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목표(2) >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 할머니가 반겼다.
“아이고, 똥강아지들 왔어?”
“할머니이이!”
“오냐, 그래.”
여전히 정정해 보여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여기 선물이요.”
“뭔 선물이여.”
“하이고, 필요도 없는걸.”
“신발이에요. 앞으로 이거 신고 다니세요.”
“신발?”
“네. 엄청 편한 거예요.”
편하다는 말에 두 분이 관심을 보이셨다.
“조금 있다가 신어보세요.”
“흘흘, 그려, 그려.”
“잘 신으마.”
그렇게 모두 집으로 들어갔다.
후우, 대충 됐네.
짐을 가장 빨리 푼 류성이 거실로 슬쩍 나왔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거실에 있었다.
“허허, 편하구먼.”
“그러게 말이여.”
“안 그래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불편했는데.”
“아이고, 말을 허지.”
“나이 들면 그런 거지, 뭘.”
“크흠, 아무튼…… 좋구먼.”
두 분이 신발을 신은 채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기쁘면서도 뭐랄까.
묘한 저릿함이 가슴에 전해졌다.
스윽.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아오, 겨우 다 정리했네.”
괜히 큰소리를 내면서 짐을 정리하는 척했다.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거실로 나왔다.
“짐은 다 정리했고?”
“네, 할머니.”
두 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즐거운 듯한 표정을 눈에 담으며 뒤로 이동했다.
“어깨 주물러 드릴까요?”
“으응? 좋지.”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가볍게 물었다.
“요즘 몸은 어떠세요?”
“괜찮어, 아주 좋아. 아이고, 시원해라.”
그래도 지난 추석에 노화 회복 물약을 먹여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어디 아픈 곳 생기면 바로 알려줘요.”
“요즘 몸이 너무 좋아서 탈이여.”
“그럼 다행이구요.”
“작년에 검진을 받었는디, 의사 선상님도 놀라더라고.”
“그랬어요?”
“그려, 그러니 걱정 말어.”
마침 류환이 나왔다.
류성은 바로 동생을 불렀다.
“빨리 와.”
눈짓하자 의도를 파악한 류환이 할아버지 뒤로 이동했다.
“할아버지, 저도 안마해 드릴게요.”
“그려, 좋지.”
그렇게 두 분의 뭉친 어깨를 풀어드렸다.
늙으셨구나.
손끝으로 전해지는 왜소함이 자꾸만 서글프게 다가왔다.
꾸욱, 꾸욱.
더 건강하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 싶었다.
방법은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의 노화 회복 물약을 먹이면 된다. 등급이 높은 만큼 효과 역시 훨씬 뛰어날 테니까. 그걸 두 방울씩 먹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훨씬 더 건강해질 터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했다.
* * *
잠깐 거실 소파에 기대어 상점을 확인했다.
[기타]
1. 미래시(소모성)
필요 선행 포인트 : 150
2. 치료제(하급)
필요 선행 포인트 : 100
3. 체력 강화 물약(최하급)
필요 선행 포인트 : 50
4. 피로 회복 물약(최하급)
필요 선행 포인트 : 20
5. 노화 회복 물약(하급)
필요 선행 포인트 : 200
6. 운명의 타로카드(3회)
필요 선행 포인트 : 500
7. 미래 정보 확인권(3회)
필요 선행 포인트 : 300
8. 랜덤 기타 물품
-재능과 재화를 제외한 각종 다양한 것들이 무작위로 지급된다.
필요 선행 포인트 : 100
노화 회복 물약은 하급이었다.
그러니 중하급 이상을 새롭게 얻어야 했다.
그래야 효과가 있을 테니까.
음? 잠깐만.
꼭 노화 회복 물약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3번 물품, 체력 강화 물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먹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 순간 류성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사야지.
곧바로 3번을 선택했다.
[3번 물품 ‘체력 강화 물약(최하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네’를 선택하자 50포인트가 소모되었다.
그리고 얻은 체력 강화 물약.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한테만 사용하기로 했다. 노화 회복과는 달리 물약 자체가 양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에 타서 먹이는 게 최고의 방법이니 저녁 시간까지는 기다려야 할 거 같았다.
그때, 타이밍을 잘 노려야겠지.
계획을 세우면서 다시 상점 물품을 눈에 담았다.
“흐음.”
어라, 그러고 보니.
7번 물품이 눈에 들어오면서 또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미래 정보 확인권이 아직 1회가 남은 상태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건…….
적당한 시기가 다가올 때까지 조금만 더 아껴두기로 했다.
* * *
저녁이 되기 전에 친척이 전부 모였다.
일부는 한복을 입고 왔다.
덕분에 명절 분위기가 한껏 더 올라왔다.
“자, 그럼 세배는 다 끝난 건가?”
“아뇨! 저 못했어요!”
“저두요!”
“아이고, 그랬어? 어여 와.”
“네!”
끝났다 싶었던 새해 인사가 다시 이어졌다.
“할아부지, 할머니!”
“오냐.”
어린 조카 둘의 세배가 시작된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받으세요오!”
“허허, 그래. 현아랑 현우, 둘 다 올해 건강하게 잘 지내고.”
“네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네!”
“그려, 그려. 그러면 이제 세뱃돈 받아야지.”
“히히, 고맙습니다!”
“우와! 3만 원!”
“아껴 써야 한다.”
“네, 할아버지, 할머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아!”
아직 조카 둘의 나이가 8살밖에 되지 않아 세뱃돈이 크지는 않았다. 물론 그래도 한동안은 풍족하게 쓸 수 있을 돈이었지만.
“저, 삼촌한테도 할래요!”
“저두요!”
“어? 우리한테도?”
“네에!”
“어어, 그럼 그럴까? 좀 어색한데.”
“허허, 귀엽겠구먼. 받아봐.”
친척 어른들의 권유에 류환, 류현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 한번 해봐.”
“히히.”
“오빠도 빨리 와! 우리한테도 세배한대!”
“그래.”
류성, 류현아, 류환.
셋이 자리에 앉자 어린 조카가 다가와 세배를 했다.
“헤헤, 삼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오!”
원래는 당숙이 정확한 호칭이지만 예전부터 삼촌으로 통일을 한 상태라 그렇게 불리는 상태였다.
“그래, 현아랑 현우도.”
“네에!”
덕담을 대충 하고서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냈다.
5만 원짜리가 많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2만 원씩을 줬으니 그보다 많은 돈을 주는 건 조금 꺼려졌다. 그래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각각 건넸다.
“자, 여기 세뱃돈.”
“여기도!”
“나도, 여기 받아!”
류현아과 류환은 각각 만 원씩 쥐여줬다.
“우와아!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오!”
“그래, 저금도 하고.”
“네에!”
기분 좋은 아이들의 인사가 끝났다.
“자, 그러면 이제 저녁 먹을까.”
“아, 잠시만요.”
“응? 왜 그러니, 성아?”
“지금 선물 전해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그래, 괜찮겠구나.”
그 대화에 친척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갑자기 무슨 선물?”
“그냥 가볍게 선물 하나씩 샀거든요. 가지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환이, 현아. 같이 가자.”
“오케이!”
선물이 얼마나 되기에 셋이서 움직이는 걸까.
친척들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하지만 답을 해주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섰다.
“반응 기대된다, 그치?”
“좋아들 하겠지.”
“당연하잖아, 명품도 많은데.”
가볍게 수다를 떨면서 차량으로 이동해 트렁크에 담긴 선물 가방을 양손 가득 안고서 다시 돌아왔다.
“허어, 엄청 많구나.”
“그럼요.”
엄청난 선물 주머니를 보며 친척들의 눈이 커졌다.
“우와, 오빠 내 것도 있어?”
“당연하지.”
“형, 내 것도?”
“다 있어, 다.”
그렇게 차례대로 선물을 전달했다.
“삼촌, 선물.”
“허허, 고맙다.”
사실 백부나 숙부로 불러야 하지만 이 또한 어릴 때부터 삼촌이라 부르는 것에 익숙해진 터라 그냥 지금도 그렇게 호칭을 하고 있었다.
“고모는 가방!”
“어머, 이거…… 비쌀 텐데!”
“작은 삼촌은 구두!”
“허어, 아니, 명품 구두 아니냐?”
“당연히 명품이지.”
이어서 사촌 형, 누나, 그리고 동생에게도 선물을 나눠줬다.
“완전 최고!”
“이야, 진짜 잘 쓸게.“
“고마워!”
“우와아아, 완전 대박!”
다들 표정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선물을 나눠줬다.
다만, 그 와중에도 기쁜 듯 표정이 조금 굳어 있는 사촌 여동생이 보였다.
류혜나였다.
슬쩍 그녀를 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퀘스트 등장!]
[사촌 여동생의 걱정]
[집안 형편이 썩 좋지 않은 사촌 여동생, 류혜나. 고3이라 열심히 수능을 준비하고 있으며 성적까지 좋게 나오는 상태다. 하지만 쉽사리 어느 대학교에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 등록금 걱정 때문이었다. 최근 더욱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고민이 깊어진 상태다. 사촌 여동생의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하라.]
[남은 시간 : 1일.]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 시 변비에 걸립니다.]
퀘스트가 등장했다.
아……!
그리고 저 묘하게 가라앉은 우울함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학교 등록금이라.
막무가내로 친척들을 도울 생각은 없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어른들이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촌 여동생 한 명의 등록금 정도는 충분히 내줄 수 있었다.
류성은 잠시 고민하다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펜과 노트를 찾았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이런 선물도 괜찮을 거 같았다.
예전 생각나네.
보육원 아이에게 편지를 받았던 게 떠올랐다.
“……정말 좋았는데.”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도록.
소중하지만 큼지막하게 글자를 적었다.
그걸 예쁘게 접었다.
들고 나가서 구석에 앉아 있는 류혜나에게 다가갔다.
“자, 이것도 선물.”
“응?”
“내년에 대학교 가잖아. 아닌가?”
“치, 맞거든. 내 나이도 모르냐?”
“크흠, 그냥 확인한 거지. 아무튼, 이것도 받아. 미리 대학 선물 주는 거니까.”
“편지네.”
류혜나가 바로 편지를 풀었다.
글자가 눈에 박혔다.
<대학 등록금 찬스>
동공이 서서히 흔들리더니 고개를 들어 류성을 쳐다봤다.
“오, 오빠? 이게 뭐야?”
“뭐긴, 선물이라니까.”
“그…….”
“등록금 걱정하지 말고 가고 싶은 대학교, 원하는 학과로 선택하면 돼. 장난 아니니까, 알겠지?”
슬쩍 녀석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릴 적엔 더 친했는데.
요즘 통 연락을 안 하고 지내기는 했었다.
워낙 바빴으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조금 더 친척들을 챙겨보기로 했다.
내 주위 사람부터.
그래야 다른 이들을 돕는 것에 더 당당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싫은 건 아니지?”
“아, 아니야.”
“그러면?”
“……너무 좋아서. 고마워.”
류혜나가 편지를 다시 고이 접었다.
그리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다짐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뭐, 그런 다짐 말이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하급 랜덤카드가 지급됩니다.]
[선행 포인트 5점을 획득합니다.]
퀘스트 보상을 슬쩍 쳐다보며 류성은 어느새 친척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뒤를 이어.
조용히 있던 류혜나도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허허, 이번에 그랬다니까.”
“진짜요?”
“그럼, 게다가…….”
평화로운 명절이었다.
* * *
저녁을 먹을 때였다.
스윽.
할머니 할아버지를 주시하던 중, 기회가 포착되었다.
물이 다 떨어진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비어 있는 물컵을 들었다.
“물 갖다 드릴게요.”
“밥 먹지 않고.”
“거의 다 먹었어요.”
더 말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보리차를 잔에 따르며 주변을 훑었다. 아무도 없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고서 체력 강화 물약을 물잔에 떨어트렸다.
두 잔의 물에 정확히 반병을 사용했다. 나머지 반병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 사용해야 했기에 남겨놓았다.
두 잔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드세요.”
“고맙구나, 허허.”
자리로 돌아가 두 분을 주시했다.
어서 드시지.
설마 다른 사람이 마시진 않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때 드디어 할아버지가 물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이제 할머니만 마시면 되는 상태였다.
“잘 먹었습니다.”
“더 안 먹고?”
“완전 배불러요, 할머니.”
“그려, 쉬다가 허기지면 말혀. 먹을 거 많으니께.”
“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을 마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류성이 슬쩍 입을 열었다.
“할머니, 제가 떠온 물인데 마시면서 드세요.”
“으응? 그럴까.”
그제야 할머니가 물을 마셨다.
후우, 다행이네.
그제야 마음을 놓은 채 남은 음식을 깔끔하게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