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답 받아야 할 사람(2) >
어떤 걸 전해줘야 할까.
어떻게 도와야 할까.
돈은 얼마가 나가건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은 재활을 위한 비용이 우선일 터였다. 그리고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테고.
무엇보다 의사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의료 봉사가 중요했다.
으음, 어쩌면...
현재 협업 중인 병원과 이야기를 해보면 길이 보일지도. 물론 더 정확한 건 직접 의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링!]
너무 깊게 고민한 모양이었다.
뒤늦게 퀘스트가 떠올랐음을 인지했다.
"아."
서둘러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퀘스트 발동!]
[남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의사.]
[고아로 자라 악착같이 공부해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의사로 살아가면서 공허함만 커졌다. 그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베풀었고 끝내 시선을 해외로까지 돌렸다. 더욱 힘든 사람들, 더욱 가난한 자들, 더욱 배고픈 이들을 위하여 살아갔다. 오직 그것만이 그를 살아있게 만들어줬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중년이 되어 큰 병을 앓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주변을 둘러보니 이룬 것은 없고 그를 위하여 선뜻 손을 내미는 이도 보이지 않는다. 서글픔 속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보다 힘든 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살아온 스스로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게끔 도와라. 그는 보답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남은 시간 : 무제한]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문구가 뇌리에 박혀 쉽게 떠나질 않았다.
[그는 보답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연락이 닿는 게 최우선이었다. 서둘러 너튜브 영상 채널에 메시지를 남겼다.
-너튜브 영상을 보고서 연락드립니다. 저는...
부디 빠른 시일 내로 답장이 오기를.
"이사장님, 다 왔어요."
"아, 네."
임나연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운전하느라 고생했어요."
"뭘요, 저 운전하는 거 좋아한다니까요."
"참, 그랬죠?"
"네. 차가 좋으니까 더 재밌기도 하고요."
"다행이네요."
지하에 주차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깔끔한 복도를 거닐었다.
RS 재단 법인 사무실의 문을 열기 직전, 쾌활한 외침이 들려왔다.
"점심시간이다!"
"꺄아아악!"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점심시간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법인 카드로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으니까. 류성은 웃으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기운이 좋은데요?"
"앗, 이사장님?"
"오셨어요?"
"네. 다들 밥이나 먹으러 가죠."
"좋아요!"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그에 최송이가 손을 들었다.
"이사장님!"
"네, 송이씨."
"오늘 스테이크 먹어도 되나요?"
"스테이크요?"
"네!"
"다들 동의하면요."
"전 좋아요."
"저두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스테이크는 진리였으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알고 있는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
"네!"
"그럼 출발하죠."
평소에도 점심시간에는 값비싼 요리를 자주 먹는 편이었다. 어차피 법인 카드였으니 많이 써도 부담되지 않았고 이런 것도 직원 복지의 일종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고급스러운 곳으로 이동했다.
"어, 여긴..."
"칠성급 호텔이죠. 여기 코스 요리에 나오는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우와, 대박!"
"역시 이사장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2층으로 향했다. 넓은 홀이 나타났는데 저 멀리 복도 끝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저벅.
다 함께 걸음을 옮기던 와중이었다.
"진짜 이런 회사가 또 있을까요?"
"어휴, 찾기 어렵죠."
원년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업무담당 최송이, 경리담당 임나연, 홍보담당 백성욱 세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그렇죠?"
"네. 지금 RS 건물만 해도 복지가 장난이 아니잖아요. 1층 카페에 스포츠 게임실에 3층에는 헬스장도 있구요."
"무엇보다 점심시간이 끝내주죠."
"최고예요, 정말."
"아직 사내식당이 없긴 하지만..."
"나중에 더 커지면 하나씩 늘려나갈 테니까요."
그때 임나연이 주먹을 꼬옥 쥐었다.
"저는 여기에 뼈를 묻으려고요."
"저두요...!"
"열심히 해보죠, 우리."
"좋아요."
그런 세 사람을 류성이 슬쩍 쳐다봤다.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웃고 떠드는 모습이 그냥 보기 좋았다.
사이도 좋아 보이고.
조만간 세 사람은 승진시킬 계획이었다. 선임으로서 충분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았기에 문제도 없어 보였고.
그 이후에는.
후원 영역을 넓히면서 사람을 더 채용할 생각이었다.
"자, 들어갑시다."
"네!"
한애라 부사장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류성을 쫓아갔다.
레스토랑 식당 내부.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두 팀 정도.
여유로운 와중에 셰프와 마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호텔 셰프, 김성호라고 합니다. 환영합니다."
"아, 네."
"메뉴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한 사람씩 메뉴판을 받았다.
단품은 없었다.
전부 코스 요리였는데 다만 종류가 세 가지였다.
한식, 양식, 일식.
오늘은 스테이크가 끌렸기에 양식 코스를 주문했다.
"저는 양식 코스로 할게요."
1인에 27만 원이었다.
류성이 주문을 마치자 나머지 직원들도 각자 원하는 코스 메뉴를 선택했다.
대다수가 양식이었다.
한애라 부사장님만 한식이었고.
"그럼 차례대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셰프가 바로 앞에 놓인 넓은 철판에 재료를 투척했다.
치이이익-
눈앞에서 진행되는 요리라니.
흥미로웠다.
여유로워 보임에도 속도가 엄청났다. 순식간에 요리가 완성되더니 접시에 담겼다. 뭔가 쓱쓱 하더니 어느새 아름다운 플레이팅까지 마무리되었다.
"버터 관자 구이와 새우, 그 위에 올라간 성게 알과 특제소스입니다. 관자를 소스에 찍어서 먼저 드시고 이후 새우와 성게 알은 소스 없이 함께 드시면 좋습니다."
셰프의 설명을 듣고서 젓가락을 쥐었다.
스윽.
관자 구이를 소스에 찍어서 먹었다.
"으음...!"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맛이었다.
입안에서 사르륵 녹았다.
관자 자체도 맛있었는데 소스가 신의 한 수였다.
"와아...!"
"대박!"
"고소한데 상큼하네요."
"진짜 맛있어요."
이번에는 새우와 성게 알이었다.
동시에 집고서.
한입에 넣으니 새우의 탱글탱글함과 고소함, 그리고 성게 알 특유의 눅진함이 한데 어우러졌다. 마치 입안을 희롱하는 듯한 맛의 타격이었다.
"...미쳤군요."
그 말에 앞에서 요리하던 셰프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요리도 끝내줬다.
하나같이 특별했다.
몇 개의 요리가 나오고서 대미를 장식할 스테이크가 불판 위에 올라갔다.
치이이익.
엄청난 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침샘도 함께.
"메인요리, 안심 스테이크입니다."
미디엄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였다. 칼질을 한 번 해주니 속살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영롱했다.
그대로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아..."
극한의 황홀함에 취했다.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그저 맛을 음미하기에 바빴으니까.
*
점심을 먹고서 RS건물 1층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고서.
각자 자리를 잡은 채 휴식을 취했다.
"오늘도 커피가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바리스타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익숙한 전주가 들려왔다.
"어, 이 노래...!"
"이거 밝은 그림자네요."
"아, 맞아요."
"완전 좋아하는 노랜데...!"
직원들의 대화 소리에 괜히 류성의 귓불이 붉어졌다. 이미 몇 번이나 경험했던 일이지만 저런 반응이 보일 때마다 괜히 쑥스러웠다.
크흠.
저 사람들은 작사가가 본인인 걸 모를 것이다.
아직 밝히지 않은 탓이었다.
직접 물어본다면 대답할 의향은 있으나 굳이 먼저 나서서 내가 바로 이 곡의 작사가라고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참, 이사장님!"
"네."
"이 노래 작사가가 류성인 거 아세요?"
"그래요?"
"네. 이름이 똑같아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하하..."
"설마 이사장님은 아니죠?"
류성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이렇게 쉽게 밝힐 기회가 올 줄이야.
류성은 사실대로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푸훕, 아니, 이사장님. 농담이 느셨는데요?"
"재밌었어요!"
"푸히히."
류성은 정말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 진짠데요...?"
"푸하하, 알았어요. 그런 거로 해요!"
"진짜라니까요."
"네, 이사장님. 최고!"
"..."
진실을 알려줘도 농담으로 치부 당했다.
상관 없으려나.
굳이 증명까지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뭐, 훗날 자연스레 밝혀질 수도 있는 일이었고.
"아무튼, 노래는 좋죠?"
"완전요!"
"저는 하루 내내 이 노래만 들을 수도 있어요!"
"드라마도 최고고요!"
"맞아요, 으으... 오늘도 집에 가서 보려고요!"
다들 즐거워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시인의 재능이라.
조금만 더 있으면 재능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지닌 선행포인트가 333점이었다. 그럼 적어도 1월 말이 되어 정기후원이 정산되면 350점이 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지금도 고민이 되었다.
어떤 재능을 살지.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시인이 보는 세상'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강해졌다.
그래, 뭐.
마음이 더 가는 쪽을 선택하면 될 일이었다.
구매할 수 있는 순간이 될 때까지는 고민하되, 선택에 너무 목을 매지는 않기로 했다.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도 없었고. 어차피 포인트는 모일 것이고 결국 시간이 흐르면 모든 재능을 구매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편하게 생각하자.
그러면서 커피를 호로록, 마셨다.
"으음, 맛있는 커피에 좋은 노래라..."
일상에서 찾아온 기분 좋은 휴식시간이었다.
*
성삼그룹 사진 공모전 1차 예선전.
심사위원으로 뽑힌 경력 있는 사진작가, 최휘순은 큰 화면에 사진을 띄우면서 하나씩 확인했다.
"흐음."
아쉬운 사진이 많았다.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찍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이건 너무 일차원적인데."
미래를 주제로 사진을 찍으랬더니 대형빌딩을 찍어 보내질 않나 스마트폰을 찍지를 않나. 심지어는 밤하늘을 찍기도 했다.
뭐, 어쩌란 건지.
미래에는 우주라도 나갈 거라는 의미인가.
"거, 참."
혀를 차면서 화면을 넘겼다.
슥, 스윽.
이번에는 웃기게도 VR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래, 뭐. 미래는 미래지."
언제고 다가올 가상현실의 미래이리라. 지루한 기색으로 사진을 살펴보던 최휘순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호오."
자연스레 나오는 감탄사.
그리고 고쳐지는 자세.
어느새 기울어졌던 몸을 바로 세우고 화면을 직시했다.
축구장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이었는데 거기서 꿈과 목표가 느껴졌다.
아이의 단단한 결심까지도.
"...그래, 이게 미래지."
한참을 바라보며 눈을 정화시켰다.
좋구나, 좋아.
다음 장을 보는데 이번에도 사진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이들 모습도 좋긴 한데."
상체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는 강사가 눈에 더욱 들어왔다. 사진 자체가 그에게 집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곳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라는 듯이.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
그가 어른이라고.
상대가 누구건, 존중을 표하는 진짜 어른이라고 말이다.
"이런 어른이 되어야겠지."
박수치는 아이들의 미래가 바로 저런 어른이길 바란다는 진심이 전해졌다.
이번 사진도 정말 좋았다.
뒤늦게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누구지?
서둘러 참가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류성이라.“
두 장의 사진을 출품한 사람은 류성이라는 인물로 동일인이었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신인이라 이거지?
이렇게 되니 세 번째 사진은 더욱 기대가 되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서 화면을 넘겼다.
소아병동의 복도가 보였다.
묵직한 무게감과 그에 대비되는 밝은 기운이 동시에 느껴졌다. 특히나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민 아이가 킬링 포인트였다.
"...미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건 그냥 곧바로 본선까지 올려버려도 될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공모전인 만큼 절차라는 게 존재했으니까.
아쉽지만.
1차 예선전 통과작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사진들은 반드시.
본선까지는 올라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