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긴 게시판(1) >
그래도 기사가 5개 정도는 올라온 상태였다.
"벌써 올라왔네."
나름 본인이 다니는 회사였던 지라 관심이 갔다.
어떤 기사일까.
그리고 댓글은 달려 있을까 궁금했다. 첫 번째 기사를 클릭해보니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담담한 어조로 나열되어 있었다.
"헤에, 괜찮은데?"
스크롤을 내리니 댓글 3개가 달린 상태였다.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
조금의 설렘을 첨가한 상태로 마우스를 클릭하자 댓글 내용이 보였다.
[댓글]
jkljskd : 그럴 돈 있으면 애들이나 도와라
웃상 : 좋은 일 하네요^^
보라색 : 굿
나머진 괜찮았는데 첫 번째 댓글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아니, 정말...!"
참지 못한 최송이가 답댓글을 달아버렸다.
jkljskd : 그럴 돈 있으면 애들이나 도와라
ㄴ송이버섯 : 검색도 안 해보셨어요? 이미 보육원이랑 소아병동이랑 여러 곳에 후원 중인 재단이던데요?
즉흥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댓글을 달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흥,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중얼거리며 기사를 더 찾아봤다.
나머진 괜찮았다.
"앗, 시간이 벌써...!"
나름대로의 휴식을 즐긴 뒤 다시 업무로 복귀했다.
*
사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사소함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웃긴 게시판]
꽤 많은 사용자가 존재하는 유머 게시판이었다. 새롭게 올라온 게시물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엄청난 속도로 조회수가 증가했다.
[제목 : 그냥 인터넷 서치하다 웃퍼서...]
스크린샷 하나가 전부였다.
[jkljskd : 그럴 돈 있으면 애들이나 도와라
ㄴ송이버섯 : 검색도 안 해보셨어요? 이미 보육원이랑 소아병동이랑 여러 곳에 후원 중인 재단이던데요?
ㄴjkljskd : 근데 나는 왜 안 도와주냐?]
스샷에 찍힌 댓글의 내용이 사람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잡아끌었다.
웃기면서도 슬픈 내용.
웃픈 헤프닝이었다.
끝내 인터넷 기사를 찾아낸 누군가가 링크를 올렸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댓글]
ㄴjkljskd : 근데 나는 왜 안 도와주냐?
ㄴ백호 : 성지순례^^
ㄴ카리스마 : ㅋㅋㅋ직접 보니 더 웃프네
ㄴ곡괭이 : 추천 눌러주고 감!
ㄴ케이크 : 웃프네요ㅜ
ㄴ7호봉 : 우울했는데 웃고 갑니다!
ㄴ소대장 : 추천 드세요^^
ㄴ각잡아 : ㅋㅋㅋㅋㅋ
ㄴ카리스마 : ㅠㅠ나를 보는 기분이다
예상하지 못한 관심이었다.
조회수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추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회수가 나올 때 기사를 써야만 하는 인터넷 기자들의 숙명이었다.
[RS재단 법인, 지금까지 무얼 했나?]
[RS재단의 발자취!]
[RS재단, 웃긴 게시판 등극!]
[취약계층을 돕는 RS재단에 대해서]
[댓글]
장군 : RS 재단 법인? 이런 곳이 있었구나.
속절없는세월 : 오, 진짜 좋은 일 하네요
기웃거려 : 이야, 소년 소녀 가정에 소아병동에 보육원에다가 이번에는 유기견 유기묘까지?
여름 : 착한 재단 ㅇㅈ합니다!
따뜻하네 : 훈훈하네...!
초코 : 착한 기업! 돈쭐내고 싶다ㅋㅋ
ㄴ딸기 : 같이 돈쭐냅시다!
인형 : 와ㅜㅜ 여기가 거기였구나...!
ㄴ대장 : 어떤 곳이요?
ㄴ인형 : 아, 제 딸이 아프거든요ㅜㅜ 후원을 해준 곳이 여기인데 마침 보여서요.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ㄴ대장 : 아아, 얼른 낫길 바랄게요. 파이팅!
ㄴ인형 : 감사합니다ㅜㅜ
솜사탕 : 어라, 여기 무슨 공모전도 하는 거 같던데
ㄴ조각가 : 맞아요^^ 조각 공모전해요ㅎㅎ
그렇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
오늘은 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가 아니었다.
대부분이 일반인이었다.
"이사장님, 또 후원하고 싶다는 문의 전화인데요?"
"흐음. 자꾸 문의가 오네요."
"네. 어떻게 할까요?"
고민하던 류성을 입을 열었다.
"일단 괜찮다고 하고 전화 끊어주세요."
"네!"
직원들이 전화를 모두 내려놓았을 때 류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후원 모금을 받는 부분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모금을 받을 이유가 없어요. 남의 돈을 쓰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겠죠. 그 사소하면서도 별 것 아닌 부분이 괜히 저와 RS재단을 멈칫거리게 만들 거 같아서요. 그런 부분을 애초에 방지하고 싶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지금은 모금을 받지 않기로 할게요. 혹시나 나중에 정말 꼭 필요하다 싶을 때,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한동안은 제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투자사의 자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알고 후원 문의는 거절해주시고요. 괜히 시달릴 수 있으니까 홈페이지에도 공지사항을 올리도록 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공지사항 올릴게요, 이사장님!"
"부탁할게요."
"바로 올리겠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고서 자리에 앉았다.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동물보호센터가 지어진다는 정보가 새어 기사가 나오고 기사에 달린 댓글이 웃긴 게시판에 올라갔다.
거기서 인기를 얻어 많은 기사가 양산되었고 덕분에 RS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홍보가 되었다. 무난하게만 흘러왔던 재단이었던 터라 이런 사소한 사건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공지 올렸습니다, 이사장님."
"고생하셨어요."
"네! 그래도, 재단 이름이 조금이라도 더 사람들에게 언급되니까 기분은 좋은 거 같아요!"
"저도 좋네요."
류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보통의 사람이기에.
쏟아지는 찬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자, 이걸로 문의가 조금은 줄어들겠군요."
"네, 아무래도요."
"그러면 이제 다시 업무에 집중해보죠."
다시 일상이 이어졌다.
*
1층 카페가 완성되자마자 1차 면접을 통과한 바리스타를 불렀다.
"커피 맛을 본 뒤에 마지막 합격자를 정할 겁니다. 그러니 다들 각자의 실력을 잘 보여주면 좋겠네요. 맛은 기본이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행동이나 태도 역시 참고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1차 면접 합격자는 총 세 명이었다.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1차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적은 편이었으니. 하지만 합격한 세 사람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 커피의 맛이 좋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사전에 필요하면 직접 준비한 원두를 가져오라고 했었습니다만. 혹시 몰라서 이곳 카페에서 사용할 다양한 원두를 미리 조금씩 준비해뒀으니까 확인하고 사용해도 좋습니다."
부디 커피가 맛있기를.
"처음은, 한용길 바리스타님?"
"네!"
"아이스로 두 잔 부탁드릴게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나선 한용길 바리스타. 긴장한 듯 조금은 어설픈 느낌으로 커피를 준비했다. 류성과 한애라는 침착하게 그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점수를 체크했다. 이윽고 시원한 커피 두 잔이 준비되었다.
"그럼 맛을 좀 볼까요?"
"네, 이사장님."
가볍게 향을 음미했다.
음, 좋네.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이어서 시원한 커피를 입안에 머금으니 원두의 특색이 그제야 느껴졌다.
꿀꺽.
코스타리카 따라주라는 원두였다.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나는데, 이게 코스타리카 따라주라는 원두죠?"
"맞습니다. 신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좋은 원두죠."
"으음, 그렇네요.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게 아주 좋아요."
류성은 커피를 절반 정도만 마셨다. 나머지 두 사람의 커피도 맛을 봐야 했으니까.
"자, 그러면 다음은..."
이어서 두 번째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맛이 좋았다.
하지만 한용길 바리스타와 큰 차이는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이현수 바리스타님?"
"아, 네!"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현수는 긴장한 듯 심호흡을 길게 내뱉더니 이내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내리기 전.
그는 류성과 한애라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어떤 맛을 좋아하세요?"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아몬드의 고소함과 묵직함이 느껴지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포도의 향이 느껴지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요즘 젊은 분들은 자두의 맛에 산미가 더해진 과일의 풍미가 깃든 원두도 좋아하고요."
이야기를 듣던 류성이 눈을 빛냈다.
"산미가 살짝 시큼한 그 맛이죠?"
"네, 맞습니다."
"그러면 자두의 맛에 산미가 느껴지는 원두로 하죠."
"알겠습니다."
지켜보던 한애라 부사장은 아몬드의 고소함을 원했다.
"이번에도 아이스로 할게요."
"저도요."
"네, 두 잔 아이스로 준비하겠습니다."
이현수는 여유롭게 커피를 준비했다.
머지않아 완성된 두 잔.
류성은 습관처럼 향을 맡았다.
"엇...?"
정말로 과일의 향이 코를 자극했다.
좋은데?
곧바로 맛을 봤는데 자두의 상큼함에 기분 좋은 신맛이 입안을 자극했다.
"오...!"
설명을 듣고 마셔서 그런 걸까. 조금 더 맛이 상세하게 느껴졌다. 왜 자두 맛이 난다고 한 건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산미가 너무 좋아서 상쾌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면서 미소가 그려졌다.
정말 마음에 들었다.
슬쩍 옆을 바라보더니 한애라 부사장도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네요, 이건."
"그러게요."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맞췄다.
무언의 동의였다.
여기서 이미 합격자가 판가름이 나버린 것이다.
이현수 바리스타.
그는 본인이 직접 준비해온 원두가 있음에도 상대의 입맛을 고려해 류성이 준비한 원두를 사용했다.
만족스러웠다.
"으음."
최대한 천천히 커피의 맛을 음미했다.
최고였다.
정신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아..."
순식간에 바닥이 나버린 커피. 얼음을 입에 넣고 아그작 씹어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아, 네."
"차비는 충분히 지급하겠습니다. 합격자는 내일까지 알려드리고요."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 채 카페를 나섰다.
누군가는 울상을.
누군가는 희망찬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나아갔다.
*
합격자는 사실 어제 정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말을 한 게 있으니.
기다렸다가 오늘에서야 연락을 넣었다.
“죄송합니다.”
(아, 네...)
불합격을 통보받은 두 사람은 아쉬운 탄성을 뱉어냈다.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 탓에 류성도 마음이 착잡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다시 만날 날이 올지도.
미래를 기약하며 사무실 내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합격자인 이현수에게 연락할 차례였다.
(여, 여보세요?)
"이현수 바리스타님, 합격 축하드립니다."
(흐어업! 지, 진짜요?)
"네. 진짜로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정말 기뻐하고 있다는 걸.
당연히 카페 주인인 류성의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어차피 이현수 바리스타님이 오셔야 일이 시작되니까 충분히 쉬었다가 와도 됩니다."
(어, 그러면 정리를 좀 해야 해서요. 1주일 뒤부터 출근 가능할까요?)
"그렇게 하시죠. 아, 그리고 연봉 말인데요."
(아, 네!)
"실력이 생각보다 너무 좋으셔서요."
(가, 감사합니다.)
"하하, 네. 그래서 아예 연봉 자체를 크게 드릴 수도 있고 아니면 기본 연봉에다가 판매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추가로 드릴 수도 있거든요. 생각해보시고 출근 오시는 날 확실하게 정하도록 하죠. 아무래도 카페 첫 직원이자 관리자급 점장이다 보니 협상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1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네, 사장님!)
기분 좋게 통화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