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진 >
오늘도 정아연을 아침 일찍 초등학교까지 태워다줬다.
“아연아, 토요일에 내가 학교 학생들한테 먹을 거 사주기로 했거든.”
“먹을 거요?”
“응. 그러니까 선생님이 물어보면 삼촌이 사주는 거라고 얘기하면 돼.”
“아, 네!”
간단하게 상황을 알려줬다.
너무 놀라지 않게.
그사이 도착한 학교 정문 앞에서 정아연을 내려줬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공부 잘하고.”
“네, 사, 삼촌……!”
류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문을 지나치는 정아연을 잠깐 지켜보다가 차를 돌려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무도 없어서 조용했다.
여유롭네.
커피 한 잔을 내려서 책상 위에 올려둔 채로 컴퓨터를 켰다.
“흐음, 커피 맛 좋고.”
느긋하게 공문을 작성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기뻐할 직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다닥, 타닥.
공문이 형태를 갖춰 나갔다.
[RS재단 승진 목록]
1. 해당 직원 여러분은 사원에서 주임으로 승진되었음을 알립니다.
1-1. 홍보팀 백성욱.
1-2. 홍보팀 박미연.
1-3. 홍보팀 김정아
1-4. 업무팀 최송이.
1-5. 업무팀 이연
1-6. 업무팀 김소현
1-7. 경리팀 임나연
2. 해당 직원 여러분은 주임에서 대리로 승진되었음을 알립니다.
2-1. 홍보팀 백성욱
2-2. 업무팀 최송이
2-3. 경리팀 임나연
깔끔한 승진 공문이었다.
“이 정도면, 뭐.”
그렇게 작성을 완료하고서 공문을 내려보냈다.
“오늘도 좋은 하루네요.”
“아, 부사장님.”
마침 부사장이 출근했다.
“잘 오셨네요. 제가 조금 전에 공문 하나 내려보냈거든요? 조금 뒤에 업무 시작하면 프린트해서 게시판에 좀 붙여주세요.”
“공문이요?”
“네, 승진 공문이에요.”
“아하! 좋은 일이니까 서둘러야겠네요.”
“지금 바로 하시게요?”
“네, 어차피 출근은 했으니까요.”
“그러면 제가 커피 한 잔 타드릴게요.”
“저야 감사하죠.”
류성이 커피를 타는 동안 부사장은 공문을 프린터로 뽑아 게시판에 붙였다. 이제 출근하는 직원들이 차례대로 해당 공문을 보게 될 터였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조금은 기대하면서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이제 8시 45분.
아직 출근 시간인 9시까지는 시간이 꽤 남은 상태였다.
“이사장님, 그러면 이제 새로운 직원도 뽑아야겠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일이 많아졌으니까.
“부사장님, 채용 공고 미리 냈었죠?”
“네, 지난주에 냈고 다음 주 면접이에요.”
“좋네요.”
“점점 구조가 갖춰지네요.”
“그러게요.”
“대리, 주임까지 승진도 시켰으니 전보다는 많이 채용하려고요.”
“좋은 생각이에요.”
직원이 늘어도 큰 걱정은 없었다. 대리로 승진한 세 사람이 각 팀의 리더가 되어 직원들을 이끌어줄 테니까. 그 아래 직급인 주임 역시 중간 역할을 잘해줄 거라고 믿었다.
“사무실이 텅 빈 느낌이었는데 사람 냄새가 좀 나겠군요.”
“그래도, 워낙에 넓어서요.”
“그건 그렇죠.”
직원을 계속해서 채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사장실과 부사장실을 따로 써야 할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한 공간에서 함께 하고 싶었다. 직원들과 어우러지는 것 자체가 즐거웠으니까.
“안녕하세요!”
그때 문이 열리며 밝은 목소리가 퍼졌다. 업무팀 최송이가 출근한 것이었다.
“네, 좋은 아침이네요.”
“어서 와요.”
그녀는 가방을 의자에 올려두고서 가장 먼저 게시판을 확인했다. 중요한 공문이 내려오면 해당 게시판에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공문이 있네요.”
중얼거리면서 내용을 눈에 담았다.
첫 줄부터 눈에 커졌다.
“어……?”
승진 목록이 공문의 제목이었으니까.
아, 승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거칠어지는 숨결.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
“우와아아악!”
이윽고 자그마한 함성이 터졌다.
사원에서 주임으로.
그리고.
주임에서 다시 대리로.
“이, 이사장님. 이거, 이거 진짜 맞아요?”
“네, 맞아요. 축하해요, 최 대리님.”
“아, 아아……!”
무려 2단계 승진이었으니 까무러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잘해오셨으니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네, 같이 힘내요.”
그녀는 한참이나 게시판 앞을 서성거렸다. 그리곤 잠깐 사무실을 벗어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엄마! 나, 나 승진했어! 응, 대리래! 진짜라니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류성도 기분이 좋았다.
엄청 좋아하네.
뒤이어 직원들이 속속 들어왔다.
“어머……!”
“우와,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주임이라니……!”
“열심히 할게요!”
“허업, 대리……!”
다들 하나같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아쉽게도.
이번에 승진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간의 업무처리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기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직원은 여전히 사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최근 많이 적응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실망하지 마세요. 새로운 직원을 꾸준하게 채용할 거고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충분히 승진할 수 있을 거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 보죠.”
오전 업무가 시작되었다.
최송이, 백성욱, 임나연.
세 사람이 들뜬 표정으로 업무를 이어갔다.
“최 대리님.”
“네, 이사장님!”
“조각 시상식 준비는 잘되고 있죠?”
“네! 서울 헬튼 호텔 2층 로비 대여하기로 했습니다! 수상하시는 분들한테 다 개인적으로 연락도 돌렸고요. 전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좋군요. 시상식 끝나면 조각상 판매도 진행해야 하니까 그 부분도 확실하게 동의 서류 받아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백 대리님, 보고서는 아직 멀었나요?”
“죄송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임 대리님?”
“네!”
“요즘 워낙 여기저기 돈을 많이 써서 자금 관리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래도 미스 나지 않게 신경 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류성은 일부러라도 세 사람을 부를 때마다 꼭 ‘대리’를 붙였다. 그래야 주임이나 일반 사원이 확실한 위치를 자각할 수 있을 테니까.
* * *
몇 개의 서류에 사인을 마쳤다.
사사삭.
이걸로 이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끝이 났다. 나머지 자잘한 부분까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부사장과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조금 쉬어볼까.
사무실을 벗어나는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오랜만이죠? 저, 민설린이예요.
“네, 진짜 오랜만이네요.”
-미안해요, 투자자분들 시간을 맞추는 게 꽤 어려워서요. 다음 주 화요일에 전부 모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날 괜찮으세요?
“시간은요?”
-오전이면 상관없을 거 같아요.
“흐음, 그러면 오전 10시에 뵙죠.”
-10시, 알겠어요.
“아, 기왕 보는 거 RS 사무실 1층이 괜찮겠네요.”
-1층 카페요?
“네. 제가 커피도 타드릴 테니까요.”
-좋아요!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민성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표님!
“평소에는 형이라고 부르라니까.”
-아, 참. 그랬죠?
“그래. 극장은 잘 돌아가고?”
-물론이죠, 흐흐.
“다음 주 화요일에 주주들이랑 처음으로 인사할 거 같은데, 올래?”
-저 이제 주주 아닌데 가도 될까요?
“뭐, 어때.”
-저야 좋죠. 그래도 다들 아는 분들이니까요.
“좋네, 그럼 그때 보자. 오전 10시까지 1층 카페로 오면 돼.”
-넵! 알겠습니다!
한국 극장에 관한 일은 전부 민성욱이 처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류성은 아주 편안했다. 이게 바로 든든한 직원 한 명의 힘이었다.
“그러고 보니…….”
극장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영화로 이어졌다. 지난달에 투자했던 영화 개봉일이 훌쩍 지난 느낌이었다.
확인해 봐야겠네.
휴게실에 앉아 스마트 폰으로 투자한 영화를 검색해 봤다.
“아이고.”
범죄 도시 전쟁은 이미 개봉했고 심지어 관객수가 벌써 700만을 돌파한 상태였다.
[범죄 도시 전쟁, 역대급 흥행!]
[5일 만에 35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범죄 도시 전쟁!]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박 흥행작!]
[범죄 도시 전쟁에 대해……!]
[개봉 10일 만에 관객 500만 명 돌파!]
[여전한 흥행돌풍!]
[범죄 도시 전쟁, 주말 하루 만에 100만 명 관객 유치!]
[개봉 2주, 700만 명 돌파!]
미친 듯한 흥행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지금 페이스만 본다면 1,000만은 무조건 돌파할 테고 1,200만도 바라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수익률은 상당하겠네.”
물론 투자 금액이 적어서 수익금은 낮겠지만 말이다. 이제 이런 소소한 투자도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재능 ‘시나리오를 보는 눈’ 쿨타임이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큰물에서 놀아볼 작정이었으니까.
직접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해당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어 한국 극장에 상영하는 것. 일단은 그게 일차적인 목표였다.
“초인 마녀도 개봉했으려나.”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초인 마녀도 3일 전에 개봉을 한 상태였다.
[초인 마녀, 평일 동안 관객수 30만 명 돌파!]
[500만 관객 페이스, 초인 마녀!]
[초인 마녀, 대한민국 액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뤄……!]
[액션 활극, 스타일리쉬한 액션에 호평 이어져!]
[초인 마녀, 액션. 너무 좋았다!]
[초인 마녀 500만 돌파시 배우들 공약 내걸어……!]
[주말 기록이 관건!]
이 또한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좋았다.
초인 마녀는 대박을 기대하고 투자한 영화는 아니었다. 시나리오는 좋지만 소재도 그렇고 특히 감독이 신인이라 리스크가 꽤 컸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도박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흐음, 이번 영화는 둘 다 봐야겠네.”
시간을 내서 꼭 감상해 보기로 했다. 그래야 재능으로 확인했던 총평과 비교해서 보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판단이 쌓이고 쌓여서 경험이 되고 노하우가 되어줄 것이다. 그 노하우는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줄 터였다.
* * *
꾸준히 파인애플을 분할로 매수했다.
덕분에 지금.
총 2,000억에 달하는 물량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남은 돈은 500억 원.
“벌써 2월 12일 금요일이네요.”
내일 오전 5시에 드디어 파인애플의 작년 4분기 실적이 발표된다. 그러니 싸게 매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면 되었다.
“자, 내일 새벽 5시에 파인애플 실적 확인할 수 있는 건 다들 아시죠?”
알탕 : 당연하죠!
쿠키 : ㅇㅇ!
택시 : 기다리던 순간이라고요ㅋㅋ
짝발 : 크, 드디어...?!
태엽덕후 : 제발, 실적 잘 나오길!
“제가 분명히 차트가 엄청나게 좋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호재 하나만 나와주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갈 거라고 말했죠. 일단 내일 발표되는 실적이 호재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간의 기사를 찾아봤는데 파인애플 실적이 안 좋게 나올 수가 없겠더라고요.”
반도체갓 : 오오, 그런가요?
알탕 : 여윽시ㅋㅋ
레벨링 : 흐아, 기대됩니다ㅠㅠ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 남은 돈을 싹싹 긁어서 매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자금 500억을 전부 사용했다.
실적 기대감 때문일까.
245.67달러
245.69달러
245.73달러
245.81달러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매수가 거의 체결되지 않았다.
3분 정도를 기다려봤다.
그사이 가격은 꾸준히 올라서 246달러가 되었다.
“음, 가격이 자꾸 오르네요. 그냥 위로 긁어버릴게요. 지금까지 분할로 매수하면서 충분히 좋은 가격에 매입했다고 생각하니까요.”
더 늦기 전에 어서 매수하고 싶었다.
위로 크게 긁어버렸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가격이 상당히 오르면서 매수가 체결되기 시작했다.
246.36달러
246.72달러
247.11달러
247.32달러
그래 봤자 0.5%밖에 안 올랐지만 말이다.
“매수 끝났네요. 이번 주말도 잘 보내시고요,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월요일부터 날아갈 거라고 봅니다. 그럼, 가하!”
인사를 마치고서 생방송을 종료했다.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새벽 5시가 되자마자 파인애플 역사상 최고 실적이 발표되었다.
전 세계가 경악에 빠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