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50화 (150/277)

< 혼쭐 >

이유는 단순했다.

조각 심사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모두 대학교 교수분을 어렵게 초빙했기에 크게 걱정스러운 건 없었다. 하지만 모습을 가끔이라도 비춰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분명 차이가 있었으니까.

사소하지만 해야 할 일이었다.

부와아앙-

머지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체육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정문으로 향했다.

“지금은 출입을 통제…… 아, 이사장님?”

“네, 몇 번 봤었죠?”

“그럼요. 전에 민폐 고객한테 한마디 할 때 옆에 있었거든요.”

“아아, 생각나네요.”

“그때 진짜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류성은 웃으며 출입증을 내밀었다.

“확인되셨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복도를 좀 걷다가 관객석으로 들어섰다. 경기장을 빼곡하게 채운 조각상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심사위원들이 보였다.

“흐음, 나무 조각상이긴 한데 세심함이 뛰어나네요.”

“하지만 이 부분은 아쉬워요.”

“아아, 불균형이 살짝 어긋나긴 했군요.”

그들은 류성이 왔다는 걸 몰랐다.

당장은 드러낼 생각도 없었고.

조용히 그들이 어떻게 심사를 하는지 지켜봤다.

거리가 조금 멀어서 대화가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팀을 이뤄 다니면서 의견을 나누고 열심히 심사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모두 여덟 명.

이번 주 내로 저들의 채점표가 올라올 테고 류성은 그 채점표를 토대로 수상작을 고르면 되었다.

“내 눈엔 다 멋있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전부 상을 줄 순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수상하고.

또 누군가는 상을 받지 못한다.

공모전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경쟁의 장이었다.

상의 고하를 나누는 것.

작품의 상하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무엇이 더 아름다운지.

어떤 작품이 더 멋지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의 시선조차 빨아들이는 그런 조각상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런 많은 부분을 공모전의 수상으로 밝혀낼 수 있게 된다.

그게 시장을 성장시킨다.

그렇다고 류성이 개최한 공모전이 평범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다른 공모전과 차별되는 부분 역시 존재했다. 공모전에 참여한 모든 조각사가 돈을 벌게 되리란 사실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든 조각상이 판매 대기 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는 중이었다. 심사가 끝나면 구매를 예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조각상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당연히 조각가가 동의하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뭐, 거절할 사람은 없겠지만.

해당 금액은 고스란히 조각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렇게 공모전은 마무리되리라.

대규모 조각 공모전 경험.

조각상 판매 과정.

그리고 대중들의 관심.

“부디…….”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 * *

한창 심사 중인 이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아니, 이사장님 아닙니까?”

“네, 고생하십니다.”

“고생은요, 무슨.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그럼 다행이지만요.”

분위기가 좋았다.

“그보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

“이렇게 대규모 조각 공모전을 열어주셔서요.”

“아닙니다. 저도 좋아서 한 일인데요.”

“어휴, 그게 대단한 거죠. 전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심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를 지경이거든요.”

30대의 젊은 심사위원이 조금은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옆에 있던 중후한 나이대의 심사위원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런가요?”

“물론입니다, 이사장님. 여길 보시면 조각상이 하나같이 작품이에요. 정말 뛰어난 조각가 다수가 참여한 공모전이죠. 그간, 이 정도로 규모가 큰 공모전이 개최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처럼 대중이 이렇게나 관심을 보여준 것도 처음입니다. 이 나이 먹고 이렇게 가슴이 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다가온 심사위원이 줄줄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이번 공모전은…….”

“특히나…….”

아니, 솔직한 감상이었다.

더불어 진실한 마음이기도 했고.

“이렇게 조각 업계에 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진솔한 인사가 류성에게는 살짝 부담이었다.

“갑자기 이렇게 인사를 받으니 난감하네요. 무엇보다 전부 제가 힘들게 모신 분들인데요. 아무튼,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과도한 인사는 그만하셔도 됩니다.”

“허허, 알겠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이런 인사를 받으니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 심사위원들이 더는 류성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

후, 좀 살겠네.

덕분에 생각보다 더 자유로워졌다. 일부 팀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소감을 듣기도 했다.

“결이 예사롭지 않군요.”

“예, 표면이 정말 부드러워요. 손재주는 물론이고 감각이 엄청나게 민감한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면 이 정도 수준까지는 어렵죠.”

“허어, 게다가 여기…….”

그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꽤 재밌기도 했고.

“균형감이 좋군요.”

“미적 감각도 그렇고요.”

“네, 아름답네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 * *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아, 학교……!

류성은 가볍게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서 체육관을 벗어났다. 곧바로 정인아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향했다.

“다행이네.”

차가 막히지 않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정문에서 기다리자 속속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8살, 9살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들이 짝을 이뤄 정문을 지나쳤다.

“놀이터 가자!”

“좋아!”

다들 친구들과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축구나 할래?”

“축구 좋지.”

“어, 나는 농구 할래. 농구 할 사람 여기 붙어라!”

“나, 나!”

“나도!”

그 뒤로 기다리고 있던 정인아의 모습도 보였다.

아침과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정인아의 근처에 있던 한 무리의 아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인아다!”

“엄마가 쟤랑 말하지 말랬어.”

“왜?”

“거지새끼랬어.”

“으응……?”

“냄새난다고 했어. 놀지 말라고 했다고.”

“어, 어어…….”

“빨리 가자!”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들려왔다.

“……뭐?”

너무 놀라서 순간 굳어버렸다.

이야기한 아이가 옆을 지나칠 때 붙잡아 물어볼 뻔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그러나 어느새 지척에 도착한 정인아로 인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앗, 안녕하세요.”

“어, 어어. 그래. 수업은 잘 들었고?”

“네에!”

“그러면 할아버지한테 갈까?”

“좋아요!”

아이는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비슷한 경험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그런 걸까.

속이 쓰라렸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미간을 찌푸리며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퀘스트 발동!]

[아이들의 차별, 상처 입은 마음.]

[돈은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그게 사람을 결정하진 못한다. 하지만 돈에 매몰된 일부 어른들은 아이를 돈으로만 나누고 그건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인식을 모두 바꿔버릴 순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후원하는 아이가 고통 속에서 지내는 걸 지켜볼 수도 없다. 그러니 돈이 무엇인지, 아이들에게도,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도, 그리고 학교에도 제대로 보여주어라. 돈의 힘이 어떤 것인지 그들에게 똑똑히 각인시켜라.]

[남은 시간 : 6개월]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 시 악몽을 꿉니다.]

그에게 도움을 줄 퀘스트가 떠올랐다.

돈이 무엇인지.

모두에게 보여주는 퀘스트였다.

“그러니까…… 돈쭐인가.”

원래라면 즐거워야 했을 돈쭐 퀘스트였다.

돈으로 혼쭐을 내주는 것.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돈쭐을 내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번 돈쭐은 조금 달랐다.

돈의 위력을 보여줘야 했다.

어른들과 일부 어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에게 말이다.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분 좋게 돈을 쓸 순 없으리라. 그렇기에 돈이라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줄 작정이었다. 적어도 후원하는 아이들이 기죽지 않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인아야.”

“네?”

“앞으로 삼촌이라고 불러.”

“사, 삼촌이요?”

“그래. 괜찮지?”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 자주 볼 텐데.”

“어, 그…….”

혼란에 취한 듯 잠깐 말을 더듬는 정인아에게 약간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로 했다.

“한번 불러볼래? 듣고 싶은데.”

그제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럴게요…… 삼촌.”

“좋네.”

“헤헤…….”

“그럼 이제 할아버지한테 가자.”

“네! 삼촌!”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을 먹지 못하고 수업이 끝났으니 배가 고플 터였다. 병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음식을 포장했다.

이윽고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고, 인아 왔어?”

“할아부지!”

“허허, 그래, 그래.”

할아버지는 류성에게도 인사를 했다.

“오늘도 고마워요.”

“아닙니다, 이 정도야 일도 아니죠.”

“히히, 할아부지. 나 이제 삼촌도 생겼어!”

“으응? 삼촌?”

“응! 삼촌이라고 부르랬어.”

“그래도 이사장님이신데…….”

류성이 슬쩍 나섰다.

“괜찮아요, 제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어요.”

“아이고, 그래요?”

“네, 진짜 삼촌 같은 마음이라서요.”

“허허, 그래요, 그럼 우리 손녀 잘 좀 봐주세요.”

“물론이죠.”

후원하는 모든 아이를 삼촌처럼 이끌어주고 싶었다. 이번 퀘스트가 바로 그 첫걸음이 될 터였다.

* * *

병원에서 나와 마이유가 대표로 있는 회사로 향했다. 도착해서 전화하자 그녀가 1층으로 내려왔다.

“류성 작사가님!”

“오랜만이네요.”

“정말요, 계약서는 왜 이렇게 안 보내주세요?”

“직접 전하고 싶어서요.”

“아앗, 그러셨구나.”

“네. 그리고 가사가 또 하나 나왔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보여드릴 겸 오늘 왔어요.”

“네에에에?”

“한번 봐주실래요?”

“아, 물론이죠! 일단 근처에서 점심 같이 먹어요.”

“좋죠.”

로드매니저, 마이유, 류성.

셋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와중에 가사를 확인하던 마이유의 눈이 커졌다.

[익숙했던 우리 사이]

[때로는 멀게 느껴지고]

[때로는 가까운 듯]

[위태로운 우린 서로에게]

[아무런 말 없이도 의지할 수 있는]

[그저 손을 뻗으면 닿을]

[너와 나의 사이]

[용기가 없어 내밀지 못한 말]

[사랑한다는 한 마디]

[뒤늦게 깨달아 눈물 흘리고]

[그러나 당신은 이미]

마이유는 이내 가사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지그시 감기는 눈.

떠오르는 악상이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아아, 이건 안 되겠어요.”

“별로인가요?”

“아뇨! 제 작업실에서 읽어야 할 거 같아서요. 여기서는 작곡을 못 하니까요.”

“아……!”

“후우, 또 엄청난 가사를 가져오셨네요.”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옆에서 함께 가사를 보던 로드매니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움이 덤덤한 듯 깊게 파고들어서 좋네요. 너무 직접적이지 않아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도 있고요. 특히 클라이막스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짧지만 특히나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었습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감상이었다.

“조금 창피하네요.”

“어휴, 창피하다뇨. 정말 좋았습니다.”

“맞아요, 맞아.”

마이유가 고개를 거칠게 끄덕이며 류성을 직시했다.

“으음, 작사가님. 그래서 말인데요.”

“네, 말씀하세요.”

그녀의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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