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 매도(1) >
마이유와 점심을 먹으면서 계약에 관해 이야기했다.
크게 주의할 건 없었다.
그녀가 회사 대표였던지라 그 자리에서 조율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작사비는 업계 최고로 드릴게요. 신인도 아니시니까요."
"업계 최고요?"
"네!"
"어, 음.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류성의 말에 마이유가 부드럽게 웃었다.
"공모전 대상을 타면서 드라마 OST로 차트 1위를 찍으셨고 또 아직도 상위권 유지하고 계시잖아요. 경험도 있으신데 이번 가사도 정말 좋았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머지않아 최고의 작사가로 이름을 날리실 거 같아요."
그 부분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재능이 존재했으니까.
시스템 재능을 가지고 이름을 날리지 못하면 그건 정말 바보일 테니까.
"저는 항상 이 음악계가 탑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근데 왜 그런지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본인의 가치를 높이질 않아요."
"음...!"
"그럼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탑급인 누구누구도 이런 돈을 받는데 그보다 못한 너희들이 그만한 돈을 원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이런 건 상상도 못 한 부분이었다.
"저는 누군가에게는 욕을 먹더라도 항상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돈을 받으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계약할 때도 그렇고요. 그래야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류성 작사가님도 최고 대우를 해드리려는 거예요. 그래야 류성 작사가님을 보고 음악계에 뛰어들 누군가가 생기지 않겠어요? 그 사람들은 배고프지 않게 음악를 했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탑급은 다르단 걸 느꼈다.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할 만한 아티스트였다.
"누군가는 욕심스럽게 달려가야 그 뒤를 쫓는 사람들도 여유가 생기더라구요."
"그렇군요."
"헤헤, 그러니까 최고 대우로 드릴게요. 괜찮죠?"
"네. 최고로 대우해주세요."
이런 말을 들었는데 거절할 순 없었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납득하면서 계약 조건을 구두로 마무리 지었다.
"나머진 회사로 돌아가서 계약서 준비할게요. 들고 가셔서 변호사 상담받고 사인하셔도 좋구요."
"그럴게요."
"네, 그럼 일단 남은 음식부터 맛있게 먹을까요?"
"그러죠."
대화를 멈추고 남은 음식을 깔끔하게 비웠다.
"그럼 계약서 가지러 출바아알!"
"하하..."
생각보다 발랄한 성격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로드매니저가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기분이 좋은 모양입니다."
"네?"
"평소엔 저러지 않거든요."
"그래요? 의외네요."
"무뚝뚝한 편이죠. 오늘은 아무래도 곡이 잘 나와서 그런 거 같네요."
"아아, 그럴 수 있죠."
그렇다면 저런 모습은 꽤 유니크하다는 의미일 터.
문득 욕심이 들었다.
"마이유씨, 사진 찍어도 되나요?"
"네?"
"제가 사진을 좋아해서요."
"아, 좋죠!"
"잠시만요. 카메라가 차에 있어서."
류성은 주차장으로 달려가 조수석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왔다. 식당 앞에서 매실차를 음미하고 있는 마이유에게 다가갔다.
"이야..."
멋들어진 식당도 아니었다.
꾸민 옷도 아니었고.
평상복에 손에는 종이컵을 든 채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건만.
"화보네, 화보야."
류성은 서둘러 카메라를 눈에 맞췄다.
초점이 잡혔다.
웃으며 떠드는 자연스러운 마이유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찰칵-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 벌써 찍으셨어요?"
소리에 놀란 마이유가 류성을 쳐다봤다.
"아, 네."
"아이, 제대로 찍어주셔야죠!"
"제대로 찍었는데요?"
"네?"
"이미 완벽했어요."
"어유, 정말. 그래도 자세 취할 테니까 다시 찍어주세요!"
"그래요, 그럼."
이보다 더 좋은 사진이 나올 순 없겠지만.
원한다면야.
류성은 이후 마이유의 사진을 몇 차례 더 찍어줬다.
"사진 보여주세요!"
"네, 잠시만요."
스마트폰과 연동이 되어 있어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연동 메시지 확인을 누르자 바로 사진이 떠올랐다.
"여기요."
"잘 볼게요!"
스마트폰을 받아든 마이유와 로드매니저가 사진을 눈에 담았다.
"어...?"
"으음?"
두 사람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1초, 2초, 3초.
시간은 흘러가지만 둘은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정지된 것처럼 말이다. 다만 끔뻑이는 눈동자만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줬다.
"왜요, 이상한가요?"
유난스러운 반응에 둘에게 다가갔다.
함께 사진을 확인했다.
처음 찍었던 자연스러운 그 사진이었다.
"아, 어. 음,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마이유는 정신을 차리고는 다음 사진을 확인했다.
다음, 그리고 다음.
마지막 사진까지 모두 보고서 길게 숨을 내뱉었다.
"와, 진짜 작사가님...!"
"네?"
"작사도 잘하시는데 사진까지! 이게 말이 돼요?"
"말이 안 되지."
"그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럼."
로드매니저도 새로운 시선으로 류성을 쳐다봤다.
"음, 직업상 아무래도 사진을 많이 찍거든요. 관리를 하면서 퀄리티 비교도 자주 해봤고요."
"아, 네."
"이 정도 수준은 쉽게 안 나옵니다."
로드매니저의 말에 괜히 머쓱해졌다.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기도 했고.
"다음에 사진 찍을 일 있으면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네요."
"저두요!"
"음, 제사 전문적으로 찍어본 적은 없어서요."
"괜찮습니다. 그냥 오늘처럼만 해주시면요."
"그렇다면야..."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찍어주시는 건가요?"
게다가 마이유가 저렇게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데 어찌 거절하랴.
뭐, 재밌을 거 같기도 하고.
살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티스트를 전문적으로 찍고 그 사진이 연예계에 사용될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찾아올까.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경험이었다.
"페이는 최고로. 아시죠?"
"당연하죠!"
그러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날이 기대되었다.
*
작사 계약서를 챙겨 RS재단 건물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들어가진 않았다.
일단 13층으로 올라가 하회탈 가면을 쓰고 생방송을 켰다.
오늘 성삼전자를 매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가 속속 들어왔다.
오늘은 곧바로 화면을 송출하면서 시청자에게 인사를 했다.
"가하!"
이후 홈트레이딩 시스템을 켜고서 성삼전자 차트를 화면에 띄웠다.
알탕 : 오자마자 차트! 가하!
주린잉 : 전에 단타 행복했어요, 그리고 후원한 거 좋은 곳에 쓰시던데 맞죠?
커피왕 : 저도 돈좀 벌었죠ㅎㅎ!
짝발 : 좋은 일?
갑자기 후원 이야기가 나왔다.
"아, 시청자분들이 후원한 거요?"
주린잉 : 네, 내역서 올리셨던데!
"최근에 게시판에 올리긴 했죠. 후원받은 돈은 전부 좋은 일에 쓰고 있거든요. 보육원이나 소년 소녀 가정, 그리고 소아병동 아이들한테 후원하고 있고요. 물론, 럭키한테 써달라고 부탁하신 돈은 럭키를 위해 쓰고 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짝발 : 헐, 몰랐는데...
알탕 : 아니, 진짜요? 보고 와야지...!
커피왕 : 와, 이건 그냥 못 넘어가죠!
"굳이 대놓고 얘기한 적은 없긴 하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성삼전자 차트를 분석했다.
거래량은 충분했다.
받아줄 매수세도 상당했고.
"바로 매도부터..."
하려는데, 갑자기 후원이 쏟아졌다.
[주린잉님이 50,000원을 후원합니다.]
[좋은 일에 써주세용!]
[알탕님이 150,000원을 후원합니다.]
[사용내역 보고 깜놀...!]
[짝발님이 70,000원을 후원합니다.]
[저도 후원에 동참!]
[연어님이 300,000원을 후원합니다.]
[어제 돈을 좀 벌어서...^^]
[시드님이 200,000원을 후원합니다.]
[내역서보고 저도 후원해요. 멋집니다!]
뜬금없긴 했지만 고마웠다.
아무리 생방송으로 돈복사를 해줬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남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니까.
"어, 다들... 고맙습니다."
계속되는 후원세례.
류성은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음, 돈이 엄청나게 모였거든요? 최대한 빨리 좋은 일에 쓰고 내역서 게시판에 올리도록 할게요. 조금 감동이네요. 자, 정신 차리고. 그러면 이제 진짜로 매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익 현황을 체크했다.
종목명 : 성삼전자
보유주식 : 784,314
매입금액 : 100,000,035,000
수익률 : 22.87%
평가손익 : 22,870,008,004
총평가 : 122,870,043,004
수익만 228억 원이었다.
오늘도 엄청나네.
가면 속에서 웃으며 매도 버튼을 눌렀다. 단번에 모든 물량을 던지면 아무래도 주가가 크게 주저앉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일단 25%만 걸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
30억, 50억, 100억, 150억.
엄청난 물량이 쏟아지면서 상승 분위기를 탄 성삼전자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열기는 생각보다 강력해서 이 정도 금액으로는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알탕 : 으어어억, 하락하나요!
스마트한놈 : 버텨라, 버텨! 물량 삼키고 더 가즈아!
짝발 : 저도 매도해버림ㅎㅎ
주린잉 : 가면남님이 팔면 팔아야죠뭐ㅋㅋ
확실히 기세가 무서웠다.
"이야, 탄탄한데요?"
류성의 생방송을 보는 시청자 물량까지 더해졌음에도 매수세가 강력했다. 주가가 다시금 빠르게 솟구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주가가 쉽게 하락하진 않겠네요. 안심하고 남은 물량도 던지겠습니다. 수익은 충분하니까요."
다시 25%의 물량을 매도하기로 했다.
대략 300억 치였다.
이번에는 아래로 던진 게 아니라서 주가가 내려갈 일도 없었다. 다만 위쪽에 매도벽을 세웠을 뿐이었다. 누군가가 위로 긁어야만 팔리는 것이다.
"자, 어서 긁어주세요."
매수세가 워낙 강해서 이렇게 해도 충분히 팔려나갈 거 같았다. 시간을 조금 더 투자해서 수익을 최대한으로 높여볼 생각이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
매수하려는 힘이 조금씩 더 강해졌다.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솔직히 성삼전자가 저평가긴 하거든요. 아무래도 오늘 누군진 모르겠는데 작정한 모양이에요. 정말 제대로 매수하네요. 사실 이렇게 개인 물량이 나오는 것도 드물거든요.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라면 충분히 자금을 투입할 가치가 있죠."
알탕 : 장투하기엔 좋은 종목이니까요
주린잉 : 기관이 자금력이 좋긴 하니ㅋㅋ
차트 화면을 조금 확대했다.
"여기, 왼쪽에 체결되는 거 보이시죠?"
약간 잠잠하다 싶으면 누군가 2만 주, 3만 주, 5만 주씩 긁어버렸다.
주당 155,000원.
31억, 46억, 77억 원을 긁어버리는 것이다.
개인은 절대 아니고.
이 정도면 무조건 기관이었다.
국내냐 외인이냐.
그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얼마 안 남았네요."
매물이 전부 쓸려나가기 전에 추가로 300억 매도물량을 위쪽에 걸었다. 그러자 오히려 좋다는 듯, 매수세가 또 한 번 강력해졌다.
157주.
31주.
12,118주.
25,009주.
13주.
7,500주.
"체결되는 힘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자금력 보니까 해외 기관일 거 같긴 합니다. JP모건이나 메를린치 등등, 뭐 그런 유명한 곳들이요."
류성은 나머지 금액까지 전부 위쪽 호가에 매도를 걸어버렸다. 팔 수 있을 때 파는 게 좋았으니까.
"지금 제 물량만 550억 정도고요. 다른 물량까지 더하면 600억 넘어가거든요?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구요."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자잘한 매수세 사이로 대량 매수세가 꾸준하게 들어왔다.
8주.
32,000주.
16,511주.
7주.
5,500주.
23,877주.
류성은 시청자와 수다를 떨면서 느긋하게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