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15화 (115/277)

< 돈을 쓰는 방법(3) >

병동을 책임지는 수간호사가 병실을 돌아다니면서 해당 사항을 언급했다.

"희수 어머니."

"아, 네. 간호사님."

"오늘 좋은 소식이 나와서요. 공지사항 붙여놨거든요.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공지사항이요?"

"네. 데스크 쪽에 있으니까 부담갖지 마시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으음, 그럴게요."

백혈병에 걸려 항암치료중인 김희수의 어머니. 벌써 11개월차 항암치료에 접어드는 중이라 얼굴에 짙은 피로함이 덕지덕지 붙은 상태였다.

"...무슨 공지기에."

그녀는 의아함을 가득 안고서 복도를 나섰다.

저 멀리 데스크 앞.

오랜 시간 이곳에 지내면서 안면을 익힌 몇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벽지에 붙은 공지사항을 읽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색에.

그녀 또한 걸음을 서둘렀다.

"잠시만요. 저도 조금만..."

인파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벽지에 붙은 공지사항이 보였다.

이거구나.

글자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대한한성 종합병원 공지사항]

1. RS 재단법인이 후원을 진행하는 바, 소아병동에 지원을 시작합니다.

2. 서류는 병원에 제출할 경우 대신 RS 재단법인에 보내드립니다.

3. 지원 자격은 아래를 참고하여...

김희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후원이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었구나.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사실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3개월을 지내면서.

그녀 또한 몇 번의 후원을 받았으니까.

아주 자그마한 정도.

당연히 하나하나 전부 고맙고 감사했다. 아이의 백혈병이 모두 나으면 열심히 일해서 꼭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으니까.

"후우..."

다만, 그런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아이 아빠는 일이 끝나면 편의점 음식으로 허기를 달래고서 대리 운전을 뛰는 중이었고 그녀도 병동에서 아이를 보살피며 간간이 부업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래도 부족했다.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처럼 돈이 흘러나갔다. 최근 한계에 부딪혔는데 단비같은 후원이기는 했다.

"그래도 다행이야..."

숨통 정도는 트일 수 있으리라.

아주 짧은 숨통.

지금은 그마저도 감사했다.

"음, 그러니까..."

그녀는 지원자격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숫자가 잘못된 걸까.

지원 자격은 물론이고 지원금액 또한 이상했다.

"간호사님, 이거 진짜에요?"

"네, 진짜에요."

"아니, 어떻게... 이게 말이 돼요?"

"정말로요?"

"지원금액이 이상한데요."

그에 간호사가 웃었다.

"다들 놀라셨겠지만 거기 적힌 그대로니까 의심하지 않으셔도 돼요."

주변이 엄청 소란스러웠는데 들려오지도 않았다.

지원자격이.

그리고 지원금액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으니까.

"어, 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난리였다.

"간호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저희야 한 게 있나요. RS 재단에서 후원하는 걸요."

"그래두요."

"이런 곳이 있어서 저희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혔다.

김희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울컥한 감정에.

고개가 절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런 지원금이라니.

정말 저 공지사항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숨통이 트이는 정도가 아니라 금전적인 문제가 단번에 해소될 터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더니 힘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다시 지원자격을 읽으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

(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있어."

(희수 상태가 안 좋아졌어? 이, 일단 내가 당장 병원으로 갈게!)

"그런 건 아닌데, 일단 빨리 와."

(어어! 지금 갈게!)

머지 않아 김희수의 아버지가 도착했다.

"여보! 왔어! 무슨 일이야?"

"이거부터 읽어 봐."

"이게 뭔데?"

"빨리."

"어어, 그래."

공지사항을 읽은 남편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뭐, 뭐야, 이거? 진짜야?"

"응. 진짜래."

"그러니까, 서류만 준비하면..."

"우리, 80프로 이상 지원받을 수 있어."

"하, 하하..."

"여보, 서두르자."

"이게 진짜라면, 그래야지. 당장 서류부터 준비할게!"

"응...!"

서류를 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모바일로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전부 가능했으니까.

그걸 곧바로 병원측 이메일로 보냈다.

"다 왔네요. 그러면 이 서류 RS 재단에 보낼게요."

"네...!"

"그, 결과는 언제 나올까요?"

"음. 바로 나올거에요."

"바로요?"

"네. 방금 전에도 서류를 보냈는데 5분이 안 돼서 답변을 주시더라고요."

"아...!"

"자, 서류 팩스로 보냈어요."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일단 병실로 돌아가 잠이 든 김희수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5분이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희수 어머니."

"네!"

"답변이 도착해서요. 여기 서류에 보시면 마지막 줄 보이시죠?"

"네, 보여요."

"앞으로 항암치료에 드는 모든 비용 80퍼센트를 지원한다고 하네요."

"아, 아아...!"

김희수의 어머니와 아버지.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

그때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정말."

"여보..."

그 한 마디에 붙잡고 있던 감정이 허물어졌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서로를 껴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

새해가 밝아왔다.

바쁘게 시간을 보낸 터라 많은 것을 흘려보냈다. 그 탓에 기분 좋은 소식조차 뒤늦게 접해버리고 말았다.

(축하드립니다, 작사가님! 크흐, 1위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운이 좋았네요. 고맙습니다."

(어휴, 운이라뇨. 실력이죠, 실력. 덕분에 드라마도 훨씬 더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게 오픈하고 1주일 넘도록 반응이 별로였거든요. 보는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조회수가 안 나와서...)

"그랬나요?"

(네. 앱플릭스 순위도 낮은 편이었고요. 그래도 조금씩 올라가는 기미가 보여서 희망은 안 놓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작사가님 OST가 음원 1위에 오르면서 조회수가 엄청나게 상승했어요. 덕분에 세계 10위 안에 들었고요.)

"그냥 드라마가 좋았던 거죠."

설마 음악 하나로 그렇게까지야.

(하하, 업계에선 다들 이미 인정하고 있습니다. 음원 차트 1위 효과는 어마어마하거든요.)

"어, 그 정도였군요."

(그럼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드라마도 재밌게 볼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좋은 소식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통화를 종료하고 수박 차트를 확인했다.

1위. 밝은 그림자(키다리 아저씨 OST)

2위. 자라나라 러브러브

정말로 1위였다.

밝은 그림자.

류성이 작사한 곡명이었다.

"이거, 참..."

클릭해보니 아래쪽에 아티스트 마이유와 작곡가 전은아, 그리고 작사가가 보였다. 작사가 옆에 적힌 류성이란 이름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실제 이름을 달고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런 거였다.

필명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이윽고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절로 고막을 사로잡았다.

특히 마이유의 이 음색.

언제 들어도 특유의 깊이가 존재했다.

"으음."

그저 사무쳤다.

좁은 방에 갇혀 숨이 막힐 듯 지내던 어느 날, 창문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것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산의 정상에 올라 광활한 세상을 눈에 담는 것처럼.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기분이었다.

그런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각자만의 역사가, 그리고 추억이 서사가 되어 머릿속에서 절로 그려진다.

한편의 영화마냥.

그렇게 노래를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는 마력을 지녔다.

"...좋네."

1위를 하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곡이었다.

동시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드라마는 도대체 얼마나 재밌을까.

자연스레 앱플릭스 어플을 찾았다.

오랜만이네.

계정으로 접속하자 세계 순위 9위에 올라있는 드라마가 보였다.

<키다리 아저씨>

고민할 것 없이 재생을 눌렀다

1화가 시작되었다.

빨려들어간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걸까.

"...와."

그저 간간이 감탄사만 흘러나올 뿐, 류성의 모든 집중력은 영상에 꽂혀버린 상태였다. 어느새 침대에 누워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냐아아.

럭키가 조용히 다가와 그런 류성의 가슴 위에 엎드린다.

순식간에 1시간이 흘렀다.

"크으, 재밌긴 하네."

어느새 2화를 재생하고 있었다.

3화, 그리고 4화.

정신을 차려보니 5화까지 몰아본 상태였다. 그 순간 류성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

이 드라마는 편수가 거듭될수록 더 재밌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남은 편수가 눈에 들어왔지만 너무 오랫동안 누워있었던지라 몸이 뻐근했다.

"으으, 이건 아껴서 봐야지. 흐흐."

너무 재밌어서 오히려 천천히 보고 싶었다. 전부 보고나면 서둘러 본 것을 후회할 거 같았으니까.

무엇보다 시간도 늦었고.

벌써 새벽이었다.

류성은 서둘러 잠을 청했다.

*

다음 날, 아침을 먹으면서 슬쩍 가족들을 훑었다.

"크흠, 아버지."

"음?"

"저 노래도 나왔더라고요."

"노래? 아, 맞다. 작사 공모전에 참여했었지."

"네."

"그 앱플릭스에 드라마도 나온다고 했었고."

"맞아요. 근데 벌써 나왔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그제야 가족이 반응했다.

특히 여동생.

류현아가 눈을 크게 뜨면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빠! 그래서 드라마 제목이 뭔데? 앱플릭스에 방영되는 건 알았는데 막상 제목은 모르고 있더라고."

"키다리 아저씨."

"뭐...?"

"키다리 아저씨라고, 지금 앱플릭스 9위 드라마."

"헐, 미친. 진짜?"

"어."

"그, 그럼 노래는 뭔데? 아니, 내가 키다리 아저씨 OST는 다 들었는데."

"그래?"

"어어. 아, 물론 작사가를 살펴보진 않았지만..."

"흐흐, 찾아 보던가."

"잠깐만!"

류현아가 다급히 어플을 뒤적거렸다.

수박 차트.

거기에 접속하더니 이내 눈을 부릅떴다.

"밝은 그림자...?"

"맞아. 그 노래 가사를 내가 썼지."

충격을 받은 류현아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노래를 틀었다. 그러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류환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노래네."

"이 노래 좋던데..."

"요즘 카페에 가면 자주 들리더라구."

아버지가 류성을 쳐다봤다.

"이걸 작사했다고?"

"네."

"허허, 고생했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구나."

"그럼요. 파이프라인을 넓혀야죠."

"그 말을 정말 지킬 줄은 몰랐다만."

"흐흐, 좀 멋있죠?"

"그래, 우리 아들 장하다."

이런 칭찬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괜히 쑥스러워졌다.

류성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아침을 먹었다.

*

드라마 <키다리 아저씨>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키다리 아저씨, 결국 세계 2위에 올라!]

[9위에서 2위로 껑충!]

[명품 드라마, 키다리 아저씨!]

[드라마 못지 않은 OST, 밝은 그림자 차트 1위 올킬!]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는 시청 조회수!]

[인기의 비결은?]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인기가 실감되었다.

심지어 관련 게시판이 새롭게 창설될 정도였다.

[ㅠㅠ진짜 어쩜 이렇게 슬프냐...]

[담담하게 그려서 더 슬픈 느낌이에요]

[동감합니다... 볼 때마다 아리네요]

[어둡기만 하지 않아서 더 좋아요. 특히 조연들 개그감이...ㅋㅋ]

[크흐, 꿀맛이죠]

[아, 전 이제야 봤어요ㄷㄷ 멍청했네요, 이걸 뒤늦게 보다니]

[전 부러운데요?ㅋㅋ]

[아직 안 본 사람들 너무 부럽다...]

[안 본 눈 삽니다^^]

소재가 자극적인 것도 아니었다.

러브라인도 없었다.

그저 사람과 사람간의 호감, 우정, 연민, 그리고 동질감을 그렸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한 번 보게 되면 멈출 수 없는 재미가 그 안에 있었다.

[와, 진짜 차곡차곡 순위 올라왔네요?]

[맞아요ㅋㅋ]

[1주 넘도록 10위 밖에 있었는데 갑자기 10위 안에 들어와버림]

[음악 때문인듯?]

[아, OST요?]

[네ㅋㅋ 제가 노래 듣고 왔거든요]

[아, ㅇㅈ합니다.]

자연스레 음악의 영향력이 드러났다.

[밝은 그림자, 너무 좋아요ㅠㅠ]

[요즘 하루에 10번 넘게 듣는 거 같아요. 출, 퇴근길이랑ㅋㅋ]

[저도요!]

[덕분에 드라마 정주행중!]

[어우... 이걸 이제야 보다니!]

[ㄹㅇ명품 드라마네요]

[이건 무조건 1위에 한 번은 오를 듯요!]

[맞음, 어제만 해도 9위였잖아요?ㅋㅋ]

[하루만에 9위에서 2위 업업!]

[내일은 1위 가겠네요!]

심지어 중간에 류성의 이름도 꽤 언급이 되었다.

[가사가 너무 좋아요! 꺄아아악>.<]

[작사가가 류성이던데...]

[신인 작사가인듯요?]

[신인 클라스ㄷㄷ 재능이 엄청나네요]

[또 노래 들으러 갑니다^^]

[저도요ㅎㅎ!]

류성을 게시판을 읽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터넷창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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