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1) >
처음으로 얻은 중상급 카드였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땐 역시 럭키지."
행운과 함께하기 위해 럭키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냐아아아.
기분이 막 좋아 보이진 않았다.
방법은 있었다.
캣닢을 조금 뿌려주자 녀석이 미친 듯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우아옹와아앙.
럭키의 기분이 최고조에 이른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최고의 행운이 쏟아지기를."
심호흡으로 긴장감을 조금 푼 뒤에 중상급 카드를 사용했다. 핑그르르 돌아가는 카드들. 각양각색의 빛이 화려하게 어우러지며 시야를 농락했다.
"럭키야, 넌 안보이지?"
냐아앙.
당연히 안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묘하게 럭키의 시선이 카드에 꽂혀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착각이겠지."
류성은 럭키를 품에 꼬옥 안고서 앞발을 조심스레 잡았다.
"자, 고르자."
손을 뻗어 눈에 들어오는 카드를 고르려는 순간, 럭키가 갑자기 앞발에 힘을 줬다. 그 탓에 방향이 어긋나면서 다른 카드를 선택하고 말았다.
"어...?"
멍하니 있는데 카드가 미간으로 스며들었다.
[중상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사진작가의 순간포착'을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재능입니다.]
그리고 보상을 획득했다.
"음... 괜찮은 건가?"
애매한 느낌의 영구적인 재능이었다.
"그래, 뭐. 럭키가 고른 거니까 믿는다."
냐아아앙!
"좀 당황스럽긴 하다만."
사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처음 얻은 중상급 카드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영구적인 재능이니 분명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터였다. 일단은 꽝이 나오지 않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게 옳았다. 애써 그렇게 위로하는 순간이었다.
[연계 퀘스트 습득!]
류성의 마음을 달래주듯 기계적인 음성이 한 번 더 들려왔다.
[사진작가 공모전에 참여하라!]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 공모전에 참가해 수상하라! 공모전의 규모와 영향력, 그리고 수상하는 정도에 따라서 차등으로 보상을 지급한다.]
[남은 시간 : 무제한]
순간 류성의 눈이 빛났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역시 우리 럭키가 최고다!"
냐아아앙?
"으흐흐. 그래, 잘했다, 잘했어."
분명 뛰어난 재능을 얻었을 터.
공모전 수상?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보상 역시 괜찮게 얻을 수 있으리라. 이후 몇 개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선행포인트를 조금만 더 모은다면 영구적인 재능 구매가 가능해진다.
[선행포인트 : 239]
현재 239포인트가 모인 상태였으니 말이다.
"350까지 이제 111포인트 남은 건가."
처음에는 정말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조금만 더 나아가면 손에 쥘 수 있을 만한 거리로 여겨졌다.
머지않은 시기에.
350포인트를 모으는 그 날이 온다면.
"첫 번째는 역시..."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차티스트의 눈.
그걸 구매하면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상상만으로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사진 공모전에 참여하는 게 우선이었다.
서둘러 검색을 시작했다.
<사진 공모전>
각종 블로그에 사진 공모전 관련 내용이 떠올랐다. 대부분은 이미 지난 날짜였기에 굳이 눌러보지 않았다. 그러다 이틀 전에 올라온 공모전 기사가 보여서 클릭해봤다.
[2년 만에 돌아온 최대규모 사진 공모전!]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었다.
[2년마다 개최되는 성삼그룹 사진 공모전 요강이 드디어 오픈했다! 어느 공모전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규모의 상금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을...]
이런 공모전이 있을 줄이야.
성삼그룹.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 개최하는 공모전인 만큼 당연히 많은 부분이 뛰어날 터였다.
"재밌겠네."
성삼그룹 부회장이 그렇게 사진을 좋아한다는 내용을 끝으로 기사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퀘스트는 규모가 아니라 영향력이 큰 곳을 원했다. 그래서 성삼그룹 사진 공모전에 대해 더 알아봤다.
[벌써 3회차 개최!]
[6년에 접어드는 성삼그룹 사진 공모전!]
[이제는 대한민국 최고 영향력을 지닌...]
[국내 최대규모!]
[수상자 대부분이 유명세를 떨치며...]
[총 상금 5억 원의...]
알아볼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규모에 영향력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공모전이었다.
여기서 상을 탄다면 퀘스트 보상 역시 생각 이상으로 쏠쏠하리라.
마지막으로 공모전 요강을 살폈다. 사진은 올해 1월 1일부터 찍은 것만 적용되며 3점까지 출품할 수 있었다.
1월 31일까지 이메일로 접수하면 끝이었다.
다만 주제가 있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었다.
"미래."
그걸 주제로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면 되는 모양이었다.
뭐, 어렵진 않네.
벌써 어떤 걸 찍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그건 그렇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기는 조금 애매했다. 영구적인 재능을 얻기도 했고 또 공모전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니 기왕이면 제대로 된 디지털카메라 한 대를 구매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어휴, 쉬려고 했더니."
조금 귀찮긴 하지만.
드라이브도 할 겸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
기왕이면 제일 좋은 걸 사고 싶었다.
"음, 카메라를 처음 쓰는 거긴 한데요."
"그러면 이것도 괜찮습니다."
"얼만데요?"
"170만 원짜리입니다. 초심자긴 하지만 좋은 카메라를 쓰고 싶을 때 사용하면 적당할 겁니다. 2,000만 화소라 성능도 나쁘지 않고요."
"그렇군요. 여기서 제일 비싼 건 뭔가요?"
"제일 비싼 거라면..."
매장 주인에게서 조금 귀찮아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물어보기만 하고 사지는 않을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뭐, 이게 제일 비싸긴 하죠."
"얼마죠?"
"1,500만 원이요."
생각보다 비싼 느낌은 아니었다.
"더 비싼 건 없고요?"
"네, 없어요."
"그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올게요."
"예에."
류성은 귀찮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장을 지나쳤다. 바로 오른쪽에 있는 다른 매장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여기가 조금 전 매장보다 카메라의 품질이 더 좋아 보인 까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카메라 찾으세요?"
"제일 좋은 거요."
"잘 오셨습니다. 마침 신제품이 들어왔거든요."
"오, 그래요?"
"네. 바로 이 녀석입니다."
멋들어지게 생긴 카메라였다.
"정말 비싼 녀석이죠. 라이카 제품입니다."
"라이카라..."
"독일에서 수작업으로 소량만 생산하는 명가죠."
들어본 적이 있었다.
"거기서 내놓은 라이카 S3 중형 카메라가 바로 이 녀석인데요. 중형치고는 화소가 좀 약하긴 하죠. 6,400만 화소라서 다른 중형 카메라와 비교하면 아쉬운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제품이 바로 이 라이카 S4입니다."
매장 주인이 고풍스러운 느낌의 상자를 꺼내왔다.
뜯지도 않은.
그야말로 싱싱한 새 제품이었다.
"이 제품이 한정판이거든요."
들을수록 기대감이 높아졌다.
빠져드는 화술이었다.
"총 300대를 한정으로 제작한 물건이죠. 저희가 국내에서 가장 인망이 좋은 업체라서 운 좋게 딱 두 대를 받아왔고요. 사실 대표님이 인맥이 짱짱하시거든요. 크흠, 아무튼 여기는 지점이지만 제일 카메라가 많이 팔리는 곳이라서 한 대를 가져올 수 있었죠."
"엄청난 물건이겠군요."
"흐흐, 당연하죠."
류성의 눈이 반짝거렸다.
갖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스펙은요?"
"무게는 1.2kg이고요. GPS도 탑재되어 있습니다. DSLR 제품으로 딜레이 없이 피사체를 추적하는 건 물론이고 배터리 소모를 하지 않아서 사진 촬영을 더 많이,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죠. 요즘은 전부 미러리스 제품이 나와서 오히려 더 희소한 편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그냥 이 사람은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상대가 구매하건 말건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화소가 끝내줍니다. 무려 2억 화소거든요."
좋은 일이었다.
그 설명이 류성은 마음에 들었으니까.
특히 한정판이라는 게.
전 세계에 딱 300대만 존재하는 명품 브랜드의 카메라.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걸로 하죠."
"그 가치가 정말로... 예?"
"이걸로 살게요."
"어, 사신다구요?"
"네."
"이게 수제품에 한정판이라... 가격이 많이 비쌉니다."
"얼만데요?"
"2억 5,000만 원입니다."
"와..."
생각 이상으로 비싼 물품이었다.
근데, 뭐.
이제 이 정도 가격에는 놀라지 않을 정도의 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주세요, 이걸로."
사진은 많이 찍을수록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될 테니까.
그러니 기왕이면 최고의 제품으로 많은 장면을 찍어두고 싶었다. 퀘스트가 선물해준 사진작가의 재능 역시 최고일 테니까.
최고의 재능으로 최고의 제품을 사용한다면 그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 카드로 긁어주시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어, 저기 할부는 어떻게...?"
"일시불이죠."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매장 주인의 태도가 달라졌다.
원래부터 친절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깍듯해진 느낌이었다.
"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네."
슬쩍 옆을 바라보니 처음 들렀던 매장 주인이 보였다. 바로 옆에서 무려 2억 5천만 원짜리 제품이 팔렸으니 속이 말이 아닐 터였다.
그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심각하게 배가 아파 보이는 듯한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미간의 주름살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거참, 그러게.
가장 좋은 거로 보여달라니까.
"여기 있습니다!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바로 AS까지 가능하니까 이곳으로,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예, 살펴 가십시오!"
류성은 새롭게 생긴 장난감에 즐거운 듯 웃으며 백화점을 벗어났다.
*
남은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카메라를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가긴 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시간만은 정말 제대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찾아온 일요일.
"오늘은 움직여야지."
하루를 제대로 쉰 덕분인지 기운이 났다.
컨디션도 돌아왔고.
힘차게 집을 나서 정수현의 집으로 이동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네?"
"네."
천재적인 축구 재능을 지닌 아이, 정수현.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
"어머니는?"
"곧 나오실 거예요."
"그래."
잠깐 기다리자 어머니가 나타났다.
아직도 젊은 나이.
그러나 힘든 일에 치여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얼굴이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표정에 생기가 감돌았다. 덕분에 얼추 나이에 맞는 젊은 기운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기다리셨죠?"
"괜찮아요. 방금 왔으니까요. 그럼 이제 나가실까요?"
"네...!"
정수현도, 그리고 정수현의 어머니인 정혜은도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류성의 뒤를 쫓았다.
"그러니까... 축구 클럽에서 테스트를 본다는 거죠?"
"네. 오늘이거든요, 날짜가. 테스트를 안 보는 클럽이 사실 대다수인데 일부러 테스트 보는 곳으로 골랐어요."
"그, 그래요?"
"네. 프로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주로 가르치는 곳이라서요."
"아아...!"
상황을 제대로 깨달은 정혜은이 정수현의 어깨를 다독였다.
"수현아, 긴장하지 말고."
"응, 난 괜찮은데?"
"그래? 엄마가 더 긴장되나 보다."
"그런가 봐."
"후우, 후아."
멀쩡한 정수현과 긴장을 숨기지 못한 정혜은의 상반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보기가 좋아서.
둘의 대화를 듣는 사이 주차해뒀던 차량에 당도했다.
"타세요. 수현이도."
"네!"
둘을 태우고서 ‘센세이셔널 축구 클럽’으로 이동했다. 서울 도심지에 있는 축구 클럽이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깝죠?"
"네, 정말 가깝네요."
차에서 내리자 멋들어진 축구장이 보였다.
거기에 반한 걸까.
정수현은 입을 벌린 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성은 다급히 손을 뻗어 정혜은의 움직임을 막았다.
"잠시만요."
사진작가의 재능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