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30화 (130/277)

< 주제(2) >

공모전 주제는 '미래'다.

미래를 의미하는 완벽한 장면이 지금,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니 사진을 찍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었다.

스윽.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를 들어 시야에 맞췄다.

아직 어리지만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이리저리 각도를 조절했다. 뒤에서 쏟아지는 햇볕을 조명으로 삼고 흩날리는 바람을 배경으로 잡았다.

움직이는 정수현을 주시하다가.

지금...!

절묘한 타이밍에 사진을 찍었다.

찰칵-

그 소리에 놀란 듯 움직임을 멈춘 정수현이 몸을 뒤로 돌릴 때 다시 한번 기회를 포착한 맹수처럼 셔터를 눌렀다.

찰카가가각-

이번에는 연사를 활용했다. 돌아보는 모습은 찰나기에 완벽한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웠으니까.

"후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앞으로도 찍어야 할 사진은 무궁무진했으니까.

"자, 들어가시죠."

"아, 네."

정수현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걸어가는 게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버렸네. 나중에 보내줄게."

"아, 고맙습니다."

"그래, 들어가자."

"네!"

축구장으로 진입하면서 미리 알아뒀던 정보를 그의 어머니에게 공유했다.

"참, 여기 축구 클럽 감독님이 정말 좋은 분이더라구요.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결정한 곳이니 마음에 드실 거예요. 특히 아이들을 혹사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일 큰 점수를 줬거든요."

"아아...!"

"그러니 크게 다칠 일도 없을 테고 성장기의 근육이나 신체에 관해서도 케어를 잘 해줄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곧이어 클럽 내에 도착했다.

테스트하는 날이라 아이들이 꽤 있었다.

"테스트 보러 오셨나요?"

"네."

"선수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정수현입니드."

"정수현. 여기 있네요. 30분 뒤에 시작하니까 몸부터 풀고 기다리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정수현을 탈의실로 보내고 류성은 그의 어머니인 정혜은과 함께 축구장을 둘러보며 구경했다.

"시설은 괜찮죠?"

"네. 실내도 있고 엄청 좋아요."

머지않아 나타난 정수현.

멋들어진 축구화와 유니폼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저는 준비운동 할게요."

"그래."

정수현은 축구공 하나를 들고 축구장을 뛰어다녔다. 공을 몰고 움직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류성은 슬쩍 미리 나와 있는 클럽 코치진을 훑었는데 그들 역시 정수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몸은 가벼운데?"

"공도 잘 몰고."

"뭐,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일단 시선을 끈 것만으로 충분했다.

테스트를 해보면 알 테니까.

저 아이의 재능이 진짜라는 걸 말이다.

"흐음."

이어진 훈련에서 류성은 또다시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슬며시 카메라를 들고서 타이밍을 노렸다.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확실한 어느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숨죽인 채로, 오랫동안.

*

본격적인 테스트가 진행되기 전.

코치들이 끼어들어 가볍게 패스 훈련을 진행했다.

"테스트에 앞서 기본적인 패스 훈련을 알려주고 본격적인 테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함께 온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는..."

차례대로 패스 연습을 하면서 아이가 지닌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코치들. 덕분에 아이들은 테스트에 앞서서 본인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자, 다음은 정수현."

"네!"

"패스부터 받아보자."

코치가 꽤 강하게 공을 찼다.

파앙!

이 정도 속도의 패스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정수현은 살짝 당황했다. 제대로 패스를 받지 못해 공이 멀리 튀어 나간 것이다.

"축구 경력이 얼마나 되지?"

"3개월 정도요."

"3개월...?"

"네."

"그전에는 축구를 해본 적이 없고?"

"네."

"어디에서 배웠지?"

"안 배웠어요. 그냥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하는 게 전부여서요."

"...그렇군. 그럼 기초적인 패스 받는 법부터 알려주마."

"감사합니다."

"자, 받아 봐!"

공을 찰 것처럼 굴던 코치가 직전에 멈췄다.

"정지. 지금 자세를 봐. 몸이 틀어져 있지?"

"아, 네."

"몸은 공의 정면을 보는 거다. 대신 패스를 받아야 할 발의 옆면만 앞으로 내밀면 돼. 패스를 받아야 할 발은 땅에서 5cm 이상 띄우지 말고. 축구화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보다 조금 더 뒤쪽. 그러니까 복숭아뼈를 중심이라 생각하고 공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트레핑이 돼."

그 말에 정수현의 눈이 빛났다.

처음 받는 가르침이었다.

그것도 정말 제대로 된, 훈련과 경험이 뒤섞인 절묘한 조언.

"간다."

"네!"

처음에는 조금 느린 속도로 패스를 했다.

파앙!

이번에는 제대로 받았다.

공도 튀지 않았고.

트레핑도 좋아서 바로 앞에서 스핀이 멈췄다.

"다시."

이번에는 코치가 속도를 올렸다.

"자, 방금 공이 튀었지? 발을 많이 들어서 그런 거다. 조금만 들어도 돼. 발을 높이 들면 공이 아래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공에 힘이 실린 상태면 방금처럼 위로 튀게 된다. 그게 실수를 유발하는 거고. 하지만 발을 땅에 붙이면 공이 조금 높게 날아와도 무릎이나 정강이로 받아낼 수가 있어."

"네!"

패스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팡! 파앙!

생각보다 잘 적응한다고 여긴 걸까.

"흐음, 괜찮구나."

"감사합니다!"

"그럼 그 상태에서 바로 원터치 패스로 이어가 보자. 복숭아뼈를 중심으로 날아드는 공을 곧바로 패스하는 거야."

코치는 설명한 뒤에 바로 패스를 날렸다.

파앙!

날아드는 공을 바라보며 정수현이 오른발의 내측면을 내밀었다. 복숭아뼈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러자 거짓말처럼 원터치 패스가 이뤄졌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서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았다.

"호오..."

가르쳐주지도 않은 잔발스텝을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 정도 스텝은 동네에서 취미 삼아 축구를 하는 3개월 차 아이가 사용할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3개월이라고?"

"아, 네!"

덕분에 실수로 끝났어야 할 원터치 패스가 자연스레 이어지고 있었다.

팡, 파앙!

코치의 표정에 기대감이 서렸다.

"흐음, 그렇군. 일단 잘했다,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정수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너무 재밌는 까닭이었다.

혼자서 공을 가지고 연습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의 일대일 교습이 끝날 때까지.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본격적인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자,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감독은 지켜봤고 코치들이 주관했다.

테스트는 간단했다.

어른도 아닌 어린아이들이었기에 팀을 나눠 경기를 펼치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추려내는 것이 감독과 코치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정수현은 B팀이었다.

A와 B팀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

가입서에 적힌 대로 정수현은 공격수에 배치되었다.

첫 번째 슈팅 기회가 왔다.

공을 몰고 달려가면서 왼쪽으로 드리블을 치더니 그대로 슛을 때렸다. 다만 아쉽게도 수비수에게 공이 맞으면서 튕겨 나갔다.

그러나 정수현은 덤덤했다.

다시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찾아온 두 번째 기회.

다시 공을 왼쪽으로 몰다가 슛을 때리려는 동작을 취했다. 그 순간, 조금 전 경험이 떠오른 건지 수비수가 몸을 살짝 틀면서 공을 막아내려는 자세를 취했다.

스윽.

그때 정수현이 공을 접어버렸다.

타다다닷-

빠르게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비수를 제치더니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파아앙!

그대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호오."

지켜보던 감독과 코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잘하는데요?"

"제대로 접었네요. 근데 왼발잡이가 아니었나 봐요?"

"그러게요. 첫 번째 슈팅에선 분명 왼발로 때렸는데..."

그때 감독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재밌는 녀석인데?"

"네?"

"왼발은 페이크였던 거지."

"아...?"

"두 번째 슈팅을 살리려고 첫 번째 기회를 소모한 거야. 수비수에게 왼발이란 인식을 심어준 거지. 왼쪽으로 볼을 굴리면 슈팅할 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킨 거라고. 이후에 찾아온 두 번째 기회를 제대로 살렸어. 녀석의 뜻대로 수비수가 반응해줬으니까."

감독은 서류를 확인했다.

"3개월이라?"

그때 패스를 알려줬던 코치가 다가갔다.

"제가 패스 연습 상대를 했습니다."

"그래? 어땠어?"

"처음에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더군요. 핵심만 조금 알려주니 전부 다 흡수해버렸습니다. 물론 실전에서도 그렇게 쓸 수 있을진 모르..."

그 순간이었다.

전방에서 패스를 받은 정수현이 원터치 패스를 갈겨버렸다.

파앙!

깔끔하게 라인을 타고 굴러간 공이 같은 팀 선수의 앞쪽 빈 공간에 안착했다. 덕분에 가볍게 발을 밀어 넣는 것만으로 멋들어진 골이 만들어졌다.

출렁.

네트가 흔들리며 함성이 퍼졌다.

"...잘 쓰는군요."

"그렇군."

정수현 1골 1어시스트.

이후로도 한 골을 더 넣으면서 경기 종료까지 2골 1어시스트를 달성했다.

*

그 자리에서 바로 합격자가 정해졌다.

"마지막으로 정수현."

"아, 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사진을 찍던 류성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기존 퀘스트와 부합됩니다.]

[퀘스트 흡수...]

홀로그램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부합되는 퀘스트가 '미래의 꿈나무를 위하여!'에 흡수되었습니다. 후원하는 모든 아이를 대상으로 퀘스트가 확대됩니다.]

[아이가 꿈에 한발 다가섭니다.]

[유망주 클럽 입단!]

[시스템의 판단에 따른 보상을 지급합니다.]

[선행포인트 상자를 습득합니다.]

정수현의 스포츠 재능을 지원하라던 퀘스트가 미래 꿈나무에 흡수되었다.

심지어 범위까지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보육원 아이들만이 아니라 소년 소녀 가정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미친다는 의미였다.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기왕이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게 옳을 테니까.

"상자라..."

류성은 곧바로 허공에 떠오른 홀로그램 상자를 확인했다.

[선행포인트 상자]

5점부터 17점 사이의 포인트를 랜덤으로 획득한다.

생각보다 좋은 보상이었다.

적어도 5점이란 얘기니까.

류성은 17점에 가까운 포인트가 나오길 기대하면서 상자를 오픈했다. 물론 현실은 희망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말이다.

[선행포인트 16점을 획득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수치가 떴다.

이야, 괜찮은데?

최대치인 17점에서 1점이 모자란 점수를 얻었다. 이로써 255포인트가 모였다.

[선행포인트 : 255]

목표는 350점.

이제 95점이 남은 상태였다.

*

함께 점심을 먹고서 정수현과 정혜은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 앞으로 축구 열심히 잘 배우고. 자주 보러 올 테니까."

"네! 열심히 할게요!"

합격의 여파가 컸던 모양이다.

상당히 밝아진 모습이었다.

이제야 조금 그 나이 또래의 아이처럼 느껴졌다.

"아, 나중에 사진도 보내줄게."

인사를 하며 차를 끌고서 다시 서울 시내로 이동했다. 머지않아 도착한 곳은 보육원 아이들을 모두 수용할 정도로 넓은 강의실이었다.

"오셨어요?"

"네, 다들 그간 잘 지내셨죠?"

아름드리, 희망찬 보육원 원장님 두 분과 인사를 나눴다. 하늘 보육원의 한애라 원장과도 가볍게 인사를 한 뒤에 뒤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와아아아, 형이다!"

"아저씨!"

"오냐, 그래."

대부분이 류성을 크게 반겼다.

단번에 달려와서는 그의 주변을 옹기종기 둘러쌌다.

"헤헤, 안녕하세요!"

"아저씨, 엄청 오랜만에 봐요!"

"그러게 말이다."

"보고 싶었어요!"

"어어, 그래? 나도 보고 싶었어."

"근데 왜 자주 안 와요?"

"아저씨가 바빴나 봐."

"히잉."

"앞으로는 자주 올게."

적극적인 표현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놀아주다가 고개를 들자 뒤쪽에 있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지?"

"네, 안녕하세요."

도유종과 예지은이었다. 겉으로 크게 표현하진 않았으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류성을 격하게 반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엄청 오랜만에 오셨네요."

"조금 바빠서 말이야. 미안."

"...자주 오세요."

설마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뭔가 느낌이 묘했다.

류성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앞으로는 꼭 그럴게."

"네."

"그럼 강의 들으러 가볼까, 다들?"

"좋아요!"

오늘은 영화 감독님을 모셨다.

감독에 관한 주제로 강의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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