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48화 (148/277)

< 후원받는 사람들(2) >

남성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이야, 정말로. 정말…….”

사실은 한계였다.

애써 웃음 짓던 가면은 물론이고 간신히 버티던 신체도 부서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여보, 괜찮아?”

“괜찮아. 너무…… 너무 좋아서 그래.”

남성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일단 서류부터 준비하자.”

“응……!”

남은 힘을 쥐어짜 서류를 준비했다. 그걸 병원 데스크에 제출하자 간호사가 키보드를 두들겼다.

“잠시만요. 이름만 다시 확인할게요. 보호자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성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최정욱. 최정욱입니다.”

“최정욱님. 확인되셨구요. 오늘 내로 결과 나올 거예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최정욱은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여, 여보……!”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그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최정욱 보호자님은 오늘부로 95%에 해당하는 병원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앞으로 RS재단이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며 최정욱은 고개를 떨궜다.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목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졌다.

* * *

소년 소녀 가정 후원의 범위가 넓어졌다. 새롭게 추가된 동네로 여러 대의 트럭이 각종 물품을 실은 채 구석구석으로 진입했다.

“아이고, 옮기느라 힘들었을 터인디.”

“괜찮아요.”

“물이라도 한 잔씩 마셔요.”

할아버지가 힘겹게 몸을 움직여 물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꾸준히 찾아올게요.”

“고마워요, 고마워.”

“그리고 오늘 의사 선생님도 오셨거든요? 가볍게 진찰 한번 받아보세요.”

“아니, 의사 선상님이 왜…….”

“이것도 다 지원 목록이라서요.”

“내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그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라…….”

“알아요, 그냥 죄송해서 그래요.”

“허허…….”

그때 의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럼 할아버지, 이제 가볍게 진찰 좀 볼게요.”

“선상님, 저보다도 조금 있다가 제 손녀 오면 진찰 좀 부탁드립니다. 저야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다지만 제 손녀는 아직 살날이 길지 않습니까. 아프지 않게 잘 좀 봐주세요.”

의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가 오래 사셔야 손녀도 편안하게 지내죠.”

“그건…….”

“제 말이 맞죠? 그러니까 할아버지 먼저 진찰 시작할게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할아버지였다.

시작된 진찰.

가볍게 보기 시작했는데 갈수록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황달기가 있으시네요. 언제부터 이러셨어요?”

“어, 한 2주일 전인가부터 그랬지요.”

“배는 안 아프시고요?”

“……아픕니다.”

“이쪽이죠?”

“윽……!”

의사가 살짝 누르자 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짧은 신음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르면 더 아픈가요?”

“많이…… 아프네요.”

“피곤하고 근육통도 느껴지시나요?”

할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그럽디다. 최근 온몸이 쑤셔서 원.”

“간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요.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셔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셔야겠어요.”

“벼, 병원은…….”

“할아버지. 꼭 가셔야 해요. 심각한 병일 수도 있어요.”

그제야 할아버지도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어떤…… 병일지 알 수 있나요?”

“음. 간암일 수도 있구요.”

“간암…….”

“상태만 보면 간농양일 가능성이 커요. 그마저도 정확한 건 아니라서 검사를 해야 하고요.”

“간농양은 또 뭡니까.”

“간에 고름이 차는 거예요. 가끔씩 피부에 고름이 차서 올라오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죠. 간농양이면 치료가 쉬워서 걱정 안 해도 돼요.”

“그럼, 간암이면 우째 됩니까.”

“그건…… 상태를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간은 침묵의 장기다.

특히나 간암은 생존율이 낮은 병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서둘러야만 했다.

“저기요!”

“아, 네!”

의사가 구청 직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바로 모셔야겠네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직원 한 명이 다가와 할아버지를 모셨다.

“할아버지, 여기 후원해 주는 곳이 엄청나게 큰 재단이에요.”

“그래요……?”

“네. 거기랑 협업 중인 병원이 근처에 있거든요. 거기로 모실게요.”

“병원비가 걱정이라 그러지요.”

“병원비도 재단에서 전액 지원해 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허어, 그게 참말입니까?”

“그럼요.”

“나 원 참. 세상에 그런 곳이 다 있었군요.”

찰나 할아버지의 표정이 풀어졌다.

안도한 걸까.

“그래도 걱정은 조금 덜었네요, 그려.”

“무슨 걱정이요?”

“내가 죽어도 내 손녀, 잘 보살펴 줄 거 아입니까.”

“어휴, 그런 말씀 마세요.”

“간암이면…… 허허…….”

“할아버지…….”

“나도 그 정도는 압니다. 간암이 심각한 병이라는 거.”

“간농양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어서 가요.”

“……그럽시다.”

할아버지의 표정이 조금씩 서글퍼졌다.

살 만큼은 살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으니까. 다만 손녀 걱정에 미련이 남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도움을 받고 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우습게도.

당장 손녀가 굶을 게 먼저 떠올랐다.

“이걸 우짜나. 친구랑 놀다가 오면 배고플 텐데…….”

“구청에서 잘 돌보고 있을게요. 먹을 것도 챙겨주고요. 혹시나 입원해야 하면 병원까지 데려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할아버지 치료가 우선이잖아요. 얼른 나아서 손녀랑 오래오래 사셔야죠.”

“허허…….”

“요즘은 웬만한 병은 그냥 뚝딱 고치니까요.”

“그런가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손녀, 잘 좀 부탁드립니다.”

“네. 잘 챙길게요.”

혹시나 손녀가 혼자 남게 되더라도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여쁘게 잘 커나가리라.

물론.

잘 치료하고 직접 돌보는 게 최고일 터였다.

“그래요. 한번 가봅시다.”

곧이어 도착한 병원에서 검사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왔다.

“간농양입니다.”

“간암은…… 아닌 거지요?”

“네. 다행스럽게도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표정에 안도감이 서렸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손녀를 혼자 두고 떠나지 않을 수 있어서.

“치료는 쉬워요. 시술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날짜 잡고 옆구리 살 조금만 찢어서 고름만 빼주면 끝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입원은 필수니까 준비하시고요.”

“이, 입원 말입니까?”

당황하는 할아버지를 구청 직원이 안심시켰다.

“입원하시면 제가 필요한 짐도 챙겨오고 손녀분도 데려올게요.”

“그렇게 해줄 수 있겠어요?”

“그럼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입원하세요.”

“그럴게요, 그럽시다.”

그렇게 입원을 결정했다.

간단한 시술이란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불안한 시간이 흐르고.

해가 떨어질 시간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할아부지!”

손녀가 병실로 들어섰다.

“아이고, 인아야!”

“할아부지, 많이 아파?”

“아니야, 안 아파.”

“아프지 마.”

“그럼, 그럼. 할아버지 하나도 안 아파.”

손녀를 보는 순간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동시에 살아가야 할 이유와 힘이 샘솟았다.

그러다 뒤늦게 손녀와 함께 온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마주친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RS재단에서 나왔습니다.”

“아이고, 우리 후원해 주는 거기 말입니까?”

“네. 류성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마워요.”

손을 잡으며 연신 고마움을 표하는 할아버지.

“손녀는 걱정하지 마세요. 매일 구청 직원이나 재단 직원이 하루에 한 번 이상 병원으로 데려올게요. 밥도 챙겨주고요. 그러니까 치료 끝날 때까지 편안하게 있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옆에 있던 손녀, 정인아도 인사를 해왔다.

“고맙씁미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네!”

“초밥 포장해 왔으니까 드시면서 편하게 있으세요.”

“아이고, 비싼 음식을…….”

“저는 2시간 뒤에 다시 올게요.”

“고마워요, 고마워.”

류성은 이후 병원 근처 카페로 향해 글근육 재능으로 웹소설을 썼다.

문토피아에 예약분을 올린 뒤에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문틈으로 TV를 보며 웃고 있는 할아버지와 그의 손녀가 보였다.

“음…….”

이대로 손녀를 데려가려니 문득 걱정되었다. 이제 8살 어린 여자아이인데 혼자서 밤을 보내게 둬도 괜찮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거 같았다.

차라리…….

병원에서 지내게 하는 게 더 나을지도.

간이침대를 쓰면 딱이었다.

무엇보다 병원 자체가 따뜻하니 한동안 지내기에도 괜찮을 거 같았다.

끼이이익.

생각을 정리한 뒤에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뭔가요?”

“음, 제 생각에는…….”

할아버지와 의견을 나눴다.

“인아를 여기서 재운다고요? 그래도 되나요?”

“네, 괜찮아요. 간이침대가 있어서 자는 것도 불편하지 않을 거고요.”

“아이고, 그럼 나야 좋지요. 밤에 혼자 두는 것도 사실 걱정이었으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인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혼자 자는 거 무서워요.”

“인아가 겁이 많아요, 허허.”

“그럼 더더욱 여기서 같이 지내는 게 더 나을 거 같네요. 그래도 학교는 보내야 하니까 아침 일찍 데리러 올게요.”

손녀와 할아버지 모두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니 류성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럼 내일 아침에 올게요.”

“고마워요, 정말.”

“뭘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 안녕. 할아버지도 편히 쉬다가 주무세요.”

“그래요, 그렇게 할게요.”

인사를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이제 집에 가볼까.

깔끔한 마무리였기에 기분 좋게 차량에 탑승했다.

다행이었다.

할아버지의 병이 간암이 아니어서. 처음에 연락을 받고서는 얼마나 놀랐던지.

“뭐, 그러면…….”

이제 치료만 잘 받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날을 잡아서 후원하는 이들 전부 건강검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심각하게 아프기 전에 미리 병세를 찾아내어 치료하는 게 나을 것 같았으니까.

부와아앙-

일단은 운전에 집중하기로 했다.

[퀘스트 ‘미래의 꿈나무를 위하여!’가 갱신됩니다.]

[아이가 꿈에 한 발 더 다가섭니다.]

[표지 일러스트 의뢰 계약서 작성!]

[시스템의 판단에 따른 보상을 지급합니다.]

[선행 포인트 상자를 습득합니다.]

그때 갑자기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으음?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미 경험이 있는 터라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지난번에는 최희진이 영화 단역으로 출연했다면서 보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엔 그림이네.”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몇 명 떠올랐다.

과연 이 중에 누구일까.

기대하면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

머지않아 울리는 스마트폰.

<홍민기>

이름을 확인한 류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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