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05화
133. 화상(1)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부사장이 다가왔다.
“면접 준비는 다 해뒀어요.”
“아, 고생하셨습니다.”
“10시부터 시작이니까 커피 한잔하고 올라갈까요?”
“좋죠.”
RS재단의 외부 활동 인원을 모집하기 위한 면접이 바로 오늘이었다.
두 사람도 오겠지.
부사장과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시간에 맞춰 면접실로 올라갔다.
“시작하죠.”
상대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 만큼 면접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상입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아닌 사람은 빠르게 끝냈고 될 법한 이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며 최대한 성향을 파악했다.
“다음은…….”
김만호가 면접실로 들어왔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류성은 편안하게 웃으며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김만호 면접자님, 외부 활동이 잦을 텐데 괜찮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상 외근이 업무의 대부분일 겁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재차 확인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면접자 들여보내 주세요.”
“네!”
몇 팀이 차례대로 지나갔다.
괜찮네, 이 사람도.
마음에 드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성향도 딱이고.
확실히 잠재력을 보게 되니 많은 부분이 편해졌다. 이상한 성향을 지닌 사람은 단번에 선을 그을 수 있었으니까.
[잠재력]
이상성욕(A+급) 노출증(A+급)…….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저 사람처럼 말이다.
범죄자는 아니겠지, 설마.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봤지만 거기까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면접자들 불러주세요.”
이번에는 김만호의 여자친구인 이미나가 면접실로 들어왔다.
역시나 반가웠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미나 면접자님, 체력은 좋으신가요?”
“아, 네! 체력 빼면 시체입니다!”
“열심히 움직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대답이 시원시원하네요.”
“감사합니다!”
둘은 당연히 확정이었다.
편파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고.
애초에 약속했던 대로 형식상의 절차일 뿐이었으니까.
“다음이요.”
“네, 이사장님!”
이후로도 상당히 많은 사람과 대면했다.
생각보다 많네.
덕분에 뽑을 사람도 충분해서 좋기는 했지만 말이다.
“후아, 이제 끝인가요?”
“네. 마지막 팀이었어요.”
“꽤 피곤하네요.”
“사람 상대하는 일이 그렇죠.”
“생각보다 면접자가 많기도 했고요.”
면접이 끝나고 부사장과 합격자를 추렸다.
“물론 그만큼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요.”
“그렇죠. 얼마나 뽑으실 생각이세요?”
“흐음, 합격선인 사람은 전부 뽑도록 하죠.”
류성의 말에 부사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어, 그러면 서른 명이 넘을 텐데요?”
“그 정도는 되어야죠. 솔직히 서른 명도 부족해요. 수도권을 커버하는 것도 버거울 테니까요. 나중에는 전국으로 퍼져야 하니 기백 명은 넘어야 할 거고요.”
“으음, 그렇긴 하겠네요.”
“지역마다 직원이 머물 곳도 마련해야겠네요.”
“할 일이 많군요.”
“바쁜 게 좋은 거죠.”
류성과 부사장은 웃으며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확히 32명에게 합격 소식을 전달했다.
* * *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날이었다.
“흐아, 날씨 좋다.”
“벚꽃 더 보고 싶은데…… 아쉽다.”
“그러게. 너무 빨리 졌지.”
겨울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배고프다, 빨리 가자!”
“응!”
“오늘은 뭐 먹을까?”
“음, 나는 돈까스!”
“나는 육회비빔밥 먹어야지.”
“꺄아악, 맛있겠다!”
대학교 학생 식당에 도착해 결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음식이 나왔고 둘은 사진을 예쁘게 찍고서 별스타그램에 올렸다.
-학식 클라스!
-학식 만세!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좋은 학식은 대학생들에겐 최고의 안식처이자 휴식처였다. 아쉬운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비를 활용해 누릴 수 있는 근사한 한 끼이기도 했다.
“와, 맛있어!”
“역시 학식이 최고라니까.”
“인정!”
“근데 요즘 연기는 어때? 잘 배우고 있어?”
친구의 질문에 류현아가 가볍게 웃었다.
“응, 완전 잘 배우고 있지.”
“다행이다!”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설마 우리 오빠가 날 지원해 줄 거라고는…….”
“응? 오빠가 뭐? 지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뒷말은 너무 웅얼거린 까닭에 제대로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너도 공부 잘하고 있고?”
“그럼!”
“아, 좋다. 다들 잘돼야 할 텐데.”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중이었다.
“음……?”
모자를 깊게 눌러쓴 건장한 남성이 비척거리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움직임이 너무 수상해서 눈길이 갔다.
사내는 주변을 스윽, 훑더니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기척을 느낀 여학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이 썅년……!“
비척거리던 사내가 앞에 놓인 라면 그릇을 집어 들더니 여학생에게 쏟아버렸다.
“아, 으아아아악!”
괴성에 놀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니, 미친. 무슨 일이야?”
“아저씨, 뭐예요?”
“저기, 괜찮아요?”
“으, 으아, 아아아아. 뜨, 뜨거워, 뜨거워어어어!”
여학생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이, 일단 이걸로 닦아요.”
“으, 으으으……!”
식당 아주머니가 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는데 얼굴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뭉개진 상태였다.
“미친, 당신 뭐냐고!”
“흐으으. 뭐야, 아니었잖아.”
모자를 쓴 남성은 그저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혀, 현아야. 저 사람…… 미쳤나 봐.”
“어, 자, 잠깐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류현아가 119에 신고했다.
“네, 빨리 와주세요……!”
이어서 류성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어, 오빠. 아니, 그. 지금 학교 학식인데 어떤 미친 인간이 라면을 들이부어가지고. 화상이 심한 거 같은데. 막 피부도 뭉개진 거 같고. 어? 어, 아니, 잠…….”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는데 통화가 끊겼다.
“류성 오빠?”
“아, 으응. 괜찮냐면서 당장 오겠다는데?”
“네가 다친 줄 알았나 보다.”
“아……!”
그제야 너무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다시 설명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를 받지 않았다.
“운전하나 보네. 그보다…….”
지금은 저 여학생이 우선이었다.
“우리도 가보자.”
“으응.”
간신히 안정을 찾은 류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고현장으로 향했다.
여학생은 물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수상한 남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도망가지 못하게 막혔다.
“아, 젠장. 귀찮게 됐네.”
“진짜 미친 인간이네.”
“돌았나 봐, 사이코패스인가?”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에 라면을 부은 남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귀찮게 진짜. 뭘 봐, 이 새끼들아! 안 비켜!”
“미친놈. 어쩔 건데?”
“빌어먹을 녀석들이…….”
그래도 주변을 감싼 사람들이 건장한 남학생들이라 수상한 남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하, 고년을 찾아야 하는데.”
혼자 중얼거리는 게 정상은 아닌 거로 보였다.
묻지마 폭행, 이런 건가.
류현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여학생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너무, 아파요…….”
“119 불렀으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물수건 계속 갈아야겠다, 잠시만요.”
류현아는 옆에 남아 물수건을 수시로 갈아줬다. 물수건이 얼굴에서 떨어질 때마다 화상을 입은 여학생의 얼굴이 보였다. 얼핏 확인해도 갈수록 피부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저, 미친놈…….”
시간이 지나고 나니 화가 치밀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 아뇨.”
“하, 뭐 이런…….”
그때 구조대원과 함께 류성이 도착했다.
“환자는요?”
“저기요!”
류현아도 손을 들어 류성을 불렀다.
“오빠! 여기야, 여기.”
“후읍, 후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다급히 류성을 끌어당겨 화상을 입은 여학생으로부터 떨어트렸다.
“그게, 내가 화상을 입은 게 아니라…….”
“그래? 후아, 다행이네.”
“미안. 나도 당황해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왔나 봐.”
“됐어. 그보다 어떻게 된 건데?”
“저기 저 모자 쓴 남자가 갑자기 저 여학생한테 라면을 끼얹더라고.”
“허, 미친.”
“물어보니까 아는 사이도 아니래. 그리고 저 여학생 얼굴 어떻게 해.”
“심각해?”
“응, 얼굴 피부가 완전 막…….”
상황을 듣던 류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뉴스로만 보던 일이 여동생 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지다니.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RS재단은 힘없는 약한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법인이니까. 그렇기에 피해를 본 여학생을 제대로 도와줄 생각이었다.
과정도 결과도.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말이다.
[퀘스트 발동!]
[화상을 입은 여학생을…….]
[퀘스트 발동!]
[묻지마 폭행의 주범을…….]
마침 퀘스트도 2개나 발생했다.
여학생을 돕고.
라면을 끼얹은 남성을 제대로 심판하는 것.
그게 주된 내용이었다.
슬쩍 내용만 확인하고서 뒤로 잠깐 물러났다.
“전화 좀.”
“으응.”
류성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까 고민하다가 버튼을 눌렀다.
“네, 접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미래희망 시민단체의 대표, 홍상훈이었다.
* * *
류성은 여학생을 실은 구급차를 쫓아갔다.
도착한 곳은 근처 병원이었다.
근처 적당한 곳에 잠깐 차를 세우고서 학생을 쫓아갔다.
“저기요! 왜 여기서 멈춥니까?”
“일단 응급치료부터 하는 게 우선일 거 같아서요.”
“으음……!”
이게 맞는 거 같아서 류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누구시죠?”
“보호자입니다.”
“아하, 네.”
구조대원이 환자가 누워 있는 배드를 힘차게 밀었다.
“선생님, 여기도 봐주세요!”
“네, 갑니다!”
피부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이 미간을 좁혔다.
“이거, 심하네요. 심재성 2도 화상 같은데 얼굴만이 아니라 어깨랑 가슴도 상태가 안 좋아 보여요.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죠, 서두릅시다.”
“네, 선생님!”
간단한 응급처치가 끝났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여학생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으으, 누, 누구…….”
“RS재단에서 나왔어요.”
“재단…… 이요? RS면…… 알아요.”
“알아요?”
“네에. 근데 거기서는 왜에…….”
얼굴이 온통 화상이라 말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알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제 여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마침 현장을 발견해서요. 재단이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단 응급처치만 한 상태라 화상 전문 병원으로 이동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해요. 화상 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거든요. 외에도 여러 가지 부분에서 지원을 해주고 싶어서요. 그래서 동의 여부를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잠깐 보호자 역할을 해도 되겠어요?”
고민하던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와…… 주세요.”
“좋습니다. 급한 일부터 빠르게 처리할게요.”
“네에.”
“여기 서류에 사인만 해주세요.”
사인을 받고서 바로 여학생의 신분증을 확인했다.
이름, 박정연.
류성은 곧바로 병원에 퇴원을 요청했다.
“전문 병원으로 갈 겁니다.”
“일단 보호자부터…….”
“보호자 대리인입니다. 서류도 있으니까 시간 끌지 맙시다.”
“으음, 알겠습니다.”
류성은 곧바로 병원의 도움을 얻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화상 전문 병원으로 박정연을 데리고 갔다.
“부모님께 연락도 해야죠?”
“네에…….”
“직접 할래요?”
“……아뇨. 울 거 같아서요. 대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류성은 일단 병원에 도착해 그녀를 입원시키고서 박정연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놀란 듯한 음성으로 황급히 오겠다고 했다.
“위치는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네, 네.
통화를 끊고 메시지를 보냈다.
머지않아.
박정연의 부모님이 도착했고 딸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절규했다.
“우리 딸, 우리 딸 얼굴이…….”
“어떤 미친 자식이 이런 일을!”
“어떻게 이럴 수가…….”
“끄흑, 정연아……!”
박정연도 눈물을 머금었다.
“……엄마, 아빠.”
“그래, 그래.”
“괜찮아. 금방…… 나을 수 있을 거야.”
“그래, 나아야지, 그럼.”
하지만 류성의 굳은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심재성 화상 2도.
얼굴에 생긴 화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원토록 말이다.
“후우.”
그렇기에 류성도 절대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운이 나빴더라면.
여동생인 류현아가 피해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피해자를 다시금 만들어낼 순 없었다.
그 자식……!
인생이 망한다는 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