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167화 (167/277)

< 오랜만이네요 >

모교에서 나오니 오후 4시 30분이었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곧바로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뒷정리를 부탁했다.

“일찍 퇴근해도 좋고요.”

-알겠어요.

“그럼 고생하시고요.”

-네, 내일 뵐게요.

통화를 끊고 집 근처 헬스장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을 한 뒤 곧바로 근력운동에 돌입했다.

“후읍, 후우……!”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에 이제 류성의 몸은 상당히 탄탄했다. 운동기구를 조작하는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고 이완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갈 때.

찌릿-

기묘한 감각이 솟구쳤다.

희열 같기도 하고.

자극이 극한에 이르렀는지 쥐어짜는 듯한 간질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마지막 스퍼트를 시도했다.

“후읍, 후욱! 끄으윽……!”

마지막 한 번을 더 끌어올린 뒤 동작을 멈췄다.

터엉!

기구가 자리로 돌아가며 큰 소리를 냈다.

한껏 팽창한 근육을 확인했다.

근육이 극한까지 자극받을 때의 그 감각이 참으로 맛있었다.

“허허, 헬스인이 다되셨네요.”

“아, 오랜만입니다.”

“네, 요즘 시간대가 잘 안 맞았네요.”

“그러게요.”

아직도 많이 말랐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한결 살집이 붙은 남성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보건복지부 사무관, 김일영이었다.

“제가 보조해 드리죠.”

“고맙습니다.”

보조를 받으며 운동을 진행했다.

번갈아 가면서.

자세도 서로 조금씩 봐줬다.

“옛날 생각나네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아, 그때…….”

“제가 바벨 들다가 놓쳤을 때 도와줬었죠.”

“네, 그랬었죠.”

꽤 오래전 이야기였다.

퀘스트가 떴었지.

그날, 도와주면서 안면을 트게 되었고 이후 재단설립에 큰 도움을 받았다.

여러모로 인연이었다.

“음, 여기선 좀 더 허리를…….”

“아하, 감사합니다.”

“뭘요.”

“요즘 재단도 잘 운영하시더군요. 정말 보기 좋습니다. 제가 그 재단설립에 도움을 줬다는 게 뿌듯하더군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실없는 수다를 떨며 운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가지 운동을 마친 뒤 류성은 마무리 스트레칭에 돌입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네, 들어가세요.”

헬스장을 나서 걸어가던 중이었다.

“어, 어어……!”

오른쪽 길로 막 몸을 틀어 진입하던 순간 다가오던 사람과 부딪혔다. 오피스룩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들고 있던 산더미 같은 짐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엇, 괜찮으세요?”

“아아, 네. 으…….”

류성은 서둘러 떨어진 서류와 책더미, 그리고 물건들을 주웠다. 넘어졌던 여성 또한 몸을 일으켜 짐을 챙겼다.

“고맙습니다.”

“아, 네. 근데 짐이 너무 많으신데 도와드려요?”

“어, 그…….”

고민하는 여성을 바라봤다.

도와줘야겠네.

그런 의지를 담는 순간, 오랜만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퀘스트 등장!]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짐을 들고 간다면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목적지까지 짐을 함께 들어주어라!]

[남은 시간 : 30분.]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 시 날파리가 입에 들어갑니다.]

뭔가 썩 기분 좋지 않은 듯한 페널티를 흘려 읽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안 멀면 도와드릴게요.”

“아, 그럼…… 너무 감사하죠.”

“어디까지 가세요?”

“한 3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은행까지요.”

“가깝네요, 가시죠.”

“고맙습니다.”

그녀의 짐을 절반 이상 나누어 들었다.

가볍게 발을 맞췄다.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아, 그…… 짐이 많죠?”

“네. 왜 혼자 들고 가시는지.”

“신입이라서요.”

“으음.”

아무리 신입이라도 조금 과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각자의 삶이 있을 테니까.

제삼자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다.

“도착했어요, 여기에요.”

“그럼 수고하세요.”

“네, 정말 고마웠어요!'

인사를 받으며 짐을 그녀에게 넘겨줬다. 은행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고서 류성도 몸을 돌렸다.

[퀘스트 클리어!]

[정산 중……]

[정산 완료.]

[최하급 랜덤 카드를 획득합니다.]

[선행 포인트 2점을 획득합니다.]

오랜만에 얻는 소소한 보상이었다.

* * *

밤 11시에 생방송을 시작했다.

“오랜만이죠? 가하!”

미리 공지를 올려둔 덕분에 대기하던 사람들이 한 번에 우르르 모여들었다.

“이야, 순식간이네요.”

5분 만에 1,000명이 넘어갔다.

엄청난 숫자였다.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하는 네임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탕 : 기다렸습니다! 요즘 진짜 하루하루 파인애플 수익률 보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아윌럽 : ㅋㅋ진짜 행복!

길드 : 수익 나면 후원할게요ㅎㅎ

짝발 : 크, 차트 보여주세요!

주린잉 : ㅎㅎ진짜 이렇게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는데

철인27호 : 그 말도 안 되던 얘기가 현실이 될 줄이야!

힐러 : 지금 난리났음ㅋㅋ

류성은 시간을 체크하면서 대답했다.

“난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긴 하죠. 구경이나 해볼까요?”

아직 본장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투자와 관련된 게시판에 들러 분위기를 훑어보기로 했다.

[정보꾼 방송 켰다!]

[보러 가자!]

[고고고고고!]

[ㅋㅋ 아 근데 진짜로 파인애플이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는데]

[나도ㅎㅎ 벌써 40프로 올랐나?]

[ㅇㅇ 정보꾼이 말하고 정확히 43프로 올랐음.]

[그때 50프로 간다고 했었지?]

[시총이 4조 5천억까지 올라간다고 했었지]

[원화로 5천조ㅋㅋㅋ]

[그땐 진짜 헛소리라고 피식하고 웃었는데... 이제 코앞이네ㅎ]

[결국 정보꾼이 이겼구만]

[20프로 오르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여겼었는데...ㅠ]

[나도 살걸ㅠㅠ]

[안 샀음?]

[ㅇㅇ 절대 무리라고 생각해서...]

[하, 나도ㅋㅋ]

[젠장, 눈물 난다ㅠㅠ]

류성은 게시글을 보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흐흐, 다들 재밌는 분들이시네요.”

사실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그저 믿고.

조용히 따라온 일부 사람들이 대단할 뿐이었다.

“자, 그럼 기다리면서 차트도 한번 보겠습니다.”

화면에 파인애플 차트를 띄웠다.

재능이 차트를 파악했다.

가성의 선이 인지되고 차트의 흐름이 자연스레 분석되었다.

“음, 많이 오르긴 했네요. 지금 시총이 4조 3천억 달러 정도죠? 차트 흐름으로 분석해보면 이제 꺾일 때가 온 거 같습니다. 오늘부터 분할 매도로 대응할게요. 지금까지 따라오신 분들, 끝까지 믿고 오세요.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수익을 내야 할 때입니다.”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알탕 : 드디어 왔군요ㅋㅋ

짝발 : 아쉽지만 여기까지!

주린잉 : 시키는 대로^^

물론 일부는 반발하기도 했다.

지능 : 오르는 애가 더 오르죠! 아직 팔기에는 이른데 매도 분위기 만드시네ㅠㅠ

능지 : ㅇㅈ 시총 5조 달러는 가야지! 나스닥은 무조건 계속 오른다고요!

처참 : 어휴, 또 욕망 덩어리 납셨네ㅎ

알탕 : 욕심이 과하면 후회만 할 뿐...^^

지능 : 어휴 답답! 더 간다니까요!

굳이 반박하지도, 대응하지도 않았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

“자, 본장 시작됐네요. 저는 매도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좌를 확인했다.

종목명 : 파인애플

매입금액 : 217,391,304달러

수익률 : 43%

평가손익 : 93,478,260달러

총평가 : 310,869,564달러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얼마야, 이게?

빠르게 계산을 해보니 수익금만 1천억 원이 넘어갔다. 원금까지 더하면 대략 3,600억 원이었다.

“그럼 분할로 매도하겠습니다.”

먼저 100억 원에 달하는 파인애플 주식을 던졌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

대량의 매도물량이 튀어나왔으나 가격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물량을 흡수하더니 조금씩 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아주 좋네요. 덕분에 제 물량은 물론이고 시청자분들 물량도 무난하게 집어삼킨 거 같습니다. 이러면 뭐, 저야 좋죠.”

류성은 웃으며 다시 매도를 이어갔다.

이번에는 200억.

100억에 이어서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이 투하되자 파인애플 주가가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매수세가 다시 한번 류성의 매도물량을 단번에 집어삼켰다.

“크흐, 힘 좋네요.”

이번에는 300억을 매도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매도가 체결되었습니다.]

연이은 매도세에 주춤하는 정도가 강해졌다.

상승세가 살짝 꺼진 기분.

안 그래도 고점이었던 터라 힘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류성은 알고 있었다.

[2월 25일, 결국 파인애플 시총이 4조 5천억 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전 세계의 감탄과 경악 속에서도 파인애플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이틀 뒤, 결국 시총 4조 5천억 달러를 달성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적어도.

1,000억 원까지는 매도할 생각이었다.

“자, 조금 대기하겠습니다.”

수다를 떨며 기다리자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야금야금 상승하는 주가.

류성은 웃으며 다시 500억을 매도했다.

“다들 고생하셨고요, 남은 건 내일 매도하도록 할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생방송을 마무리했다.

* * *

같은 시각.

이미 투자 카페나 게시판은 정보꾼의 승리를 확정 지었다.

제목 : 오늘은 내리겠지 했는데 아니었군

제목 : 이제 ㅇㅈ 내가 졌다ㅋㅋ

제목 : 말이 안 되지만,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났음

제목 : 정보꾼이 미국 세력 아님?ㅋㅋ

제목 : 진짜 그래도 안 이상할 수준이네ㅎㅎ

제목 : 허허, 허허허...

제목 : 웃음만 난다ㅠㅠ

제목 : 후, 지금이라도 따라서 타야 됨?

제목 : 절대 노노, 지금은 늦었음

제목 : 욕심 난다고ㅠㅠ

정보꾼은 이미 네임드였다.

모두가 알고 있는 팩트.

하지만 그래도 모든 상황에서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각자의 가치관.

그리고 주관적인 생각이란 게 있으니까.

거기에 어긋나면 아무리 네임드라도 일단 의구심을 표하기 마련이었다.

정보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 가지가 달라졌다.

제목 : 정보꾼은 그냥 신이다

제목 : 받아들이자, 이제ㅎㅎ

제목 : 지금 상황에서 정보꾼이 파인애플 시총 10조 달러까지 상승한다고 하면?

제목 : 무조건 믿어야지, 그냥

제목 : 판단이나 생각을 불허하는 수준임ㅎㅎ

제목 : ㅇㅈ

제목 : 분명 정보꾼도 실수나 실패를 하겠지. 근데 분명한 건 그래도 나보다는 성공한 삶을 살 거라는 사실ㅋㅋ

제목: 그러니 뒤라도 쫓아가야지!

제목 : 가즈아아아!

제목 : 난 파인애플 샀지롱^^

초네임드에서 또 한 번 진화했다.

슈퍼 네임드로.

한 줌의 의심조차 불허하는 투자의 신으로 인지되기 시작했다.

* * *

아침에 일어나니 문자 한 통이 날아와 있었다.

어, 이 사람은……

‘방송작가’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사람. 예전에 ‘개미도 수익을 낸다’는 주식 프로그램에 꼭 출연해달라고 연락했던 사람이었다.

최민정이었던가.

아직도 이름이 기억날 정도였다.

무슨 일이려나.

팝업창에 떠오른 알림을 누르자 내용이 떠올랐다.

[방송작가 : 안녕하세요, 가면남님! 오랜만이에요, 혹시 저 기억하실까요? 개미도 수익을 낸다의 최민정 작가입니다! 요즘 생방송 열심히 보고 있는데요, 최근 단타도 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혹시나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지 궁금해서 메시지 남깁니다ㅠㅠ. 바쁘지 않으실 때 전화 한 통 꼭 부탁드릴게요!]

류성은 고민하다가 일단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여, 여보세요? 가면남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와, 엄청나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작가님은요?”

-저도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저, 그…… 혹시 말이에요.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으실까요?

“방송 출연하는 거 말씀이시죠?”

-네!

“흐음. 글쎄요.”

나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나가야 할 이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띠링!]

갑자기 퀘스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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