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물주(1) >
헛기침을 하며 쑥스러움을 날려보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제 사야지.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돈은 마련이 되었으니까.
곧바로 부동산 투자사를 운용하는 황순흠 회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오, 그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네.)
"잘 지내셨죠?"
(물론이지. 그보다 이렇게 전화를 준 건 돈이 마련이 되어서겠지?)
"네, 맞습니다. 오늘 뵐 수 있을까요?"
(가능하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게.)
약속을 잡고서 CL 인베스트 본사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소박한 백반집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앉게."
"네."
"두 번째 식사로군."
"그러게요. 여기도 좋아 보이네요."
"클클, 담백하니 맛있는 곳이지."
곧이어 나온 백반이 눈길을 끌었다.
소박했으나 정갈했다.
노인과 류성은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으음."
은은한 가운데 맴도는 감칠맛이 좋았다.
밑반찬이 전부 맛있었다.
메인으로 나온 제육볶음은 그야말로 최고였고.
"불맛이 좋네요."
"고기도 상태가 좋지. 비린내가 없어."
"그러게요."
그렇게 모든 식사를 마치고 수저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미소를 머금은 노인이 선택을 종용하는 질문을 던졌다.
"결정은 내렸는가?"
"내렸습니다."
"좋군. 나는 지금 아주 많이 기대된다네.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야."
미래 정보권에서 들었던 대사, 그대로였다.
지금이구나.
노인은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일곱 장의 건물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선택하게. 본인이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말일세. 대신 분명하게 말해주겠네. 전에 얘기했지만 자네가 어떤 물건을 고르건 시세보다 훨씬 싸게 넘길 것이네."
"저는..."
본래라면 택하지 않았을 일곱 번째 건물의 사진을 당겨왔다.
"이 건물을 택하겠습니다."
"호오, 확실한가?"
"네."
"이거 자네가 오랜만에 나를 웃게 만드는군. 조건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대출은 안 되네. 오직 자네의 자금으로만 사야 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건물을 택하겠다고?"
"네."
"크흐, 크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가장 비싼 건물인 만큼 제대로 깎아주겠네. 시세의 반값으로 넘기지. 어떤가, 마음에 드나?"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또 기분이 달랐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미래가 만들어졌다.
*
건물 매매는 빠르게 이뤄졌다.
"잘 사용해주게."
"선물이라니 받기는 했는데, 괜찮으신지..."
"자네가 날 구해준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난 그렇게 느꼈네."
단호한 어조에 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연이 끝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앞으로도 종종 연락하면서 지내도록 하세나."
"물론이죠."
"흘흘, 그럼 난 먼저 가보겠네."
인감도 필요 없는 시대라 정말 순식간에 거래가 완료되었다.
이제, 눈앞에 있는 저 건물.
13층에 달하는 멋들어진 건물이 류성의 것이 되었다.
"...끝내주네, 기분."
보통은 휴대폰 하나를 바꿔도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었다.
비싼 걸 사면 더욱 그렇고.
자동차를 바꾸면 정말 애지중지하게 된다.
그게 건물이라면?
무려 3,500억짜리의 멋들어진 건물이 손에 들어왔다면?
그 기분은 어떠할까.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격동을 넘어선 전율.
그 탓에 류성은 한참이나 외부에서 건물을 눈에 담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으니까.
"크으...!"
감탄을 이어가던 류성이 드디어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기다리고 있던 관리인과 함께 둘러보기 시작했는데 실내는 더욱 아름다웠다.
"이야, 뷰가 좋은데요?"
"네, 바로 앞에 남산골 공원이 있어서 공원뷰가 아주 좋죠. 날씨 좋으면 더 끝내줍니다. 뒤에 산도 큼지막해서요."
"그런 거 같네요."
돌아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멋진 건물이네요, 정말."
"네. 제가 관리하고 있지만 엄청난 건물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맡겨만 주시면 아주 깔끔하게 관리하겠습니다."
관리인과 함께 사무실 구조를 살폈다.
하나같이 넓고 좋았다.
느긋하게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중고층에 있는 야외정원에 도착했다.
"호오."
규모가 상당해서 휴식을 취하기에 딱이었다.
"여기도 끝내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입니다."
"옥상은 어떤가요?"
"아휴, 거기도 끝내주죠."
"가보죠."
다음으로 옥상정원에 올랐다.
조경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깔끔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휴식 공원이었다. 뒤이어 멋들어진 남산골 공원과 맑은 하늘이 함께 눈에 들어왔다.
"후아."
불어오는 겨울의 찬 바람.
맑은 하늘.
밟고 있는 이 건물이 이젠 스스로의 것이라는 자각까지.
그 모든 게 뒤섞였다.
"완벽하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만족감이 차올랐다.
*
결국, 키다리 아저씨가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2위에서 또 한 번 순위가 올라간 키다리 아저씨!]
[이제는 글로벌 1위!]
[마치 계단을 밟듯 상승한 순위! 인기의 비결은?]
[길거리에서 쏟아지는 OST!]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노래, 밝은 그림자!]
[드라마와 OST의 완벽한 조화!]
인터넷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너튜버도 마찬가지.
자극적인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다.
<키다리 아저씨 일본 충격적인 반응!>
<키다리 아저씨 해외 반응 모음집!>
<키다리 아저씨, 세계를 울리다>
<전 세계 1위 드라마, 키다리 아저씨 해외 리액션!>
특히 누군가의 반응 리뷰가 유독 조회수가 높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류성은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서 탁자 위에 놓인 잔을 들어 올렸다. 향긋한 냄새를 음미하다가 맛을 봤다.
"으음. 여전히 좋네."
오랜만에 들린 맛집 카페라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한참 음미하던 중이었다.
익숙한 음악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현재 음원 차트를 싹쓸이하고 있는 '밝은 그림자'였다.
"어, 이 노래...!"
그 음악이 퍼지는 순간 커피를 마시던 주변 사람들이 반응했다.
"아, 노래 너무 좋다."
"그치?"
"요즘 이 노래만 듣는데."
"나도. 드라마는?"
"이제 보는 중이야. 넌?"
"으, 부럽다. 난 전부 다 봤는데."
드라마 '키다리 아저씨'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상당히 커서 전부 들려왔다.
"하, 드라마 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정도야?"
"응. 노래 들을 때마다 아련함이 솟구치는데, 막. 어휴. 다 보면 알 거야, 너도."
"다는 못 봤어도 아련함은 인정. 노래만 들으면 없던 추억이 생기는 기분이라니까?"
"다 보고 나면 더 심할걸?"
"진짜?"
"응. 여운이 장난 아니더라고."
"빨리 봐야겠다!"
"흐흐, 그럼 지금은 결말 모르겠네?"
"너, 말하면 죽어."
"히히, 마지막에 말이야, 여주인공이..."
"안들려어어어!"
류성은 내심 웃으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카페라."
건물도 생겼겠다, 1층에 카페 하나를 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바리스타의 손맛이라는 재능도 있었으니 가끔 커피를 내려도 좋을 테고. 물론 손님들에게 내는 커피는 전문 바리스타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생각할수록 괜찮아 보였다.
어차피 카페 하나는 있으면 좋으니까.
복지로 활용해도 되고.
사무실 직원들도 자주 이용할 테니 복지혜택으로 커피를 무료로 마실 수 있게 하면 반응이 좋을 거 같았다.
"그래, 뭐."
한 번 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건물을 사고 재단 법인에 거금을 보냈음에도 아직 여유자금이 2,400억이 넘었으니까.
무엇보다.
카페는 꼭 한번 열어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카페 프랜차이즈를 만들어가도 좋으리라.
*
상가 1층 정문 위에 RS라는 이름을 달았다. 이제 곧 사용하게 될 2층과 3층 공간에는 사람을 불러 청소를 시켰다. 원래도 깨끗했지만 더욱더 깨끗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후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부사장님, 건물을 매입했거든요."
(어머, 전에 얘기했던 그 건물이요?)
"네. 이사하기 전에 좀 꾸미려는데 혼자서 하려니 막막해서요. 도와줄 수 있으세요?"
(당연하죠. 같이 꾸며봐요.)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
(네, 바로 갈게요.)
잠시 뒤에 도착한 하늘 보육원의 원장이자 RS 재단법인의 부사장 한애라. 그녀와 함께 2, 3층을 어떤 식으로 꾸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일단 휴게실은 필수겠죠?"
"그렇죠."
"음, 휴게실이니까 책장이랑 책은 당연히 둬야겠고 소파도 있어야겠네요."
"조용한 공간이 되겠네요."
"그렇죠."
"이사장님, 그러면 구석에 분리된 개별 공간을 만들어서 침실도 만드는 건 어때요? 아무래도 점심 먹으면 노곤하잖아요. 30분 정도 낮잠 잘 수 있게 하면 이후 업무 효율도 좋을 거 같고요."
부사장의 말에 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적지 않은 대기업에서 그런 방식을 쓰는 편이기도 하죠. 괜찮겠네요."
"제가 필요한 물건 메모해둘게요."
사야 할 물건을 체크한 뒤에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게임실로 사용하려고요."
"게임실이라면...?"
미리 찾아뒀던 걸 스마트폰으로 보여줬다.
"이런 느낌이요. 농구 기계도 있고 야구 기계도 있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용 기계를 좀 둘 생각이에요."
"어, 너무 크지 않을까요?"
"사람이야 금방 늘어날 테니까요."
"음, 재단 직원만으로는..."
"아, 다른 사업도 시작해야죠. 그러면 생각보다 더 빨리 늘어날 거예요."
그 말에 부사장이 바로 수긍했다.
"본격적으로 넓히려는 모양이군요."
"맞아요."
"이렇게 넓은 건물이면... 웬만큼 해서는 가득 채우기 힘들 걸요?"
"열심히 뛰어봐야죠."
류성은 맞장구를 치다가 한 가지를 당부했다.
"참, 사무실 직원들한테는 건물 관련 이야기는 전부 비밀로 해주세요. 나중에 이사하고 나서 알려줄 생각이거든요."
"물론이죠. 근데, 여기 도대체 얼마에요?"
"궁금해요?"
"어휴, 당연하죠. 이런 건물은 상상이 안 되니까요. 정보도 많지 않고."
조금 고민하다가 알려주기로 했다.
부사장이었으니까.
한애라 원장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잠재력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3,500억이에요."
"네...?"
한애라 원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어, 3,500원이요?"
"크흐흐흐. 농담도 재밌게 하시네요."
그만큼 놀라웠으리라.
"그, 그러니까 3,500억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와, 상상도 못 할 금액이라. 이건 뭐, 놀랍지도 않네요. 뭔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려나요."
"저도 그래요."
이런 멋진 건물을 갖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꾸며야죠."
"그렇네요. 제가 기존에 생각하던 관념을 없애버려야겠어요."
"관념이요?"
"네. 아끼려는 마인드요. 많이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아요. 조금 더 이사장님 클래스에 맞춰야겠어요. 적어도, 오늘만큼은요."
"흐흐, 좋죠."
"그러면 다시 얘기해보죠. 게임실이라고 했죠?"
"네."
"기왕 게임실 만드는 거면 볼링장도 구축하는 건 어때요?"
"볼링장이요?"
"네. 레일 몇 개만 깔면 될 거 같은데."
"어, 좋죠?"
"안마의자도 뒤쪽에 몇 개 놓고요. 좌, 우측으로 다양한 게임기를 배치하면 괜찮을 거 같네요. 이 부분은 제가 알아보고 전문업체에 주문해볼게요."
"고맙습니다, 부사장님."
덕분에 수고스러움이 많이 줄어들 거 같았다.
"다음은 헬스장이에요."
"아, 헬스장 좋죠. 최신 설비로 해서 알아볼게요."
"네. 3층에 가장 넓은 사무실이 있거든요. 거기를 헬스장으로 만들면 될 거 같아요."
이후 몇 가지 복지와 관련된 공간을 더 꾸민 뒤에 계획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