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정산(2) >
가만히 홀로그램을 음미하던 중이었다.
“어라?”
이상한 부분이 보였다.
[소아병동의 키다리 아저씨!]
[소아병동 아이들 치유 진행 정도를 파악합니다.]
[파악 완료.]
[하급 랜덤 카드를 습득합니다.] x2
[선행 포인트 16점을 획득합니다.]
하급 랜덤 카드 보상이 무려 두 번이었다.
“이야, 대박인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종의 대박이 터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늘만 하급 랜덤 카드를 3장이나 받았다. 그간 모아둔 것도 있고 최근 파인애플 주식도 정리했으니 더는 카드 사용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자, 그럼……!”
오랜만에 손맛을 좀 느껴보기로 했다.
일단 확인부터.
그간 모아둔 카드가 생각보다 많았다.
[랜덤 카드 현황]
-중상급 랜덤 카드 1장
-중급 랜덤 카드 1장
-하급 랜덤 카드 4장
-최하급 랜덤 카드 1장
등급이 높은 체력 물약이나 노화 회복 물약이 나오면 정말로 좋을 거 같았다. 아니면, 그에 비견되는 다른 무언가라던가.
이번 설을 보내고 나니 역시 사람은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했다고나 할까. 물론 생각대로 나와줄 일은 없겠지만서도.
“일단 까볼까.”
류성은 거실 해먹에 누워 있는 럭키를 안아 들었다.
냐아?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빤히 쳐다보는 럭키를 품에 안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쌓아 올린 뒤 등을 기댄 채로 앉았다. 일단 최하급 랜덤 카드를 먼저 뽑아보기로 했다.
“자, 가보자고.”
럭키의 앙증맞은 분홍색 발바닥으로 허공에 있는 가상의 카드를 선택했다. 물론 럭키의 손은 홀로그램을 그저 통과할 뿐이었다. 류성의 튀어나온 손가락이 카드를 고른 것이지만 함께 한다는 게 중요했다.
“와라……!”
확대되듯 다가오는 빛나는 카드.
이윽고 결과가 떠올랐다.
[꽝입니다.]
슬쩍 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럭키를 쳐다봤다.
“흐음, 럭키가 요즘 운이 없어졌나.”
냐아아아?
“혼자 해봐야겠네.”
럭키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냐아? 냐아아!
뭔가 화난 듯한 녀석을 무시한 채 손을 뻗었다.
이번엔 하급 카드였다.
선택된 카드가 형체를 만들어갔다.
[하급의 ‘재능’ 카드를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예술가의 감각’을 획득합니다.]
[재능을 떠올리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구적인 재능이라 상점에 갱신되지 않습니다.]
괜찮은 재능을 얻게 되었다.
“역시…….”
아무래도 럭키 없이 혼자 카드를 뽑는 게 더 나은 거 같았다.
일단 확인부터.
서둘러 재능을 체크했다.
[예술가의 감각]
[물건이 지닌 예술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 그 수준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물건의 예술적 가치.
혹은 예술 계통에서 일하는 이들의 행위.
“뭐, 연기나 노래, 이런 건가?”
이건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바로 너튜브에 접속했다.
먼저 RS재단에서 개최한 조각 공모전을 검색했다. 그러자 다양한 영상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걸 재생했다.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한 모든 조각상을 차례대로…….]
영상에 나타나는 조각을 확인하자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으음, 이런 느낌이구나.”
본래는 대상과 최우수상 정도만 구분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압도적이었으니까.
그 아래 우수상, 장려상, 그리고 특선은 가늠하기가 모호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얻은 재능 덕분인지 뭐가 그나마 더 낫고 어떤 게 부족한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우수상이구나.”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감상했다.
충분한 이해와 납득의 시간을 가졌다.
다음으로 최신 음악을 들어봤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려오는 노래와 영상미에서 전에 비할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다.
“으음……!”
어떤 생각으로 작곡을 한 건지.
왜 이런 가사를 쓴 건지.
그리고 어떤 의미를 담아 영상으로 제작한 건지. 적지 않은 것들이 감각적으로 전해졌다. 그것은 정보가 되어 류성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좋은데?”
예전에는 애매하다고 느꼈던 부분이 색다르게 전해졌고 기존에는 진부하다고 느껴졌던 것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후우.”
음악의 여운이 꽤 깊었다.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배우들이 나와 연기하는 장면이나 연기를 가르치는 영상을 짧게 감상해 봤다.
“역시…….”
짧은 연기에서도 많은 게 느껴졌다.
이런 능력이라면……!
류성은 흥미로 물든 눈을 반짝이며 이번 시나리오 공모전을 떠올렸다.
재밌겠는데?
이번에 새롭게 얻은 재능 ‘예술가의 감각’이라면 굳이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반적인 수준 정도는 파악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물론 정확한 점수나 평가는 역시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사용하는 게 훨씬 나을 테지만 말이다.
“오디션도 마찬가지고.”
이제는 연기자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좋았다.
병풍이 되어 멍하니 참가만 하는 게 아니라 연기를 보고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지극히 만족스러운 보상이었다.
흐흐, 그러면 더 뽑아볼까.
류성은 밝게 웃으며 다시 하급 랜덤 카드를 선택했다.
핑그르르-
무수하게 돌아가는 물음표로 가득한 세상에서 시선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하나의 카드를 선택했다. 밝은 빛을 발산하며 다가오는 카드.
[하급의 ‘물품’을 택했습니다.]
[보상으로 ‘알 수 없는 조각’을 획득합니다.]
[‘알 수 없는 조각’이 2개 모였습니다.]
[3개가 모이면 특수한 보상을 얻습니다.]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보상이었다.
“허어, 오늘 무슨 날인가?”
비록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1개만 더 모으면 특수한 보상을 얻을 수 있게 되니 결코 나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기대되었다.
언젠간 나오겠지.
그날 특수한 보상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자, 그러면 하나 더.”
다시 하급 랜덤 카드를 선택했다.
[꽝입니다.]
이번에는 꽝이었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이미 만족스러웠으니까.
그래도 하나만 더 나와주길 바라면서 네 번째 하급 랜덤 카드를 사용했다.
[꽝입니다.]
류성은 턱을 쓸어내리며 나머지 두 장의 카드를 확인했다.
[랜덤 카드 현황]
-중상급 랜덤 카드 1장
-중급 랜덤 카드 1장
중급과 중상급이 각 1장씩 남은 상태.
아직 기회는 있었다.
이번에는 중급 랜덤 카드를 사용했다.
[꽝입니다.]
그제야 류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아, 이러면 아쉬운데.”
행운이 처음에만 왔던 걸까.
흐음.
슬쩍 고개를 숙여 배를 드러낸 채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럭키를 쳐다봤다.
“태평하네, 짜식.”
그래,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같이 가보자.”
럭키를 품에 안고서 마지막 남은 중상급 랜덤 카드를 사용했다. 럭키와 함께 카드 하나를 선택하자 엄청난 빛이 내리꽂히더니 류성의 눈앞으로 두루마리가 생성되었다.
“아……!”
두루마리 형상에서 이미 감이 왔다.
[증시 악재 정보권을 획득합니다.]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다만.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 풍기는 ‘악재’라는 단어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묘한 긴장감을 간직한 채로 럭키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짧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쳤다.
촤르륵.
도대체 어떤 정보가 적혀 있을지.
[다가오는 3월 25일, 주춤하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다시 얼굴을 치켜들었다. 두 국가의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글자가 나열되었다.
[3월 29일, 감정싸움은 활화산처럼 번져 전 세계를 강타했다. 세계 강대국이 서로 간에 무역전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보다 훨씬 더 과격한 관세 부과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먼저 중국산 제품 1,700억 달러 규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세계 증시가 크게 휘청거렸다.]
글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4월 2일, 중국은 크게 반발하며 미국 제품에 보복성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지지 않겠다는 듯, 관세를 30%로 상향하며 무역전쟁을 가열시켰다.]
[4월 7일, 러시아는 자국 에너지의 수출을 축소하겠다고 공표했다. 유럽 국가와 아시아 국가들이 들고 일어나며 해당 발언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해당 선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에너지 관련주가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러운 인플레이션 징조가 찾아왔다. 세계 증시가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빠져들었다.]
정보는 딱 거기까지였다.
“으음……!”
언제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정보가 없었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그간 아껴두고 있던 미래 정보 확인권을 사용하면 될 터였다. 물론 시기를 아주 잘 정해야겠지만 말이다.
[미래 정보 확인권(1회)]
미래의 어느 날을 지정하여 해당 날짜에 올라온 주식 및 코인 관련 인터넷 기사 20개를 확인할 수 있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순서대로 나열된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이걸 사용하고서도 쓸모없는 정보만 획득할 가능성도 있었다.
“신중해야겠네.”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민에 잠겼다. 일단 정보의 활용가치는 아주 뛰어난 편이었다.
하락 베팅.
그러니까 인버스 ETF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터였다.
“그래, 돈은 벌어야지.”
생각을 이어가면서 정보권과 날짜를 대조했다.
그렇게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다음 날, 약속 시각에 맞춰 J엔터테인먼트 본사에 도착했다.
“이야.”
생각보다 건물이 멋들어졌다.
디자인도 멋있고.
하지만 류성이 지닌 건물에 비하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 괜히 혼자서 뿌듯함을 느끼며 정문으로 이동했다.
-여보세요?
“도착했습니다.”
-지금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곧바로 황진형 대표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류성 작사가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자, 들어가시죠.”
황진형은 류성을 보며 반갑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에는 의문이 차오른 상태였다.
“근데, 어디서 뵌 적이 있던가요?”
“글쎄요.”
“으음. 묘하게 낯이 익어서 말이죠.”
그 말에 류성은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조각 공모전이라도 보셨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굳이 나서서 드러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착각인가 보네요. 일단 들어가시죠.”
“네.”
안으로 들어가자 황진형 대표가 회사 내부를 짧게 구경시켜 줬다.
“여기는 데뷔조가 춤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사람이 있네요?”
“네, 한창 연습하는 중이겠네요. 한 번 보실래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대표의 허락을 맡고서 복도에서 연습실 내부를 눈에 담았다. 대형을 갖춘 채 춤을 추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보였다.
“이제 곧 데뷔할 아이들이죠.”
“그렇군요.”
어려 보이는 여성 걸그룹이었다.
먼저 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명, 한 명의 춤선이 가장 먼저 인지된 것이다. 보는 순간 누가 제일 실력이 좋은지도 알 수 있었다.
“어때 보입니까?”
“춤 실력이 좋네요.”
“그래요?”
“네. 특히 제일 뒤에 있는 사람이요.”
류성의 말에 황진형의 눈이 빛났다.
“춤을 볼 줄 아시는군요.”
“전문적인 건 아니고요. 그냥 느낌으로 보는 거죠.”
“그래도 대단한데요?”
조금 더 구경하다가 이동했다.
“여기는 작업실입니다.”
“이야, 멋있네요.”
“하하, 제 자부심이 깃든 공간이죠.”
멋들어진 곳이 꽤 많았다.
“여기는…….”
“오호. 그렇군요.”
“이곳에서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당연하게도 대표실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볼까요?”
작사 계약을 위해.
서로 간에 필요한 것들을 조율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