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176화
115. 고양이 할머니
류성은 병원을 나서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늘 사용하려고 했던 노화 회복 물약이 든 자그마한 병이 만져졌다.
“흐음.”
오늘은 뭔가를 먹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네.”
일단 병원을 옮기기 전날 다시 찾아올 생각이었다. 옮긴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하루 전에는 물약을 먹어야 효과가 있을 테니까.
그 정도만 해도.
여러모로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하 2층입니다.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주차장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량으로 다가갔다. 운전석에 탑승한 뒤 스마트폰을 꺼내어 조작했다.
[목적지를 설정합니다.]
[안내하겠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은 뒤 운전을 시작했다.
부와아앙-
이번에 도착한 곳은 조금은 외진 낯선 동네였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다 보니 편의점이 나왔다. 거기서 적당한 음료수를 하나 산 뒤에 걸음을 옮기며 미리 뚜껑을 땄다.
타악.
그리고 노화 회복 물약을 한 방울 넣었다.
주머니에 고이 넣고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여긴가?”
어느새 도착한 곳.
녹색 대문 앞에서 동그란 손잡이를 들었다가 내렸다.
쿠웅, 쿠웅!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뉘슈?”
그러자 안에서 소리를 듣고 나온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RS재단에서 나왔어요, 할머니.”
“아레스?”
“네, RS요.”
“그, 머시기 돕는다는 곳?”
“맞아요.”
“일단 들어와.”
“네, 할머니.”
문을 넘는 순간부터 고양이 세상이 펼쳐졌다.
냐오오오.
마당을 돌아다니는 십여 마리의 고양이가 보였다. 마치 모델처럼 워킹하며 다가오는 녀석들.
갸르릉-
두 마리가 류성의 발목에 얼굴을 비벼댔다.
“이야, 고양이들이 그냥 돌아다니네요.”
“어느 순간부터 담 넘어서 나가질 않더라고잉.”
“신기하네요. 사람도 안 가리고요.”
“애들이 순해 빠졌어, 기냥.”
할머니를 따라 이동했다.
어느새 방에 도착했는데 여기가 진짜였다.
냐아아앙?
바깥보다 더 많은 고양이가 방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진짜 많네요.”
“한, 두 마리씩 밥 맥이고 하다 보니 기렇게 됐구만. 일단 앉어.”
“아, 네.”
류성이 앉자 할머니가 물을 내줬다.
“딱히 마실 것도 없으이.”
“잘 마실게요.”
류성은 할머니를 슬며시 쳐다봤다.
확실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류성이 탐탁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어딘가 아프신 모양이었다.
“어디 아프세요?”
“끄응. 이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안 아픈 데가 어디 있나. 내 몸은 됐고. 그 아레스인지, 거기서 전화가 와서 도와준다기에 나 죽으면 얘네들이나 좀 부탁한다고 했는데. 뭘 또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랴.”
“그래도 얼굴 보고 얘기하면 좋잖아요.”
“크흠, 그래서, 보니까 어뗘?”
“대단하시네요.”
“대단하기는 무신. 다들 나보고 멍청이라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을.
길거리 고양이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그러진 않을 거예요. 저도 그렇고요.”
“상관없어. 내 인생 내가 사는 게지.”
“그럼요. 그래서 저희도 도와드리려고요.”
“그래 봐야 잠깐이잖여.”
할머니의 말에 류성이 웃었다
“잠깐 아니구요. 평생 돕겠습니다.”
“……뭐? 평생?”
“네.”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여.”
“가볍게 내뱉은 말 아니에요.”
“끄응.”
목이 타는 걸까.
할머니가 물을 마시려고 했다.
기회다 싶었다.
“이거 드세요, 비타민 음료수라서 정신이 좀 드실 거예요.”
“비타민?”
“네.”
“그려, 안 그래도 목말랐는데.”
뚜껑을 따는 척한 뒤에 음료를 건넸다.
“고마우이.”
벌컥벌컥, 들이켜는 할머니.
“크으, 달곰하니 맛있구만.”
“그렇죠?”
그때 갑자기 할머니가 자세를 바꿨다.
“그려, 아무튼. 그러면 어떻게 도울 생각인지 야그나 해보그라.”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온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거칠고 힘들게 살아왔기에.
그래서 지금 더욱 깐깐하게 류성을 살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류성은 이런 사람을 돕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거니까.
“네, 그러면 말씀드릴게요. 먼저 선택지가 있어요.”
“선택지라면 어떤?”
“고양이를 끝까지 직접 키우셔도 되고요. 아니면 정말 좋은 고양이 보호센터가 있거든요. 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고양이를 맡겨도 됩니다.”
“치아라.”
“네?”
“당연히 직접 키아야제. 내 죽기 전까지 이 녀석들이랑 같이 지내기만 하믄 된다. 더 바라는 것도 읎어.”
“그러면 직접 키우는 방향으로 해서 도와드릴게요.”
“……그랴도 되나?”
“그럼요.”
“고맙구먼. 이 녀석들 사료만 챙겨줘도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정말 소박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류성은 더 크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이미 알아볼 만큼 알아본 상태였기에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일단 집부터 옮기시죠.”
“응? 뭐시라?”
“고양이들이 살기 좋은 집으로 이사부터 시작하죠.”
“이, 이사……?”
“네. 물론 집은 RS재단 명의겠지만 평생 사셔도 되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제야 할머니의 눈가가 떨렸다.
“아니, 이건 아니여.”
“네?”
“이런 큰 도움일 줄은 몰랐제. 그냥 사료만 주고 나중에 나 죽으면 얘네만 조금 돌봐주믄 돼.”
“할머니, 이 고양이들 좋아하시죠?”
“당연히 좋아허지.”
“그럼 하루라도 더 오래 같이 지내셔야죠.”
“그거야…….”
“그러니까 제 말대로 하세요. 좋은 환경에서 오래오래 같이 지내면 좋잖아요.”
“그려도, 부담시러.”
“재단이 본래 그런 곳이에요. 그냥 애초에 이런 일을 하는 회사요.”
“……그런 곳이 있어?”
“그럼요. 검색해서 보여드릴까요?”
“크흠, 한번 보자고.”
류성은 열심히 검색해서 RS재단이 그간 해왔던 일을 보여드렸다.
“여기 기사 보이세요? 보육원에도 여러 가지 물품이랑 돈을 보내고 있고요. 소아병동에 입원한 아이들은 항상 많이 아프거든요.”
“아이고, 애들은 아프믄 안 되는디.”
“네, 그래서 병원비용도 대신 내주고 있어요.”
“허어.”
“여기 소년 소녀 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많지, 많어.”
“그 아이들도 아무 문제 없이 커갈 수 있게 후원하는 중이에요.”
“아레스인가 거기가, 그렇게 대단한 곳이여?”
“대단하진 않고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대단허지, 대단하고말고!”
“아, 하하…… 감사합니다.”
격의 없는 칭찬이어서 그런 걸까.
직설적으로 꽂혀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뿌듯했다.
“그러니까 할머니도 도움받으세요. 원래 그런 일 하는 곳이니까요.”
“그려도…… 되는 거여?”
“네, 그러셔도 돼요.”
“그려, 그려. 내 살다가……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구만.”
그 사이 고양이가 애옹, 거리며 할머니 주위로 모여들었다.
갸르릉.
하나같이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려댔다.
녀석들도 분위기를 깨달은 걸까.
“흘흘, 평소보다 더 애교질이여.”
“눈치가 빠른 동물이죠.”
“내가 그래서 살제.”
할머니는 소중하게.
부드럽게.
다가온 고양이를 한 마리씩 쓰다듬었다.
“야가 눈이 하나 읎어.”
“아…….”
“족제비한테 쫓기고 있더라고. 어떻게 알고 나한테 숨더란 말이제. 그래서 데려온 녀석이여. 지금은 여기서 대장이여, 대장. 그래서 이름도 대빵이고.”
“대빵이군요.”
“그려. 이놈은 밥을 몇 번 줬더니 어떻게 알고 제 새끼들까지 다 데리고 오더라고. 새끼 넷을 입에 물고 옮기는데 내가 참 웃겨서. 그래서 이름도 조이라고 지었어.”
“조이요?”
“그려, 엔조이.”
“아……?”
류성은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꾸욱 참았다.
“이름 센스가 남다르시네요.”
“내가 좀 그려.”
그렇게 고양이의 이름을 들었다.
“이 녀석은…….”
할머니에겐 이 모든 게 추억일 것이다.
소중한 기억.
평생을 가지고 갈 따스함.
“어쩐지 유난히 애교가 많더라고요.”
“흐흐, 그라제.”
그래서 류성은 집중해서 끝까지 들었다.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에게도 삶이 있다는 걸 느낄 뿐이었다. 그 삶의 중심에는 눈앞에 있는 할머니가 계시는 거고.
“아이고, 늙은이가 괜히 시간만 뺏었구먼.”
“아닙니다, 재밌었어요.”
“그려, 고맙구만, 정말로.”
“네. 일단 저희도 준비해야 하니까 며칠 내로 다시 연락 드릴게요.”
“그려, 그려.”
할머니와 인사를 한 뒤 집을 나섰다.
냐아아앙-
고양이들이 배웅이라도 하듯 모여들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몇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때 대빵이 나왔다.
눈 하나가 없었지만 포스는 상당했다.
냐아.
그런데 녀석이 먼저 다가와 류성의 정강이에 얼굴을 비볐다.
“만져도 되나……?”
조심스레 손을 뻗어 이번에는 손바닥에도 이마를 비볐다.
“흐흐, 녀석. 생각보다 귀엽네.”
그렇게 만져주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진짜 가봐야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서 집을 나섰다.
“다음에 또 올게요, 할머니.”
“어여 가.”
“네. 필요한 거 있으시면 바로 전화 주시고요.”
“그려.”
집을 나선 뒤 문을 밀었다.
끼이익, 타앙.
닫혀버린 파란 문이 오늘따라 조금은 서글프게 다가왔다. 마치 할머니와 세상을 단절시킨 기분이었다.
“흐음.”
하지만 앞으로 옮기게 될 새로운 집은 다를 테니까.
저벅.
그날을 그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 * *
아침에 눈을 뜬 고양이 할머니.
“으음……?”
평소처럼 팔에 힘을 주며 상체를 일으켰는데 뭔가가 달랐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몸이 좋구만.”
할머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깬 고양이들이 다가왔다.
냐아아앙-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
“그려, 밥부터 먹자.”
할머니는 고양이 밥을 챙기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고양이가 워낙 많다 보니 사료를 준비하는 데에만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특히 일부는 몸이 안 좋아서 소화가 쉬운 캔을 따줘야 했기에 더욱 손이 많이 갔다.
“아이고, 이제 캔도 얼마 안 남았네, 그려.”
그래도 이 시간이 즐거웠다.
오늘따라 유독 더.
아마도 머지않아 도움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 영향을 많이 준 모양이었다.
기분이 몹시도 좋았으니까.
“자, 묵자.”
고양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렇게 밥을 모두 주고.
가만히 자리에 서서 고양이를 눈에 담고 있는데.
“거, 참. 요상허네.”
본래라면 밥을 차려주고 나면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한참을 끙끙거렸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통증이 거의 없었다.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통증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려, 이런 날도 있어야제.”
할머니는 이내 납득하며 일상을 보냈다.
청소하고, 응가를 치우고.
고양이 털을 빗겨주고 가볍게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저녁이 찾아왔을 때.
“……정상이 아니여.”
몸 상태가 좋아도 너무 좋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이상했다.
조금은 무서울 정도여서 어제 받은 명함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네, 할머니.
“갑자기 미안허이. 몸이 좀 이상해서 말이여.”
-몸이요? 어디 안 좋으세요?
“그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그려. 꼭 죽기 전에 불꽃이라도 태우는 것처럼.”
-아…… 그, 제가 지금 갈게요.
머지않아 류성이 도착했다.
이건 그의 실수였다.
설마 물약 효과를 이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으니까.
“할머니. 병원에 가서 같이 검사부터 받아봐요.”
“그랴도 될까?”
“그럼요. 검사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치료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늦은 시각, 병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온 결과에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여기 예전 검사 기록이 있으시네요.”
“나라에서 매년 검사받으라고 하니께.”
“잘하셨어요. 덕분에 비교하기가 쉽거든요. 그때랑 상태를 나란히 놓고 보면요. 지금 몸 상태가 몇 년은 젊어진 수준이에요.”
“그랴요?”
“네, 아무 문제 없고요. 오히려 통증도 많이 줄었을 거예요. 그렇죠?”
“맞아요.”
“디스크도 좋아졌고 관절염도 괜찮아졌네요. 관리를 잘하셨나 봅니다.”
“허어.”
할머니는 검사 결과를 듣고서 류성과 함께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요상혀, 참말로.”
“뭐가 그렇게 이상하세요.”
“아무래도, 신이 있는 모양이여.”
“하하, 그래요?”
“그려,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으니. 고양이 신이라도 있는감. 두고 떠나지 말라고 선물을 준 모양이여. 내 죽을 때까정 녀석들을 위해 살아야제.”
할머니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