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49화 (149/277)

< 후원받는 사람들(3) >

운전석 전방을 주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홍민기예요!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받은 덕분에 홍민기의 목소리가 차 안에 한가득 울렸다.

“그래, 오랜만이네?”

-네, 아저씨!

“음, 언제 형이라 불러줄 건지 궁금하긴 한데.”

-어, 그, 글쎄요!

“형은 좀 그런가? 그럼 삼촌으로 바꾸자.”

-네, 아저씨.

굴하지 않는 홍민기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까칠했던가.

따라오지 말라고 류성을 향해 윽박지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쾌활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밝은 아이였다.

요즘은 웹툰 학원을 열심히 다닌다고 들었다.

덕분에 의뢰도 받은 모양이었고.

“짜식. 기분 좋아 보이는 목소리네.”

-좋은 일이 있어서요.

“맞혀볼까?”

-절대로 못 맞히실걸요?

“호오, 난 맞힐 수 있을 거 같은데.”

-말도 안 돼요. 절대로 못 맞혀요!

“나는 다 알아. 내가 재단 이사장인데 모르면 안 되지.”

-설마요…….

“맞혀본다, 그러면?”

-네!

“표지 일러스트 의뢰.”

-에엑……?

충격을 받은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어,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내가 이사장인데 다 알아야지.”

-와…….

“존경스럽지?”

-어, 음. 조금요.

“흐흐, 녀석. 좋은 일이니까 내가 선물도 사줄게.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봐.”

-갖고 싶은 거요?

“그래.”

-그러면…… 침대 하나만 사주세요.

“침대?”

-네. 할아버지가 주무실 때마다 허리가 아프신지 끙끙대셔서요. 바닥에 얇은 이불 하나 깔고 주무시거든요. 침대가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안 될까요?

이런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을까.

류성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내가 침대 하나 사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병원에 한 번 더 모셔야겠다. 어디가 불편하신지 은근슬쩍 물어봐 줄래? 아무래도 병원에 가면 증상을 다 말하지 않으시는 거 같아서 말이야.”

-아, 네! 그럴게요!

“그래, 의뢰 축하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그려봐.”

-네, 감사합니다!

즐거운 통화를 마쳤다.

기분이 좋았다.

후원하는 한 아이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뿐이건만 이상하게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 상자도 받았지.

조금 전 보상으로 받은 선행 포인트 상자가 뒤늦게 떠올랐다.

집에 거의 다 왔으니까.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서 상자를 확인했다.

[선행 포인트 상자]

3점부터 11점 사이의 포인트를 랜덤으로 획득한다.

3점부터 11점 사이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오픈했다.

[선행 포인트 7점을 획득합니다.]

좋지도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뭐, 그래도.

지금은 1점이 소중했으니까.

최근 재능 ‘시인이 보는 세상’을 구매하면서 지닌 포인트가 극도로 낮아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의 7점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선행 포인트 : 54]

덕분에 현재 지닌 선행 포인트는 총 54점이었다.

차근차근, 다시 모아보자고.

그런 결심을 하며 집으로 올라갔다.

냐아아아-

반겨주는 럭키와 함께 기분 좋은 휴식 시간을 가졌다.

* * *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해 간농양으로 입원한 할아버지의 손녀를 학교까지 바래다줬다.

“고맙습니다!”

“12시에 끝난다고 했지?”

“네, 맞아요!”

“그래, 조금 이따가 보자.”

“안녕히 가세요!”

정인아가 학교의 정문을 지나쳤다.

주변에 아이가 많은데.

정인아에게 다가가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성은 고개를 돌리며 운전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도착한 사무실.

조금 이른 시각이라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조용하니 괜찮네.”

휴게실에서 궁극의 커피를 탔다.

으음, 향기 좋고.

사무실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커피를 음미했다.

후르릅-

컴퓨터를 부팅하고서 클라우드 사이트에 접속했다.

“큽, 표정이…….”

가족과 찍은 사진을 감상했다.

류현아의 일그러진 표정이 하필 첫 번째로 떠올라서 잠시 실소가 터졌다.

크흠, 재밌었는데.

제대로 된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경험이었다. 자연스럽게 마이유를 사진에 담게 될 날이 기다려진달까.

“오, 럭키네.”

럭키를 집중적으로 찍은 사진이 보였기에 잡념을 지우고 다시 감상을 이어갔다.

“사진으로 봐도 귀엽구만.”

확실히 잘 찍었다.

허투루 찍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

피식거리며 사진을 넘겼다.

조금씩 다른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

“음……!”

그 순간 뇌관에 벼락이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영감이 솟구친 것이다.

무언가에 집중한 표정으로 메모장을 열었다.

[익숙했던 우리 사이]

[때로는 멀게 느껴지고]

[때로는 가까운 듯]

[위태로운 우린 서로에게]

[아무런 말 없이도 의지할 수 있는]

[그저 손을 뻗으면 닿을]

[너와 나의 사이]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룬 가사가 일필휘지로 이어졌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미 모든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단어가 나열되고 그것은 문장이 되어 어느덧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가 되었다.

“음…….”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다.

손에 잡혀 있던 영감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성취감이 차지했다.

“좋네, 이것도.”

또 하나의 괜찮은 가사가 나왔다.

짧은 고민이 이어졌다.

이내 가사를 정리해서 스마트폰으로 옮겼다. 아직 마이유에게 작사 계약서를 건네주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검토는 끝난 상태였다.

사인도 해놓았고.

우편으로 보내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시간이 날 때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다만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미뤄진 상태일 뿐이었다.

새롭게 가사도 작성했으니 오늘은 꼭 계약서를 넘길 작정이었다. 해서 로드매니저에게 연락을 넣었다.

-네, 작사가님.

“오늘 계약서랑 뭐 좀 드릴 게 있어서요. 직접 찾아갈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잠시만요.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케쥴이 있어서 오후 3시부터는 안 될 거 같습니다. 점심시간에는 괜찮을 듯한데 그때 오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그러면 그때 뵙는 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통화를 종료하자 마침 부사장이 출근했다.

“어머, 이사장님?”

“일찍 오셨네요.”

“저야 항상 이 시간에 오는데, 이사장님은 무슨 일이세요?”

“정인아 아시죠?”

“어제 병원에 입원하신 할아버지 손녀 아닌가요?”

“맞아요. 아침에 학교까지 태워줬거든요. 어제는 퇴근한 이후라서 설명을 못 했는데 어린아이 혼자 집에 보내기가 좀 그래서요. 그냥 병원 간이침대에서 할아버지랑 같이 지내도록 했어요.”

“아……!”

류성의 설명에 부사장이 부드럽게 웃었다.

“잘하셨네요.”

“그렇죠?”

“네, 그럼 한동안 일찍 오시겠네요.”

“아무래도요.”

다른 직원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류성이 제일 가까운 편이었고.

또 신경 쓰이는 일도 조금 있었기에 한동안은 직접 태워서 다닐 생각이었다.

“커피 드실래요?”

“너무 좋죠.”

둘은 커피를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특히 보육원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요즘 다들 기운이 넘쳐요.”

“그래요?”

“어찌나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는지…….”

이 순간은 부사장이 아니라 한애라 원장이었다.

저 부드러운 표정.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칭찬.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다시 영감이 꿈틀거렸다.

다만 애써 억눌렀다.

대화하다가 갑자기 튀어 나갈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버릴 수도 없는 일. 류성은 보이지 않는 어느 주머니에 차곡차곡 넣어뒀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언제든 이 감정을 꺼내어 쓸 수 있도록 말이다.

* * *

서울, 경기도 지역 보육원에 관한 본격적인 후원이 진행되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선별한 여러 보육원이었다.

“아아, 감사합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네, 정말로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들에게는 풍족한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기다, 고기!”

“와, 원장 어머니. 이게 뭐예요?”

“오늘부터 좋은 분이 후원을 해주기로 하셔서. 감사하면서 먹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근데, 그 좋은 분이 누군데요?”

“RS재단 이사장님이셔.”

“어? 거기 들어봤어요!”

“정말?”

“네. 엄청 좋은 일 많이 하는 곳이던데…….”

“그랬구나.”

원장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이마저 알고 있다니.

정말로 큰 곳인 모양이었다.

“앞으로 꾸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도와주시기로 했어.”

“아아……!”

“그럼 이제 가끔은 고기도 먹는 거예요?”

그 질문에 왜 이리 가슴 아픈지.

원장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좋은 일이 가득할 테니까.

“맞아, 그럴 수 있어.”

“우와, 최고예요!”

“좋아요, 히히!”

RS재단은 특히 보육원에 먹을 걸 많이 챙겨줬다. 외에도 아이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서 불편함을 겪을 때도 도움을 줄 수 있게 항상 신경을 쓰기로 했다.

“자, 그럼 이제 먹자.”

“잘 먹겠습니다!”

“우와아, 잘 먹겠습니다!”

주기적인 감찰이 있겠지만 후원을 받기로 한 보육원 원장들은 해당 부분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러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그런 깔끔한 일 처리가 훨씬 든든했다.

그와는 반대로.

조사를 통해 의문이 생긴 곳에는 후원하지 않았다.

“애들 앞으로 후원 통장을 만든다고요? 아, 물론 좋은데 그냥 보육원 자체에 후원을 해주시는 게 어떨지. 아,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네? 아니, 재단 허락이 없으면 애들 통장에서 돈을 뽑지도 못한다고요? 감찰이요? 그게 무슨……! 허, 후원을 해주는 건 좋은데 그건 선을 넘었죠. 그런 조건을 다는 이유가 뭡니까? 도대체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무슨 애들 돈이라도 빼먹을까 그러는 겁니까! 됐습니다!”

신기하게도 운영이 의심스러운 곳 대부분이 감찰이나 몇 가지 조건에서 격한 반응을 보이며 후원을 거절하고는 했다.

그래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 해당 보육원의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하자마자 지자체에 연락해 감찰을 부탁했다.

-으음, 확실히 이상하네요. 알겠습니다, 바로 제대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지자체가 RS재단의 감찰 요청을 받아들인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자체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좀 더 확실한 게 좋았으니까.

류성은 이런 부분에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사장님, 조사에 착수한다고 하네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최소한의 정보는 필요할 거 같네요.”

“그럼 사설 업체도 계속 고용할까요?”

“그렇게 하죠. 당장은 의심스러운 정황만 찾아낸 거라서 정확한 증거가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계약 중인 업체에 증거 위주로 더 찾아달라고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오전 업무는 끝인가요?”

“네.”

“전 체육관에 좀 갔다 올게요.”

“다녀오세요.”

류성은 보육원 관련 업무가 끝나자마자 조각 심사가 진행 중인 체육관으로 향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