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학금 >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였다. 두 분은 안절부절못한 채 거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음? 일어났어?”
“네, 근데 뭐 하고 계세요?”
“아녀, 뭔가 몸이 이상해서.”
“이상하다뇨?”
류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력 강화 물약을 먹였는데 그게 이상할 수가 있나.
혹시 무슨 문제가?
걱정스럽게 쳐다보는데 할머니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뭔가 움직이고 싶다고 해야 하나? 요상하게 기운이 나네, 그려.”
“아…….”
그 말에 괜히 웃음이 그려졌다.
“기운 나면 좋은 일이네요.”
“그렇지, 그렇긴 헌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여.”
“괜찮을 거예요.”
“허허, 그려. 할 일도 없는데 산책이나 나가볼까.”
“같이 갈까요?”
“아이고, 손주랑 산책이라니. 좋지.”
“할머니도 가요.”
“그려, 그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집 뒤에 있는 낮은 산을 가볍게 거닐었다. 30분 정도 걸으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경치를 보며 웃었다.
“후우, 좋구나. 이게 얼마 만인지.”
“왜요?”
“허허, 최근 체력이 좀 떨어진 느낌이었지. 근디 오늘은 묘하게 힘이 나네.”
“나도 그런디.”
“오랜만에 애들이 와서 그런가.”
앞서 나가는 두 분을 보며 류성이 미소를 머금었다.
효과가 확실하네.
최하급 체력 강화 물약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물약을 더 구해야겠어.
재능도 재능이지만 [기타] 물품을 조금 더 활용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았다. 이번에 포인트가 적당히 모이면 일부는 재능 구매, 그리고 일부는 기타 물품 구매에 사용하면 될 거 같았다.
“공기 너무 좋네요.”
“참말로 좋지.”
충분히 경치를 감상한 뒤에 산길을 내려갔다.
“어이구, 얼마 전에만 해도 힘들었는디.”
“괴상허네, 정말.”
“예전에도 그랬던 거 같은디.”
“저번 추석 말하는 겨?”
“그려, 그때도 손주 녀석들 봐서 그런지 다들 그 이후로 기운이 넘쳤잖어.”
“그랬지, 그랬어.”
“거, 참. 생각할수록 신기하구만, 그래.”
이야기를 듣는 류성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게 다 물약 덕분이에요.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인내하면서 두 분과 걸음을 맞췄다.
* * *
순식간에 시간이 지났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그려, 자주 와.”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까 간간이 찾아뵐게요.”
“참말이여?”
“네, 진짜로요.”
“그려, 그려.”
할머니,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리자 어색하게 서 있던 류혜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어, 그…… 고마워.”
“또 그 얘기.”
“그래도.”
어색한 듯한 류혜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뭐, 그래. 아무튼 이제 대학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열심히 공부해 봐.”
“으응.”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인생은 원래 걱정이 99퍼센트고 현실은 그저 고요한 법이니까.”
“아…….”
“웬만한 사건은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나갈 거라는 얘기야. 혹시라도 그게 안 될 정도의 큰일이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고. 요즘 통 연락도 없더만.”
“……공부한다고 바쁘니까.”
“아무튼.”
“치, 알았어.”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으응.”
사촌 형, 누나, 그리고 동생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친척 어른들과도.
이후 차를 타고 외가로 이동했다.
“벌써 왔네.”
“내리자, 다들.”
차에서 내리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반겼다.
“어여 와.”
“배는 안 고프고?”
“먹고 왔어요.”
“그려, 그려. 들어오더라고.”
거기서도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거나 줬다. 이후 친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아니, 이거 비쌀 텐데…….”
“잘 쓰마.”
“형, 완전 최고!”
저녁을 먹을 때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게 체력 강화 물약을 먹이기 위해 혼자 한 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다.
“휴우.”
두 분이 물을 마실 때의 그 기쁨이란.
생각보다 스릴이 넘쳤다.
“오늘따라 기운이 넘치는구먼.”
“그래도 조심해, 영감.”
“알았다니까, 거참.”
“어휴, 저러다 쓰러지지, 쓰러져.”
덕분에 두 분의 하루가 달라졌다.
“아니, 할멈도 기운 나지 않아?”
“나긴 허지.”
“흘흘, 그렇다니까.”
“그래도 조심혀.”
“알았어, 알았다고.”
한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반복해서 이어졌다.
“조심하라니께.”
“알았다니까.”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기분이기도 하지만.
뭐, 아무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좋았다.
마음 따뜻한 설날이었다.
* * *
집으로 가는 길에 럭키를 데리러 갔다.
냐아아앙!
오랜만에 만나서 좋은 건지 럭키가 류성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애교를 엄청나게 떨어댔다.
“그래, 그래. 미안. 혼자서 심심했지?”
“집에 가서 놀자.”
럭키를 가방에 넣어 차로 향했다. 뒷자리에 탑승한 류현아가 곧바로 럭키를 가방에서 꺼내줬다.
냐아아앙!
쏜살같이 튀어나온 럭키가 류현아에게 안기더니 골골송을 불렀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히히, 귀여워.”
“얌전하네.”
“응, 어차피 차 안이니까 괜찮지?”
“그래, 뭐.”
류성도 슬쩍 럭키를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경치도 구경하고.
사실 힘든 것도 없어서 그냥 놀다가 온 기분이었다.
잘 쉬었네.
이제 다시 일상을 보내면 될 거 같았다.
어느새 도착한 집.
냐아아아.
럭키가 기분 좋게 해먹 위에 올라갔다.
“짜식.”
슬쩍 쳐다본 뒤 다들 각자의 짐을 정리했다.
“후아, 그럼 좀 쉴게!”
“난 친구 만나러.”
어느새 모든 것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스윽.
류성도 침대에 누워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계좌나 볼까.
종목명 : 파인애플
매입금액 : 217,391,304달러
수익률 : 37.09%
평가손익 : 80,630,434달러
총평가 : 298,021,738달러
생각 이상으로 수익률이 높았다.
대략 8천만 달러.
“……900억 정도인가.”
도대체 얼마나 오른 건지.
서둘러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은 파인애플 종목을 누르자 차트가 떠올랐다.
“허어.”
그냥 매일매일 상승하고 있었다.
엄청난 힘이었다.
슬쩍 파인애플 정보권을 다시 체크했다.
[파인애플의 주가가 연일 상승하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그러나 파인애플은 매일 사상 최대 시총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2월 25일, 결국 파인애플 시총이 4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전 세계의 감탄과 경악 속에서도 파인애플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이제 목표까지 얼마 나지 않았다.
“코앞이구나.”
생각의 정리를 마쳤으니 비축분이 꽤 줄어든 ‘별품매’를 쓰기로 했다. 재능 ‘글근육’을 사용하자 3시간 만에 2만 자가 넘어가는 글이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오케이, 만족.
편수로 따지면 4편 정도였다.
“흐음.”
그보다 웹툰은 언제 나오려나.
여전히 문토피아 매출은 좋은 편이지만 사실 이 정도 수익은 간에 기별도 오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냥 취미생활, 딱 그 정도.
하지만 웹툰은 많이 기다려졌다.
그때부터 또 다른 시작일 테니.
전 세계로 웹툰이 번역되어 나가기 시작하면 수입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비율이야 당연히 낮은 편이지만 웹툰 매출 자체가 급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기대해도 되겠지.”
타로카드를 믿기로 했다.
그때 분명.
무수한 돈에 파묻혀 왕좌에 앉을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왔었으니까.
* * *
하루하루 몸 상태가 좋아졌다.
“마사지 끝났습니다.”
“후우, 고맙습니다.”
“그럼 내일 또 뵐게요.”
“네.”
대답한 한석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활 훈련을 끝마치고서 샤워를 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섰다.
호텔에 도착하자 맛있는 식사가 가득 차려졌다. 편안한 생활이 이어진 덕분인지 몸 상태가 정말 좋아졌다.
“……확실히 달라.”
예전에는 온몸이 아팠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기운도 넘치고.
무엇보다 몸이 가볍다는 게 체감되었다.
“좋구나.”
이제는 봉사를 나갈 시간이었다.
밥을 먹고 호텔 정문으로 나서자 차량이 약속한 시각에 맞춰 다가왔다. 병원 측에서 제공한 의료용 차량이었다.
“자, 갑시다.”
“네, 선생님.”
곧 도착한 목적지에는 이미 번듯한 임시 진료실이 완성된 상태였다.
이 또한 병원이 해준 일이었다.
이제는 직접 천막을 칠 필요도 없었다.
“허허…….”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상태였지만 이런 대우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훨씬 편하고 좋기는 했으니까. 진료를 보는 것도 편했고 환자 역시 치료를 받기 수월해졌다.
다만, 조금 어색할 뿐이었다.
문득 한 사내가 떠올랐다.
젊은 이사장.
류성이라고 했던가.
그의 노력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웠다.
기쁨의 연속이었다.
계속 이대로, 지금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이고, 요즘 배가 통 아파서…….”
“잠깐 눌러볼게요.”
“윽…….”
“많이 아프세요?”
“네, 선상님. 많이 아프네요.”
“어제 뭐 드셨어요?”
“어제,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대충 꺼내 먹었는디…….”
각종 도구를 활용해 진료를 보고.
진단을 내렸다.
그리고 적당한 약을 처방하기까지.
모든 게 수월했다.
“그럼 몸조심하시고요.”
“선상님, 고맙습니다. 약 열심히 먹을게요.”
“네, 그러면 금방 나을 겁니다.”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한석호.
그에게는 이런 게 행복이었다.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었다.
* * *
오랜만에 모교인 대국 고등학교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게 얼마 만이냐.”
“죄송해요. 자주 찾아뵈어야 했는데.”
“괜찮다, 괜찮아. 요즘 바쁜 거 다 알고 있는데, 뭘.”
김창호 선생님이 류성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하긴.
RS재단의 이름으로 후원을 하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으리라.
“좋은 일 많이 하더라.”
“네, 그렇게 됐어요.”
“보기 좋아. 일단 들어와라.”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선생님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모두 류성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이했다. 일일이 인사를 나눈 뒤에야 김창호 선생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어쩐 일이냐.”
“그냥 인사도 드릴 겸 찾아왔죠. 설이었잖아요. 잘 보내셨죠?”
“그럼, 아주 잘 보냈지.”
“이건 선물이에요.”
“응? 뭐하러 이런 걸 준비했어.”
“생각이 나더라구요.”
“허허, 그래. 고맙구나.”
선물 가방을 받은 선생님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스포츠 운동화에요. 아직도 족구하시죠?”
“그럼, 대회도 나가고 있다.”
“잘됐네요. 족구할 때 편하실 거예요.”
꽤 좋은 브랜드의 족구화였다.
“녀석…….”
그에 감동한 듯 김창호 선생님이 말을 흐렸다.
좋긴 하지만.
그래도 오래 이어가기 어려운 어색함이었다. 낯도 간지럽고 해서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보다 아이들은 어때요?”
“아이들?”
“네, 잘 지내고 있나 싶어서요.”
“당연하지. RS재단에서 후원해 준 덕분에 아이들 표정이 아주 밝아졌어. 신경이 쓰이던 학생이 있었는데 최근 고민이 줄었는지 성적도 많이 올랐고.”
“그래요?”
잠깐 고민하던 류성이 입을 열었다
“혹시 여기 장학금은 있나요?”
“지금은 없지.”
“그러면 제가 후원할게요.”
“정말이냐?”
“네. 내신 성적이 가장 좋은 아이랑 모의고사 성적이 제일 좋은 아이, 그리고 누가 봐도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이상하게 잘 안 나오는 아이까지. 이렇게 장학금을 주면 괜찮을 거 같아서요.”
“괜찮구나.”
“추가로 가정형편 어려운 아이한테도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충분히 가능해.”
“대신 확실한 기준이 있어야겠죠.”
“그래야지.”
“그러면 이건 선생님이 책임지고 처리해주세요. RS재단이랑 잘 협의해 주시고요.”
“알겠다, 그러마.”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누가 장학금을 받을진 모르겠지만 부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가기를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