 더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어우, 심한데?
하지만 류성은 이미 전부 매도한 상태였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생방송에서도 매도하라고 여러 번 언급했으니 양심에 찔릴 것도 없었고.
알아서들 했겠지.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정산 완료.]
[중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31점을 획득합니다.]
중급 랜덤카드와 31점의 포인트를 얻었다.
아주 흡족한 보상이었다.
이걸로 최하급 카드가 세 장 중급 카드가 두 장이 되었다.
선행 포인트는 총 186점.
어느새 이렇게 모였나 싶었다.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네, 이사장님."
류성은 테라스로 나와 겨울의 찬바람을 맞았다.
춥기보다는 시원했다.
그 상태에서 카드를 생각하자 허공으로 최하급과 중급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일단은 최하급부터.
선택을 마치자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무수한 카드가 보였다. 손가락을 살짝 들고서 톡, 건드렸다. 선택을 받은 카드는 회전을 멈추더니 류성에게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최하급의 ‘육체’카드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반사신경(Passive)’을 획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류성의 눈이 조금 커졌다.
"호오."
꽝을 예상했는데 육체 카드가 나왔다.
보상은 반사신경.
괜스레 예전에 얻은 '침착함'이 떠올랐다.
[반사신경]
[상위 0.1퍼센트 초일류 운동선수에 해당하는 반사신경을 가진다.]
짧고 명쾌한 설명이었다.
초일류 운동선수.
좋기는 한데 이 반사신경을 쓸 일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생기기는 했다.
"뭐,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류성은 납득하며 다음 카드로 넘어갔다.
카드 오픈.
선택한 최하급 카드 한 장이 날아들었다.
[꽝입니다.]
충분히 예상하던 시나리오였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 게 나와주면 고맙긴 할 터였다.
카드 오픈.
기대감을 버리지 못한 채 세 번째 최하급 카드를 오픈했다.
[꽝입니다.]
짧은 실망이 흐르고 거대한 기대감이 다가왔다. 제일 중요한 중급 카드 두 장이 영롱하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으니까.
"그래, 재물이었던 거지."
이제 예선전이 끝나고 본선에 올라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중급 카드, 선택.
왼쪽에 있는 걸 먼저 선택했다.
촤르르륵.
카드가 펼쳐지면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천천히 돌아가는 카드는 전부 물음표였다. 무언가는 꽝일 것이고 어떤 것은 대박일 터였다.
"되거나 안 되거나."
어차피 둘 중 하나일 거라 여기지만 그래도 묘하게 마음이 가는 카드가 가끔 존재하고는 했다.
지금이 그러했다. 생긴 건 전부 똑같았지만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지금 오른쪽을 막 지나가는 카드가 바로 그 녀석이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스윽.
손을 뻗어 해당 카드를 선택했다.
미간으로 스며든다.
그것은 이내 어떤 지식이 되어 류성에게로 흡수되었다. 마치 차티스트의 눈을 사용했을 때 느꼈던 미지의 힘과도 비슷했다.
"아아...!"
알지 못했던 정보가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이윽고 정보는 본래 류성의 것이었던 것처럼 한 몸이 되었다.
[중급의 '재능'카드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바리스타의 손맛'을 획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재능이라 상점에 갱신되지 않습니다.]
대박이었다.
일시적인 재능이 아닌 영구적인 재능을 습득해버렸다.
[바리스타의 손맛]
[커피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합니다. 직접 제조하는 커피에 한해 뛰어난 손맛이 깃듭니다.]
요즘은 동네마다 카페가 수십 개씩 존재할 정도였다. 덕분에 바리스타 또한 유명해졌고. 꽤 인기 있는 직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커피 좋지."
안 그래도 커피를 좋아하는데 관련 지식을 어느 정도 습득했으니 활용도가 상당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커피를 맛있게 탈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로웠다.
뛰어난 손맛이라.
과연 어느정도일지 기대가 되었다.
"스틱 커피도 되려나?"
호기심을 바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류성은 휴게실로 이동해 커피 포트와 스틱 커피를 쳐다봤다. 알지 못했던 지식이 불현듯 떠올랐다.
인스턴트 커피는 보통 원두를 볶아 분쇄한 커피를 추출관에 담은 후 175도의 고온에서 액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추출된 커피액을 냉동건조하거나 분무건조해 제품화하게 된다.
그런 인스턴트 커피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물의 온도가 가장 중요했다.
정확히 92.5도.
이 온도를 맞추는 게 1차 관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구비되어 있는 커피포트가 신형이었다. 온도까지 조절할 수 있는 모델이라서 맛을 내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포트에 물을 넣고 92.5도로 맞춘 뒤에 끓이는 버튼을 눌렀다.
"커피프레스는 없네."
그래도 미니 거품기는 있었다.
이거면 충분했다.
류성은 일단 다섯 개의 잔을 준비해놓고 잔마다 각설탕을 하나씩 넣었다. 이후 인스턴트 커피를 10개 준비했다.
한 잔당 2개씩 사용할 계획이었다.
띠-
마침 물이 지정해놓은 온도에 도달했다.
잔에 물을 따랐다.
졸졸.
아주 약간의 물만 따르고서 설탕을 녹였다.
잠깐 기다리면서 온도를 느꼈다.
설탕을 녹인 물이 적당히 미지근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대략 60도, 알맞은 시기에 인스턴트 커피를 개봉해 2개씩 들이부었다. 물의 양이 적었지만 열심히 섞으니 분말가루가 서서히 녹아들어갔다. 덕분에 아주 진한 커피가 만들어졌다.
그 위로.
우유를 붓고 저어준 뒤에 마무리로 얼음을 적당히 넣어줬다.
"아, 참."
마지막으로 미니 거품기로 우유 거품을 내어 위에 얹었다.
"...완성."
깔끔한 아이스 카페라떼가 만들어졌다.
총 다섯 잔.
류성은 쟁반 위에 잔을 올리고서 휴게실을 나섰다. 사무실로 향해 직원과 부사장에게 커피를 한잔씩 돌렸다.
"이사장님? 커피 사오셨어요?"
"어머, 맛있겠다...!"
"잘 마시겠습니다!
류성은 인사를 받으며 웃었다.
"일단 드셔보세요."
"넵!"
맛을 보는 부사장과 직원들.
가장 먼저 업무담당인 최송이가 잔을 내려놓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사장님, 근처에 맛집 카페라도 생겼나 봐요?"
"그건 왜요?"
"너무 맛있어서요. 어딘지 궁금해서 다음에 가보려구요."
"그 정도예요?"
"네, 진짜 끝내주는데요?"
나머지 직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
"음, 풍미가 아주...!"
풍미라는 단어까지 나오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부사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만개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좋아요, 좋아."
아주 제대로 커피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크흠, 그거 사실 제가 만들었어요. 스틱 커피로."
"네...?"
"에이, 이사장님. 농담도 참."
"이게 어떻게 스틱 커피에요."
다들 류성이 장난을 쳤다고 여기며 웃었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진짜로 스틱 커피에요."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 그제야 다들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게 스틱 커피라구요?"
"네. 괜찮죠?"
"아니, 이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카페 차려도 되겠는데요?"
류성이 손을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구오."
"진짠데..."
"대박. 이사장님, 이거 만드는 법 알려주세요!"
"그럴까요?"
류성은 그들에게 스틱 카페라떼 제조법을 알려주고서 다시 테라스로 나갔다.
손에 들린 커피 한 잔.
직접 만들었지만, 아직 맛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얼마나 맛있으려나.
가볍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부사장과 직원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건지.
"...상상 이상이네."
아무래도 재능에 적혀있던 대로 특유의 손맛이 첨가된 모양이었다.
"으음."
순식간에 커피를 다 마셨다.
더 마시고 싶지만.
이미 잠이 확 깨버려서 자제하기로 했다. 대신 마지막 남은 중급 카드를 오픈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하리라.
카드 선택, 오픈.
카드 하나가 류성에게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