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세(1) >
하루가 쏜살같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조각 공모전의 폐막식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폐막식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순조롭게 진행되는 과정들.
물론 그 뒤에서는 RS재단 사무실 직원과 계약한 업체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마지막 순서가 찾아왔다.
-자, 끝으로 이사장님의 마무리 인사가 있겠습니다!
이번에도 류성은 단상에 올랐다.
하지만 개막식과 달랐다.
그때는 정말 자그마한 규모의 관심이었는데 지금은 성대했다.
"...젊군."
"영상이 좀 흐릿했었는데 이제야 보는구만."
"이야, 저 사람이야?"
"이사장이라니, 대단하네."
"와..."
"좋은 일도 하고."
웅성거림이 사방에서 들려올 정도였다.
다르긴 하구나.
그간 무수한 너튜버가 다녀갔고 뉴스에도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었다. 각종 기업 대표들이 와서 조각 구매를 예약하기도 했고.
그 덕분이었다.
개막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음, 반갑습니다.
-이번 공모전 주최측인 RS재단의 이사장, 류성이라고 합니다.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
개막식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함성과 함께였다.
-함성이... 엄청 크군요.
-감사합니다.
-크흠. 개막식 때도 그랬지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조각가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드리겠습니다.
또다시 울리는 함성.
이번에는 조각가와 그 가족들 위주였다.
-그리고 관심을 나눠주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럼 다음 공모전에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폐막식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여파는 개막식과는 판이했다.
"이사장님!"
"음...?"
"xx일보에서 나온 문화예술부 기자입니다, 인터뷰 부탁드릴게요!"
"yy기사에서 나왔습니다! 저도 부탁드릴게요."
"아, 인터뷰요?"
"네!"
모여든 기자가 꽤 많았다.
대략 일곱 명.
생각보다 많아서 거절하기가 난감했다.
"음, 간단하게만 할까요?"
"감사합니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기자들을 데리고 마침 근처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럼 질문 시작하시죠."
"네! xx일보의 문화예술부 기자입니다. 폐막식 마지막 인사에서 다음 공모전에서 뵙겠다고 하셨는데요. 무슨 의미일까요?"
"아아..."
아직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알려줄 수밖에.
"RS재단은 앞으로도 꾸준히 여러 예술 분야의 공모전을 주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뵙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그러셨군요. 그러면..."
질문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평소 생각하던 바를 가볍게 얘기하면 되었다.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
"어떤 거죠?"
"RS재단의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거죠?"
"별거 아니군요. 제가 운영 중인 RS투자사에서 나오는 자금입니다."
"RS투자사...!"
"저도 질문하겠습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관해서..."
질문이 꽤 오래 이어졌다.
이대로는 끝이 없을 거 같았다.
시간을 확인하는 척했다.
"음, 이거 어쩌죠? 제가 이제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어,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또 뵙죠."
마침 직원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돌아가죠."
"아, 네. 대표님!"
아직 일정이 끝난 건 아니었다. 한동안 체육관 출입을 막으면서 어떤 조각상에 어떤 상을 줘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심사위원은 미리 초청해둔 상태였기에 큰 걱정은 없으나 최종 결정은 결국 RS재단 이사장인 류성의 몫이었으니까.
*
폐막식이 화제가 되었다.
개막식 이후 조금씩 화제성이 더해진 상태였는데 그게 폐막식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RS재단 이사장의 폐막사!]
[곧 다시 볼 거라는 인사의 의미는?]
[젊은 재단 이사장의 행보!]
특히나 류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사장이 된 건지. 특히 예술가가 모인 카페나 게시판은 관심도가 훨씬 더 강했다.
-와, 저 폐막식 참가했었는데 진짜 멋지더라고요.
-30대 초반? 20대 후반?
-진짜 젊긴 하네요ㅎㅎ
-개막식 때는 그러려니 했던 거 같은데 확실히 공모전이 화제가 되긴 했나 보네요
-그러게요ㅋㅋ
-감사합니다ㅠㅠ 다음 공모전 기대기대!
-아, 시나리오 공모전 하면 좋겠다ㅠㅠ
-그림 공모전 갑시다!
-아무거나 좋아요^^ 차례대로 나올 테니!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야겠음!
-으으, 좋네요
-이사장님, 대박나세요ㅋㅋ
상상 이상의 관심이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RS재단이 초록창 실시간검색 10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저 멀리 사라지긴 했지만 아무튼, 그 정도의 열기였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번 공모전이 정말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느낀 순간은 게시판의 글이나 실검 순위를 확인했을 때가 아니었다.
드드드드.
끊이지 않고 전화가 걸려오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
안 받고 무시했는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받아보기로 했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중요한 소식일 수도 있으니까.
"여보세요?"
(어, 류성이냐? 나야, 나.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호영철!)
"아, 영철이?"
(어, 기억나나 보네.)
"나긴 하지."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었으니까.
뭐, 친하진 않았지만.
(그냥 인터넷 기사 보다가 무슨 RS재단? 거기 이사장이 너인 거 같아서. 맞아?)
"어, 맞아."
(와, 대박. 내 친구가 이사장이라니. 진짜 멋있다. 나는 이제 겨우 자동차 딜러 신입 딱지나 뗀 상태거든. 그래서 말인데...)
류성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동차 바꾼 지 반년도 안 됐어."
(어, 그, 그러냐?)
"거절하려고 꾸민 말이 아니라 진짜야. 대신 다음에 바꿀 때 되면 연락할게."
(어어, 고맙다!)
"그래, 기회 되면 보자."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또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나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어, 안녕? 혹시 나 기억해? 그...)
이번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대충 대답하다가 통화를 끊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는 귀찮아져서 그냥 안 받기로 했다.
"...이게 유명인들 심정인가?"
참으로 묘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경험이라고나 할까.
"쩝."
평소에는 연락 한번 없던 이들이 갑자기 연락을 해와서는 무언가를 부탁해왔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친하게 지냈던 녀석들, 특히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들은 연락이 오지 않거나 간단한 메시지만 남기는 상태였다.
이진우 : 뭐냐, 이거? 동창회에선 별말 안 하더니! 암튼 추카! 성공했구만!
김미소 : 기사 봤어, 축하해.
최성찬 : 와, 이 새끼. 멋있다, 야!
딱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그래, 이게 친구지.
깔끔하니 얼마나 좋은가.
부담스럽지도 않고.
아, 물론 한 사람은 빼고.
이신우 : 미친놈
이신우 : 돌은놈
이신우 : 잠이 오냐? 왜 얘기 안 했냐? 아니, 하긴 했지. 후원 조금 하고 있다고.
이신우 : 근데 사이즈가 너무 큰데?
계속해서 문자가 왔다.
이신우 : 새끼, 비밀이 많네
이신우 : 베프 맞냐?
아무래도 삐진 모양이었다.
류성은 가볍게 답장했다.
나 : 올해 프랜차이즈 10호점 가야지
이신우 : 고맙다, 친구야^^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
토요일 아침.
가족들과 함께 아침을 먹는 중이었다.
"아들, 그 조각 공모전 생각보다 크더라?"
"아, 봤어?"
"응. 친구들이 먼저 얘기를 하더라고. 엄청 놀라던데?"
어머니의 말을 시작으로 조각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진짜! 공모전 규모가 엄청나던데, 오빠?"
"작진 않지."
"도대체 얼마나 후원을 하는 건데?"
"그냥 돈 버는 거의 일부."
"흐응, 하긴. 돈을 많이 벌긴 하겠다. 그치?"
"그럭저럭."
"투자도 하고 있고 이모티콘도 잘 나가잖아. 유명한 노래 작사가에 웹소설도 대박이고. 생각해 보니까 오빠 장난 아니네?"
"그걸 이제 알았냐?"
"어어. 뭔가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동생 녀석들의 반응은 꽤 귀여웠다.
잡담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워버렸다.
"잘 먹었습니다."
아침을 모두 먹고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었다. 거실로 향해 소파에 드러누워 쉬어볼까 하는데 아버지가 헛기침했다.
"크흠, 성아."
"네?"
"그, 안 귀찮으면 말이다. 사진 찍으러 가기 전에 커피 믹스 한잔 마실 수 있을까?"
"아, 커피 믹스요?"
"그래."
"좋죠. 아침 다 드시면 바로 타드릴게요."
"허허, 고맙다."
"오빠, 내 것도!"
"형, 나도."
"아들, 엄마 것도 부탁해."
"...그래."
당연히 다섯 잔을 탈 생각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다만 류현아와 류환의 히히거리는 표정이 괜스레 얄미울 뿐.
그래도, 뭐.
맛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궁극의 커피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거실로 나아가 조금 기다리자 한 사람씩 다가왔다. 어느새 류현아를 제외한 모두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럼 커피 타드릴게요."
"허허, 그래."
주방으로 들어가자 설거지를 하는 류현아가 보였다.
오늘의 담당이었다.
류성은 커피포트와 캡슐 커피,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를 꺼내면서 낮게 물어봤다.
"잘 배우고 있냐?"
"으, 응?"
"연기 잘 배우고 있냐고."
"아, 당연하지."
"농땡이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하거든요?"
"음, 그리고..."
"그리고, 뭐."
"아니, 아니다."
"뭔데."
류현아의 말을 무시하며 궁극의 커피를 탔다.
이제 곧 기회가 올 터였다.
거기서 류현아의 연기를 보고 싶었다.
"아, 뭔데, 뭐냐고."
"흐음, 나중에 연기나 한번 보자고."
"여, 연기를?"
"어."
"왜...?"
"별로면 학원 취소시키려고."
"아, 오빠아아."
"애교 금지."
"으으, 진짜로?"
"어, 진짜로."
"...알았어."
의외로 쉽게 수락하는 류현아를 슬쩍 쳐다봤다.
그래도 진심이긴 한가 보네.
그렇다면 더더욱 때가 왔을 때 정확한 이야기를 하면 되리라.
"두어 달 뒤에 보는 거로 하자."
"으, 응."
그 정도 시간이면 모든 준비가 끝나있을 테니까.
"나 먼저 거실로 간다."
"그래."
설거지를 마친 류현아가 거실로 나가고 류성은 계속 커피를 탔다. 궁극의 커피 다섯 잔이 머지않아 완성되었다.
"여기, 커피요."
"으음."
"잘 마실게, 아들."
아버지는 특히나 기대되는 표정으로 커피를 음미했다.
호로록-
뒤이어 커지는 눈동자.
"그래, 이 맛이야."
"그렇게 맛있어요?"
"알려준 방법대로 했는데도 이 맛은 안 나더구나."
"하하..."
손맛의 차이가 생각보다 클 테니까.
"자주 타드릴게요."
"허허, 고맙다."
류성도 소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셨다.
냐아아아-
그때 베란다 창문 해먹에 누워있던 럭키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그 탓에 해먹이 살짝 뒤집혔는데 럭키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바닥에 착지했다.
"허업...!"
상당한 높이라서 깜짝 놀랐지만 럭키는 도도하게 걸어왔다. 뒤이어 폴짝 뛰어오르더니 류성의 무릎에 쏘옥 안착했다.
고르르릉-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하는 녀석.
"어휴, 심장 떨어지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족들의 눈이 반짝였다.
"근데 확실히 성이를 제일 좋아하네."
"그러게, 신기하네."
"치이, 밥은 내가 오빠보다 더 자주 챙겨주는데!"
류현아의 질투에 류성이 피식하고 웃었다.
"바랄 걸 바라야지."
"으으!"
류성은 승자가 되어 럭키를 쓰다듬었다.
아아, 좋다.
이게 바로 모든 것을 가진 자의 기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