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06화
133. 화상(2)
경찰서에는 홍상훈과 변호사가 동행했다.
“아니, 근데 피해자랑 무슨 관계죠?”
“아, 저는 시민단체 대표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도와주고 있는 상태라서요.”
“저는 최앤킴 변호사입니다.”
“최, 최앤킴이요?”
“네.”
“그,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맞습니다.”
경찰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에 홍상훈이 나섰다.
“하하, 별건 아니구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을 거 같아서요. 이번 사건은 제가 아주 제대로 크게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시스템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피해자 인권은 무시하고 가해자 인권은 지켜야 한다느니 뭐니, 바락바락 외쳐대는 그런 부분이 있잖습니까.”
“그거야…….”
“근데 제가 있는 시민단체는 좀 다릅니다.”
“…….”
“가해자의 인권? 전 그런 건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해자를 옹호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좋지 않은 결과가 벌어질 거라는 건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아, 물론 경찰관님한테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크흠.”
“그러니 수사, 제대로 해주십시오.”
“……당연한 걸 뭘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죠. 잘 알죠.”
“크흠, 걱정하지 마십쇼.”
담당 경찰관이 본격적으로 수상한 사내를 조사했다.
이름을 묻고.
기본적인 신상을 파악한 이후.
진짜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왜 그런 건데?”
“세상이 더러워서요.”
“뭐?”
“하, 어제 여자친구랑 헤어졌거든요. 근데 마침 그년이 제 여자친구랑 닮았더라고요. 처음엔 제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요, 진짜. 어떻게 괴롭혀 줄까 싶었는데 앞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라면이 있지 않겠어요? 그냥 나도 모르게 손이 가버린 거죠.”
“미친 새끼.”
“근데 뭐, 이걸로 뭐 돼요?”
“뭐라고?”
“사람 죽인 것도 아니고, 실수로 다른 사람한테 들이부은 건데.”
“하, 너 미쳤구나?”
“기껏해야 폭행으로 집어넣을 거 아니에요?”
“…….”
“그럼 집유 아닌가, 저 초범인데.”
처음으로 경찰의 눈동자에 진심이 깃들었다.
“정신 못 차렸네.”
“뭐가요.”
“송치한다는 게 뭔지는 알아? 검찰에 내 의견을 붙여서 보내는 거야. 피해자랑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졌으면 그 부분도 서술해서 불기소 의견을 낸다거나. 아니면 기소 의견을 내는 거지. 근데 기소 의견은 순전히 경찰이 내는 거란다. 내가 널 일반폭행으로 기소 의견을 낼 생각이 사라졌어. 그리고 말이야. 상황이 네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흘러가진 않을 거다.”
“……뭔 소리래요?”
슬쩍 뒤를 돌아보니.
아직 시민단체 대표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최앤킴 변호사가 지켜보는 중이었다.
“네 인생 X됐다고, 이 자식아.”
경찰이 비릿하게 웃었다.
* * *
해당 사건은 빠르게 이슈가 되었다.
피해자인 박정연도.
그의 부모님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정말,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너무 화가 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거 같아요.]
[도대체, 우리 딸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심지어 일면식도 없는 사이…….]
뉴스가 가장 먼저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가해자의 신상은 모자이크로 보호받았다.
그 탓일까.
이슈 게시판이 뜨겁게 타올랐다.
-오늘 뉴스 봤어요?
-미친놈인 줄
-막 나온 라면을 부었다면서요?
-화상 심해 보이던데...
-상처 평생 가겠네요
-어휴, 근데 가해자 새끼 모자이크 처리 역겹네요ㅠ
-진짜, 왜 이러는지
-2도면 진짜 심각한데ㄷㄷ
-제대로 벌 받기를!
-지켜본다, 진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즈음.
너튜브 영상 하나가 공개되었다.
채널명은 없음.
영상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제목 : 화상 사건, CCTV 영상>
그리고 그 영상을 구독자 200만이 넘어가는 이슈 몰이 너튜버가 시청하게 되었다.
[와, 진짜 그 영상이 맞네요. 다행스럽게도 피해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고요. 영상을 누가 올린 건지는 모르겠는데 마인드가 제대로네요.]
가해자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검색해 본 건데 진짜 이런 영상이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아무튼, 보자고요. 오, 나오네요. 여기 이 새끼네요. 어휴, 생긴 것도 아주 더러운데요? 뉴스에서 가해자 모자이크 처리하는 게 거지 같았는데 이거 보고 속병이 전부 다 풀리는 기분입니다. 어후! 근데 이게 정상 아닙니까? 저런 놈한테 인권이 어디 있다고 난리들인지, 진짜. 어휴, 저 새끼 신상 털려서 제대로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 텐데 말이죠.]
그에 동조하는 채팅이 무수히 올라왔다.
네로 : 진짜 속이 시원하네ㅅㅂ
굴렁쇠 : 이야, 저런 영상이 있네?ㅋㅋ
언급 : 대박ㅋㅋㅋ
머리끈 : 잘 걸렸다, 이 새뀌!
고냥집사 : 네티즌 수사대, 출동해 주세요!
갓신화 : 그 전에 법부터 제대로 좀...!
뿌리 : 저거, 제대로 처벌받겠죠?
안경닦이 : 글쎄요, 일반폭행으로 기소되면 벌금으로 끝날 수도요
현무왕 : 아니, 벌금이요? 미친, 깜빵 드가야지!
이슈 몰이 너튜버, 이슈왕이 손을 들었다.
[자자, 진정하시고요. 아, 물론 저도 진정은 안 되지만요. 저 범죄자 새끼 제대로 털어버리려면 이슈가 이어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야 경찰이건 검사건 여론 눈치를 볼 테니까요. 그러니까 다들 관심 계속 가져주셔야 합니다.]
이슈왕 방송을 보고 있던 류성이 몸을 의자 깊숙이 파묻었다.
“인생은 실전이란다.”
여자친구인 줄 알고 라면을 부었다는 말을 홍상훈 대표에게 전해 들었을 때는 정말 제대로 열이 뻗쳤었다. 그래서 돈을 더 써서 지금 같은 상황을 직접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위법한 행위긴 하지만.
상관없지.
그런 미친놈을 제대로 처리하는 게 더 중요했으니.
“후우, 그래도…….”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보고도 못 본 척했거나 아니면 그저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은 그때와는 분명하게 달랐다.
그 사실이 참으로 감사했다.
두드드드.
전화 소리에 상념을 지웠다.
홍상훈 대표였다.
“네, 대표님.”
-하하, 간단하게 상황 말씀을 드리려고요.
“어떻게 되었나요?”
-검찰 측에서 특수폭행 및 특수상해죄로 기소했다고 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제대로 처벌받을 겁니다.
“잘됐군요. 몇 년이나 나올까요?”
-변호사님이 말하기로는 7년 정도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아니, 무조건 그 정도는 나올 수 있게 힘을 쓸 거라고 하십니다.
“7년. 나쁘진 않네요.”
-네, 최대가 10년 미만이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후원금, 제대로 쏘겠습니다.”
-꼭 그런 걸 바란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 지금처럼 좋은 일 많이 하지 않겠어요?”
-하하, 그건 맞죠.
“기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통화를 끊고서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보냈다.
10억.
이 정도면 한동안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남은 건 하나인가.
가해자도 곧 처벌을 받을 테니 이젠 박정연을 완벽하게 치료하기 위해 돈을 쓸 차례였다.
* * *
박정연의 부모님.
좋지 않은 형편에서도 열심히 딸을 키워왔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요?”
“그 재단에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네, 정말…… 다행이에요.”
“후우, 부디 얼굴에 흉이 안 남아야 할 텐데.”
“줄기세포인가, 그걸로 치료한다고 하니까 기다려 봐야죠.”
“그래, 그래야지.”
화상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다행이라면.
15년 전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줄기세포 치료가 몇 년 전부터 성과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마뱀 꼬리처럼 재생한다는 거지?”
“맞아요.”
도마뱀의 꼬리가 잘려나가도 재생되는 이유가 바로 줄기세포가 해당 부위에 많기 때문이었는데 그 연구 결과가 이젠 여러 분야의 치료에도 쓰이는 중이었다.
“잘 되겠지.”
“믿어야죠.”
그걸 활용한 치료방식이었다.
비용은 당연히 많이 든다.
그걸 RS재단에서 전액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제발…….”
무사히 치료가 끝나기를 두 사람은 간절히 기도했다.
* * *
수술실 내부, 의사가 눈을 빛냈다.
“음, 그래도 생각보다 깊지는 않은데?”
“다행이에요.”
“이 정도면 줄기세포 치료만 하면서 경과를 지켜봐도 되겠어.”
“그게 좋긴 하죠.”
“어, 괜히 피부 이식 수술했다가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흉터가 더 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줄기세포 치료만 시작하자고.”
“네, 선생님!”
다행스럽게도 상태가 양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말이다.
덕분에 수술이 아니라 시술로 변경되었고 생각보다 금방 결과가 나왔다.
“치료는 잘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일단 상태가 생각보다 양호해서 줄기세포 치료만 했습니다. 경과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걸 지켜보면 될 거 같습니다. 물론 몇 차례 더 치료를 병행해야겠지만요. 비용은 좀 들겠지만 이게 아무래도 흉터도 덜 남고 예후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입원도 하신다고 하셨으니 세심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의사가 떠나고.
두 사람은 치료를 마친 딸에게 향했다.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그래요, 평생.”
특히 RS재단은 절대 잊지 못할 거 같았다.
* * *
작고 큰 사건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은 쉴 새 없이 찾아왔다.
“그래도 마지막이구나.”
드디어 마지막 방송 녹화 시간이었다.
저벅.
걸음을 옮겨 세트장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류카월드를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잘 지냈죠?”
“뭐, 일이 있긴 했는데 무사히 마무리 지었네요.”
“다행이네요. 크, 그보다 전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아, 딱 이렇게 둘이 결승에서 만나겠구나 싶었다니까요.”
“저도요.”
“진짜요? 농담 아니죠?”
“그럼요.”
세트장 위에서 류카월드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흐흐, 역시 통하는 게 있다니까요. 오늘 놀랄 준비는 되셨고요?”
“당연하죠.”
“좋습니다! 제가 아주 깜짝 놀라게 해드릴게요.”
“기대하겠습니다, 류카월드님.”
그렇게 둘의 마지막 대결이 시작되었다.
초반 시청자는 비슷했다.
류카월드가 7만 3천 명가량.
류성은 7만 7천 명이었다.
-많이들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바로 시작해 보죠.
다만 시청자가 역대급으로 많은 까닭에 확실히 단타가 힘들어졌다. 대형주로 단타를 해도 마치 소형주를 가지고 노는 세력이 되어버린 느낌이었고 비트코인도 글로벌 시세를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이 강해졌다.
-후우, 어렵긴 하네요.
그래도 강한 지지선과 저항선 위주로 꾸역꾸역 시청자를 돈복사의 길로 이끌었다.
-좋습니다, 수익 났고요. 강한 지지선 다시 찾아보자고요.
주식대마왕TV는 정공법을 택했다.
반면.
류카월드는 승부수를 던졌다.
-자, 제가 정말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온 대형호재거든요? 여기 보면 올해 성삼전자랑 파인애플 스마트폰 판매량이 둘 다 역대급이더라고요. 여기서부터 역추적을 해서 스마트폰 판매업체를 하나씩 뒤졌단 말이죠. 그리고 딱 1개, 오늘 장중에 실적 발표하는 기업을 찾아왔다는 거 아니겠어요? 단발 승부입니다, 저는! 여기에 올인하겠다는 얘기죠! 아주 높은 확률로 무조건 오를 수밖에 없어요, 역대급 서프라이즈 실적일 테니까요.
그렇게 시청자와 함께 주식을 매수했다. 다만, 국내 기업인 만큼 시청자의 자금이 모이자 가격이 빠르게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운이 좋은 게 그간 많이 상승했다는 이유로 하락하던 중이었거든요? 덕분에 마이너스 11퍼센트였는데 저랑 시청자 여러분이 매수하면서 마이너스 3퍼센트까지 끌어올린 상태거든요. 아직 부족해요! 자, 더 삽시다, 더!
그러자 순식간에 플러스로 전환되었다.
2.1%
3.6%
5.1%
어느새 7퍼센트까지 상승했다.
-좋습니다, 이제 실적 발표까지 10분 남았어요!
그리고 발표된 실적은 류카월드의 예상대로 어닝 서프라이즈급이었다.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1차 VI에 걸렸고 풀리자마자 2차 VI까지 상승했다.
-어때요, 벌써 21퍼센트라고요!
2차 VI가 풀리자 잠시 물량을 흡수하기 위해 횡보했다. 엄청난 거래량을 선보이는 모습에 류카월드가 웃었다.
-이거 오늘 무조건 상한가예요. 그때 매도하면 됩니다. 기다리자고요.
끝내 그의 말대로 상한가에 도달했다.
-자, 욕심내지 마시고 여기서 익절하겠습니다!
수익률 41%.
승부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시청자들의 선택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