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12화
137. 시나리오 공모전(3)
시나리오 공모전 본선 1차 심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심사위원도 마찬가지지만 류성도 모든 작품을 읽어봤다.
“딱 여기까지가 괜찮은데.”
거짓말처럼 정확하게 20개가 추려졌다.
대상 1작.
최우수 1작.
우수 3작.
장려상 5작.
특선 10작.
이렇게 총 20개의 작품이 수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20개의 작품이 추려졌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머지 작품들도 재밌긴 했지만 상위 20개의 작품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
심사위원들이 추려낸 20개의 작품이 올라왔다.
“모든 심사위원의 의견과 점수를 총합해서 정확히 스무 개의 작품을 추려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밌는 작품 2개까지 좁혀놓은 상태고요.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일단 내일까지는 푹 쉬시죠.”
“그래도 될까요?”
“네. 저도 작품 확인도 하고 비교도 해봐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류성은 심사위원 채점표와 본인이 직접 추린 20개의 작품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이건 똑같고. 이것도…….”
20개의 작품 모두가 일치했다.
그렇다면?
대상으로 추려진 2개의 작품 또한 동일했다.
첫 번째는 검찰총장.
두 번째는 평행우주의 살인마였다.
“무간지옥은 대상이라고 하기엔 좀 아쉬운 면이 있으니.”
하지만 위에 언급한 두 작품은 아니었다.
먼저 검찰총장.
해당 작품은 검사의 삶을 전부 스킵한 게 특징이었다.
그저 서술로서 존재했다.
[검사 1년 차, 검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꼈다.
검사 3년 차, 정의를 내세우다 모든 것을 잃었다. 돈도, 인맥도, 그리고 전부였던 가족까지도.
검사 4년 차,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사 7년 차, 권력의 줄을 잡았다.
검사 11년 차, 권력의 개가 되어 많은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증거 수집도 잊지 않았다.
검사 13년 차, 승승장구했다.
검사 17년 차, 드디어…….]
이 부분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처리될 수도 있고. 아니면 간단하게 영상을 찍어서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아무튼, 진짜 내용은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S#1. 검찰총장 사무실 내부.
의자에 앉아 예리하게 빛나는 눈동자로 명패를 쓰다듬는 주인공, 이혁.
이혁 : 드디어, 힘을 갖췄다.
낮은 목소리로 스산하게 중얼거린다.
이혁 : 모든 것을 쓸어버릴 힘을.
품에서 슬그머니 꺼내는 USB를 주먹으로 움켜쥔 채 몸을 일으킨다.]
이후 스토리는 몰아닥치는 태풍과도 같았다.
“후우, 아직도 소름이 돋네.”
모든 증거를 수집해 놓은 상태에서 검찰총장이 되어버린 주인공. 그가 대한민국 최정상 권력층을 뒤엎어 버리는 활극이었다. 한 번 보고 아쉬워서 다시 한번 읽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평행우주의 살인마’였다. 이 또한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짜인 시나리오였다.
제목 그대로 평행우주가 존재하는데 개기월식과 천왕성 엄폐가 동시에 발생하는 역사적인 날. 또 다른 차원의 지구가 나타나 현실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였다.
“차원의 틈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지구.”
그리고 거기서 만난 동일한 나.
도플갱어.
본능적으로 서로를 배척하게 된 지구와 지구의 싸움이 시나리오의 주된 스토리였다. 그 속에서 주인공 역시 서로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본래 지구에서는 의사로 살아가는 인물이었으나 다른 지구에서는 살인마였다.
-나는 오늘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 칼을 들었다.
-나는 오늘도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다.
서로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동시에.
서로를 죽이기 위해 나아가는 서사.
-그리고 오늘은 나를 죽이기 위해.
-오늘은 또 다른 나를 없애기 위해.
-칼을 들었다.
-칼을 들었다.
그런 스토리를 담은 시나리오가 바로 ‘평행우주의 살인마’였다.
“이것도 참 재밌단 말이지.”
그렇기에 이제는 사용할 때였다.
재능 ‘시나리오의 눈’을 말이다.
해당 재능으로 각 시나리오의 정확한 점수를 체크해 보기로 했다.
“그걸로 순위를 정하면 되겠지.”
가장 냉정한 평가가 될 터였다.
* * *
재능을 사용하고서 가장 먼저 읽은 건 검찰총장이었다.
[시나리오를 모두 읽었습니다.]
[평가 진행 중…….]
[평가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미 읽었던 내용임에도 가슴이 떨렸다.
그 정도로 재밌었다.
[만점은 100점입니다.]
[개연성 : 91점]
[몰입감 : 96점]
[작품성 : 92점]
[흥행력 : 90점]
[총평 : 전문가가 아니라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을 충족한 이야기입니다. 작품성은 물론이고 몰입감과 흥행력까지 사로잡은 완벽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출연하게 될 배우의 연기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상대로 아주 높은 점수가 나왔다.
“장난 아니네, 진짜.”
곧바로 평행우주의 살인마를 읽었다.
역시 재밌었다.
검찰총장에 못지않은 또 다른 흥미로움이 존재했다.
[시나리오를 모두 읽었습니다.]
[평가 진행 중…….]
[평가가 완료되었습니다.]
류성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만점은 100점입니다.]
[개연성 : 85점]
[몰입감 : 94점]
[작품성 : 87점]
[흥행력 : 93점]
[총평 : 충분한 수준의 개연성을 지켰습니다. 몰입감과 흥행력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좋은 편이며 작품성 역시 아주 뛰어납니다. 연출하는 감독의 실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검찰총장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수였다.
물론, 그래도 대단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점수로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역시 대상은 ‘검찰총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게 맞지.”
더 고민해 봐야 의미가 없었기에 대상을 확정 지었다. 자연스럽게 최우수상 작품은 ‘평행우주의 살인마’가 되었다.
“다음은…….”
이어서 다른 시나리오도 읽었다.
“으흠, 이게 점수가 더 높네.”
열심히 점수를 체크하면서 순위를 정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정신적인 피로감에 머리가 굳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드드드.
마침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아.”
민설린과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각이 코앞이었다.
으으으……!
기지개를 켜고서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여기요!”
“아, 네.”
민설린이 먼저 도착해 류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앉자 민설린이 묘한 미소를 그렸다.
“전화 받고 조금 놀랐어요.”
“아, 그런가요?”
“네. 평생 연락 한번 없으시다가…….”
“크흠. 좀 바빴던지라…….”
“괜찮아요. 그냥 극장 지분 거래나 했던 사이인걸요.”
“아, 하하.”
“그래서 무슨 일로 저한테 연락을 주신 걸까요?”
“그…….”
이렇게 나오니 물어보기가 미안한데.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필살기를 사용할 수밖에.
“커피라도 타드릴까요?”
“……감사하죠.”
“그럼 잠시만.”
류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커피 두 잔을 탔다. 아무래도 부탁하는 입장이었으니 궁극의 커피보다는 초궁극의 커피가 더 어울릴 터였다.
오랜만에 타는데.
최근 류성도 초궁극의 커피는 자제하는 중이었다.
심하게 중독적이었기에.
핸드드립 1샷에 인스턴트 2봉지.
여기에 우유까지.
황홀한 맛을 자랑하는 커피가 탄생했다.
“자, 여기요.”
“잘 마실게요.”
“네.”
민설린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후우, 이게 뭐라고 긴장하는지.”
“하하, 편하게 드세요.”
“네에.”
드디어 그녀가 조심스레 커피를 마셨다.
호로록-
그러곤 어깨를 부들거렸다.
“으음, 맛있네요.”
“그렇죠?”
류성도 커피를 마셨다.
어우, 역시.
심각하게 맛있었다. 일단은 카페에서 흐르는 음악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커피를 음미했다.
민설린이 커피 맛에 적당히 적응했다고 여겨질 즈음, 질문을 던졌다.
“사실 물어볼 게 하나 있어서요.”
“물어볼 거요?”
“네. 일단 제 주변에 관련 종사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한국 극장을 맡았던 설린 씨가 그래도 조금 잘 알고 있을 거 같아서요.”
“뭔데요?”
“괜찮은 소규모 엔터 추천 가능할까요?”
“엔터요?”
“네. 부담 안 되는 금액이면 인수나 하나 해보려고요.”
“갑자기 왜요?”
“어, 그건…….”
문득 예지은이 떠올랐다.
노래가 부르고 싶다는 그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엔터를 인수하겠다고.
그래서, 편하게 노래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제가 시나리오 공모전하는 건 알죠?”
“아, 네.”
“이번 공모전을 하다 보니 많은 걸 깨달았거든요. 솔직히 수상작 전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무래도 그렇게 하려면 엔터 하나는 들고 있어야 일이 편해질 거 같아서요.”
“으흥, 그렇겠네요. 그러면 엔터를 인수하게 되면 대표는 자를 건가요?”
“글쎄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죠?”
“그럼, 인맥 좋고 사람 좋은 대표라면요?”
“그럼 친하게 지내야죠.”
민설린이 웃었다.
“마침 제가 아는 곳이 하나 있네요. 알려드릴까요?”
“오,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외삼촌이 운영하는 엔터긴 한데. 아니, 엔터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죠.”
“음? 왜요?”
“두 팀밖에 없거든요. 그냥 매니저죠, 뭐.”
생각보다 더 작았다.
그래도 두 팀이면.
시작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근데 외삼촌이 인맥은 좋아요. 직접 발 벗고 뛰어다니다 보니까 이런저런 인맥을 만든 모양이더라고요.”
“그렇겠네요, 확실히.”
“다만 요즘 고민하는 거 같긴 했어요.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데뷔는 했는데 홍보가 안 되더라고요. 음반도 냈고 음악방송에도 나갔고. 열심히 뛰기는 했는데 인지도가 바닥이에요. 뭐, 대부분 그렇게 끝나는 편이죠.”
“어려운 곳이니까요.”
갑자기 슈퍼스타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사라진다. 혹은 슈퍼스타였던 이도 거짓말처럼 희미해지는 세계라고나 할까.
“밑에 있는 애들 희망 고문만 시키는 거 같다고. 계약이 끝나면 괜찮은 기획사에 소개해주고 일을 그만둬야 할 거 같다고.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라고요.”
잠시 고민하던 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만나뵐 수 있겠죠?”
“물론이죠.”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네, 이렇게 된 거 바로 보러 갈래요?”
“음,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요.”
아직 봐야 할 시나리오가 많았다.
그리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해야 했고.
“내일 뵙는 거로 하죠.”
“좋아요!”
“그리고 거기 엔터 이름이 어떻게 되죠? 대표로 계시는 분 성함하고요.“”
“아, 기획사 이름은…….”
정보를 들으며 메모해 뒀다.
“고맙습니다.”
“뭘요, 그럼 내일 봐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서 민설린을 보냈다. 류성은 곧바로 어딘가에 연락을 넣었다.
-여보세요?
“저, 류성 작사가입니다.”
-아, 잠시만요. 이유야!
-응?
-류성 작사가님이셔.
-엇, 잠깐만!
이후 조금 가늘어진 마이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사가님! 오랜만이에요!
“네. 잘 지냈어요?”
-그럼요! 무슨 일이세요? 아, 혹시 곡 작업이 궁금하세요? 아직 작업 중이라 노래가 나오진 않았거든요. 궁금하면 직접 오셔서 구경하셔도……
“아, 그건 아니고요.”
-치이, 그럼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뭔데요?
“SL기획사랑 거기 대표에 관해서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
-SL기획사요? 음, 들어본 거 같긴 한데. 거기는 왜요?
“제가 인수할까 생각 중인 곳이거든요.”
-어머, 진짜요? 음, 좋아요! 제가 바로 알아봐 드릴게요!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가 젤 궁금하시겠죠?
“맞습니다.”
-금방 연락할게요!
“네, 고마워요.”
-뭘요, 우리 작사가님이신데!
“아하하…….”
통화를 끊고서 류성은 심사실로 올라갔다. 홀로 조용히 남은 시나리오를 읽어갔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둠에 잠길 즈음에서야 마지막 시나리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후아, 끝났다.”
점수는 전부 체크해 뒀으니 우열을 가리는 건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로 했다.
피곤해 죽겠네.
이대로 운전하기도 힘들 거 같아 대리를 불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