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181화
119. 몸으로 말해요
순식간에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목줄이 파고드는 강아지!]
[충무로 인근을 거주지로 삼은 강아지 한 마리의 상태가 꽤 심각하다. 어릴 때부터 목에 차고 있던 목줄이 조금씩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몸집이 성장하면서 벌어진 안타까운 현상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목에 있는 상처가 더욱 깊어질 것이고 결국 사망에 이를 것이다. 서둘러 강아지를 사로잡아 치료하고 보살펴 주어라!]
[남은 시간 : 3일.]
[성공 보상 : 랜덤 카드, 선행 포인트.]
[퀘스트 실패 시 치킨 알레르기가 생깁니다.]
목을 죄어오는 목줄.
심각한 상처.
이대로 두면 죽을 수 있다는 말까지 확인하고서 고개를 흔들어 홀로그램을 지웠다.
어느덧 달리듯이 움직이던 류성은 차도를 서성이는 떠돌이 강아지와 그 근처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두 명의 성인 남녀를 눈에 담았다.
좌, 우를 살피고.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차도를 건넜다.
빠앙-
몇 대의 차와 동선이 얽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하며 서둘러 떠돌이 강아지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런 류성을 빤히 쳐다보던 녀석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뒤쪽 공원으로 숨어들었다.
“엇……!”
이대로 놓치나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더니 그냥 그 자리에 멀뚱하게 자리를 잡았으니까.
더 접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강아지의 주변을 배회하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떤 상황인지 확실하게 파악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실례합니다.”
“아, 네.”
“혹시 저 강아지 보호자세요?”
“아뇨, 그건 아니구요.”
“그러면…….”
“아, 그냥 가끔 먹을 걸 줬었거든요. 오늘도 집에 남는 강아지용 캔이랑 사료 조금 섞어서 통에 담아서 줬는데 멀찍이서 보니까 목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아…….”
“조금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까 피투성이에 염증도 심해 보여서요. 근데 너무 가까이 다가간 건지 갑자기 도망치더라고요. 일단 쫓아가면서 근처 동물센터에 연락하는 중이었는데 전화를 안 받네요.”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저 강아지는 RS재단이 운영하는 보호센터에서 책임지면 될 거 같았다.
“제가 알고 있는 보호센터가 있는데 사람을 부를게요.”
“아,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류성은 서둘러 부센터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센터장님.
“지금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를 포획해야 합니다. 목줄이 목을 파고드는지 상처가 꽤 심한 편인 거 같습니다. 경계심도 있으니까 포획 준비해서 충무로 사무실 앞으로 와주세요.”
-아, 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25분은 걸립니다.
“음…… 일단 알겠습니다.”
-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류성은 통화를 마치고 두 사람에게 해당 사실을 알려줬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안도하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 다행이네요.”
“다만 그사이에 도망갈까 걱정이네요.”
“괜찮을 거예요. 근처에서 사는 아이라 그렇게 멀리는 안 가더라고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리고…….”
그제야 류성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직접 나서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아뇨, 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저보다 형님이신 거 같은데.”
“서른입니다.”
“형님 맞으시네요.”
남자는 생각보다 친근하게 류성을 형님이라 불렀다.
“형님도 이렇게 나서주셨잖아요.”
“저야, 뭐…….”
“저도 비슷한 마음으로 나선 거니까요. 인사받을 일도 딱히 아니고요.”
“그 말이 맞네요.”
류성이 뭐라고 고마움을 표현한 건지.
괜히 민망해졌다.
이후 강아지의 위치를 주시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갈수록 두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마인드가 정말 멋지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혹시 말이에요.”
“네.”
“보호센터에 가게 되면 만나러 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가끔 밥도 주고 하다 보니까 나름대로 정이 들어서요.”
“물론이죠. 스마트폰 좀 주실래요?”
“아, 네. 여기요.”
류성은 번호를 찍어줬다.
“제 번호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저한테 물어봐도 되고요. 아니면 RS유기견 보호센터 검색해서 연락하거나 위치 찾아서 직접 가도 됩니다.”
“오, 고맙습니다!”
“뭘요.”
“근데 뭐라고 저장할까요?”
“아, 음. 류성이라고 저장해 두세요. 제 이름이니까요.”
“예, 형님! 제 이름은 김만호입니다!”
“아, 저는 이미나라고 해요.”
어쩌다 보니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김만호와 이미나.
애초에 호감이 있던 사람이라 그런지 이참에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스슥-
그때 강아지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쫓아가죠.”
“네!”
천천히 녀석을 쫓았다. 다행히 멀리까지 가지는 않았다. 적당한 거리에서 녀석을 지켜보면서 조금 더 기다렸다.
10분 정도 흘렀을 무렵 RS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사람이 도착했다.
“여깁니다.”
“아, 네!”
노현찬 부센터장이 직접 출동했다.
“직접 오셨네요?”
“네. 보호센터는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거든요. 관리자도 있고요. 무엇보다 포획하는 건 경험이 필요해서 제가 대부분 동행하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일단 아이부터 볼까요?”
“네, 저기 있습니다. 목에 상처가 있으니까 최대한 조심하시고요.”
“물론입니다.”
이후 부센터장이 지휘하여 떠돌이 강아지를 포획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녀석의 경계심이 생각보다 강해서 일정 거리 이상 사람이 다가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후, 경계심이 너무 강한데요?”
“이거 시간이 꽤 걸리겠어요.”
“으음……!”
“일단 천천히 좁혀보자고요.”
“네, 그물 잘 펼치시고요.”
“강아지 안 다치게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목에 상처가 심해 보이니까요.”
“물론이죠.”
그렇게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나갔다.
그물을 꼼꼼하게 펼치고서.
이대로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360도를 빼곡하게 채운 그물망이 강아지를 노리며 접근하는 중이었으니까.
도망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녀석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내더니 가볍게 포위망을 벗어났다.
“어후.”
그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멀뚱히 있었다.
특이한 녀석이었다.
“항상 저러더라고요.”
“그래요?”
걱정되는지 아직 떠나지 않고 대기 중인 커플을 쳐다봤다.
“네. 밥 먹을 때도 항상 저 정도 거리는 유지하거든요.”
“흐음.”
포획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잡한 시선으로 구조작업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한 가지가 문득 떠올랐다.
아껴두고 있던 재능 ‘몸으로 말해요’를 사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거, 통하려나.
슬쩍 시선을 옮겨 해당 재능을 확인해봤다.
[몸으로 말해요(소모성)]
[사용할 경우 5분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생명체가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몸짓을 통해 파악하기 때문에 때로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모성 재능으로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집니다.]
원하는 걸 파악할 수 있다.
몸짓을 통해 대화하고.
정확하지 않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이 된다는 의미일 터.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나도 알아들을 수 있나?”
저 강아지의 생각이나 원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내 깔끔하게 결론이 났다.
고민할 게 없었다.
그냥 써보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서둘러 포획장소로 이동하는데 상황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중이었다.
“상처가 걱정이긴 하지만 사로잡으려면 조금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거 같습니다. 강아지가 다칠 우려가 있지만 계속 시간을 끌면 결국 포획은 실패할 겁니다.”
“으음……!”
“어떻게 할까요?”
그때 류성이 나섰다.
“부센터장님.”
“아, 네!”
“제가 나서보죠.”
“네?”
“나름대로 방법이 있으니 5분 정도만 대기해 주세요.”
류성의 말에 부센터장은 의문을 품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5분 정도라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대답과 함께 재능을 사용했다.
[재능 ‘몸으로 말해요’를 사용합니다.]
[5분간 생명체의 몸짓을 파악합니다.]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뎠다.
저벅.
떠돌이 강아지와 천천히 가까워지는 와중에 녀석의 귀가 쫑긋거리는 걸 발견했다. 꼬리는 추욱 처진 채로 살짝 흔들렸고 콧구멍은 벌렁거렸다.
긴장, 경계.
행동이 인지되면서 녀석의 생각이 떠올랐다.
-오지 마
-무서워.
류성은 제자리에 멈추며 손바닥을 천천히 내밀었다. 마침 거리를 재며 도망가려던 녀석이 그 행동에 주춤거렸다.
-긴장하지 않아도 돼.
-천천히 다가갈게.
류성의 행동은 그런 의미였다.
어떻게 해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지 알게 된 덕분이었다.
스윽.
이어서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손바닥을 내민 채였다.
-도와주고 싶어.
그런 생각을 담은 행동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끼잉.
강아지가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그것도 상당히 애달프게.
녀석은 천천히 좌우를 살피고 뒤쪽에 멀리 있는 낯선 이들을 눈에 담은 채 방황했다.
-괜찮아, 이리 오렴.
류성은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갔다.
1분, 다시 1분.
어느새 2분이 훌쩍 넘어간 때였다.
끼잉…….
또 한 번 우는 소리를 낸 강아지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직접 류성과 거리를 좁힌 것이다.
-힘들어.
-배고파.
무슨 생각인지 느껴졌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녀석은 올 것이다.
저벅.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녀석.
끼이잉…….
뒤에서는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부센터장도.
그와 함께 포획을 나온 사람들도.
오늘 새롭게 인연을 맺은.
김만호와 이미나 커플까지도.
“괜찮아.”
류성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하던 강아지가 속도를 조금 높였다. 그리고 류성의 손바닥 앞에서 멈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위험하지 않겠지?
-이상한 건 아니겠지?
의미가 자연스레 파악되었다.
류성은 더 기다렸다.
이윽고 재능의 유효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서야 강아지는 손바닥을 지나 류성의 무릎까지 다가왔다.
킁킁-
거기서도 냄새 맡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사정거리였다.
뻗은 손을 회수하여 녀석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헝클어지고 얽힌 털의 감촉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저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몰아닥쳤다.
“그래, 이제 편하게 살자. 아프지도 말고.”
강아지가 고개를 들어 류성을 쳐다봤다.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때로는 공격의 의사를 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 눈 맞춤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녀석은 무언가를 갈망하고 희망할 뿐이었다. 도와달라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느끼는 순간 재능의 시간이 끝났다.
[재능 ‘몸으로 말해요’의 사용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더는 몸짓에서 어떤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걸 알아버린 상태였다.
“천천히 오세요.”
“아, 가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을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류성은 계속 강아지를 쓰다듬어 줬다.
녀석은 도망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가와 넓고 튼튼한 포획용 철창의 문을 열자 강아지는 알아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잘했어.”
불안하지 않게 천을 덮어 시야를 가렸다.
“바로 센터로 가시죠.”
“예, 센터장님!”
그제야 멀찍이서 구경하던 김만호와 이미나의 눈이 커졌다.
“세, 센터장님이셨구나.”
“우와…….”
그리고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기, 혹시 따라가도 될까요?”
“아, 그럼요.”
“감사합니다!”
“뭘요, 계속 밥도 주고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요. 어디서 지낼지 두 눈으로 보는 게 좋죠. 가끔 찾아와도 된다고 했으니 그 부분도 괘념치 말고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네, 그럴게요.”
“그럼 가시죠.”
그렇게 강아지와 연관된 사람들 모두 RS유기견 보호센터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