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45화 (145/277)

< 운수 좋은 날(1) >

한석호 선생님을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나오는 길. 류성은 지하에 주차된 차량 운전석에 올라탔다.

"오늘은 꽤 피곤하네."

물론 기분은 매우 좋았지만 말이다.

고집이 있으셨지.

그래도 잘 설득해서 다행이었다.

"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지막 호텔 방에 들어설 때 한석호 선생님의 표정이 잊히질 않았다. 그 놀란 듯한 모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묘하게 저릿하기도 했었다.

"뭐, 금방 적응하시겠지."

운전에 집중하면서 여유롭게 전방 경치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남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의사.]

[퀘스트 클리어!]

[정산 완료.]

[중급 랜덤카드를 습득합니다.]

[선행포인트 20점을 획득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라...?"

설마 이렇게 쉽게 끝날 줄이야.

사실 이번 퀘스트는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었다.

보답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그리고.

살아온 스스로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님을 증명할 수 있게끔 도우라는 문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석호 선생님은 자신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님을 깨달으며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잘됐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흐뭇함이 차올랐다.

뒤늦게 보상이 눈이 들어왔다.

선행포인트 20점.

그리고 중급 랜덤카드.

이번 퀘스트를 깨면서 카드가 총 4장이나 모였다.

최하급 카드가 1장.

하급 카드가 2장.

그리고 오늘 얻은 중급 카드가 1장이었다.

단타 수익률 퀘스트.

소아병동 퀘스트.

프랜차이즈 퀘스트.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카드였다. 집에 도착하면 그간 모은 카드를 오픈할 생각이었다. 열심히 모은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보상이 나오길 바라면서.

"괜찮은 거 하나만 뜨기를."

기대하면서 속도를 조금 높였다.

어느새 집이었다.

주차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귀여운 럭키.

냐아아아.

얼굴을 들이밀면서 정강이에 부비적거리는 녀석을 보니 반사적으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류성은 상체를 숙여 곧바로 럭키를 안아 들었다.

"오구구."

피곤함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골골-

가느다란 골골송의 떨림도 좋았다.

"왔어?"

"응."

뒤이어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봉사하는 일이 많이 바쁜가 봐."

"어어, 조금."

"어휴, 좀 쉬면서 해. 남들 돕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도 돌봐야지."

"알았어, 그렇게 할게."

걸음을 옮기려는데 방문이 열리며 류현아가 나왔다.

"음? 웬일로 오늘은 집에 있네?"

"뭐래."

"매번 늦게 왔잖아."

"나도 나름 바쁘거든."

"바쁘기는 무슨."

뭐, 연기 배운다고 그런 모양이긴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보다 주말에 알지?"

"뭐가."

"가족사진 찍기로 했잖아, 시간 비워둬라."

"으으, 귀찮은데..."

"어허."

"알았어, 알았다고."

류현아는 쌩하니 방으로 들어갔다.

...용돈을 줄일까.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류성도 방으로 향했다.

"으차."

옷을 벗고서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먼지와 땀, 그리고 지저분한 것들을 씻어내렸다. 머리까지 감고서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

이제 카드를 사용할 차례였다.

일단 최하급부터.

버리는 카드라 여겼기에 망설일 것 없이 오픈해버렸다.

[최하급의 ‘재능’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몸으로 말해요(소모성)'를 습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점이 갱신됩니다.]

[해당 재능이 상점란에 추가됩니다.]

예상이 빗나갔다.

좋은 쪽으로.

나온 것은 기대하지도 않은 재능이었다.

"...몸으로 말해요?"

이름은 조금 이상했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몸으로 말한다라.

과욘 어떤 재능일까.

서둘러 정보를 확인해봤다.

[몸으로 말해요(소모성)]

[사용할 경우 5분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생명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몸짓을 통해 파악하기 때문에 때로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모성 재능으로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집니다.]

류성의 눈이 커졌다.

"음...?"

생각보다 더 놀랍고도 재밌는 재능이었다.

그러니까, 이거.

고래를 돌리자 마침 럭키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럭키야."

냐아아아?

"허어."

저 재능을 사용하기만 하면 지금 럭키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얘기였다. 놀고 싶은 건지, 배가 고픈 건지 혹은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건지.

사람처럼 속내를 모두 꺼내놓듯이 파악할 순 없겠지만 단편적인 부분만 알아낼 수 있어도 정말 좋을 거 같았다.

"...바로 써버릴까."

당장 써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건 아니지.

혹시나 정말 필요할 때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재능을 온전히 구매할 수 있는 날이 되기 전까지는 아끼는 게 좋으리라.

"적어도 컨디션이라도 안 좋아 보일 때 쓰는 게 맞겠지."

그래야 아픈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럭키야, 시작부터 운이 터져버렸는데?"

냐아아아.

"자, 그럼 나머지도 한 번 볼까?"

이번에는 럭키와 함께했다.

[꽝입니다.]

[꽝입니다.]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걸까. 럭키와 함께하니까 도리어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럭키야.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다."

냐아아앙?

"우리 럭키가 오늘따라 운이 좀 부족한 모양이야."

냐아아.

"그래, 그래.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안 되겠다.

하급 두 개가 전부 꽝이었으니 이번에는 중급 카드를 혼자서 오픈해보기로 했다.

럭키를 내려놓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제발, 하나만 더...!"

이미 재능이 떴기에 충분히 만족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이었으니까. 기왕이면 하나만 더 괜찮은 게 나와주기를 희망했다.

"자, 가자!"

물음표로 가득한 카드 중에 가장 이끌리는 걸 선택했다. 순식간에 커진 카드가 빛을 발산하더니 이윽고 정체를 드러냈다.

[중급의 '정보'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파인애플 정보권'을 습득합니다.]

잠시나마 침묵이 이어졌다.

"미친!"

오늘은 정말 되는 날인 모양이었다.

재능에 정보권까지.

차티스트의 눈이 있긴 하지만 단타에 사용하는 자금은 한정적이라 이런 정보권은 매우 필요한 부분이었다.

"좋네, 좋아."

마침 또 미국 대기업인 파인애플에 관한 정보였으니 자금을 전부 사용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서둘러 정보권을 펼쳤다.

[미국 대기업 파인애플이 역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2월 13일, 파인애플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되자마자 엄청난 상승을 보였다. 시작부터 크게 쏘아 올린 주가는 장중 최고 5.2%까지 상승했으며 장 막판에는 3.9%로 마감되었다.]

[2월 14일, 파인애플의 향후 5주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파인애플 기업은 주식의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 매년 최소 120조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하기로 했다.]

[파인애플의 주가가 연일 상승하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그러나 파인애플은 매일 사상 최대 시총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2월 25일, 결국 파인애플 시총이 4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전세계의 감탄과 경악 속에서도 파인애플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2월 13일부터 시작되는 파인애플의 상승.

"흐음. 일단 25일까지네."

25일, 시총이 4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선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보가 끝났다. 현재 파인애플의 시총이 3조 달러였다. 그러니까 못해도 50%는 상승한다는 이야기였다.

"끝내주는데?"

또 한 번 거금을 벌어들일 기회였다.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일단은 운용하는 자금을 정리한 뒤에 다음 주 월요일부터 파인애플 주식을 분할 매수하면 될 거 같았다.

"밥 먹자, 아들!"

"어어!"

뒤이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웹소설을 썼다.

별을 품은 매니지먼트.

어느새 200화에 도달한 상태였다.

"200화라..."

하지만 여전히 쓸 내용이 많았다. 매니지먼트에 속한 배우와 가수를 서포터하는 과정만 작성해도 내용이 한가득이었다.

거기서 비롯된 갈등을 표현하고 곧바로 시원하게 풀릴 것이라는 떡밥을 흘려주면 전개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흥미로워졌다.

"후아."

집중력을 발산한 덕분에 2시간만에 두 편 분량을 작성할 수 있었다.

예약부터 해놓고.

이후 에이전시에 해당 편수를 이메일로 보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피로함이 몰려와 침대에 누웠다.

금방 잠이 들었다.

*

내일이면 조각 공모전 마지막 날이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어째 생각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현장에 모여들었다.

"음? 아니, 대표님도 오셨어요?"

"허허, 여기서 뵙다니."

"반갑네요, 정말."

"그러게 말입니다. 조각 보러 오셨나 보군요."

"지금 백화점 증축하거든요. 괜찮은 조각상 하나 놓으면 멋있을 거 같아서요. 대표님은요?"

"저는 운영하는 미술관 야외에 전시할까 싶어서요."

"어머, 멋지겠는데요?"

"기대 중입니다. 직접 와서 보니 생각보다 더 좋군요."

특히 각계의 대표가 많았다.

그들은 본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조각을 가져다 놓기를 원했다.

"호오, 이건 정말..."

"십이간지를 나타낸 조각상이군요. 실장님, 이게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가격 문의부터 해보게."

"예, 실장님."

덕분에 구매 문의가 쇄도했다.

"예약구매는 가능합니다. 다만 공모전 시상식이 우선인 점 양해 바랍니다. 가격은 정해진 바가 없기에 조율이 가능하지만 중복 구매자가 발생할 경우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쪽에 기회가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 사실을 공모전에 참여한 조각가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였으니까. 그 열정과 노력이 어쩌면 평소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완성하게 된 동기일지도 몰랐다.

"대표님, 고래 조각상인데요?"

"호오, 여기서 이런걸..."

"저희 아쿠아리움과 어울릴 거 같습니다."

"좋군, 좋아."

"문의해 두겠습니다. 당장 팔진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예약은 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렇게 하게."

"예, 다녀오겠습니다."

비서가 향한 곳은 복도였다.

그곳에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작품 구매 문의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의자는 총 세 개.

가운데 의자에 앉아있는 젊은 사내가 보였다.

"실례합니다."

"아, 네."

대답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류성이었다.

"17번 참가자의 고래 조각상을 구매할까 싶어서요."

"예약구매가 가능하지만 시상식..."

류성은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대답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가격은 지금 먼저 제시를 해도 됩니까?"

"네, 가능합니다."

비서실장은 공모전이라는 특수성, 그리고 화제성을 더하여 가격을 제시했다.

"3천만 원에 구매할 의향이 있습니다."

"기록해 두겠습니다."

"네, 시상식이 끝나면 바로 연락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을 마치자 비서실장이 자리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사내.

아니, 류성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흐음, 이제 진짜 마무리네."

그때 멀리서 업무 담당 직원인 최송이와 강혜리가 빠르게 걸어왔다.

"이사장님, 기다리셨죠?"

"괜찮아요."

"여기, 커피요."

"고맙습니다."

최송이와 강혜리가 좌, 우측에 앉았다.

다시 손님이 왔다.

이번에도 조각상 가격을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갈수록 문의하는 사람이 조금씩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업무 자체는 여유로운 편이었다.

"구매자가 생각보다 많은 거 같아요."

"그렇죠, 금액도 상당하고요."

"네, 특히 이번 손님은... 어후!"

마지막에 다녀간 중년 한 분이 기억에 남았다.

카리스마도 상당했고.

12간지 조각상을 1억에 구매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는 잠시나마 류성도 놀란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아무튼, 대박이군요."

"맞아요, 진짜!"

"그럼 이제 내일 폐막식만 잘 마무리 지으면 되겠네요."

오랜 준비로 시작된 공모전.

그 끝이 보였다.

내일은 폐막식을 치르고 이후 심사로 한동안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시상이 끝나면 그때야 조각상의 판매가 이뤄질 터였다.

"차근차근 가보죠."

"네!"

기운을 내며 남은 커피를 쪽쪽 흡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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