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 오픈(2) >
[중급의 ‘정보’카드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미래 정보’를 획득합니다.]
보상을 만끽할 시간은 없었다.
인지와 동시에 세상이 암흑으로 물들었으니까.
이윽고 빛이 다가왔고.
미래라 추정되는 어느 순간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정은 내렸는가?
-내렸습니다.
-흘흘, 좋군. 나는 지금 아주 기대가 된다네.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야.
-으음.
-자, 그러면 이제 선택하게. 본인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말일세. 대신 분명하게 말해주겠네. 전에 얘기했지만 자네가 어떤 물건을 고르건 시세보다 훨씬 싸게 넘길 것이네.
-저는... 이걸 선택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어떤 걸 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가?
-네.
-좋네, 시세보다 35퍼센트 싸게 넘기지.
-그 정도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정말 감사합니다.
-흘흘, 아닐세. 그런데 조금 아쉽군.
-어떤 점이 말인가요?
-자네가 가장 비싼 놈을 골랐다면 반값에 넘기려고 했거든.
-예...?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게.
-어, 음. 네.
-흘흘흘.
마치 약을 올리듯 노인은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본래대로 돌아왔다.
재단 사무실 테라스였다.
류성은 잠깐 멍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방금 전에 보았던 미래의 어느 순간을 기억했다.
"가장 비싼 놈은 반값."
제일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언제일진 모르겠지만.
다가온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박인 건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날이 되어봐야 대박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그날이 찾아왔다.
*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 뒤로 얼마 전부터 계약을 맺은 경호업체의 경호원 두 명이 따라왔다.
"음, 두 분은 입구에서 대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류성은 홀로 내부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중에 한 명.
낯익은 노인을 발견하고는 그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오, 왔구만."
"네, 안녕하세요?"
"그래, 일단 앉게."
등산을 하던 중에 실족했던 그 할아버지였다. 류성이 힘들게 내려가 노화 회복 물약을 사용하면서까지 구해줬던 바로 그 노인.
부동산으로 유명한 투자사의 회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내가 먼저 연락을 해버렸군. 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가? 아무리 늙었어도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는 법이야.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오질 않으니, 원."
"딱히 보답 받을 생각은 없어서요."
노인이 류성을 쳐다봤다.
"그럴 거 같았네. 그렇다고 마음의 짐을 죽을 때까지 들고 살순 없지 않겠나? 안 그래도 살아갈 날이 길지도 않은데 이렇게 무거운 짐까지 짊어지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크흠,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내 마음의 짐을 가져가게."
"어떻게 가져가면 될까요?"
"선물을 몇 가지 준비했으니 자네는 선택하기만 하면 되네. 그냥 준다는 건 아니고 시세보다 싼 가격에 넘기는 걸세."
류성의 눈이 빛났다.
이 사람이 맞아.
랜덤 미래 정보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일치했으며 내용 또한 동일했다.
시세보다 싼 가격.
아무래도 건물을 싸게 넘기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괜찮은 건물이라면 한 채 정도는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그것도 무려 반값이나 할인을 해준다면 말이다.
앉아서 돈을 버는 거지.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밥부터 먹고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류성은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밥을 떠서 씹어먹고.
멍하니 고기를 집어 입에 들이밀었다.
우걱우걱.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호흡은 평소보다 거칠었다.
어떤 건물일까.
설렘을 넘어서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솔직히 엄청 기대가 되었다.
"천천히 먹게. 채하겠군."
"아, 네."
그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정심이 돌아왔다.
스킬 침착함 덕분이었다.
그제야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회전하면서 안개처럼 뿌옇던 시선이 맑아졌다.
"음, 맛있네요."
"그래 보이는군."
"할아버지도 드세요."
"음? 허허, 그럴까."
할아버지란 단어가 어색했던 걸까. 회장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여기는 항상 맛이 그대로라서 좋아."
"그런 곳이 있죠."
"자네도 있는 모양이군?"
"그럼요. 저도 나름 추억의 맛집이 있습니다."
"흘흘, 어딘가?"
"중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이요. 거기 떡볶이가 정말 맛있거든요."
"호오, 좋구만, 좋아."
긴장이 풀린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묵직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할아버지는 그저 존재 자체로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멋있어지는 사람. 지금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 말이다.
"밥은 다 먹었는가?"
"네, 잘 먹었습니다."
"그럼 이제 내 선물을 보여줄 차례군. 같이 가세나."
두 사람은 식당을 벗어났다. 할아버지는 류성을 쫓아다니는 경호원을 보며 재밌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전에 명함은 잘 봤네. 재단 법인 이사장이라지?"
"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선물이 될 거 같군. 나는 자네가 가능한 최대한의 선물을 선택하길 바라네. 내 생명의 가치. 아니, 내 남은 시간의 가치가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거든."
류성은 말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첫 번째 물건이네. 저기 보이는가?"
"네, 보입니다."
5층까지 규모의 건물이었다.
"원룸 건물을 떠올리면 딱이지."
"그렇군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군. 바로 두 번째로 가보세.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주소를 알려주겠네."
이후 할아버지와 함께 움직이면서 몇 곳의 건물을 확인했다.
이 모든 게 후보지일 터였다.
"어떤가?"
"멋진데요. 위치만 해도... 어후."
"흘흘, 좋은 곳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는 건물은 조금씩 호화롭게 변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건물을 보는 류성의 눈이 절로 번뜩였다. 무언가 갖고 싶다는 희미한 열망이 눈동자에 자리잡았다.
"건물이 너무 멋집니다."
"그래. 정말 멋진 건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들이지."
특히 여섯 번째 건물은 그냥 보기만 해도 억소리가 날 정도였다. 적어도 1,000억 원은 되지 않을까 싶은 건물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엄청나네요."
"11년 전에 완공된 건물일세. 7층이고 본래 게임회사가 쓰던 사옥이었는데 신사옥으로 넘어가면서 매매를 하더군. 내가 곧바로 낚아챘지."
"대단하시네요."
"흘흘, 사옥이라 디자인도 그렇지만 공간이 아주 잘 빠졌네. 요즘 젊은이들이 원하는 취향이지. 자네에게도 잘 어울릴 거 같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 마지막 물건일세. 따라오게."
일곱 번째 건물이 류성을 맞이했다.
"....!"
이건 감히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최고였다.
심지어 위치까지 좋았다.
"충무로 건물일세. 13층에 지하 3층까지 마련되어 있어 주차장도 넓은 편이야. 욕심이 나서 내가 직접 지은 건물일세. 7층에는 야외정원이 있고 옥상에도 잘 꾸며진 공원이 있지.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세입자도 찾지를 못했군. 그저 관리만 하는 실정이라네. 땅값을 제하고 공사비만 200억이 들었으니 그 가치는 말할 수 없을 걸세."
심장이 떨려 제대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자, 이제 내가 줄 선물이 뭔지 자네도 알겠군."
"네."
"이렇게까지 끌고 다녔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만 말이야. 자네는 내가 보여준 물건 중에서 하나를 택하면 되네.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넘기도록 하겠네. 참고로 지금 앞에 있는 건물은 에누리 떼고 3,500억일세."
“아...”
"다만, 선물인 만큼 조건을 걸겠네."
"어떤 조건입니까?"
"대출은 받지 마시게."
"네...?"
아니, 대출을 안 받으면 어떻게.
목구멍까지 말이 차올랐다.
그러나 꾸욱 참고 기다리자 노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의 재산은 궁금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무리해서 건물을 구입하기도 원하지 않네. 이 건물을 사서 행복해야 하지 않겠나? 대출금과 이자에 허덕이다 결국 법원경매에 넘어가는 꼴은 절대로 못 보겠군."
류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납득이 되었으니까.
동시에 왜 미래의 류성이 가장 비싼 물건이 아닌 다른 걸 선택했는지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격이 정말 미친 수준이었으니까.
다만.
그 비싼 가격도 건물을 보고 있으면 절로 수긍이 될 정도였다. 멋있어도 너무 멋있었다. 건물이 마치 유혹하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날 사라고.
어서 가지라고.
앞선 건물도 그런 면이 있었다.
갖고 싶다는 열망.
그걸 자극하는 기이한 욕망에 휩싸였었다.
"...."
하지만 이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뭔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저 건물이라면.
그래, 돈이 아깝지 않을 거 같았다.
"다시 말하건대 충분히 할인해줄 용의가 있어. 그러니 전부 현금으로 준비하게나. 자네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말일세."
"알겠습니다."
류성이 지닌 전 재산은 대략 600억 수준이었다. 그러니 본래라면 무슨 짓을 해도 마지막 건물을 선택할 수가 없었으리라.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카드에서 획득한 '랜덤 미래 정보'를 통해 그날을 봤으니까.
-흘흘, 아닐세. 그런데 조금 아쉽군.
-자네가 가장 비싼 놈을 골랐다면 반값에 넘기려고 했거든.
-이미 지난 일이니 잊어버리게.
아직도 그 목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반값. 50퍼센트 할인.
그 말은 즉, 눈앞에 있는 저 건물이 1,750억이 된다는 의미였다.
3,500억은 솔직히 무리였다.
하지만 1,750억이라면.
"바로 선택해야 합니까?"
"그럴 리가 있나. 충분한 시간을 줄 것이네.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려선 안 되겠지만 말이야."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았다.
*
애초에 건물 하나는 살 생각이 있었다.
투자사 사무실로도 쓰고 생방송도 편하게 하고 재단법인 사무실을 넓혀야 할 일이 생기면 해당 건물로 바로 옮겨버리면 그만이니까.
다른 사업 사무실로도 쓸 수 있을 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역을 넓히게 되면 자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면 될 테니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기회였다.
3,500억짜리 건물.
무려 13층에 평수도 넓어서 정말 오랫동안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저 갖고만 있어도 가치가 더해지는 건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이 녹아들수록 더욱 빛을 더해가는 그런 건물.
이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지는 않지만 노인은 류성에게 일정기간의 여유를 줬다.
딱 한 달.
그 안에는 결정을 내리길 원했다.
"그러니까..."
약속한 날이 되기 전에 반드시 충분한 돈을 벌어들일 생각이었다.
상점 오픈.
류성은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채로 상점을 열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곧바로 재화로 들어가 2번 물품, 코인 정보권을 구매했다.
[구매 완료]
[선행포인트(60점)를 차감합니다]
[‘코인 정보권’을 획득합니다]
허공에 떠있는 두루마리를 건드렸다.
촤르륵.
말려있던 종이가 펼쳐지면서 숨어있던 글귀가 형태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