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177화
116. 백반집 사장님
오전 업무를 보다가 쉬는 시간이 되었다.
“자, 다들 쉬었다가 합시다.”
“아, 네!”
“그리고 부사장님.”
“네, 이사장님.”
“전 1층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고 식당 주인 한번 만나보고 올게요.”
“알겠어요, 나머지 업무는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역시 부사장님밖에 없네요.”
“당연하죠.”
믿음이 가는 한 사람으로 인해 업무가 자유로웠다. 류성은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한 뒤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이사장님!”
이후 1층으로 내려가 오랜만에 바리스타가 타주는 커피를 마셨다.
“설명해 드릴까요, 사장님?”
“좋죠.”
“코스타리카 몬테 브리사스 게이샤 옐로우 허니 원두를 사용했는데요. 해당 원두는 후르츠 칵테일, 그린 망고, 레몬 펄의 긴 여운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후르츠 칵테일, 레몬 펄이라. 망고까지.”
“네, 26클릭을 사용해서 조금은 더 거친 느낌을 살려봤습니다. 대신 맛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죠.”
“26클릭이요?”
“아, 분쇄도를 말하는 용어입니다.”
“신기하네요.”
“드셔보시면 감이 오실 겁니다.”
“네, 그럼.”
류성은 가볍게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후르릅-
그러자 앞선 설명이 머리에 콱하니 박혔다.
후르츠 칵테일, 그린 망고, 레몬 펄.
어떤 여운인지 맛으로 설명이 되었으니까.
“와우.”
“괜찮으신가요?”
“네, 정말 맛이 풍부하다고 해야 할지.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설명은 마친 이현수 바리스타가 웃으며 물러났다.
류성은 이어폰을 착용한 뒤에 너튜버를 켰다. 먹방 너튜버, 호양이 생방송을 진행 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방송에 접속한 뒤에 화면을 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했다.
[자자, 어제부터 투표 시작했고요. 오늘 결과가 나왔거든요? 그럼 지금 한번 보도록 할게요! 두구두구두구두구!]
호양이 투표창을 열었다.
[자! 어, 음……?]
‘미치도록 맛있다’에 투표한 사람이 519명.
[네, 정상입니다. 이게 맞죠. 미치도록 맛있다! 정말 많은 분이 투표를 해주셨고요. 그 아래에 있는 두 번째 문항인 ‘무난하게 맛있다’에 투표한 사람이 56명이네요. 좋습니다, 인정합니다. 근데 마지막 세 번째 문항인 ‘맛이 없다’에 투표한 분이 무려 11명이나 되네요? 이거 맞나요? 이게 맞냐고요오오!]
호양의 절규에 채팅창에 웃음이 도배되었다.
전기차 : ㅋㅋㅋㅋㅋㅋ
방무 : ㅋㅋㅋ
바버샤프 : ㅋㅋㅋ현웃!
빨대 : 아, 뿜었네ㅋㅋ
류성도 쿡쿡거리며 웃었다.
“진짜 웃기네.”
특히나 저 절망스러운 표정이라고나 할까.
연기하는 거 같은데.
그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배우 해도 되겠구만.”
잠깐 눈을 빛낸 류성이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아니, 이건 아니죠! 제가 장난삼아서 하지 말라고 했죠? 무효입니다, 무효! 지금 바로 재투표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딱 30초만 할거에요. 지금 생방송 보는 분들만 참여하는 겁니다. 아시겠죠? 자, 투표 시작!]
실시간 시청자만 1만 명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투표 참여자도 엄청났다.
[아, 마구 누르지 마세요! 진짜 커피 마셔본 사람만 눌러야 합니다! 아니면 저 또 재투표할 겁니다!]
그렇게 결과가 나왔다.
[아니, 진짜……!]
이번에도 맛없다는 곳에 투표한 사람이 11명이었다.
[왜 또 11명인데요! 이거 아니라니까아!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진짜 마지막 투표 들어갑니다!]
세 번째 투표도 마찬가지였다.
11표가 나왔다.
빨대 : 포기해랔ㅋㅋㅋ
등골휜다 : 엌ㅋㅋㅋ
불빛 : 이거지ㅋㅋㅋㅋㅋ
안경닦이 : 진짜 맛없었나 본데? 11명은?ㅋㅋ
리모컨 : 이 정도면 찐이다!
마이크로 : 거짓 없는 듯? 맛없다는 사람이 늘거나 줄면 장난인 거지만 계속 11명이 투표하는 정예 : 이건 맞다, 이제 재투표ㄴㄴ
마우스 : 여기까지!
채팅의 여론이 정해졌다.
이제는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 11명. 네, 11명이라 이거죠? 좋습니다. 이건 뭐 계속 동일한 숫자가 유지되니 거짓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네요. 네, 인정합니다. 정말 특이한 입맛인 사람도 있겠죠. 그럼요, 세상이 참 넓으니까요. 자, 그러면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1주일간 들어오는 모든 후원금을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아, 물론 같은 후원금액만큼 제 사비도 추가해서요!]
그 순간이었다.
[띠링!]
류성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퀘스트 발동!]
[추억을 부르는 돈쭐!]
[먹방 유튜버 호양TV가 1주일간 쌓인 후원금을 좋은 일에 사용할 예정이다. 후원에 참여하여 돈쭐이 무엇인지 보여주어라!]
[남은 시간 : 7일.]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 시 발가락을 모서리에 찍습니다.]
기분 좋은 퀘스트였다.
으음……!
물론 페널티를 보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긴 했지만.
“아무튼, 재밌겠네.”
기대를 조금 하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예전과 흡사한 퀘스트가 떠오를 줄은 몰랐다.
후르릅-
미소를 머금은 채 커피를 마셨다.
“크으.”
완벽한 휴식 시간이었다.
깔끔하게 마무리할까.
류성은 카페를 나서기 전에 조금만 후원을 하기로 했다.
[주식대마왕tv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합니다.]
[오랜만에 왔는데 재밌는 후원 미션을 또 하고 계시네요^^]
주식대마왕TV.
류성의 등장에 호양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 어어. 형님, 오셨어요? 아니…… 미션 시작하자마자 이러신다구요? 갑자기 100만 원을 후원하시면 어떡합니까. 저 1주일간 누적된 금액만큼 사비로 충전해야 하는데 조금만 봐주십쇼!]
류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주식대마왕tv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합니다.]
[네, 살살 하겠습니다ㅎㅎ!]
호양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고 채팅창은 웃음으로 도배가 되었다.
빠라밤 : 크흐, 레전드!
클라스 : 오졌다ㅋㅋㅋ
뚜벅 : 아, 예전 생각나네요
물한잔 : 겁나 재밌었는데, 이걸 또 보게 될 줄이야ㅋㅋㅋ
감옥 : 이야, 추억이다ㅋㅋ
고대인 : 추억이 현실이 되었네?ㅎㅎ
알탕 : 뭔 일임? 큰손이신가?
치피 : 저분을 모르시다니ㅎㅎ
유니크 : 지금부터 알게 될 거임ㅋㅋㅋ
동시에 자잘한 후원이 연이어 터졌다.
[키클롭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합니다.]
[저도 소액이지만 한 손 거들어봅니다ㅋㅋㅋ]
[얼죽핫 님이 5,000원을 후원합니다.]
[내가 이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게 될 줄이야...!]
[꼬맹이 님이 7,777원을 후원합니다.]
[크흐흐! 호양아, 표정 관리하자ㅋㅋㅋ]
[즐거운 님이 20,000원을 후원합니다.]
[아, 겁나 꿀잼!]
류성은 미소를 머금은 채 생방송을 지켜보며 남은 커피를 전부 마셨다. 그때 재밌는 소식이 영상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고, 다들 후원 좀 적당히 좀 하자구요. 저 벌써 지갑 털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그만, 그만! 어허, 자꾸 그러면 저 오늘 안 움직입니다? 좋아요, 후원 멈춰주시고요. 좋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RS재단 건물 1층 카페로 가보겠습니다! 전에 주식대마왕 형님이 알려주신 곳인데요. 여기서 아주 가끔 그 엄청난 커피를 맛볼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 다 같이 고고!]
안타깝지만 지금은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타이밍이 어긋났네.”
혹시나 오후 업무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다면 커피 한 잔을 타주는 것 정도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호양도 바쁜 사람일 테니까. 거기까지는 바랄 수 없을 터였다. 다음에는 타이밍이 잘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주식대마왕tv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합니다.]
[저는 잠시 일하러 가볼게요. 아, 힌트 주자면... 오늘은 마시기 힘들 거예요.]
인사를 하고서 너튜브를 종료했다.
* * *
오전 11시 52분경, 백반 도시락 가게 사장님을 찾아뵈었다. 프로젝트 <보답받아야 할 사람>에 속한 세 번째 인물이었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몇 분이신가요?”
“혼자입니다.”
“편하신 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배도 채울 겸 음식을 주문했다. 일단 식당 음식의 맛을 먼저 봐두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일 잘나가는 게 뭔가요?”
“백반 정식이죠.”
“그러면 그걸로 하나 할게요.”
“알겠습니다, 손님!”
조금 기다리자 백반 정식이 차려졌다. 일곱 가지의 반찬과 고등어구이, 그리고 된장찌개가 정갈하게 차려졌다.
흐음, 괜찮아 보이는데.
류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전 회의를 떠올렸다.
-해당 식당의 도시락이 사실…… 그렇게 맛있진 않다고 합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호출 벨을 눌렀다.
“도시락도 하나 추가할게요.”
“도시락까지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일단은 차려진 백반 정식부터 맛을 봤다.
밥은 무난했고 반찬도 그냥저냥 평범했다.
고등어는 조금 비렸다.
된장찌개는 밍밍한 수준이었고.
“음…….”
왜 맛있지 않다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도 애써 먹고 있는데 음식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즈음 도시락이 나왔다.
타악.
뚜껑을 열고 음식을 맛봤는데 이건 더 심했다.
“사장님.”
“아, 네!”
류성이 부르자 사장이 다가왔다.
“며칠 전에 RS재단에서 연락받으셨죠?”
“네? 아, 받았죠.”
“사실 제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명함을 꺼냈다.
그걸 사장에게 건넸다.
“헉, 이, 이사장님……?”
“네.”
“아이고, 이렇게 직접 오시고.”
“괜찮아요. 일단 조금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괜찮을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사장이 류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쳐다봤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상황인지부터 듣고 싶습니다.”
“네. 그러니까…… 실은 여기가 어머니가 하던 식당이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네, 철없이 굴다가 제대로 요리법을 전해 받지도 못했죠.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갑자기 떠나가실 줄이야.”
류성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유언이…… 제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거였습니다.”
사장님이 허탈하게 웃었다.
“어떡하겠어요. 유언이라는데. 그래서 시작은 했는데 요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잘될 리가 있나요. 사람 복은 있었는지 주변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든 이어는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손님은 줄어들었고 시간은 남게 되더군요.”
“그래서 음식을 나눠준 건가요?”
“맞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관심이 가게 되었는데 힘들게 지내는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셨군요.”
“하하, 네. 이제는 그것도 한계지만요.”
그제야 류성이 웃었다.
“적절한 때에 저희가 나섰네요. 다행입니다.”
“……다만.”
“네, 말씀하세요.”
“이런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건지 의문이긴 하네요.”
“충분히 자격 있으세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빈말 아니에요.”
그 말에 사장님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면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아, 네. 얼마든지요.”
“혹시 전문 요리사분께 요리를 배울 생각이 있으실까요?”
“요리요? 아이고. 가르쳐만 주신다면야 감사하게 배워야죠.”
“좋네요. 그럼 뭐, 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겠네요.”
“그 말씀은…….”
“저희가 제대로 도와드릴게요.”
이후 어떻게 도와줄지를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사장님은 류성의 말을 들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괘, 괜찮을까요? 너무, 너무 도움이 큰데…….”
“사장님도 아이들이랑 주변 어르신들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보답받는 거라고 여겨주세요.”
“하지만…….”
망설이는 듯한 사장님을 보며 류성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준비가 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아, 그…… 고맙습니다, 정말.”
“저야말로요.”
류성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식당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