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55화 (155/277)

< 푸드트럭 >

조용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새벽이 흘러갔다.

창문을 톡톡, 건드리는 겨울비 너머로 잠들어버린 도시.

하지만.

그 여유도 새벽 5시까지였다.

제목 : 5시다!

제목 : 파인애플 역대 최고 실적 발표!

제목 : CNB에 따르면 파인애플 작년 4분기 매출이 재작년 대비 무려 59% 증가했다던데?

제목 : 59%면 얼마냐?

제목 : 2,137억 달러임!

제목 : 원화로 하면 245조 정도!

제목 : 와, 진심 크레이지한 실적이다ㄷㄷㄷ!

본문 : 주당순이익(EPS)이 겁나 상승했네!

제목 : ㅋㅋㅋ파인애플 떡상중!

본문 : 가즈아아아아앜!

제목 : 이거 실화임?ㄷㄷ

본문 : 실적 왜 이럼?

제목 : 파인애플, 조용하더니 지금 5퍼센트 상승 중임!

제목 : 와씨 미쳤잖아!

흥분에 잠식당한 투자자들은 30분이 넘도록 자기들이 할 말만 쏟아냈다. 간신히 흥이 가라앉고서야 ‘그’에 관한 이야기가 솔솔 튀어나왔다.

제목 : 정보꾼 진짜 엄청나네

제목 : 가면남이 결국 맞춘 거 아닌가? 물론 아직 50퍼는 아니지만

제목 : 가능성은 생긴 거지...!

제목 : 가면남 처음 얘기한 이후 벌써 10프로 정도 올랐음!

본문 : 다음 주에는 얼마나 가려나?ㅋㅋㅋㅋ

제목 : 오늘만 5퍼니까뭐ㅋㅋㅋ

제목 : 이제 2월 13일인데...?

제목 : 내일이 찐이다, 오늘은 실적 좋아서 많이 오르고 있긴 한데 원래 그다음 날이 진짜라고. 당일 오르고 다음 날 떡락한 종목이 얼마나 많은데!

제목 : 등신아, 내일 주말임^^

제목 : 아, 그럼 월요일부터!

그리고 누군가가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제목 : 이러다 진짜 50프로 가진 않겠지?

제목 : 어, 음...

제목 : 실적만 따지면 59프로 성장했으니까, 주가도 뭐...

제목 : 그 정도까지 갈 수도 있다?

제목 : 그래도, 4분기는 원래 많이 나오는 시기라서

제목 : 올해 1분기가 중요하지

본문 : 작년 파인애플폰이 너무 잘 팔리긴 했음 디자인적으로도 변모한 시기였고. 스펙상으로도 진보한 타이밍이라서 그럼. 생각보다 더 많이 팔리긴 한 거 같지만 결국 중요한 건 올해임! 올해 4분기에도 이만큼 팔리느냐가 문제지.

제목 : 당장은 못 올라갈 거 같긴 한데, 확신은 못 하겠네ㅋㅋㅋ

제목 : 결국 1년 실적을 봐야 하는 거니까

제목 : 그렇지, 그렇긴 한데ㄷㄷ 정보꾼은 2월 한정으로 말한 거니까 또 모르지!

제목 : 2월에 50퍼 올랐다가 3월부터 하락할 수도 있는 거고ㅎㅎ

제목 : 와, 모르겠다, 이건ㅋㅋ

제목 : 호재 하나만 더 터져주면 진짜 2월에 50프로 찍을 수도 있겠네ㅋㅋㅋ

이젠 누구도 절대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실적은 그 정도였으니까.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성장세였기 때문이었다.

제목 : 월요일에라도 파인애플 사야겠다ㅠㅠ

제목 : 하, 젠장. 정보꾼 믿을걸, 그냥...!

제목 : 역시 난 병신이었어ㅠ

제목 : 개부럽네, 정보꾼 따라서 매수한 애들

제목 : 못 먹어도 이건 go!

제목 : 젠장, 나도 간다! 고고고!

그렇게 뜨거운 주말이 이어졌다.

* * *

토요일 오전 조례시간이었다.

“자, 오늘은 미리 알려줄 게 있어.”

선생님은 17명의 1학년 학생들을 눈에 담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정아연.”

“네……?”

“오늘 삼촌이 우리 학교에 선물을 주기로 했는데, 알고 있니?”

“아, 네. 며칠 전에 들었어요.”

“그래, 다들 박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손뼉을 쳤다.

짝짝-

소리가 멈추자 선생님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아연이 삼촌분이 오늘 우리 학교에 점심을 사주기로 하셨다.”

“우와아아아!”

“선생님, 우리 반만 먹는 건가요!”

“아니.”

“그럼요?”

“앞서 말했듯이, 학교에 사주기로 하셨어.”

“학교요? 어, 그러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 선생님도 포함해서 말이야.”

“우와, 진짜요?”

“그래.”

“대박, 아연이 삼촌 엄청 부잔가 봐!”

“그러게!”

몇 명의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아연이 못 산다는 걸 알고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물어볼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자, 4교시 끝나고 운동장에 가면 아주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을 거야. 골라서 먹을 수 있으니 배부르게 먹고 가면 된다.”

“감사합니다!”

“아연이한테 인사해야지.”

“아연아, 고마워!”

“잘 먹을게!”

“아연이, 완전 대박!”

그에 정아연이 얼굴을 붉힌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 으응.”

이런 관심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창가로 모였을 때, 푸드트럭이 연이어 학교 운동장으로 진입했다.

“어? 야, 저기 트럭 엄청나게 오는데?”

“무슨 트럭?”

“어라, 진짜네.”

“뭐지?”

“푸드트럭 아냐?”

“맞네, 그 음식 막 파는 자동차!”

정아연도 호기심이 생겨 창가로 붙었다.

“와, 아연아. 너희 삼촌 진짜 짱이다!”

“헤헤…….”

“맛있겠다!”

“벌써 배고파!”

“나도!”

아이들은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그 중심에, 정아연이 있었다.

어느새 친구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포진된 것이었다.

“엄마가 분명 거지라고 했는데.”

그때, 툭 하고 튀어나온 한 아이의 말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야, 친구한테 거지가 뭐야?”

“맞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랬어!”

“우리 엄마는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했는데.”

“나두!”

그에 당황한 건 남학생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 8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

서러움에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아이의 편이 없었다.

“잘못하면 사과해야 한다고 그랬어!”

“맞아, 사과해.”

친구들의 시선이 오늘따라 따가웠다. 어린아이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눈길이 아니었다. 그제야 남자아이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면 친구들이 이상해진 걸까.

“어서 사과해!”

“맞아!”

“빨리해!”

생각보다 빠르게 무게감이 쏠린다.

내가, 잘못한 거구나.

말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 이 기분을 정아연은 어쩌면 매일 느끼고 있던 게 아닐까. 당해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난,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그러면!”

“그게…….”

아이는 이내 변명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그, 미, 미안해, 정아연.”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해?”

“으응.”

“……앞으론 거지라고 부르지 마.”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진짜지?”

“응, 진짜로.”

“알았어. 사과는 받아줄게.”

“으응, 고마워.”

상황이 해결되자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빨리 먹고 싶어!”

“나두……!”

그때 4교시 수업 종이 쳤다.

딩동댕-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드트럭을 보며 웃었다.

“벌써 배고픈 거야?”

“네에!”

“수업 잘 들으면 일찍 끝내줄게. 제일 먼저 도착해야 빨리 먹으니까.”

“우와, 선생님 최고!”

“대신 집중해야 한다.”

“네!”

“그럼 오늘은 27페이지 보자.”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냄새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푸드트럭에서 올라오는 맛있는 냄새가 아이들의 집중력을 갉아먹었다. 한두 대도 아니고 무려 오십 대에서 풍기는 음식의 냄새였으니 버틸 수 있는 재간이 없었다.

“어후, 냄새야.”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깨달았다.

오늘 수업은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사실을.

“아직 10분 남긴 했는데.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선생님도 배고프네.”

“우와아아아앗!”

“선생님, 최고예요!”

“그럼 지금 나가도 돼요?”

“그건 안 돼. 수업은 끝났지만 종례는 해야지. 전해줄 말도 있고. 대신 일찍 가방 싸는 건 허락해 줄게.”

그 말에 아이들이 분주하게 가방을 쌌다.

“자, 별건 아니고. 다음 주에 가져와야 하는 준비물이랑 숙제, 그리고 일기…….”

아이들은 한 귀로 흘리며 시간을 체크했다.

“다들 기억했지?”

“네!”

“숙제는 꼭 해와라, 알겠지?”

“네에!”

“그래, 그러면…….”

선생님이 시계를 확인했다.

딩동댕-

마침 종이 울리면서 아이들이 분주해졌다.

“가라, 가. 다음 주에 보자!”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은 크게 인사하며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는 조용했다.

1학년 2반이 1등이었던 것이다.

“우와아아아, 빨리 가자!”

“우히히히!”

정아연도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음을 내디뎠다.

“아연아, 빨리 와!”

“으응……!”

운동장으로 나온 정아연이 주변을 둘러봤다.

안 오셨나……?

그때 정문 근처에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사, 삼촌!”

“어라, 일찍 나왔네?”

“네……!”

“그래, 가서 맛있는 거 먹어야지. 가자.”

류성이었다.

“오늘 진짜 고맙습니다.”

“뭘.”

“깜짝 놀랐어요……!”

“친구들 반응은?”

“엄청 좋았어요!”

“다행이네.”

그는 정아연과 함께 움직이다가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그곳에 속해 있는 남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미간이 찌푸려졌다.

전에 정아연을 향해 거지새끼라 말했던 그 꼬마였으니까.

“안녕하세요?”

“그래.”

“아연아, 우리 같이 먹자!”

“그, 그럴까?”

친구들과 음식을 먹는 건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 무리 속에 저 남자아이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잠깐만, 난 아연이 삼촌인데. 다들 아연이 친구야?”

“네! 같은 반 친구예요!”

“그래? 너도?”

“저요?”

“그래, 너.”

“아, 네. 저도…… 같은 반 친구 맞아요.”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

“1학년 2반 김영우라고 합니다.”

꼬맹이가 제법 듬직하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아연이랑 친한가 봐?”

“어, 그건…… 아니에요.”

“아니라고?”

“네. 제가 잘못한 게 있어서요. 그래서, 이제 친해지고 싶어서요.”

“……그래?”

“네.”

“뭘 잘못했는데?”

김영우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거지…… 라고 놀렸어요.”

“……흐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줄이야.

“사과는 했고?”

“네.”

“아연이는?”

“받아줬어요.”

그래, 여기까지.

“앞으로 친하게 지내라, 그런 나쁜 말 하지 말고. 알겠지?”

“네, 꼭 그럴게요!”

“그래, 딱 보니까 덩치도 있고 힘도 좋아 보이는데 그럴수록 친구를 지켜줘야 하는 거야. 그게 진짜 멋있는 거다. 알겠지?”

“네……!”

이 정도면 되었다.

사과까지 했고 받아줬다는데 어른이 더 끼어들 일은 아니었으니까.

아이의 문제는 여기까지.

어른의 문제는 어른의 세계에서 다시금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밥 먹으러 가자.”

류성은 아이들과 함께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삼촌도 같이 드실 거죠?”

“그래야지.”

“어, 그…… 할아버지 거도 들고 가도 되나요?”

“물론.”

“헤헤, 고맙습니다!”

어느새 다른 학급의 아이들도 운동장으로 뛰어나왔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500명에 달하는 숫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맛있겠다!”

“빨리, 늦기 전에 어서 가야지!”

“달려어어어!”

거기에 선생님들까지.

“어머, 냄새가 좋네요.”

“요즘 푸드트럭은 웬만한 맛집 못지않다고 하더라고요.”

“호오, 엄청나네요.”

“푸드트럭이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꼭 야시장에 온 기분인데요?”

“정말요. 해외 야시장에 온 기분이네요. 아, 지금은 낮이니까 주시장인가요?”

“크허어엄.”

“지금 너무 춥지 않나요?”

“……썰렁하단 말씀이시죠?”

모두 함께 어우러져 푸드트럭 잔치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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