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27화 (127/277)

< 해보는 거지(1) >

커피를 마시고 근처 맛집에서 음식을 대접한 뒤에 헤어졌다.

다만 한 사람.

민성욱과는 따로 시간을 냈다.

"같이 한국 극장이나 가보시죠."

"아, 좋습니다."

"사실 갑자기 극장을 인수하니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금 난감하던 차였거든요. 기존에 일하던 분들이랑 인사도 아직 제대로 못했고요. 어색하다고 해야 할지..."

"앞으로는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보다 형님이시던데요."

"어, 그럴까요?"

"네. 저는 좋습니다."

"그래요, 그럼. 아니, 그러자."

한국인은 역시 밥으로 통하는 걸까.

함께 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조금 더 나눴더니 아무래도 많이 편해진 느낌이었다. 가볍게 수다를 떠는 사이 한국 극장 앞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일을 하던 이들이 민성욱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민성욱 대표님!"

"아니, 저 이제 대표 아니잖아요."

"아, 참. 연락을 받기는 했는데..."

"자자,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 계신 분이 새로운 대표님이시거든요."

"아...!"

류성이 먼저 그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새롭게 대표가 된 류성이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대표님...!"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직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카운터를 보는 아르바이트생 몇 명과 그들을 관리하는 정직원 몇 명이 전부였다.

"형님,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럴까."

이후 민성욱과 함께 구석진 곳에 숨겨져 있는 사무실로 이동했다.

정말로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사무실 내부에서 한국 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채용 계약까지 다이렉트로 진행되었다.

"바로 사인하겠습니다!"

"아니, 바로 사인하라는 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그래도 잘 읽어봐야지."

"형님이 알아서 잘해주셨겠죠."

"그건 그런데..."

"그것 보십시오."

"어휴,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사인 했습니다."

정말 겁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뭐.

그렇기에 오히려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직급은 일단은 업무 본부장으로 하자."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예, 대표님!"

사인을 마치고 나니 호칭이 바뀌었다.

"밖에서는 계속 형님이라도 불러도 되죠?"

"좋지. 그렇게 하자."

공과 사를 구별하겠다는 의지이리라.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이제 본부장이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을 정리해주기로 했다.

"미리 계약해놓은 상영 예정 영화들이 조금 있더라고."

"맞습니다."

"아마 3개월 정도 지나면 전부 내려올 거 같더라고."

"네."

"그 이후부터 독립예술영화 위주로 상영할 생각인데, 가능하겠지?"

"물론입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진행하자고."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그러다 의문이 생겼다.

왜 이렇게 적극적인지.

"근데 왜 그렇게 의욕적인 거야?"

"아, 제 원래 꿈이 영화감독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한국 극장에 자주 와서 그런 모양이에요."

"하긴, 극장을 소유한 집안이었으니까."

민성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뭐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길을 바꿨죠. 극장을 운영해서 힘든 감독들에게 길을 터주자! 그런 방향으로요. 막상 해보니까 이것도 어려웠고요. 제 마음은 이런 게 아닌데, 주변 사람들은 전부 수익을 원하다 보니..."

"으음."

"근데 마침 형님이, 아니 대표님이 제가 꿈꿨던 일을 하겠다고 하셔서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구만."

"네. 오랜만에 심장이 막 두근두근합니다."

"좋아, 그럼 제대로 해야겠지?"

"물론입니다."

좋은 인연을 맺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추가로.

퀘스트까지 클리어되면서 넉넉한 보상을 획득했다.

[극장 운영에 필요한 인재!]

[퀘스트 클리어!]

[정산 완료.]

[하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5점을 획득합니다.]

왜 5점이나 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한동안 운영 좀 부탁할게."

"예, 대표님!"

"중요한 일 생기면 연락하고."

민성욱과 헤어지고서 차량에 올라탔다.

곧바로 카드를 사용했다.

[선행포인트 상자를 획득합니다.]

랜덤한 수치의 선행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상자를 얻었다.

"뭐, 그래도 꽝은 아니네."

큰 기대 없이 상자를 오픈했다.

[선행포인트 30점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대박이 터져버렸다.

"어...?"

이걸로 194점이 모였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빨리 영구적인 재능을 구매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

보육원 후원을 늘리기로 했다.

"보육원 후원에 잠시 소홀했던 거 같네요. 아직 전국적인 규모는 부담이니까 일단은 서울 경기도 지역 보육원에 대해서 파악부터 해보죠. 이후 작게나마 후원을 시작하면 될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부사장님이 총괄해주시고요."

"네, 이사장님."

이후 공모전 일정을 체크했다.

"며칠 안 남았군요."

"맞습니다."

"일정 진행에는 차질이 없겠죠?"

"네. 혹시라도 비나 눈이 올까 봐서 실내로 준비했으니까요. 공간도 넓고 일정도 아주 여유롭게 잡았으니까 무리가 가는 일도 없을 거예요."

"좋습니다."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벌써 오후였다.

"이번 주말 강의도 잘 준비되었죠?"

"네, 이사장님."

"오랜만에 저도 참여해야겠네요. 그동안 조금 바빴던 터라."

"괜찮아요, 일정은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요, 애들한테 미안하네요."

그 말에는 한애라 부사장도 긍정했다.

"하긴, 오래 못 보긴 했죠?"

"네."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많이들 좋아하겠네요. 생각보다 자주 물어보거든요, 애들이. 이사장님 언제 오냐고요."

"정말요?"

"그럼요,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말만 들어도 미소가 그려졌다.

"흐음, 강의 끝나면 맛있는 것도 먹여야겠네요."

"좋죠."

"자, 그러면..."

정확하게 오후 5시였다.

"이만 퇴근하시죠, 다들."

"네!"

"꺄아악, 퇴근이다!"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아, 부사장님은 일요일에 뵙고요."

"네, 그래요."

"가보겠습니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신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 왜."

(치킨집으로 와라.)

"뭔 일 있냐?"

(있지. 빨리 와.)

"오냐, 지금 바로 간다."

별일이 없어도 저러는 녀석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대수롭지 않은 일은 아니었다.

"드디어 착한 영향력에 가입했다고!"

"오, 그래?"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근데 생각보다 늦었네."

"아오, 은근히 절차가 까다롭다고."

"그래? 뭐 어떻기에?"

"아니, 몰래 와서는 동네 평판까지 알아보더라고. 여기서 조금 뜨끔하기는 했는데 운이 좋았지. 이번에 프랜차이즈 준비하면서 애들 보이면 일부러라도 치킨 나눠주고 했거든. 그 이야기를 들었나 봐. 그제야 가입을 수락해주던데?"

"이야, 빡빡하긴 하네."

"뭐, 그래서 좋은 거지만."

"하긴..."

그 정도 기준은 있어야 의미가 있을 테니까.

"아무튼, 가입도 했겠다. 오늘부터 제대로 동네 애들 도와주려고. 스티커 붙여 놓으면 알아서 많이 찾아온다고 하더라고."

"오호, 좋네. 스티커는 붙였고?"

"당연하지, 인마."

"웬일로 잘했구만."

"새끼, 내가 너보다 잘하거든?"

"크흐흐, 지랄."

역시 친구를 만나니 말이 거칠어졌다.

그래도 좋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신나게 놀던 중이었다.

띠링.

치킨집의 문이 열리더니 꼬맹이 두 녀석이 조심스레 들어왔다.

"어, 저기..."

낯이 익은 아이들이었다.

"어, 어어...?"

"안녕?"

"안녕하세요오."

"들어 와."

"아, 네."

소년 소녀 가정에 물건을 전달하면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 아이들도 그런 류성을 알아본 모양이었고. 함께 밥을 먹은 적도 있으니 아무래도 기억에 남아있을 터였다.

"스티커 보고 왔어?"

"네에..."

"어휴, 잘했네. 야, 스티커 보고 왔다잖아."

"어어, 그래."

이신우가 나서서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 치킨 한 마리 싸줄까?"

"그, 쿠폰으로도... 돼요?"

"당연하지. 언제든 찾아와서 얘기하면 쿠폰 하나에 치킨 한 마리 줄게."

"...감사합니다."

"후라이드? 아니면 양념?"

"어, 후라이드요."

"그래,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애들 딴에는 용기를 냈으리라.

그보다 쿠폰이라.

구청에 부탁했었던 일인데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류성은 기다리는 아이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어색해하던 아이들이 조금 편해졌을 무렵 이신우가 잘 포장된 치킨을 가져와 아이들에게 건넸다.

"자, 여기 후라이드 한 마리."

"고맙습니다아."

"그래, 맛있게 먹고."

"네!"

"자주 찾아오고 해."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 채 치킨집을 나섰다.

"애들이 좋아하니까 기분 좋네."

"그치?"

"어. 나중에 동네마다 지점 생기면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질 거 아니냐. 어후,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짜릿해."

"크흐흐."

류성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술이 제대로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서 치맥을 즐겼는데 맛이 정말 최고였다.

"어후, 좋구만."

이신우는 바쁘게 치킨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손님이 몰려온 탓이었다.

그 모습을 구경하면서 맥주를 한참이나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정신이 조금 몽롱해졌다.

"아오, 머리야..."

"야야, 너 취한 거 같은데? 적당히 마셔, 인마. 나 바쁘니까."

"오냐."

하지만 치킨을 한 입 먹으면.

역시나.

맥주가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크흐. 쥑인다, 쥑여."

간신히 여유가 생긴 이신우가 뒤늦게 류성의 맞은 편에 앉았다.

"아오, 이제야 좀 조용하네."

"흐어, 고생했다."

"엄청 취했네, 새끼. 그보다 오늘만 애들이 두 팀이나 왔어."

"어어, 그러게나 말이다."

조금 전에도 한 아이가 쿠폰으로 들고 왔었다. 아이의 좋아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흐흐, 이래서 내가 후원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니까."

"음? 후원도 하냐?"

"아, 몰랐냐? 그냥, 뭐 보육원이랑 여기저기 하고 있지."

"오올? 진짜냐?"

"그럼 가짜겠냐."

"근데 후원은 왜 하는 건데?"

"후원? 왜 하냐고?"

"그래, 왜 하냐고."

처음에는 퀘스트 때문이었다.

중간에는 돈을 올바르게 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의 근본을 바꾸고 싶어졌다.

"어어, 뭐. 그런 거 있잖냐.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거. 그거 기분 안 좋거든. 근데 어쩌겠어? 이미 시스템이 전부 갖춰져 있는 세상 아니냐."

"그렇지, 아무래도."

이신우는 취한 류성의 말을 들어주며 가볍게 호응했다.

"거기서 내가 아무리 발악해봐야 티도 안 날 거야."

"으음."

"근데 내가 후원하는 애들이 자라면 어린 시절을 기억할 거 아니냐. 힘든 시절 누군가의 도움은 강한 이미지로 남을 테니까."

어느새 류성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도 그랬거든. 작게나마 도움을 받은 건 여전히 기억이 나. 크게 혼났던 것도 그렇고. 그러니 애들도 마찬가지겠지. 그 애들이 자라면 그 무수한 애들 가운데 몇 명은 또 다른 애들을 돕지 않겠냐? 그러면 도움을 받은 애들이 자라서 그중에 일부는 또 누군가를 도울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반복되는 선행 속에서 분명 사람이 바뀌어나갈 터였다.

"시스템은 못 바꿔도.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은 바꿀 수 있는 거잖냐."

"그렇긴 하지."

"그게 곧, 시스템을 바꾸는 거 아니겠냐."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퀘스트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러니까, 해보는 거지."

"...좋네."

이신우 역시 묵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랜차이즈 넓힐 때마다 착한 영향력 스티커 붙이자고 할 때는 뭔 미친 소리인가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냐? 조금 놀랍기는 한데, 뭐. 그래.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어어? 뭐가? 뭔 소리 하냐."

상체를 앞뒤로 흔드는 류성을 보며 이신우가 피식거렸다.

"됐다. 그냥 잠이나 자라."

"으어어."

어느새 얼굴을 탁자에 받아버린 류성.

"새끼..."

이신우는 낯간지러운 말을 내심 삼키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류환이냐? 여기, 네 형 쓰러졌으니까 데리고 가."

머지않아 류환이 도착해 류성을 둘러업었다.

"아니, 형. 뭔 술을..."

"으어어..."

"으으, 무거워!"

그는 힘겹게 차량으로 류성을 끌고 갔다.

당연히 이신우도 도와줬다.

"아오, 새끼. 더럽게 무겁네."

"보기랑 달리 좀 그렇죠?"

"그러게 말이다."

둘은 간신히 류성을 뒷자리에 태웠다.

"고마워요, 신우 형. 그럼 가볼게요!"

"그래, 들어가라."

혼자 남은 이신우는 여전히 장사를 이어갔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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