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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113화 (113/277)

< 돈을 쓰는 방법(1) >

병원에 입원한 안하영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아프진 않고?"

"갠차나, 할머니."

"그려, 진즉에 말을 하지. 왜 안 한 거여?"

"...그냥."

물약 덕분일까.

쓰러지기 전에 봤을 때보다는 표정이 한결 좋았다.

"병원이라 그런가?"

"왜? 싫어?"

"그건 아니구..."

"그러믄?"

"나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갠차나서."

"아이고, 이 녀석."

지켜보던 류성도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더 좋아질 거야."

"고맙씁미다."

보상으로 얻은 회복 물약인 만큼 효능은 놀라운 수준일 테니까. 가족, 친척에게도 사용했었고 위급했던 할아버지도 효과를 충분히 봤었다. 그러니 안하영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류성은 믿고 있었다.

내일 검사를 하고 나면 모두 경악하게 되리란 것을.

그러니 마음을 놓기로 했다.

"할머니, 여기서 주무셔도 된다고 하네요."

"그러면... 자고 가야겠네요."

"밑에 간이침대 있으니까 쓰시고 혹시 불편하시면 근처 호텔 하나 잡아드릴 테니까 바로 전화해 주세요."

"아이고, 귀찮아서 어째요."

할머니는 정말로 상대가 귀찮아할까 봐 전화하지 않을 태세였다.

방법은 있었다.

미리 방을 잡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지금 저랑 방 하나 잡으러 가요. 하영아, 잠깐 할머니랑 갔다 와도 될까?"

"네에!"

"그래, 고마워."

"아니, 안 그래도 되는디..."

"어서요."

류성은 할머니를 이끌고 병원 바로 옆에 있는 호텔방 하나를 잡았다.

"바로 옆이니까 오가면서 편하게 쉬고 주무세요."

"...그럴게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그래요, 정말 고마웠어요."

"뭘요."

인사를 하고서 함께 호텔에서 나왔다. 할머니는 병원으로 향했고 류성은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물 다 돌렸고 사람들도 돌려보냈어요.)

"고생하셨어요, 부사장님."

(아니에요. 하영이는요?)

"내일 다시 검사받기로 했어요."

(아아.)

"보육원 애들한테도 선물 잘 전해주시고요. 저도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야 해서 오늘은 못 가겠네요."

(그럼요. 가족이랑 보내야죠.)

"아, 그리고 보너스는 바로 입금해드릴게요."

(깜짝 놀라겠어요, 직원들이.)

"그랬으면 좋겠네요."

소아병원 후원은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직접 말하기로 했다. 일단은 보너스를 지급하는 게 우선이어서 혼자 사무실로 향했다. 법인 통장을 사용해 직원들에게 차등 보너스를 지급했다.

오늘의 고생.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너스를 더한 거금이었다.

*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외출을 했다.

저녁을 먹기 전.

일단 준비한 선물을 먼저 전해주기로 했다.

"아버지."

"음?"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준비했거든요."

"선물 말이냐?"

"네. 근데 다른 곳에 준비되어 있어서요. 같이 가요."

"그래, 가자. 근데 무슨 선물이기에?"

"가보시면 알아요."

류성은 웃으며 가족을 데리고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BMW 매장.

지창훈 딜러가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지창훈 딜러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어차피 업무시간인걸요."

"그래도 고맙습니다."

"하하, 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여전히 좋은 이미지가 남은 지창훈 딜러에게 미리 부탁했었다. 가족에게 선물할 차량을 준비해달라고. 통화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모델을 선택할 수 있었다.

"자, 가족분들 전부 모시겠습니다."

"아, 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녀석의 동생이 류성을 쳐다봤다.

이미 감을 잡았으리라.

모르는 척 뒤를 따라갔다.

"BMW x7 신형입니다. 전기차로 나왔고 자율주행도 4단계가 적용되어서 편안하실 겁니다. 자리도 아주 쾌적하고 시야감도 좋고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의 아버지를 향해 류성이 다가갔다.

"아버지, 선물이에요."

"이 차가 말이냐?"

"네."

"허, 허허."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모델 바꾸셔도 되니까 편하게 말씀하세요."

"받아도 되는 거냐?"

"그럼요. 크리스마스 선물이니까요."

가만히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게 받으마. 요즘은 주는 거보다 받는 게 많은 거 같다만."

"그런 게 어딨어요."

"맞아, 당신. 부모랑 자식 간에 그런 게 어디 있어."

"크흠, 그런가."

"그럼."

"알았어. 부담 갖지 말고 즐겁게 받아볼까."

그제야 아버지가 웃으며 제대로 자동차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님이랑 동생분들도 이쪽으로 오시죠."

"네?"

"차량이 더 있거든요."

한 대가 끝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동생들 차량도 준비된 상태였으니까. 뭘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가족 모두에게 자동차를 한 대씩 사주기로 한 것이었다.

"자, 여기 있는 네 대가 전부 류성 고객님과 제가 상의해서 고른 모델입니다."

아버지는 BMW X7.

어머니는 BMW 7시리즈.

동생은 둘 다 3시리즈였다.

"형, 이거 실화 맞아?"

"맞아, 인마. 둘 다 면허 장롱에 박아두기만 하지 말고 이제 운전하면서 다니라고."

"오빠...!"

"오버 금지다."

"넵!"

"그래, 쿨한 게 좋은 거야."

"응, 당연하게 받을게. 빨리 내놔."

류현아의 말장난에 류성이 웃으며 딜러를 쳐다봤다.

"딜러님, BMW 3시리즈 한 대는 빼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아니, 농담이잖아!"

"응, 늦었어."

"오빠아아...!"

"응, 이미 뺐어."

"아, 장난이라니까."

"응, 난 진심."

"아오, 진짜!"

여전히 여동생을 놀리는 게 가장 재밌었다.

뭐, 장난은 그만하고.

"알았으니까 자동차나 꼼꼼하게 살펴 봐."

"히히, 응!"

가족들은 다행스럽게도 미리 정해놓은 모델에 모두 만족했다.

"너무 좋구나."

"완전 갖고 싶었던 모델이었는데...!"

"오빠, 진짜 최고!"

"형, 잘 타고 다닐게!"

"오냐."

그래서 당일,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출고도 오래 걸리지 않았고.

거금을 사용했지만 류성의 마음은 뿌듯하기만 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아갔다.

끼이익.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서니 안하영과 할머니가 보였다.

"안녕하세여."

"그래, 안녕."

"아이고, 오셨어요?"

"네. 검사는 아직이죠?"

"이제 곧 한다고 하던디. 근데 어제보다 많이 나아진 것도 같고."

"그래 보이네요."

류성이 봐도 안하영의 상태가 좋아보였다.

표정도 밝았고.

아픈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네! 좋아여!"

"다행이네."

아무래도 물약이 잘 든 모양이었다.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하영이 보호자님?"

"네."

"지금 검사 시작하려는데 괜찮을까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검사 진행할게요."

"음, 잠시만요."

"네?"

"골수 검사가 많이 아프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골수 검사는 생각보다 많이 아픈 종류의 검사였기에 꺼려졌다.

"그러면 혹시 모르니 CT부터 다시 찍어주시죠."

"어, 그건..."

"어제랑은 상태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미 나았을 확률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부릴 수 있는 억지였다. 굳이 어린 아이에게 필요없는 통증을 안겨줄 이유가 없기도 했고.

"주치의 선생님한테 말씀드려볼게요."

"네."

보호자가 원하는데 거절할 순 없었다. 담당 선생님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CT부터 진행하죠."

"네."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을 흐렸으나 류성은 무시했다.

결과야 곧 나올 테니까.

머지 않아 CT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 손녀. 아직도 상태가 안 좋을까요?"

"어, 음. 그게, 그러니까..."

의사는 황당한 듯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일단 어제 CT랑 비교해보겠습니다."

"아, 네."

"음, 할머니. 여기 보이시나요?"

"잘 보여요."

"어제는 비장의 크기가 엄청 컸는데, 오늘은... 괜찮네요."

"네? 그 말씀은...!"

"음, CT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안되기는 하네요. 의사 생활을 길게 한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 봅니다. 학계에 보고해야 될 정도에요."

뒤에서 듣고 있던 류성은 내심 미소를 머금었다.

다행이네.

아무래도 어떤 병이 있긴 했을 테지만 초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회복 물약으로 쉽게 상태를 되돌릴 수 있었으리라.

"보호자님."

"네, 네. 선상님. 말씀하세요."

"혹시 모르니까 CT를 비롯해서 다른 검사를 진행해봐도 될까요? 아, 이건 비용청구는 하지 않겠습니다. 뭔가 저희측에서 실수가 있지 않았나 싶어서요."

"저야 감사하죠."

"그럼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결국 다시 CT를 찍기에 이르렀다.

다른 검사도 병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대했던 비장은 단 하루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른 검사에서도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니, 문제는 커녕 상태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기적이군요."

설명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병원 일을 마무리짓고 조금 늦게 사무실에 출근하니 직원들 얼굴에 꽃이 피었다. 환한 미소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류성을 맞이했다.

"이사장님!"

"아, 네."

"어제 보너스 들어온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진짜!"

"아아."

보너스 때문에 유독 더 반긴 모양이었다.

"다들 고생했으니까요."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네!"

역시 금융치료가 정답이었다.

물론 차등을 두긴 했지만.

크리스마스 당일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가 더 많은 돈을 받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참여하지 못한 이들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보너스를 지급했으니 그들 역시 즐거울 테고.

"자, 그럼 또 힘차게 해봐야겠죠?"

"그렇죠?"

"그래서 제가 새롭게 후원할 곳을 물색해 왔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부사장도 마찬가지.

"후원할 사람이 아니라 후원할 곳이라면 장소겠군요."

"비슷합니다."

"음, 어디일까요?"

잠깐 직원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소아병동입니다."

"아..."

"일단은 협업을 맺은 대한한성 종합병원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거기 소아병동에 아픈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거기부터 후원하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병원이랑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지만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에요."

"치료비 부담을 많이 덜어드릴 예정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액 후원할 수도 있고요. 이 부분은 같이 고민해보죠."

"네!"

"음, 다른 병원도 많으니까 빠른 속도로 후원을 진행해보자고요."

"알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 부분 생각해서 일 시작합시다."

다들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류성은 전체적인 조율을.

부사장은 새롭게 배정받은 소아병동 후원에 관해서 여러곳에 전화를 걸었다.

"네, RS 재단 법인입니다. 이번에..."

나머지 직원은 기존에 맡은 보육원 아이들을 위한 강사 초빙과 조각 공모전, 그리고 소년 소녀 가정에 관한 업무를 진행했다.

오전 업무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곧 다가올 점심시간.

부사장이 통화를 끊고서 류성에게 다가왔다.

"이사장님."

"네?"

"지금 재단 법인에 자금이 40억 조금 넘게 남아 있는데요. 이거 자금 바로 사용해서 협업 병원에 후원 진행할까요? 소아병동 후원은 조건만 잘 맞추면 며칠 내로 지원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서요."

"음, 그러시죠."

"자금이 빠르게 줄어들 거예요."

"말일까지 채워두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많은 돈이 손에 들어올 테니까.

"그럼 진행할게요."

"네."

오늘도 그렇게.

느리지만 조금씩 누군가의 세상을 바꿔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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