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180화
118. 노래하고 싶어요
천천히 걸어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언제나처럼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뭐랄까.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정중한 태도에서 다른 아이보다 조금 더 먼 거리감이 느껴졌으니까.
“배고프지?”
“조금요.”
평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성향에 따라 가까워지는 속도가 달라서 그냥 흘려보냈었는데 오늘 노래를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저벅.
오늘만큼은 먼저 다가가기로 했다.
“밥부터 먹으러 갈까?”
“좋아요.”
일단은 밥부터 먹으면서 말이다.
“가자.”
도유종과 예지은, 두 사람을 좌우에 끼고서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각자 원하는 음식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음식을 받은 뒤, 임시긴 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놓인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이거 나 때문에 친구랑 못 먹는 거 같은데.”
“괜찮아요.”
“맞아요, 친구야 맨날 보는데요.”
“그럼 다행이고. 자, 먹자.”
“잘 먹겠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예지은을 쳐다봤다.
시선을 느낀 걸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보세요?”
“음.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뭔데요?”
“좀 예민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괜찮을까?”
“네, 뭐.”
“실은 여기서 기다리다가 지루하던 차에 학교를 좀 돌아다녔거든. 그러다 음악실에서 지은이 노래를 들었고.”
“아…….”
예지은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노래가 너무 좋더라.”
“고맙…… 습니다.”
조금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만.
“그냥 노래가 좋았어.”
“아, 네.”
류성은 밥을 먹기 시작했고 예지은도 따라서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노래 이야기를 꺼낸 탓일까, 어쩐지 먹는 거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면서 류성은 주변의 사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참, 이런 게 부담스럽진 않고?”
“푸드트럭이요?”
“어.”
“음, 처음엔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그랬는데?”
“막상 친구들이 좋아하는 거 보니까 괜찮은 거 같아요. 드라마 같은 걸 보면 항상 그런 인물이 나오잖아요. 부러운 걸 넘어서서 질투하는 사람이요. 결국, 질투로 인해 빚어지는 참상이라든가. 뭐, 그런 스토리요.”
“그렇지.”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하.”
“그냥 부러워하는 게 전부였어요. 질투하는 친구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드러낸다거나 표현하는 친구는 없더라고요. 아니, 오히려…… 전에는 막 대하던 친구가 이젠 조심스러워지기도 했고요.”
류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극히 일부.
설명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살아가면서 만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으니까.
“다행이네.”
“네, 좋은 거 같아요. 다른 애들한테도 도움이 될 테고요.”
“지은이는?”
“저두요. 좋아요.”
“오케이.”
그렇다면 더 본격적으로 추진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때였다.
입맛이 없는지 깨작거리던 예지은이 일회용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저기요, 아저씨.”
“응?”
“실은…… 예전에 길거리 캐스팅을 당한 적이 있어요.”
밥을 다 먹으면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예지은이 먼저 생각의 정리를 마친 모양이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말을 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스스로 이야기를 해주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그랬어?”
“네.”
“어? 난 왜 몰랐지?”
옆에 있던 도유종이 더 놀란 모습이었다.
“내가 얘기를 안 했으니까.”
“아니, 그걸 왜…….”
류성이 웃으며 손을 뻗었다.
괜찮다고.
일단은 들어보자는 모션을 취하며 도유종을 만류했다.
“그래, 더 얘기해 봐.”
“네에. 저도 노래에 관심이 있어서 한참 고민하다가 연락을 했었거든요. 그래도 조금 무섭기도 해서 사람이 많은 카페에서 만났어요. 처음에는 친절하더라구요. 업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줬는데 집중해서 듣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돈을 요구하더라구요.”
“아……!”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근데 성인이 되면 다른 일도 할 수 있겠냐고.”
다른 일이라니……?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윽고 이해가 되고.
류성은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가다듬었다.
“다른 일이라…….”
“스폰 같은 거라면서. 고딩이니까 그래도 알 만한 나이 아니겠냐고. 제가 싫다고 하니까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뒤에서 쉬쉬하는 거지, 어딜 가도 똑같다면서.”
“……그랬구나.”
“그래서 말을 못 꺼냈어요. 꿈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구요.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정말로 그런 글이 많더라고요. 진짜 전부 다 그런 걸 하면서까지 연예계에서 지내는 건가 의문도 들었는데 아니라고 생각하자니 무섭기도 했어요. 혹시나,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진짜 그러면 어쩌나 싶어서요. 근데요, 아저씨.”
“응.”
“아저씨라면 알고 있을 거 같아서요.”
예지은이 고개를 들어 류성을 직시했다.
“진짜로 그런 곳인가요?”
“아니, 절대로 아니야.”
“정말요?”
“물론 저런 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찾아보면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대다수 이름이 알려진 엔터는 깨끗하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그러면요, 아저씨.”
“그래, 얘기해.”
“저…… 하고 싶어요.”
어쩐지 평소보다 더 빛나는 눈동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신의 소망을.
그리고 목표를 입에 담았다.
“노래, 하고 싶어요.”
담담한 목소리였으나 그곳엔 뜨거운 열망이 숨겨져 있었다.
* * *
둘을 보육원까지 태워다줬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편지도 받았었는데.”
“아, 하하…….”
“그, 그랬죠.”
도유종과 예지은의 귓불이 붉어졌다.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네. 그거 항상 차에 두고 다니는데. 볼래?”
“으으, 아저씨……!”
“너무 창피해요.”
“흐하하.”
류성은 어느새 밝아진 예지은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아마도 걱정을 내려놓았을 테니까.
“나도 나이가 들었나, 재차 말하고 싶어지는구만.”
“말해주세요.”
“크흠, 그럴까? 이거는 아까 얘기하다가 말았는데 꼭 들려주고 싶어서. 언제라도 좋으니까 꿈이나 목표, 아니 그런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아. 그냥 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면 그냥 얘기하면 돼.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RS재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니까. 알겠지?”
“……고맙습니다.”
“네, 그럴게요.”
“그래, 그리고 예은이 일은 우리 쪽에서 조금 더 알아보고 확실한 엔터로 추천해 줄게.”
“네.”
“음, 아니면…….”
“아니면요?”
가수나 배우,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는 생각보다 많다. 그런 아이들을 조금 더 제대로 지원하려면 아무래도 엔터 하나는 손에 쥐고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으리라.
“우리가 괜찮은 엔터의 대주주가 되는 방법도 있고.”
“대주주…….”
“경력 있는 엔터를 인수하는 방법도 있겠지.”
예지은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무리하시는 거 아니세요?”
“아니. 원래 그쪽 사업에도 관심이 있었거든.”
한국 극장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여기에다가.
괜찮은 엔터테인먼트를 계열사로 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터였다.
“원하는 대로 선택해.”
“그럼…… 기다릴래요.”
“후회하지 않겠어?”
“네.”
“좋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 뒤에 바로 알려줄게.”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하늘 보육원에 도착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안녕히 가세요!”
“오냐.”
기분 좋게 헤어진 뒤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셨어요, 이사장님?”
“네. 다들 점심 맛있게 드셨죠?”
“그럼요. 법인 카드로 아주 비싼 거 먹었어요.”
“잘했어요.”
그렇게 오후 업무를 보던 중이었다.
[퀘스트 ‘미래의 꿈나무를 위하여!’가 갱신됩니다.]
[아이가 꿈에 한 발 더 다가섭니다.]
[사진 공모전 입상!]
[시스템의 판단에 따른 보상을 지급합니다.]
[선행 포인트 상자 3개를 습득합니다.]
선행 포인트 상자가 3개나 들어왔다.
그것도 각기 다른 수치로.
후원받는 아이가 사진 공모전에 입상하긴 한 모양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의아했다. 왜 상자를 3개나 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도 그냥 단순하게 대박이 터졌다고 봐야 할까.
지극히 낮은 확률로?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아, 정말이니? 고생했어, 세 명이나? 대단한데……?”
부사장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중이었는데 세 명이란 단어가 유난히 귀에 꽂혔다. 잠깐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현수가 사진 공모전 우수상에 당선되었다고 해서요.”
“그래요?”
“네. 근데 다른 보육원 아이 두 명도 장려상이랑 특선 하나씩 받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총 세 명이 입상했네요.”
“아……!”
공모전에 입상한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그래서 상자도 3개였던 거고.
“동시에 세 명이라니 경사네요.”
“좋은 사진기를 선물로 전해줘서 그런 게 아니겠어요? 사진 학원도 다닐 수 있게 해줬고요.”
“뭐, 부차적인 부분일 뿐이죠. 본인의 노력이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류성과 부사장은 서로를 쳐다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 성과가 나올 때마다 정말 좋네요.”
“저두요.”
“자, 그런 의미로…… 더 열심히 해볼까요?”
“아, 그럴까요?”
“하하, 농담이구요. 조금만 쉬시죠.”
이 좋은 기분을 잠깐 만끽하기로 했다.
“커피라도 타드릴까요?”
“너무 좋죠!”
“이사장님, 저두요!”
“좋습니다. 전부 타드리죠, 뭐.”
“아싸! 도와드릴게요!”
그렇게 직원들과 함께 휴게실로 들어가 궁극의 커피를 탔다. 한 사람에 한 잔씩, 커피를 내려준 뒤에 류성은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직원들과 적당히 거리가 떨어진 위치라 딱 좋았다.
그럼, 상자나 까볼까.
선행 포인트 상자를 하나씩 오픈했다.
[선행 포인트 상자]
3점부터 9점 사이의 포인트를 랜덤으로 획득한다.
딱 중간만 나오기를 바라면서.
일단 하나 오픈.
[선행 포인트 7점을 획득합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수치였다.
출발이 좋은데?
곧바로 다음 상자를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6점부터 13점 사이였다.
[선행 포인트 11점을 획득합니다.]
최고 수치인 15에 가까운 13점이었다.
오오……!
류성은 만족하며 마지막 상자를 오픈했다.
[선행 포인트 13점을 획득합니다.]
단기간에 31점을 획득했다.
[선행 포인트 : 157]
덕분에 157점까지 모인 상태였다.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갈수록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질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물론 최근에는 퀘스트 등장 빈도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당장은 호양 퀘스트가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전 경험을 토대로 추측해 보자면 생각 이상의 큰 포인트를 얻을 기회였으니까.
후르릅-
커피를 마시면서 거리뷰를 눈에 담았다.
“좋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단타 방송을 할 계획이었다. 거기서 다가올 증시에 관해 조금이나마 언급을 해둘 생각이었다.
공부가 좀 필요하겠구만.
계획을 세우면서 시선은 여전히 거리에 남아 있었다.
바쁘게 거니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잡념도 흐릿해졌다.
멍하긴 하지만.
어쩐지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음?”
그때, 어딘가에서 들개로 보이는 중형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은 차도를 건너려는 듯 좌우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근처를 배회하는 젊은 남녀도 보였다.
주인인가?
그렇다고 보기엔 강아지의 모습이 영 좋지 않았다. 오랜 시간 길에서 지냈다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위험해 보이는데……!”
무슨 상황인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그냥 지켜보기에는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니는 차량도 많았기에 저대로 뒀다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커피를 단번에 털어 넣고서 몸을 일으켰다.
[퀘스트 등장!]
그런 그를 응원한다는 듯.
갑작스레 떠오른 퀘스트를 훑으며 류성은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