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가사(2) >
차를 끌고서 경기도 화성 송산면으로 향했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덕분인지 겨우 35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까워서 좋네."
차를 세우자 익숙한 사람이 다가왔다.
부센터장, 노현찬이었다.
"센터장님, 오셨어요?"
"네. 오랜만이죠?"
"허허, 바쁘게 지냈더니 시간 흐르는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저랑 똑같네요."
노현찬과 함께 공사현장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금방 완공이 될 거라고 하셨죠?"
"맞습니다. 땅은 넓은데 막상 지어야 할 건물은 단순한 편이어서요. 3주 내로 완공될 거 같습니다."
"좋네요, 빠르고."
"그래도 중간 확인은 해보셔야 하니까요."
"그렇죠."
얼마 걷지 않아 공사현장이 보였다.
노현찬의 말이 딱 맞았다.
넓은 땅에 비해서는 정말 자그마한 규모의 공사였다. 물론 그렇다고 쉽게 볼 수는 없었다. 땅에 비해서 규모가 작은 거지, 건물 자체가 작은 건 아니었으니까.
"가까이 가보죠."
"네!"
어느새 정갈하게 닦인 길을 따라 걸었다.
건물과 가까워졌다.
그제야 건물이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야..."
"하하, 생각보다는 큰 편이죠?"
"네."
"땅에 비해 작은 거지, 규모가 작은 건 아닙니다."
"건설 계획표를 보긴 했는데 똑같네요, 정말."
"그렇죠. 요즘 기술이 좋으니까요."
노현찬이 앞으로 나아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정면에 있는 게 본관입니다. 강아지들이 지내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몇 평이나 되는 거죠?"
"지대만 500평입니다. 3층까지 있고요."
"괜찮네요."
"이 정도면 정말 많은 유기견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것도 좋지만 편안해야 합니다. 자리가 부족하면 증축을 하거나 혹은 옆에 건물 하나 더 지어버리죠."
"알겠습니다."
"오른쪽 건물은 뭔가요?"
류성이 가리킨 곳에 두 개의 건물이 있었다.
"오른쪽에 지어진 건물은 차례대로 격리실이랑 사료보관실입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이 사육실, 진료실이죠. 저기 뒤쪽에는 배설물 처리실이고요. 처리시설만 있으면 되는데 그냥 건물로 지어버렸습니다. 냄새 자체가 빠지지 않도록이요."
"잘하셨네요. 시설 안내법도 잘 지켰겠죠?"
"공간배치 방법, 환기, 온도, 습도조절, 소음, 악취방지 등. 시설 안내법에 나온 그대로를 적용했습니다. 대신 규모만 키운 정도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공간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야외 운동장, 그리고 실내 운동장으로 꾸밀 예정입니다."
"넉넉하게 한 달 안으로 마무리 짓고 아이들 데려오죠."
그 말에 노현찬의 표정이 굳건해졌다.
"네, 이제 데려와야죠."
"가끔 보고 오시죠?"
"그럼요. 하루에 한 번은 들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도 워낙 보호소 시설이 좋아서 마음은 편안해요. 다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죠."
현재 ‘하늘땅 별땅 유기견 보호소’에 노현찬이 보호하던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맡겨놓은 상태였다. 불이 나면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시일이 상당히 지난 터라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클 터였다.
"그 마음, 여기서 전부 쏟아주세요."
"여기요?"
"네. 앞으로 다른 유기견, 유기묘 많이 데려와야죠."
"아, 그럼요. 물론이죠."
"여기서 하나만 부탁드릴게요."
"예."
"이렇게 많이 데려와도 될까? 이래도 괜찮을까? 그런 부분들,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태라도 데려와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보호해주세요. 그 어떤 요청도 마다하지 마시구요. 돈 걱정, 자리 걱정, 그런 건 제가 하겠습니다. 아시겠죠?"
"하하, 네. 알겠습니다. 절대로 돈 걱정 안 하고 닥치는 대로 다 해치워버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한 태도에 류성이 웃어버렸다.
"좋네요. 누가 보면 꼭 싸우러 가는 줄 알겠어요."
"크흐흐, 그런가요?"
"여기 데려와서 관리 잘 해주고 편안하게 지내도록 해줍시다."
"네, 센터장님!"
이번 공사현장 과정은 아주 깔끔했다. 그러니 이대로 노현찬 부센터장을 믿고 맡기면 될 거 같았다.
*
사무실로 출근해 오전 업무를 봤다.
"이사장님, 병원 협업도 잘 진행되고 있고 소아병동 후원도 늘린 상태에요. 확인해주세요. 외에도 후원 대상에 포함할 보육원을 추려봤는데 이것도 체크 부탁드릴게요."
"네, 부사장님."
올라온 서류를 천천히 확인했다.
병원과의 협업.
소아병동 후원.
전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다섯 개 병원이네요."
"네."
"소년 소녀 가정에 의료봉사하는 부분은요?"
"수락했어요."
류성은 바로 사인을 휘갈겼다.
"실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보육원 관련 서류도 확인했다. 보육원마다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세하게 적힌 상태였다. 다양한 문제가 있었는데 서글프게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습니다, 보육원도 후원 시작하죠. 대신 전에 언급했던 대로 주기적인 감찰이 있을 예정이니 그 부분 확실하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직접 하는 건 어려우니까 지자체에 먼저 말을 해보죠. 그쪽에서 제안을 거절하면 적당한 업체랑 계약해서 사적으로 진행하도록 하죠."
"네, 준비할게요."
"가능하면 지자체에서 나서주면 좋겠네요."
"그렇죠, 어차피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니까요."
"아마 받아들일 겁니다."
일단은 그 정도로 정리를 했다.
"아, 소년 소녀 가정 후원도 넓히도록 할게요."
"네."
"점점 일이 늘어나죠?"
"그러게요."
그래도 부사장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좋은 일이라 즐거워요."
"저도 그렇긴 해요. 그래도 갈수록 업무부담이 증가할 테니 손이 부족하기 전에 알려주세요. 그래야 미리 직원을 뽑을 수 있으니까요."
"네, 그럴게요."
물론 그 전에 기존 직원부터 승진을 시켜야겠지만 말이다. 빠르면 2월 중순이나 말일 정도로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부사장과 업무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다.
그러던 중 알람이 울렸다.
"점심시간이네요, 오늘은 제가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부사장님이 맛있는 거 사주세요. 여기 법카로요."
"네, 그럴게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이사장님!"
"네, 다들 맛있는 거 드세요."
인사를 하고서 지하로 내려갔다. 차를 끌고서 마이유가 대표로 있는 에이전시로 향했다.
1인 기획사였다.
오직 마이유를 위한 인력이 전부인 곳.
그래도 매출은 어마어마했다.
저작권료, 중장기 광고 모델료, 드라마 출연료, 각종 행사비, 그리고 너튜브 수익까지. 그걸 전부 합하면 웬만한 중소기획사보다 더 많이 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야."
덕분인지 건물도 상당히 좋았다.
5층 건물이었는데 층수는 조금 낮은 대신 건물 디자인이 세련되었다.
입구로 향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네, 작사가님.)
"지금 앞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먼저 입구에 도착해 기다렸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들어갈 때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는 자동문이었기에 안에서 나온 매니저와 함께 내부로 진입했다.
"어서 오십시오."
"네, 반갑습니다."
"자, 일단 올라가시죠."
그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가 길게 보이고.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작업실이 나타났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작업실 내부는 생각보다는 아담했다.
가장 먼저 중심이 보였다.
거대한 모니터 화면 두 대와 그 앞에 앉아 있는 마이유. 사실 이것만으로도 그냥 게임 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완벽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좌, 우측으로 놓인 몇 가지 고급스러운 악기가 더해지니 아담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모든 것들이 모니터 앞에 앉은 마이유를 빛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멋있네.
일에 집중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 터였다.
"아, 왔어요?"
정신을 차린 마이유가 몸을 돌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담한 키.
그러나 어쩐지 작아 보이지 않는 비율이었다. 거기에 밝은 미소를 무장하니 잠깐 심장이 철렁거렸다.
저벅.
거리까지 좁혀온다. 류성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가사 진짜 잘 받았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히히, 지금 작업 거의 끝났거든요. 들어보실래요?"
"음, 아뇨."
단호한 거절에 마이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더 오해하기 전에 말을 이어갔다.
"녹음도 하시죠?"
"그럼요!"
"녹음할 때 들어봐도 될까요?"
"아아, 네, 좋아요! 그러면 최대한 빨리 마무리할게요, 잠시만요!"
"네, 천천히 하세요."
마이유가 자리로 돌아가 작업을 이어갔다.
류성은 뒤에서 느긋하게 구경했다.
그녀는 헤드셋을 착용하고서 모니터를 보며 앞에 놓인 피아노 건반처럼 생긴 기계와 키보드를 번갈아 가면서 두들겼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죠."
"아, 고맙습니다."
그 사이 매니저가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잠시 멍을 때렸다.
계약을 마치고 나면 돌아가서 성삼전자를 매도할 생각이었다.
이후, 돈을 빼내고.
그 돈으로 주말에는 비트코인 단타나 조금 치면 될 거 같았다.
아, 연락은 언제 오려나.
너튜브 채널에 들어가 봤지만 아직 답이 없었다. 한 번 더 메시지를 남기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을 돕고 싶습니다. 저는 RS재단을 운영하는 이사장...
작성을 완료한 순간이었다.
"끄으으읕!"
마이유가 헤드셋을 벗으며 외쳤다.
"녹음 한 번만 하고 점심 먹으러 가요, 우리."
"좋죠."
"점심 먹으면서 계약도 하고요."
작업이 끝나서 즐거운지 해맑은 미소를 지은 마이유가 방을 나서더니 맞은편 문을 열었다.
"여기가 녹음실이거든요. 노래 들려드릴게요."
"네, 기대할게요."
"엄청나게 좋을 거예요!"
준비를 뚝딱하고 마친 그녀가 부스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느새 온 건지 전문 프로듀서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작할게요."
곧이어 음악이 흘러나왔다.
잔잔하면서도 특색있는 전주였다.
귀를 사로잡는다고나 할까.
이어질 노래가 기대되어 가만히 듣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그리고 튀어나온 첫 소절.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
류성이 썼던 가사가 고막을 후벼팠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덤덤한 발걸음을 내디뎌 보지만
-마음은 무거워지고
-시야는 어둠에 삼켜져
마이유의 목소리에 참으로 잘 어울렸다.
약간은 허스키한.
그러면서도 호소력 짙은 음색이었으니까.
초반 가사가 지나고.
클라이맥스로 흘러간다.
-눈앞에 새겨진 별빛 따라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별빛 나아가는 그 길목을
-조심스레 따라가!
-마치 마법처럼 ah!
-주문에 걸린 아이처럼 oh!
-별빛은 환해지고 ha!
-어둠은 물러나고 ho!
과하지 않은 발랄함이 클라이맥스에 더해졌다.
신난 듯한 표정의 마이유.
그걸 대변하듯 그녀의 목소리에도 밝은 기운이 흘러넘쳤다. 정말로 미래가 희망찰 거라는 기대가 한껏 샘솟았다.
그런 노래였다.
우울한 듯 묵직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발랄함으로 끝을 맺는.
그래서 노래를 듣고 나면 감성적이면서도 기운이 나는 그런 노래.
"와..."
들을수록 감탄만 터져 나왔다.
어쩜 저렇게도 잘 부를까.
그 단순했던 가사를 어찌 저렇게 살려낸 건지.
참으로 놀라웠다.
어느새 노래 한 곡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어라, 노래 벌써 끝인가요?"
"하하, 네. 3분 42초 분량입니다."
"와..."
옆에 있던 로드매니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감상은 어떠신가요?"
"...끝내주네요."
3분 42초가 1분처럼 흘러갔으니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그냥 완벽했다.
"괜찮았나요?"
마침 부스를 열고 밖으로 나온 마이유.
진짜 아티스트구나.
아름다움을 떠난 어떤 아우라가 그녀에게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