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위기사 >
월요일은 업무적으로 널널한 하루였다.
“오늘은 크게 바쁠 게 없었네요.”
“내일부터가 시작이죠.”
“하하, 그러게요.”
내일 드디어 조각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된다. 오전에는 민설린을 만나고 오후에는 시상식에 참석해야 하니 상당히 바쁠 터였다.
“시상식 끝나면 조각 판매도 시작해야 하고요.”
“뭐, 그것만 끝나면 어느 정도는 여유로워질 겁니다. 물론 그 이후 공모전을 또 준비해야겠지만요.”
류성의 말에 부사장이 눈을 빛냈다.
“다음 공모전, 생각하신 게 있나요?”
“네.”
“어떤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류성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안될 건 없죠. 제가 한국 극장을 인수한 건 아시죠?”
“그럼요. 아, 혹시……?”
“맞아요. 시나리오 공모전을 개최하려고요.”
재능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사용해 최적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해당 시나리오로 독립 및 예술 영화를 제작하고 그 영화를 한국 극장에 상영하는 것.
“시나리오 공모전이었군요.”
“네, 열심히 달려봐야죠.”
이번 시나리오 공모전은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
가까이로는 보육원 아이들.
연기를 배우는 아이는 물론이고 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가까이 보자면.
류현아.
여동생에게 연기를 보자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괜찮은 시나리오가 뽑히고 나면 오디션을 볼 생각이었으니까.
실력만 괜찮다면야.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꽤 재밌을 거예요.”
“기대되네요.”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미소를 지으며 그날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자, 이제 퇴근들 합시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늦은 밤, 방문을 잠그고서 하회탈을 착용했다.
조용히 생방송을 틀었다.
매수할 자금은 없지만 이번에 얻은 한정퀘스트 조건이 분명 ‘생방송 시청자’였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방송을 틀어서 시청자를 유입시키는 게 옳으리라. 기한도 1주일로 한정되어 있으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끝이었다.
“반갑습니다, 가하.”
속속 들어오는 시청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코더 : 와ㅠㅠ 죄송합니다, 사과합니다, 머리 박겠습니다!
민트색 : 그랜절 박았습니다!
알탕 : ㅋㅋㅋㅋㅋㅋㅋ
오늘따라 유독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롱블랙 : 이 싸람들 웃기네ㅋㅋ
쿠키맨 : 프리장에서 이미 솟구치는중ㅎㅎ
이유는 매우 심플했다.
상승하고 있으니까.
아직 본장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프리장은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프리장은 개인들끼리의 거래가 소소하게 일어나는 주식 장이라고 보면 되었다. 거기서 파인애플의 주가가 벌써 3.27%나 올라 버린 상황이었다.
짝발 : 본장 열리고 기관 자금 투입되면...!
바다산맥 : 떡상만 남은 것?
갓플 : 바로 그거죠!ㅎㅎ
채팅을 지켜보던 류성이 차트를 확인했다.
“이야, 진짜 많이 오르고 있네요. 실적 발표도 좋았고 5주년 계획도 이슈가 된 모양이군요. 제가 주말에는 쉰다고 제대로 확인은 못 했지만요. 아직 본장이 시작되기 전이니까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뒤이어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을 시전했다.
“실적은 역대 최고치고 파인애플카에 스마트 워치에 스마트 안경이라……!”
찾아보니 정말 대박이었다.
파인애플 정보권에 적힌 내용은 오히려 축소된 경향이 있었다.
“이건, 뭐. 안 올라갈 수가 없겠네요.”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된 불쇼가 벌어질 모양이었다.
엠피뜨리 : ㅋㅋ정보가 느리시군요!
땀뻘뻘 : 주말에 난리 났었는데...!
알탕 : 진짜 주식 게시판이나 카페 엄청 활황이었죠ㅎㅎ
주린잉 :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음!
“호오, 그래요? 재밌었겠는데요?”
가볍게 되묻자 엄청난 정보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끝없이 올라오는 채팅들.
헤엫 : 50프로 오르니 마니, 난리남!
오른쪽 : 11대 난제니 뭐니ㅋㅋ
연어 : 이번엔 정보꾼이 틀렸다는 말도 많았고
스테이크 : 믿고 가자는 글도 있고
오리둥절 : 싸우기도 했고ㅋㅋㅋ
짝발 : 의견대립ㄷㄷ했죠
뚜껑 : 물론 실적 발표에 5주년 계획 뜨고서 끝났지만!
장안숲 : 정보꾼 승리! 땅땅!
슬쩍 훑어만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파악이 되었다.
“어휴, 장난 아니었겠네요. 그럴 수 있죠, 미래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사실 파인애플이 50프로나 상승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고요. 저야 뭐, 이런저런 정보에다가 차트까지 감안해서 얘기를 한 거니까요.”
알탕 : 이런저런 정보를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얻는 거죠!
“알탕 님, 궁금하신가요?”
알탕 : 당연하죠!
“아쉽지만 영업비밀입니다.”
알탕 : 으읏...!
시청자와 수다를 떨며 노는 사이, 본장이 열렸다.
“음, 남은 자금이 정말 조금 있긴 하거든요. 그냥 구경만 하는 건 심심하니까 싹싹 긁어서 매수 해보겠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흐름을 체크하는 것.
그리고 생방송 시청자가 파인애플을 매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큰 노력은 필요 없었다.
시작부터 파인애플이 무섭게 내달렸으니까.
“와, 5프로 넘은 거 맞죠?”
류성의 눈도 조금 커졌다.
시작부터 5%라니.
호가창이 어지럽게 널뛰었다.
271.09달러
271.21달러
270.91달러
271.35달러
엄청난 유동성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등락이 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파인애플은 꾸역꾸역 솟구쳤다.
“어어, 6퍼센트 돌파했습니다!”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부랴부랴 달려들었다.
버팔로윙 : 으아, 안 되겠다ㅠㅠ 지금이라도 진입!
달러왕 : 아, 못 탔는데...!
어쩌다오늘 : 하씨, 어쩌죠? 미치겠네!
우앙 : 어떡해, 어떡하냐고!
전작 : 으어어어, 살려줘어어어!
류성이 슬쩍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더 올라갑니다. 350달러까지 갈 거라니까요. 이제 겨우 271달러밖에 안 돼요. 아직 멀었습니다.”
그에 망설이던 일부 시청자가 진입했다.
글러브 : 에라, 정보꾼 님 믿고 매수!
알탕 : 저도 추매!
짝발 : 샀어요ㅋㅋ 가즈아아아!
연애금지 : 이제 시작이다, 쏴리질러어엌!
버팔로 : 믿고 샀습니다!
제로원 : 영! 차! 영! 차!
그들의 환호를 지켜보면서 슬쩍, 현재 계좌상태를 체크했다.
종목명 : 파인애플
매입금액 : 217,391,304달러
수익률 : 15.17%
평가손익 : 32,978,260달러
총평가 : 250,369,564달러
벌써 15%의 수익을 보는 중이었다.
“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3,297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380억 원이었다. 파인애플 정보권에 나온 대로 가격이 올라간다면 아마 1,000억이 훌쩍 넘어가는 수익을 올리게 될 터였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이야, 차트 뚫었네요.”
그사이에 0.5%가 더 올라갔다.
정말 쉴 틈이 없었다.
기쁨에 어깨춤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지만 꾸욱 참았다.
“이젠 저도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겠습니다.”
약간의 흔들림은 당연히 존재했다.
273.11달러
272.87달러
272.53달러
272.16달러
273달러에서 272달러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시선을 떼고 잠깐 수다를 떨면 어느새 가격은 다시 고점을 돌파하고는 했다.
알탕 : 274달러ㄷㄷㄷ
슈퍼애플 : 6프로ㅋㅋㅋㅋ
채팅창에 가격이 올라왔다.
포크 : 274.5달러!
개미꾼 : 275달러...?! 벌써?
아멩 : 멈추질 않네ㅋㅋㅋ
후랑크소세지 : 276달러다ㅎㅎ
그렇게 당일 상승률이 어느덧 7%를 넘겼다.
“어,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네요. 기세가 엄청나서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일 일과가 꽤 바빠서 말이죠.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가하!”
류성은 인사를 하고서 생방송을 종료했다. 하지만 시청자는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어두워진 화면을 바라보며 그들은 실시간으로 상승세를 즐겼다.
알탕 : 흐아, 오늘 잠은 다 잔 듯!
에프포 : ㅠㅠ잠이 안 와요!
우헤헤 : 저도요ㅋㅋㅋ
천마넌 : 여기서 수다나 떨까요?
공뭔 : 좋음!
코인만세 : ㅋㅋ잘 오르고 있으니 우리끼리 떠들고 놉시다!
짝발 : 재밌겠네요, 고고고!
3천 명이 넘는 시청자 중에 일부는 그렇게 비어버린 류성의 생방송 공간에 남아 수다를 떨었고 일부는 어딘가로 떠났다.
덕분일까.
주식 게시판과 카페가 활발해졌다.
제목 : 잠 못 잤네, 결국?
제목 : 나도ㅋㅋㅋ
제목 : 그래도 돈복사 하는 거 보니까 하나도 안 피곤하더라
제목 : ㄹㅇ무슨 파인애플이 하루에 13프로가 오르냐고ㅋㅋㅋ
제목 : 역사상 최고의 날인가? 아니면 역대 최악의 거품이 붙은 순간인가?
제목 : 또 ㅈㄹ하는 애 나왔네
제목 : 다들 돔황챠! 버블버블 터진다!
제목 : 응, 내일부터 하락^^
제목 : 매수한 모양인데 내일부터 떡락^^
제목 : ㅋㅋㅋㅋ어휴
제목 : 이상한 애들 슬슬 나타나는 거 보니 더 오르겠네ㅎㅎ
제목 : 진짜 350달러 가나?
제목 : 이번 주 기대합니다^^
제목 : 장종료! 13.71퍼센트 상승!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어느새 아침 해가 세상을 밝혔다.
* * *
화요일 아침, 정아연을 학교로 데려다주면서 슬쩍 물었다.
“그 친구는 어때?”
“누구요?”
“김영우라고 했던가.”
“아, 그 애요?”
“응. 나쁜 말 했었잖아. 사과는 했지만.”
“맞아요. 근데…….”
정아연이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네, 오히려 제일 잘해주는 거 같아요.”
“그건…… 다행이네.”
그사이 학교에 도착했다.
정아연이 류성의 차에서 내렸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12시에 보자.”
“네에, 삼촌!”
이제는 조금 편하게 류성을 삼촌이라 부르는 아이. 힘차게 정문을 넘어 걸음을 옮기던 와중이었다.
“아연아, 안녕!”
“으응, 안녕.”
“히히, 저기 말이야. 우리 엄마가 물어보래서.”
“응? 뭐를?”
“그, 학교에 진짜 막 엘리베이터랑 체육관이랑 도서관 같은 거 짓냐고…….”
“어, 글쎄…….”
어려운 이야기라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청 궁금한가 봐, 다들.”
“그러게.”
“삼촌이 말 안 해줘?”
“으응.”
“으으, 엄청 궁금한데…….”
적잖게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 구원군이 등장했다.
정아연과 같은 반이자 1학년치고는 덩치가 아주 큰 김영우였다.
“야, 그런 거 묻지 말라고!”
“아니, 난 그냥…….”
“치, 웃겨. 아연이 젤 심하게 놀린 게 너잖아. 그래 놓고 인제 와서 이러냐?”
그에 당황한 김영우였지만 이내 어깨를 폈다.
“그건…… 사과했으니까! 그, 그치……?”
김영우가 정아연을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정아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과도 받아줬어.”
“그거 봐!”
김영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안 물어보겠다고 약속도 했으니까!”
“누구랑 했는데, 바보야.”
“아연이 삼촌이 묻지 말라고 했었잖아! 아연이 부담스럽다고! 다들 안 물어보겠다고 대답해 놓고는 기억도 안 나냐?”
“아니, 그거야…….”
“약속했으면 지켜야지!”
“어휴, 알았어, 알았다구.”
“아연아, 가자!”
“으응.”
어느새 김영우는 정아연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그런 김영우를 빤히 바라보던 정아연이 낮게 속삭였다.
“저기.”
“응?”
“그…… 고마워.”
“어, 어어? 아, 아니야. 뭐, 이런 걸 가지고…….”
김영우의 귓불이 심하게 붉어졌다.
헛기침을 하고.
무언가 당황한 것처럼 허둥지둥거렸다.
“푸훗.”
정아연은 그 모습이 재밌는지 웃었고 그제야 김영우도 헤벌레,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