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인애플 매수(2) >
이번 조각 공모전은 다양한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예술가를 위한 공모전.
RS에서 주최된 공모전.
RS재단 공모전.
젊은 이사장이 개최된 공모전.
후원 공모전.
그리고, 첫 번째 공모전.
“후, 두 번째는 뭐가 되려나?”
당연하게도 많은 예술가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가 끝났다.
과연 두 번째 공모전은 어떤 걸까.
자연스럽게.
조각 공모전에 참여하지 않은 예술 업계 종사자들 또한 수상 결과를 보기에 이르렀다.
“이야.”
정희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십이지신이 대상이구만.”
절로 납득이 되었다. 사실 시간이 비어 있을 때 공모전을 직관하러 간 적도 있었고 너튜브 생방송으로 본 적도 있었는데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 게 바로 십이지신 조각상이었다. 시청자가 채팅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꺼낸 것도 십이지신이었고.
“이건 빼박이지.”
다음으로 최우수상 조각상을 확인했다.
고래 조각상이었다.
이것 또한 눈여겨보던 조각상이었다.
“어, 음. 그래, 이것도 빼박이긴 한데…….”
사진을 보는 정희국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허, 뭐지?”
기억 속에 있는 조각상과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자세히 조각상을 살펴봤다.
그러다 뒤늦게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
사진이 범상치가 않았다.
생방송으로 본 게 가장 퀄리티가 낮았고 직관으로 봤던 건 가히 예술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어째 사진이 제일 멋있는 거 같은데.”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예술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진 전시관도 자주 다녀봤는데 거기 메인에 걸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다른 것도 봐야겠어.”
우수상과 장려상, 특선을 차례대로 확인했다.
모든 조각상을 눈에 담은 결과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미쳤잖아?”
이건 사진 클라스가 가히 압도적이었다.
조각상 자체도 뛰어났지만.
그걸 담아낸 사진작가의 실력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그 탓이었다.
모든 조각상이 그냥 대상 후보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내 감각이 이상해진 걸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일상 게시판에 해당 사진을 잘라내어 올렸다.
[조각 vs 사진 승자는?]
최근 조각 공모전이 화제가 된 덕분인지 조각이란 단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조회수가 급증하더니 엄청난 댓글이 달렸다.
[댓글]
asdfc : 오, 뭐야? 전부 다 예술적인데? 근데 조각 사진만 있잖아?
└작성자 : 응, 뭐가 대상인지 분간이 가?
asdfc : 어, 음. 글쎄? 모르겠는데?
└작성자 : 원래라면 분간이 가는 게 정상이거든
asdfc : 그 말은...?
└작성자 : 별로인 조각조차 예술적으로 보이게 만든 사진이라는 거지.
└asdfc : 아하? 그래서 조각 vs 사진이구만?
킬링포 : 헐? 나 이거 직관했었는데 그때 봤던 느낌보다 더 강력한데? 웃긴 건 이게 조각상에서 뭔가를 느낀 건지, 아니면 사진 그 자체에서 느낀 건지 구분이 안 된다는 거?
└작성자 : 동감ㅋㅋ
아아아 : 와, 암튼 쥑이네ㅋㅋ
엠피뚜리 : 헐, 이건 사진이 이긴 듯!
└작성자 : 왜?
└엠피뚜리 : 너튜브 영상으로 봤는데 거기선 딱 태가 나더라고, 뭐가 대상일지. 근데 사진으로 보니까 모르겠는데? 그 말은, 사진이 작품성 떨어지는 조각상조차 업그레이드 시켜줬다는 얘기지
└작성자 : 호오, 보는 눈이 있네ㅋㅋ
그리고 그 글은 해당 게시판 핫이슈로 떠올랐다. 덕분에 각종 가십 기사가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진과 조각상!]
[사진작가, 누구인가?]
[조각상을 이겨 버린 사진?]
[왜 대상인가? 사진으로는 도저히 판가름할 수 없는 대상 작품!]
[모든 작품이 대상 후보다!]
[사진의 힘, RS재단 조각 공모전!]
그리고, 해당 글을 류성이 보게 되었다.
[RS재단 조각 공모전 수상 의혹?]
[RS재단 홈페이지에 조각 공모전 수상작이 올라왔다. 하지만 사진만 봐서는 왜 대상이 대상인지, 왜 장려상 작품이 장려상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모든 작품이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에 의구심이 생긴 본 기자는 곧바로 체육관에 몰래 잠입하여 두 눈으로 조각상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제야 수상에 관한 의혹이 풀렸다. 눈으로 직접 본 조각상 간에는 분명한 우열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RS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은 그 우열조차 지워버릴 만큼…….]
사진 하나로 이런 난리가 벌어질 줄이야.
“거, 참…….”
기묘한 해프닝이었다.
*
류성은 돌석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네, 돌석 초등학교 행정실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1학년 2반, 정아연 학생 삼촌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별다른 건 아니고요, 이번 주 토요일은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전부 4교시만 하더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점심이나 사줄까 싶어서요.”
-점심이요?
“네.”
-어, 그러니까 1학년 2반에 점심을 사주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아뇨,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요.”
통화하는 사람의 숨결이 달라졌다.
-아이고, 1학년 2반,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정아연입니다.”
-정아연, 정아연…… 어, 음. 저기…… 정아연 학생이라면 할아버지랑 사는 아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삼촌이시라고요?
“네.”
-아이들 점심 사주시면 너무 좋죠. 근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면 학생 수가 꽤 될 텐데 괜찮으실까요?
“괜찮습니다. 학교 운동장이 꽤 넓더라고요.”
-아, 네.
“거기에 푸드트럭을 한 100대 정도 부르면 어떨까 싶은데요.”
-푸, 푸드트럭 100대요?
“네. 아이들 취향도 다르니까 골라서 먹는 재미도 있을 거고요. 물론 중복되는 음식도 꽤 있을 겁니다. 워낙 아이 숫자가 많아서 중복 음식을 일부러 넣을 생각입니다. 푸드트럭 일부에만 아이들이 너무 모이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에 행정직원이 만류했다.
-아이고, 선생님. 그 정도는 필요 없습니다.
“음? 왜죠? 적어도 아이들이 천 명은 넘을 텐데…….”
-아닙니다, 500명도 안 됩니다.
“네……?”
-한 학년에 80명이 평균입니다.
“예? 한 학년이 80명이라고요?”
-네, 심지어 1학년은 1반부터 4반까지 있고 총원이 70명밖에 안 됩니다.
“…….”
예전 고등학교 모교에 먹을 걸 사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천 명 정도를 잡은 건데 그조차 많았던 모양이다. 현재 초등학교 아이들의 숫자는 생각 이상으로 적었다.
“어, 그렇군요.”
-네. 푸드트럭 100대는 너무 많습니다.
“그렇겠네요.”
-한 50대만 해도 충분할 거 같습니다.
류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총원이 500명이면.
50대만 해도 매우 여유로울 테니까.
“그럼 겹치는 메뉴 없이 50대로 하죠.”
-감사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려야 할 부분은 없을까요?
“미리 아이들한테 알려만 주세요. 1학년 2반, 정아연 학생 삼촌이라는 부분도 확실하게 알려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토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하고 곧바로 미리 알아뒀던 푸드트럭 업체에 전화를 돌렸다.
“예약 좀 하겠습니다. 푸드트럭 50대요. 네, 맞습니다. 음식 종류는…….”
아이들의 반응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터였다.
물론 시작일 뿐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인식의 변화가 생길 건 분명했다.
* * *
오늘도 파인애플을 매수하기 위해 생방송을 틀었다.
“역대급 기록이네요.”
방송을 켠 지 30분 만에 시청자 기록을 해치워 버렸다. 어제랑 비교하면 무려 3배 이상의 차이였다.
“지금 밤 11시 10분이고요. 시청자가 무려 5,177명이네요. 생방송 역사상 최고의 시청자 숫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알탕 : 추카추카요!
꼬맹이 : 와 5천 명ㄷㄷ
슬리퍼 : 볼 때마다 기록갱신ㅋㅋ
수저 : 추카해요!
바람나무 : 대박 추카요!
짝발 : 캬, 진짜 많이 성장했군요. 초창기 생각나네요, 이상한 컨셉 잡았다가 무시도 당하고 그랬었는데ㅋㅋ
“다들 감사합니다. 아, 짝발 님. 저도 아직 기억납니다. 오래오래 같이 가자구요.”
두부 : 근데 진짜 파인애플 50프로나 오를까요?
초코 : 에이, 말이 안 됨!
숨구멍 : 추카는 추카지만 파인애플은 아님!
약속 : 과합니다, 과해요!
검은콩 : 그냥 이슈 만드려는 거 아님? 덕분에 시청자 급증했잖아요?
별별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슈 만들 생각 없고요. 전 오른다고 말했으니까 그 말을 믿는 건 시청자 여러분의 몫이겠죠.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여기 있으라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요. 저는 저랑 같이 즐겁게 투자할 분만 남아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결과는 어차피 이번 달 안으로 나올 테니까요. 서두르지 말고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이야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180도 바뀔 것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50%의 상승.
그건 반드시 찾아올 미래였기에 지금처럼 당당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지금 고개를 젓는 저들 모두가 류성에게 빠져들 터였다.
“이제 곧 본장 열리겠네요. 30분 되면 오늘도 적당히 분할매수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방문이 스르륵, 열렸다.
럭키였다.
이제는 꽤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류성의 무릎으로 뛰어 올라왔다.
냐아아앙?
뒤이어 채팅 화면을 보며 냥펀치를 날려댔다.
“흐흐, 채팅창 보면서 냥펀치 날리는 건 바뀌질 않네요. 그래도 몇 번은 봤을 텐데 아직도 신기한가 봐요.”
럭키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웃었다.
“귀엽죠?”
의문과 의구심으로 가득했던 채팅창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웃음과 즐거움으로 도배되었다.
안경알 : ㅋㅋㅋㅋ졸귀!
킬러 : 졸탱귀ㅠㅠ
점박이 : 하앍... 저 앞발에 맞고 싶어라
볼따구 : 제 얼굴을 내드리죠
알탕 : 흐에에에엑! 너무 귀여버!
고정댓 : 만져보고 싶어요ㅠㅠ
단합력이 끝내줬다.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솟구치는 채팅을 외면하고서 럭키와 놀았다. 그러다 팔이 살짝 긁혔는데 하얀 실선이 생겼다.
“어휴, 발톱이 꽤 자랐네.”
며칠 내로 잘라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본장이 시작되었다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31분이네요.”
서둘러 파인애플을 화면에 띄웠다.
평소보다 거래량이 좋았다.
“어제 1퍼센트 넘게 올랐었죠? 오늘도 나쁘지 않게 올라갈 거 같습니다. 저는 장초에 몰아서 매수할게요.”
원화로 500억을 사용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모든 물량이 체결되었다.
“어, 벌써 다 사졌네요. 오늘 거래량도 좋고 아직 잠도 안 오고 하니까…….”
여유 자금은 2,500억.
지금까지 1,000억 원을 매수했으니 아직 1,500억이 남은 상태였다.
“조금만 더 매수해 볼게요.”
가볍게 100억 원을 더 사용했다. 사실 1,500억을 한 방에 매수해도 되지만 그러면 생방송을 할 구실이 사라진다. 생방송을 며칠 더 이어가면서 보다 많은 시청자가 파인애플을 매수할 수 있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100억, 매수 체결됐네요.”
퀘스트 보상이 걸린 일이었으니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충분했다.
무엇보다.
파인애플을 매수해 수익을 내게 된다면 시청자 중에 일부는 좋은 일에 쓰이길 바란다면서 류성에게 후원을 해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동한 누군가가 따라서 후원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씩 후원이라는 행위에 맛을 들린다면 미래가 조금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류성은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