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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159화 (159/277)

< 작사가 류성(1) >

멋들어진 호텔 연회장 내부에서 조각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최우수상을 타셔서 그런지 소감도 멋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을 장식할 상이죠?

차례대로 상을 받은 조각가들이 사회자 뒤쪽에 있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걸린 미소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대상은 12간지를 훌륭하게 표현해 주신 박형찬 조각가님입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연회장을 채운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짝짝짝-

큰 호응을 받으며 단상으로 올라선 박형찬 조각가.

그의 눈 끝이 파르르, 떨렸다.

-먼저 상패 받으시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전방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 많이 떨리네요. 살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솔직히 대상이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정신이 조금 멍한 상태네요.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약간은 횡설수설하지만, 진심이 담긴 소감이었다.

-다만…… 포기했을지도 모를 조각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조각가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지금 이 순간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RS재단을 향한 고마운 마음으로 저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이사장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의 시선이 류성에게로 향했다.

허공에서 얽히는 눈동자.

류성은 묘한 감정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짝짝짝-

다시금 쏟아지는 박수 세례가 뜨거웠다.

-네, 이것으로 조각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겠습니다!

류성은 단상에 오르지 않았다.

시상식이었으니까.

오늘의 주인공은 상을 탄 조각가들이었다.

* * *

조각 공모전 시상식이 끝났다.

시간은 오후 3시 40분.

짧은 행사였지만 생각보다 피로감이 강했다.

“시간도 애매하고 다들 오늘은 여기서 마치죠. 조각 판매는 내일부터 천천히 진행하고요.”

“아, 네. 근데…… 여기서요?”

“네, 정리는 가는 길에 제가 하면 되니까요. 바로 퇴근하면 됩니다.”

“정말요?”

“네, 정말요. 싫으면 회사 가서 5시까지 일할까요?”

“아, 아뇨! 아니에요!”

“퇴근하는 거, 완전 좋습니다!”

“이사장님, 최고예요!”

직원들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인사를 했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봅시다.”

“네, 들어가세요!”

“부사장님은 저랑 가시죠, 같은 동네니까요.”

“저야 감사하죠.”

그렇게 부사장과 함께 사무실에 들러 뒷정리만 조금 하고서 하늘 보육원으로 향했다.

원장님을 데려다주면서 오랜만에 아이들 얼굴도 볼 수 있었다.

“우와, 아저씨다!”

“앞으로 삼촌이라고 부르라니까.”

“헤헤, 네, 아저씨!”

“어휴, 녀석.”

아이들의 이 순수함이란.

언제 봐도 좋았다.

류성은 아이들과 30분 정도 웃고 떠들며 놀았다. 애들이 워낙 많아서 체력보다는 정신적으로 살짝 지쳐갈 즈음, 도유종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 학교에 푸드트럭을 보내주신다고 들었어요.”

“아아, 맞아.”

자연스럽게 아이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조용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힘들어하는 애들이 많거든요. 무시당하는 애들도 많고요.”

“음, 그래. 그런 거 같더라.”

도유종의 표정에 서글픔이 서렸다.

류성은 분노가 어렸고.

그러나 둘은 서로를 보며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서글픔도 분노도.

서로를 바라보며 녹인 것이다.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아무래도 애들은 그런 거에 약하거든요. 물론, 그래도 괴롭히는 녀석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내가 달라지게 만들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 그보다 너는?”

“저요?”

“너도 누가 괴롭힌다거나 그러진 않고?”

“고등학생 정도 되면 괜찮아요. 생각보다 애들도 착하고요, 오히려 걱정해 주는 친구가 더 많거든요.”

“그건 다행이네.”

“초등학생, 중학생 때가 좀 힘들었죠.”

“으음……!”

방향성이 조금씩 잡혔다.

초, 중학교라.

물론 그렇다고 어느 한 부분에서도 허술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힘든 이야기일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애들 잘 부탁하고 문제 생기면 알지? 바로 연락해. 안 하면 화낼 거니까.”

“네, 그럴게요.”

“나한테는 숨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요.”

“든든하네.”

도유종의 어깨를 툭툭, 가볍게 두드렸다.

“애들 기다리겠다. 가자.”

“네.”

다시 아이들과 놀아줬다.

30분 정도 더.

그제야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열심히 놀았다.”

혼잣말을 들은 걸까.

한애라 원장님이 풋 하고 웃었다.

“고생했어요.”

“아, 들으셨어요?”

“네.”

“하하……”

“저는 이제 저녁 준비할 건데, 먹고 가실래요?”

“오늘은 동물병원에 가볼까 싶어서요.”

“동물병원이요?”

“네. 키우는 고양이가 있는데 체력이 영 부실한 거 같아서……”

“그럼 어서 가보셔야죠.”

“네, 그래야겠네요.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인사하는 소리가 들린 걸까.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아저씨, 가요?”

“응.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히잉……!”

“다음에 또 올게.”

“진짜죠? 빨리 와야 해요!”

“그래, 금방 올게.”

“약속!”

“자, 약속.”

그제야 아이들이 류성을 놓아줬다.

“안녕히 가세요!”

“안녀어엉!”

“오냐, 다음에 보자.”

귀여운 인사를 받으며 보육원을 나섰다.

뭐라고 해야 할까.

에너지가 회복된 기분이었다.

* * *

동물병원에 들러 럭키의 건강검진을 받았다. 주말 동안 신나게 놀아주고 나니 생각보다 럭키의 체력이 저질이란 걸 깨달은 탓이었다. 혹시나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아닐까 싶어서 확인차 들렸다.

“결과 나왔네요.”

“어떤가요?”

“아주 건강한데요?”

“후아, 다행이네요.”

그때 럭키가 갑자기 류성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음, 왜 이러지?

슬쩍 놓아주니 냥냥거리며 수의사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엉덩이를 깔고 앉더니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애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예뻐라.”

“……아니, 너.”

“왜요?”

“아, 저한텐 저런 표정 지은 적이 없거든요.”

“어머, 그래요?”

“네. 뭔가 상처인데요?”

수의사 선생님이 럭키를 만지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교가 정말 많네요. 참, 주기적으로 검진은 꼭 받아주세요. 고양이들이 특히 아픈 티를 안 내는 애들이라서요.”

“반년마다 와야겠네요.”

“그러면 최고죠.”

“기왕 온 김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류성은 이번 기회를 틈타 가장 궁금하던 한 가지를 질문했다.

“럭키, 산책시켜도 될까요?”

“산책이요?”

“네. 고양이도 산책시키면 좋다는 말이 있어서요.”

“되기는 해요, 근데 고양이는 분명한 영역 동물이거든요. 웬만하면 그냥 집에서 지내는 게 좋아요.”

“아아, 그렇군요.”

“아주 가끔 산책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보이기는 해서, 확답은 못 드리겠네요. 분명한 건 위험요소가 생각보다 많다는 거예요.”

“위험요소라면, 어떤 거요?”

“아이들이 갑자기 다가온다거나 강아지나 길고양이와 마주친다거나. 자전거나 자동차가 근처를 빠르게 달려간다거나. 그러면 하네스를 아무리 단단하게 착용해도 벗고 도망칠 수가 있거든요.”

“으음……!”

“아시죠? 고양이 액체설.”

그 말에 류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액체설.

정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액체설, 잘 알죠. 진짜 그 작은 공간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참. 가끔은 뼈가 없는 건 아닐까 싶다니까요.”

“신기한 동물이죠.”

“뭐, 아무튼 산책은 어렵겠네요. 혹시라도 하네스 벗고 도망가면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무엇보다 확실히 럭키한테 위험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추천하진 않아요.”

“아쉽지만 별수 없죠.”

산책 대신, 앞으로도 꾸준히 조금씩 놀아주는 거로 방향을 잡았다. 주말에는 솔직히 너무 과하게 놀아준 감이 있었으니 하루 30분 정도면 충분하리라.

“감사합니다.”

“뭘요.”

“그러면 다음에 또 올게요.”

“네, 들어가세요.”

럭키의 검진 비용을 내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럭키, 아까는 대실망이었어.”

냐아아아?

“나한테는 그런 눈빛 안 보내잖아.”

냐아앙!

“흐음, 너도 남자라 이거지?”

냐아, 냐아!

“……짜식. 그래도 보는 눈은 있네.”

집에 도착해 럭키를 가방에서 꺼냈다. 병원에 다녀왔다고 나름 피곤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해먹 위로 올라가 골골거리며 휴식을 취했다.

“그래, 쉬어라.”

류성은 방으로 들어가 웹소설 두 편을 작성한 뒤,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흐음.”

그러고 나니 시간이 8시였다.

이제부터는 자유였다.

해야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자유.

“후아, 좋다……!”

침대에 누워 여유로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0분 정도 지나자 이상하게 지루하고 심심해졌다.

그래도 움직이진 않았다.

너부러진 자세 그대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째깍째깍-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꿈틀.

류성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순간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머릿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철옹성 같은 문을 두드렸다.

쿵, 쿵쿵!

류성이 멍하게 있는 짧은 틈을 탄 강력한 공격이었다.

세게, 더 세게.

두드리는 기이한 힘에 결국 틈이 생겼다. 틈은 서서히 벌어졌고 끝내 거대한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아……!”

영감이 찾아온 것이다.

재능 ‘시인이 보는 세상’은 권태로움이라는 소재로 어느새 한 편의 시를 만들어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벌떡.

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빠른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열고서 바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난 안개 속에 갇혀]

[유영하듯 나아가]

[어느새 잃어버린 길목에서]

[나 홀로 외로이 서 있네]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세상이 현실화되었다.

권태로움, 지루함.

그것은 곧 외로움이 되고 쓸쓸함에 더해졌다.

그런 가사였다.

처절한 외로움을 홀로 외쳐대는.

어느새 가사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간 억지로 묶어뒀던 각종 영감이 단번에 해방되며 류성의 뇌리를 자꾸만 자극했다. 다시금 떠오른 세상을 문장으로 다듬어 만들어나갔다.

[손을 내밀어준 너에게]

[용기 내어 다가간 한 걸음]

[마주친 눈빛]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

이번 주제는 ‘함께’였다.

너와 함께라 외롭지 않은 사랑스러운 노랫말이었다.

“후아……!”

두 번째 가사까지 순식간에 만들었다.

“……또?”

그런데 곧이어 세 번째 가사가 생각났다.

이게 말이 되나?

그러면서도 류성의 손은 이미 움직이는 중이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서 완성한 세 번째 가사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이었다.

“으어, 머리야.”

작업을 끝낸 순간 찾아온 두통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제 끝이겠지?

잠깐 기다려봤는데 다행스럽게도 더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아, 십년감수했네.”

만약 다시 영감이 떠올랐으면 아마 머리가 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정도로 두통이 강하게 왔다. 물론 금방 가라앉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보다 가사 세 개라.”

이걸 전부 마이유에게 보내야 하나.

흐음, 아니야.

세 개의 가사를 전부 주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최근에 이미 두 개의 가사를 주기도 했으니까.

이번에는 처음처럼 공모전에 넣어보기로 했다. 새로운 가수가 불러주는 가사 또한 들어보고 싶었으니까.

“괜찮지, 상금도 있고.”

곧바로 작사 공모전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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