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58화 (158/277)

< 갑vs을 >

업무를 보다가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1층 카페로 내려왔다.

“사장님, 혼자 오셨네요?”

“네,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커피 드릴까요?”

“음, 전부 도착하면 주문할게요.”

“알겠습니다.”

류성은 구석진 곳에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카페의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민설린과 민성욱.

그리고 다섯 명의 투자자들이었다.

“여깁니다.”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한국 극장을 맡게 된 류성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그냥 예전에 투자나 하게 된 늙은입니다.”

“허허, 아주 젊구만.”

다섯 명의 투자자 중에 넷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한 사람은 눈에 열기를 이글거리며 드러내는 젊은 청년이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시죠.”

“그럽시다.”

먼저 각자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아이스…….”

“라떼 시원하게…….”

이후 자리에 앉은 여덟 명의 사람들.

“그래도 한국 극장을 책임지고 맡게 되었으니 투자자분들한테 인사를 드리는 게 맞을 거 같아서 민설린 씨한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귀찮으셨을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아닙니다. 오랜만에 나들이도 하고 좋지요.”

“추위도 풀렸으니.”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마침 커피도 도착했고.

가볍게 마시면서 앞으로의 운영 방향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다르다면 어찌……?”

“수익이 많이 떨어질 겁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살짝 굳어졌다.

“저는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최신 영화에 기대어 수익에 목을 매는 게 아니라 독립, 예술 영화를 보여주면서 한국 극장만의 유니크함을 부각할 겁니다. 단기적으로나 중기적으로는 수익성이 분명 떨어질 가능성이 크죠.”

노인분들은 이내 허허롭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돈이야 충분해요, 한국 극장이 너무 수익성에 치중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쉬웠는데 한편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세.”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젊은 청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니, 저는 동의 못 하겠는데요.”

류성이 그를 쳐다봤다.

“흐음, 뭐라고 불러야 하죠?”

“안희찬이요.”

“네, 동의를 못 하신다구요?”

“당연하죠. 아무리 그래도 극장인데 수익성을 포기하겠다니, 그게 말이 돼요? 거참. 아버지한테 물려받고 이제 배당금 좀 받아볼까 싶었더니. 난 모르겠고 무조건 수익 잘 나게 해줘요. 그래야 지분 들고 있는 의미가 있죠, 안 그래요?”

류성이 피식하고 웃었다.

그게 거슬렸던 걸까.

안희찬의 표정이 조금 살벌해졌다.

“허, 뭘 그렇게 웃어요?”

“태도도 그렇고 영 좋지가 않으시네.”

“뭔 헛소리예요?”

“그쪽, 뭔가 크게 착각을 하는 모양이신데.”

“착각은 그쪽이 하는 거고요.”

“좋게 말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네요.”

“그게, 무슨…….”

“제가 들고 있는 지분만 50퍼센트가 넘어요.”

“…….”

“안희찬 씨, 당신 동의 안 받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해가 되세요?”

“아니, 그래도…….”

“할 말이 많으신 모양인데 제가 운영하는 방식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들고 있는 지분 팔고 가시든가요. 뭐, 시세대로 전부 주진 못하겠고 조금 싼 가격에는 사드릴 용의가 있으니까. 앞으로 수년, 어쩌면 10년 이상 수익이 안 나올 수도 있으니 차라리 시세가 나올 때 조금이라도 받고 파는 게 나을지도요?”

수년 넘게 수익이 안 나온다?

그런 지분이 가치가 있을까.

안희찬은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감지했다.

“그, 그래도 한국 극장 지분인데…….”

“아, 다른 곳에 팔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오늘 바로 기사가 나갈 겁니다. 앞으로의 한국 극장 운영방식에 대해서요. 아마 제값을 주고 사려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안희찬의 표정이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지분 몇 퍼센트 들고 있다고 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참고로 수익이 나도 배당금은 당분간 지급할 생각이 없습니다.”

“뭐, 뭐라고요? 배당금도 안 준다고요?”

“배당금으로 쓸 여력이 어디 있습니까. 이게 전부 한국 극장을 위한 일이니 이해 바랍니다.”

안희찬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순간이었다.

[한정 퀘스트 발동!]

갑자기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한국 극장의 지분을 사들여라!]

[한국 극장의 지분을 들고 있는 안희찬은 유일하게 수익이 나오는 사업 모델을 폐기한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수익이 나도 배당금조차 지급하지 않겠다는 말에 남아 있던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졌다.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손에 들린 지분을 팔고 싶어 한다. 그러니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매입하라. 저렴하게 매입할수록 보상 또한 증가한다.]

[남은 시간 : 무제한]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상당히 재밌는 퀘스트였다.

싸게 살수록 이득이라?

류성은 내심 웃으며 안희찬을 쳐다봤다.

“어쩌실래요? 들고 있는 지분, 그거 팔려면 파시고.”

“그, 그게…….”

“싫으면 됐습니다.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

50%가 넘어가는 지분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성이었다. 한 마디로 류성이 한국 극장을 어떻게 운영하던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적어도 한국 극장에 있어서는 왕이나 다름이 없었다. 흔들릴 일이 없는 절대적인 지위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익도 나지 않을 한국 극장의 지분을 굳이 사려는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찾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정말 열심히 찾다 보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극장 지분은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도 아니었으니까. 오랫동안 발품을 하며 돌아다녀야 그나마 판매할 가능성이 생기리라.

그렇기에 안희찬은 지금, 현재. 절대적으로 약한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아뇨, 생각할 것도 없네요. 굳이 지분을 더 매입할 이유가 없어서 말이죠.”

확실히 류성의 말대로였다.

그는 지분을 매입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버린 안희찬이었다.

“파, 팔게요. 팝니다! 95프로, 시세의 95프로 가격에 팔게요!”

“안 삽니다.”

“90프로, 90프로에 팔게요.”

“됐어요.”

“그, 그럼 89프로라도…….”

“필요 없습니다.”

“으, 으으……!”

류성은 그 사내를 보며 마지막 기회를 줬다.

“그렇게 팔고 싶어요?”

“그, 그럼요!”

“시세의 80퍼센트 정도 가격이면 살 의향이 있습니다. 팔 겁니까?”

“예? 아무리 그래도 80퍼센트는 조금…….”

“그럼 더 할 얘기 없습니다.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 조용히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요. 아, 다음에 저한테 연락할 때는 80퍼센트로는 안 될 겁니다.”

“예……?”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은 떨어질 겁니다. 그러니, 고민도 짧게 하시길.”

아주 무서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자리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젠장.”

안희찬은 풀이 죽은 표정으로 카페를 빠져나갔다.

인사도 없이 말이다.

노인 네 명은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쯔쯧.”

류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 네 분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이 좀 거칠었죠?”

“허허, 괜찮아요.”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사람에게 현실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수익성은 분명 떨어질 테니까요.”

“그래, 그렇겠지요.”

“하지만 가치는 지금에 비할 바 없이 증가할 겁니다. 예전 충무로 거리까진 안 되더라도 그 향기를 느낄 정도로는 만들어보겠습니다.”

노인 네 분의 표정에 추억이 서렸다.

그리움이랄까.

즐거움을 회상하는 듯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충무로 거리라…….”

“10년 전만 해도 충무로 하면 영화, 극장의 거리였지. 그때가 좋았어.”

“좋았지, 정말로.”

“그때의 향기라…….”

노인이 류성을 쳐다봤다.

“믿어도 되겠어요? 아니, 이 질문도 필요가 없겠군요. 좋아요, 내 믿어보지요.”

“감사합니다.”

류성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조금 이르지만 점심 드셔야죠, 같이.”

“좋네, 허허.”

“기대해도 되겠지요?”

“그럼요. 아주 맛있는 정식으로 대접하겠습니다.”

“바로 가세나.”

생각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민설린과 민성욱, 그리고 노인 네 분을 모시고 류성이 가장 인상 깊게 먹었던 최고의 한정식 식당으로 향했다.

“한우 수라상을 추천해 드릴게요.”

“나는 그걸로 하겠네.”

차려진 음식을 음미했다.

역시……!

언제 먹어도 환상적이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머, 맛이…….”

“어때요?”

민설린이 놀란 듯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류성을 쳐다봤다.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 상태였다.

“너무…… 맛있어요.”

“그렇죠?”

“이런 곳이 있었다니.”

제대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허허, 녹는구나, 녹아.”

“얼마 만에 이렇게 먹는 건지…….”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충무로 거리, 기대하겠네.”

“네, 들어가세요.”

민설린이 할아버지 네 분을 모시고 멀어졌다. 그 뒤를 따르려는 민성욱을 따로 불러냈다.

“성욱아, 지분 말이야.”

“안희찬 지분이요?”

“그래, 그거. 네가 사는 건 어때?”

그 말에 민성욱이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래도 돼요?”

“안 될 건 없지.”

“저야 너무 좋지만…….”

“그럼 네가 사라. 난 어차피 쓸모가 없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 지분을 들고 있어야 너도 일할 맛이 날 거 아냐. 전에 나한테 지분 팔았으니 현금도 좀 있을 테고. 시세보다 훨씬 싸게 넘길 거 같으니까 그거 사면 나쁘진 않을 거야.”

“……형님.”

“뭐.”

“진짜 열심히 할게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매입은 내가 먼저 해야 할 거야. 너한테 넘겨준다고 그러면 괜히 더 간 보면서 시간을 끌 수도 있으니까.”

“알아서 해주십시오!”

“그래, 앞으로도 잘해보자.”

“네, 형님!”

“일단 카페로 가자.”

“카페요?”

“그래, 할 말도 더 있고.”

민성욱을 데리고 RS건물 1층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는 이미 마셨으니 초코라떼를 주문했다.

“이제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이르면 다음 주 중에 공모전을 하나 개최해볼 생각이다. 물론 안희찬이란 사람이 지닌 지분 매입이 우선이겠지만.”

“공모전이요?”

“그래.”

“호, 혹시 시나리오 공모전 말입니까?”

“맞아.”

민성욱의 눈이 커졌다.

“아, 그래서였군요.”

“음? 뭐가?”

“시나리오 이야기를 왜 이렇게 안 꺼내나 했거든요. 저는 형님이 시나리오 구매해서 영화 제작에 착수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아아, 그럴 수 있지. 좀 늦게 알려줬지?”

“하하, 아뇨. 전혀요. 전 지금 너무 좋아서 미칠 거 같은데요?”

“그 정도냐?”

“그럼요! 시나리오 공모전이라니……! 최근 조각 공모전도 제가 유의 깊게 보고 있었다구요!”

참으로 에너지 넘치는 녀석이었다.

“그러면 공모전에 당선된 좋은 시나리오로 바로 영화 제작에 돌입하는 건가요?”

“그래야지.”

“그걸 한국 극장에 상영하면……!”

“괜찮겠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이에요. 대박!”

“오버하기는.”

“오버 아니에요, 진짜 대박인데……!”

“그래, 알았어. 아무튼, 시나리오 공모전 요강 작성하게 되면 부를게. 최대한 알아보고 하겠지만 그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 현장에서 오래 지낸 만큼 네 도움이 필요할 거야.”

“네, 꼭 가겠습니다!”

이야기도 마무리했으니 일어날 시간이었다.

“오늘 조각 공모전 시상식이 있어서 말이야, 이만 가봐야겠다.”

“네, 수고하십시오!”

“그래, 한국 극장으로 바로 갈 거냐?”

“네, 가서 일해야죠!”

“고생해라.”

“예, 형님!”

류성은 남은 음료를 마신 뒤 2층으로 올라갔다. 부사장 및 직원들과 함께 미리 대관해 놓은 호텔 연회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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