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호점 >
이미 마이유와 계약을 진행하면서 류성의 몸값은 작사 업계에서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 그러니까…….”
“해당 조건으로 이미 두 번이나 계약을 한 터라 그보다 못한 조건에 굳이 계약할 이유는 없어서요. 기왕이면 전보다 조건이 더 좋았으면 싶고요.”
“그, 그렇군요.”
아무리 대단한 J엔터의 대표라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황진형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업계 최고라…….”
류성은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몇 번 상황을 곱씹던 황진형은 이내 류성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군요.”
“괜찮습니다.”
“음, 본래라면 거절하는 게 맞겠지만…….”
뒷말을 흐리는 황진형의 모습에서 이미 결과가 예상되었다.
“이번엔 예외로 해야 할 거 같군요.”
“어째서일까요?”
“이 정도 대우를 해드려도 여러모로 이득일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특히, 그 가사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도저히 놓치고 싶지가 않네요.”
가사 칭찬이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하기도 하고.
괜히 말을 꼬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계약서 주시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3대 엔터라 불리는 J엔터와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것도 마이유와 계약했을 때보다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말이다.
“근데 작사가님.”
“네.”
“정말로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없나요?”
“없습니다.”
마지막까지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군요, 아무튼 계약은 검토해보시고 연락해 주십시오.”
“네, 그럴게요.”
류성은 계약서를 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토요일.
평화로운 봄날의 오후였다.
* * *
초록 포털 사이트에서 홍보가 시작되었다.
사이트 상단 중앙에 떡하니 떠오른 메인 배너 광고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 혹은 글을 취미로 쓰는 사람들, 전문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까지 말이다.
[와, 초록 포털 봤어요? 시나리오 공모전 대박!]
[독립 예술 영화네요ㅎㅎ]
[상금이 미쳤던데요?]
[취미로 글 쓰는 중인데 한번 참여해 볼까요?ㅋㅋ]
[오, 좋을 듯!]
[다 같이 도저어언!]
[상금 규모가 말이 안됨ㅎㅎ]
[RS재단? 저기가 어디예요?]
[최근 조각 공모전으로 이슈되었던 곳이요!]
[아, 거기...!]
[네, 좋은 일도 많이 한다네요ㅎㅎ]
[오, 좋네요. 전 또 사기인 줄ㅋㅋ]
RS재단에 관심이 있던 이들 사이에서는 시나리오 공모전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나 일반 대중은 아니었다.
[와, 영화로도 제작하네요?]
[어라, 그러네요!]
[한국 극장? 크, 옛날 생각나네ㅋㅋ]
[지금은 뭐, 한물갔죠ㅠㅠ!]
[좀 아쉽긴 하죠, 영화나 연극이라고 하면 그냥 압도적으로 충무로 거리였는데!]
[아직도 극장이 있긴 하죠?]
[있음. 죽어가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뭐...ㅎㅎ]
[연극이나 보러 갈까ㅋㅋ]
[에이, 그래도 요즘은 xx거리가 더 활발하죠]
[오, 감사요!]
[암튼 기대되네요, 과연ㅋㅋ]
[나중에 영화 제작되면 보러 갈게요^^]
[한국 극장, 체크!]
관심이 생각 이상으로 컸다.
기사도 꽤 많이 났고.
덕분에 일반인들까지 나서며 공모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선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삶을 적어라!
-삶을 글로써 나타나는 당신을 위하여
1. 상금
대상 - 500,000,000원(1작)
최우수상 - 300,000,000원(3작)
우수상 - 100,000,000원(5작)
장려상 - 50,000,000원(10작)
특선 - 30,000,000원(30작)
2. 특전
상을 탄 모든 작품은 RS재단에서 영화 제작을 위한 투자에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시 최우선 순위권을 갖는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원한다면 영화 제작비용을 전액 부담하며 그에 관한 권리를 서로 나누어 갖는다. 제작된 영화는 최우선으로 '한국 극장'에 상영되며 다른 대형 영화관에 상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
일단 상금에서 압도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몇 번을 봐도 끝내주네요]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죠ㅎㅎ!]
[관심 집중!]
[꾸준히 지켜보겠습니다, 파이팅!]
매우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대중의 점잖은 반응에 비교되는 또 다른 부류가 존재했다.
바로, 예비 감독들이었다.
* * *
한국대학교 4학년,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있는 졸업반 김영화. 이름처럼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감독이 꿈인 학생이었다.
“흐음, 시나리오 공모전이라.”
최근 졸업용 단편 영화를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찾는 중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눈에 들어온 공모전이었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라, 여기구나. RS재단.”
게다가 최근 이슈가 된 재단이었다.
조각도 보러 갔었는데.
친구랑 조각 공모전을 구경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밌었다.
일단 주최 측은 믿을 만한 곳이었다.
“어디 보자…….”
공모전 모집 요강을 천천히 읽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영화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이게?”
시나리오를 쓰는 친구에게 얼핏 듣기는 했었다.
이번 공모전이 대박이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상금도 들었었다.
그러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모집 요강 아래.
QnA를 보는 순간 김영화의 눈이 절반 정도 돌아갔다.
“미친, 이게 진짜라고?”
이건 시나리오 작가만을 위한 공모전이 아니었다.
[QnA]
Q. 영화 제작을 위한 감독 섭외 여부는?
A.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예비 감독 및 신인 감독을 위주로 뽑고 싶다. 기존 감독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니까.
Q. 전액 영화 제작비를 지원한다는 게 사실인가?
A. 사실이다. 원한다면 모든 비용을 지원할 것이다.
Q. 저작권의 경우 시나리오 작가가 가지게 되는데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제작을 거부한다면?
A. 저작권은 당연히 시나리오 작가의 몫이다. 영화를 제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도 당연히 불이익은 있을 수 없다.
김영화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미쳤다, 미쳤어……!”
이게 진짜라면 예비 및 신인 감독들에겐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도저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빨리……!
서둘러 영화 감독을 위한 포털 사이트 카페에 접속해 게시글을 뒤적거렸지만 최근 며칠 내로 관련된 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좋았어!”
그는 서둘러 해당 내용을 정리했다.
[제목 : 급보! 이번에 RS에서 개최하는 공모전 보셨나요?]
[본문 내용 : 저 대학 졸업반이라 올해 안으로 영화 하나 단편으로 제작해야 하거든요. 근데 쓸 만한 시나리오가 없어서 한 달 넘게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있었는데, 시나리오 공모전이 마침 딱 열렸네요? 그것도 엄청난 규모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