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13화
138. 기획사 인수
다음 날, 출근하기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이른 시간은 아니죠?
“네, 괜찮아요.”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 분이시더라구요.
“그래요?”
-네. 인맥도 좋고 실력도 있고요. 자금이 부족해서 아직 못 뜬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거기 밑에 있는 아이돌 팀은 데뷔도 한 상태라 영상 찾아볼 수 있었거든요. 실력은 확실해요. 홍보만 조금 더 제대로 했어도…….
“사람은 괜찮다, 이거네요.”
-네, 맞아요!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우면 다음에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럴게요.”
마음이 기울었다.
좋은 쪽으로.
일단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출근부터 했다.
“일부터 마무리 지어야지.”
곧바로 심사실로 들어가 20개 작품의 우열을 가렸다.
이건 우수상, 이건 장려상.
몇 번이고 체크하면서 명확한 순위를 정했다.
“그래, 이 정도면.”
다시 봐도 이견이 없을 순위였다.
해당 심사표를 들고 RS사무실로 들어가 부사장에게 건넸다.
“부사장님.”
“네.”
“이대로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 발표 공지사항으로 올려주세요. 시상식 참여 일정하고요.”
“네, 그럴게요.”
“저는 약속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게요.”
일을 끝내고 민설린과 약속했던 장소로 향했다.
여긴가……?
생각보다 더 허름한 건물 앞이었다.
“여기요!”
마침 민설린이 앞에 나와 있었다.
“좀 작죠?”
“다 그렇죠, 뭘.”
“안에는 더 작으니까 놀라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여기가 바로 민설린의 외삼촌이 대표로 있는 SL기획사였다. 작은 건물에서도 3층 사무실 3개만 사용하는 중이었다. 하나는 대표 사무실, 하나는 댄스 연습실, 마지막 하나는 연기 연습실이었다.
“……아담하죠?”
“네.”
류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기획사를 살폈다.
상관없지.
어차피 인수하면 사무실이야 바로 옮기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외삼촌!”
“어, 설린아.”
“여기 내가 얘기했던 분이야.”
“반갑습니다, 허름하지만 SL기획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서호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류성이라고 합니다.”
“하하, 일단…… 들어오시죠.”
대표실로 들어가자 소파 하나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인수를 생각하신다고요?”
“맞습니다. 제가 영화 제작을 좀 해보려는 상태라서요.”
“음, 일단 제가 두 팀을 데리고 있는데 한 팀이 아이돌이고 한 팀은 배우를 준비 중인 아이들입니다.”
“오, 그랬군요.”
“네. 그래서 부탁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염치없지만 인수하게 되면 그 아이들……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RS재단 이사장님이라는 걸 듣고서 많이 놀랐거든요. 그런 재단을 운영하는 이사장님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설린이한테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삼촌, 내가 언제…….”
“아무튼, 가능할까요?”
류성이 부드럽게 웃었다.
“내놓기로 결정하신 거군요.”
“본래 조금 고민하던 차였는데 인수하려는 분이 누구인지 듣고서 결단을 내렸죠.”
“음. 근데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최서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최서호 대표님.”
“네.”
“제가 인수를 하면 그 안에 최서호 대표님도 있어야 합니다.”
“예……?”
“그래야 저한테 의미가 있어서요. 부대표가 되긴 하시겠지만 많은 일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할까요?”
최서호가 고민에 잠겼다.
그는 본래 이번에 기획사를 팔게 되면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열정은 있었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뿐이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RS재단 이사장이라는 사람의 배포가.
“지원은, 얼마나 가능할까요?”
“제가 이쪽 업계는 잘 모릅니다. 음, 얼마면 될까요?”
“상한선이라도 정해주시면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상한선이라…….”
고민하던 류성이 입을 열었다.
“큰 거 한 장 정도면 될까요?”
“한 장이요……?”
가늠이 되지 않았다.
큰 거 한 장?
그래도 재단 이사장인데 1억은 아닐 테고.
그래, 10억이려나.
그 정도 자금이면 사실 2팀을 운영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초기 자금인 건가요?”
“맞습니다. 그걸로도 부족하면 계속 투입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그럼 충분하죠. 10억이면.”
“네?”
“예?”
“아, 제가 말한 한 장은 10억이 아니라 100억입니다.”
단타만 잠깐 쳐도 10억은 그냥 벌어들이는 판국이었으니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뭐, 뭐라고요?”
“100억이요, 부족할까요?”
그 말에 최서호는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민설린도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정말 엄청난 금액이었으니까.
“아니, 그, 이사장님.”
“네.”
“100억은 너무 많습니다.”
“음. 제가 제대로 설명을 안 드렸네요. 저는 이 기획사 그대로 운영할 마음이 없습니다. 많은 게 바뀔 겁니다. 기존 팀은 그대로 두되, 추가되는 무수한 팀이 생겨날 겁니다. 아이돌, 가수, 배우뿐만이 아니라 영화감독을 필두로 한 누군가의 사단이 들어올 가능성도 큽니다.”
“아…….”
“그들과 함께 이번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를 만들 겁니다. 그러니, 100억은 절대 큰 액수가 아닙니다.”
“아, 음……!”
확실히 영화 제작까지 생각한다면 납득이 되었다.
“엄청나군요. 그러니까 그런 기획사를…… 정말 저한테 맡기겠다는 겁니까?”
“네, 맡아주시죠.”
“도대체 저의 뭘 보셨기에…….”
최서호가 민설린을 쳐다봤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의미였고 류성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도 개인적으로 알아봤습니다, 충분히.”
그리고 지금도 알아보는 중이었다. 떠오른 잠재력과 총평이 그를 반드시 영입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그, 그러셨군요.”
“네.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제발 하게 해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저 이 행운이…….
한없이 낯설어 잠시 당황했을 뿐.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저 대신 열심히 일해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렇게 또 뛰어난 일꾼.
아니, 인재를 얻었다.
* * *
굳이 미룰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인수 절차를 밟았다.
그 전에.
일단 소속된 팀원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인사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연습하는 것만 보고 가죠.”
“알겠습니다.”
대표실을 나와 왼쪽으로 몸을 틀자 댄스 연습실이 보였다. 그래도 방음에 신경을 썼는지 소리가 크게 새어 나오진 않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열심히 춤을 추고 있는 세 명의 소녀를 눈에 담았다.
“흐음.”
예술가의 감각이 그들의 춤선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허, 뭐야?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실력이 상상을 넘어섰다.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상태로 판단을 하자면 퍼포먼스에 특화된 그룹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직 댄스에만 몰두한 팀.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춤 실력이 상당한데요?”
“하하, 제 자랑이죠. 전부 한가락 하던 애들이거든요. 각종 대회에 참가해서 상도 타고 했으니까요.”
“노래는요?”
“노래 실력도 상당합니다.”
“그래요?”
“네. 멜롱에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좋죠.”
아이돌 그룹의 춤을 보면서 노래를 들었다.
흘러나오는 음률.
이어지는 단조로운 가사와 리듬.
클라이막스 부분도 아쉽고.
노래가 안 뜬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노래는 별로지만…….”
“크흐음.”
“실력은 확실히 있네요. 안 좋은 노래를 실력으로 커버 친 느낌이군요.”
“그, 그렇죠. 항상 노래가 아쉬웠으니…….”
솔직히 노래 하나만 좋은 거로 뽑아서 데뷔시키면 바로 뜰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그룹이었다.
“그럼 배우팀도 볼까요?”
“아, 배우 애들은 오늘 연습하고 있진 않습니다.”
“그러면……?”
“그, 아르바이트를 하러…….”
“아.”
“대신 영상을 찍어놓은 게 있습니다.”
“그거라도 보죠.”
“알겠습니다.”
배우 그룹에 속한 이는 두 명이었다.
남자 둘.
초반에는 동물을 주제로 삼아 연기를 선보였다. 이어지는 유명한 드라마나 영화의 명장면 따라 하기.
여기서도 예술가의 감각이 빛을 발휘했다.
“둘은 아직 초보티가 나는데요?”
“맞습니다. 어떻게…… 잘 알아보시네요?”
“배운 지 얼마나 된 거죠?”
“이제 6개월 조금 넘었습니다.”
“6개월에 이 정도 실력이라…….”
재능은 있어 보였다.
“괜찮네요. 확인 잘했습니다. 아이돌 그룹도 그렇고 배우 지망생도 그렇고 재능이 넘치네요.”
“으하하, 감사합니다!”
“바로 인수 절차 진행하죠.”
“알겠습니다!”
SL기획사는 이제 RS엔터로 탈바꿈하리라.
* * *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이 발표되었다.
대상 <검찰총장>
최우수상 <평행우주의 살인마>
우수상 <잃어버린 기억> <공기가 사라진 세상> <무간지옥>
장려상 <미라가 살아났다>…….
총 20개의 작품이었다.
시나리오 카페가 오랜만에 북적거렸다.
제목 : ㅠㅠ공모전 발표났어요!
본문내용 : 흐윽, 아쉽게도 저는 떨어졌지만 수상하신 분들 전부 축하드립니다ㅠㅠ 저는 다음 기회가 있다면 또 노려볼게요!
[댓글]
글먹하고파 : 앗... ㅠㅠ 저도 떨어졌어요!
└작성자 : 같이 힘내요ㅠㅠ
어찌이래 : 수천 작품 넘게 신청했더라구요. 경쟁률이ㅠㅠ
└작성자 : 맞아요. 1차 본선 들어간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어찌이래 : 대단하죠, 그것두!
└작성자 : 감사합니다!
시나리오 공모전 관련 글이 빼곡했다.
제목 : 와, 저 수상했어요! 특선이긴 하지만 우와, 대박, 대박!
본문 내용 : ㅠㅠ저한테 이런 날이 올 줄이야ㅠㅠ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
등불작가 : 어머, 축하드려요! 항상 열심히 활동하시더니, 결국!
└작성자 :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요ㅠㅠ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누군가는 당선의 기쁨을.
그리고 대다수는 아쉬움과 부러움을 간직했다.
제목 : 부럽네요, 정말ㅎㅎ
제목 : 저는 예선전 탈락이라, 뭐ㅋㅋ
제목 : 다들 축하드려요!
제목 : 다음 공모전도 있을 테니 힘내자구요!
제목 : 몇 작품이나 영화로 만들까요?
제목 : 어서 영화까지 나왔으면...ㅎㅎ
제목 : 당선금 정말 엄청나네요!
대상이 무려 5억이었다.
최우수가 3억.
우수상은 각 1억이었고 장려상이 각 5천. 특선이 각 3천만 원을 받게 된다.
오직 수상금이었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의 허락하에 영화 제작이 시작될 것이다.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재밌는 공지사항이 연달아 두 개가 올라왔다.
하나는 시상식 사진.
제목 : 어머, 시상식 멋지다!
제목 : 다들 훈남 훈녀시네요^^
제목 : 멋져요!
제목 : 저도 다음 공모전에 입상해서 꼭 참여하겠습니다!
제목 : 의욕 뿜뿜!
그리고 하나는 최근 근황에 대한 안내였다.
제목 : 엇? 공지사항이 하나 더 있었네요, 대박...!
본문내용 : 영화화 공지사항인데요? RS엔터에서 제작할 거라고 하네요! 와, 미쳤다 진짜ㄷㄷ
[댓글]
라일락 : 최근 무슨 기획사 인수했더라고요
└작성자 : 어머나...!
기네스코 : 와 검찰총장이랑 평행우주의 살인마는 이제 곧 영화 촬영에 돌입하지 않을까요? 꽤 유명한 감독 사단이랑 계약도 체결했고. 그러면 그 사단에 속한 팀이 있으니 영화 제작도 순조로울 듯요?
└작성자 : 멋지네요 정말!
└일생대작 : 배우 섭외도 어렵지 않을 듯! 일단 한국극장에는 걸릴 테고. 외에도 RS재단 정도면 대형 영화관에도 걸릴 거 같은데요.
└작성자 : 그렇겠죠?ㅎㅎ
└여한 : 영화 너무 기대되네요, 시나리오 하나같이 흥미롭던데ㅎㅎ
└작성자 : 저두요, 기대합니다!
금력 : 자금이 되니 확실히 다르네요
그 누군가의 말대로였다.
RS재단은 돈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