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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재능이 쏟아져-217화 (217/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17화

141. 오디션(2)

류성은 오디션장 한구석에 앉은 채로 배우들을 눈에 담았다.

모두의 연기가 달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상이했다. 대본이 전달되긴 했지만 각자의 해석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17번씬, 이수혁 대사 읊어주세요.”

“알겠습니다!”

류성도 간략하게 만들어진 대본집을 확인했다.

[이수혁 : (상체를 살짝 숙이며) 내가 호구로 보이는 모양이군. 그래, 지금까지 가만히 당해왔으니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지. 근데 말이야, 상황파악이 아직 덜 된 모양이야.

이수혁이 USB를 들고 흔든다.

이수혁 : 보이지 않아? 네놈 모가지가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고.]

연기자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분위기가 변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상체를 자연스럽게 숙이더니 기계적인 미소를 그렸다. 어쩐지 날카롭고 예리한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호구로 보이는 모양이군. 그래, 지금까지 가만히 당해왔으니……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지. 근데 말이야.”

이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활화산처럼 뜨거운 분노를 표출하는 것처럼.

“상황파악이 아직 덜 된 모양이야.”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보이지 않아? 네놈 모가지가,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다고.”

음절을 끊어치듯 읊는 대사.

임팩트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마침 직전에 나온 연기자도 17번씬을 연기한 터라 자연스레 비교되었다.

느낌도 완전히 다르고.

재밌네, 생각보다.

류성은 예술가의 감각이 알려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순 없었다.

그저 느낌이 다를 뿐이었으니까.

둘 다 실력은 좋은데.

결국 작가나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 방향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뽑힐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그 생각조차 뒤흔들어 버릴 연기력을 보여주거나.

“네, 잘 봤습니다. 캐릭터 해석을 재밌게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다만 조금 과한 면이 있습니다.”

“참고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자유 연기까지 보도록 하죠.”

이어지는 자유 연기에서는 긴장감이 풀린 건지 앞선 연기보다 느낌이 좋았다.

다들 실력이 괜찮네.

물론 뇌리에 꽂히는 듯한 이는 아직 없었지만.

얼마나 연기를 지켜봤을까.

기다렸던 여동생, 류현아가 등장했다.

으흠?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괜찮은 건가?

긴장을 많이 한 거 같은데. 걱정이 피어오르는 와중에 감독이 서류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네,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류현아라고 합니다!”

그 순간 류현아의 분위기가 변했다.

눈빛이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뭔가가 느껴졌다. 예술가의 감각이 그녀의 정적인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에서 원하는 배역이 최이서군요.”

“네, 맞습니다.”

“좋습니다, 23번 씬부터 볼까요?”

“알겠습니다!”

23번 씬을 확인한 류현아가 대본을 내려놓고 연기를 시작했다.

잘하려나.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배! 정말 이래도 되는 거예요? 아니, 그렇잖아요. 이 내용이 진짜면 대한민국 권력을 뒤흔드는 일이라구요!”

자연스러운 발성과 표정.

정말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는 듯한 모션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진짜, 진짜 이대로 써요? 정말로? 우리…… 이러다 죽는 건 아니죠?”

여동생의 연기를 보니 뭔가 오그라드는 느낌도 있긴 하지만.

뭐, 잘하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기로 했다.

[잠재력]

끈기(A급) 연기(-A급) 노래(B급) 사업가의 기질(B급) 인내(-B급) 체력…….

녀석은 다시 봐도 연예계에 딱 어울렸다.

그래, 열심히 해봐라.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밀어줄 테니까.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아요. 캐릭터 해석을 잘하셨네요. 음, 자유 연기도 볼까요?”

“네! 자유 연기는…….”

류성은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연기를 지켜봤다.

* * *

주인공과 주, 조연 배우들이 픽스되고 그들에게 합격 소식이 전해졌다.

“꺄아아아악!”

기다리고 있던 류현아에게도.

너무 기쁜 마음에 방안에서 괴성을 내질러버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류성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합격?”

“응! 나, 나…… 합격했어!”

“잘했다.”

“고마워, 오빠.”

마침 집에 있던 부모님도 슬쩍 거실로 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니?”

“아, 엄마. 그게…….”

“왜 그래?”

고민하던 류현아가 표정을 다잡았다.

“나, 할 말 있어.”

“응? 뭔데?”

“잠깐, 거실로 좀…….”

아무래도 결심을 내린 모양이었다. 류성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따라 움직이다가 해먹에 누워 있는 럭키를 품에 안았다.

으차.

슬쩍 소파 구석 자리에 앉아 부모님과 류현아의 대치를 눈에 담았다.

“음, 그러니까…….”

“중요한 일이니? 심각해 보이는데?”

“엄마, 아빠!”

“그래, 얘기해 봐.”

“나…… 사실 연기 배우고 있었어!”

나름 긴장하며 크게 외친 모양인데 부모님 반응은 영 아리송했다.

“……그래?”

“어, 그러니까 나 배우 될 거라고!”

“배우란 말이지.”

“응……!”

“우리 딸, 그냥 생각 없이 사는 줄 알았더니 꿈이 있었구나?”

“아빠? 그게 뭔 소리야!”

“음? 아하하, 실수. 배우가 꿈이라니 멋진데?”

“지, 진짜?”

“그럼. 근데 연예계면 많이 험난할 텐데 괜찮겠어?”

“그럼! 나 이미 오디션도 붙었는걸?”

오디션 합격이라니 뭔가 본격적인 느낌이었다. 그제야 조금은 장난스럽게 받아들이던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오디션까지?”

“응!”

“무슨 오디션인데?”

“오빠가 하는 시나리오 공모전 영화 오디션!”

“아, 성이가 하는 거?”

“응!”

그 말에 아버지, 어머니의 표정에 안심이 깃들었다.

“어휴, 잘됐네. 축하한다.”

“우리 딸, 축하해!”

“어…… 그게 끝?”

“선물이라도 사줄까?”

“아니, 난 당연히 혼날 줄 알았지. 연예계라는 게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성이가 하는 곳이라면서?”

“응, 그렇지?”

“그럼 됐어.”

“크게 걱정할 것도 없겠네.”

어쩐지 납득이 되는 이유였다.

“그, 그렇지? 아무튼, 그럼 나 진짜로 배우 한다?”

“그래, 화이팅!”

“아빠도 응원할게.”

그간 숨긴다고 마음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뭔가 억울하긴 하지만. 아무튼 잘 해결되었으니 좋은 일이었다.

류현아가 묘한 기분으로 방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류성을 쳐다봤다.

“현아 좀 잘 부탁하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최근에 엔터도 하나 만들었거든요. 제가 대표로 있는데 그쪽으로 데려오려고요.”

“음, 괜찮겠어?”

“괜찮아요. 연기 잘하더라고요.”

“정말로?”

“네. 재능 있어요.”

“하하, 곧 스타 아빠 되는 건가?”

“어휴, 당신도 참.”

어쩌면 생각보다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류성은 품에 안긴 럭키의 뱃살을 만졌다.

골골골-

평화로운 하루였다.

* * *

오늘도 열심히 운성, 한월사료, 미래사료를 매수했다.

“슬금슬금 올라가는구나.”

생각보다 시총이 작은 소형주라 그렇게 많이 사지는 못했다. 그래도 기업이 3개라서 총 600억 정도는 매수해놓은 상태였다.

“각 200억이라.”

더 사는 건 무리였다.

거래량이 너무 적기도 했고 주가가 이미 충분히 많이 올라 버린 까닭이었다.

이제는 사야 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씩 매도해야 할 시기였다.

“일단…….”

오늘이 바로 CPI가 발표되는 날이었기에 미리 너튜브 공지를 올렸다.

[오늘 저녁 8시 40분에 방송 켜겠습니다!]

이후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봤다.

일상이 흐르고.

집에 도착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거실에서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은 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냐아아아-

오랜만에 럭키와 함께 생방송을 시작했다.

<생방송 on>

잠시 화면을 어둡게 하고 기다렸다. 시청자가 적당히 모였을 즈음 화면에 모습이 잡히도록 설정했다.

“보이시죠?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시청자도 류성을 반겼다.

알탕 : 오랜만, 방가방가요! 가하? 라고 하려고 했으나 가면을 벗으셨지, 참.

주린잉 : 이제 뭐라고 인사하죠?

알탕 : 음, 정하! 정보꾼 하이!ㅋㅋㅋ

가녀린호수 : 오오, 정하 좋아요! 정하!

“어, 네. 좋습니다. 정하!”

올라오는 채팅을 지켜보던 럭키가 냥냥펀치를 휘둘러줬다.

“럭키도 반갑다고 하네요.”

아주 확실한 팬서비스였다.

이걸 보여주려고 안고 있었던 거니까.

“자, 이제 럭키는 내려가고.”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본격적인 방송을 이어갔다.

“오늘은 미국에서 조금 중요한 지수가 발표되는 날이라서요. 시청자 여러분이랑 함께 확인해 보려고 이렇게 생방송을 켜게 되었습니다. 9시에 발표되거든요. 미국 물가지수라고 CPI가 나올 텐데 전 이걸 중요하게 보고 있어서요.”

계란과자 : CPI? 그런 게 있군요!

알탕 : 오오, 물가지수...?

밤비내려 : 그거 보면 혹시 인플레이션 파악할 수 있나요?

“밤비내려 님, 맞습니다.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요. 예전부터 말했지만 제가 요즘 인플레이션을 주시하고 있거든요. 러시아가 갈수록 원자재랑 에너지 수출을 축소하는 추세기도 하고요. 그 여파가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오늘 한 번 지켜보자고요.”

시청자 숫자가 3만 명이 넘어가면서 채팅 속도가 갈수록 빨라졌다. 적당히 눈에 보이는 것들만 골라서 대답해 줬다.

“어, 벌써 시간이…….”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이제 곧 9시였다.

“자, 그럼 확인해 보겠습니다.”

서둘러 미국 지표를 알려주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CPI를 검색하고 들어갔지만 아직 수치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볼게요.”

9시 1분에 새로고침을 눌렀다.

드디어, 숫자가 떠올랐다.

정보권에 적힌 그대로였다.

“좀 전에 얘기했었죠? CPI는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라고요. 한마디로 미국 물가가 6.2퍼센트 올랐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면 근원 물가 지수라고 코어 CPI가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 수치면 인플레이션이 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겠네요.”

생각보다 높은 수치에 난리가 났다.

이백장 : 에? 저게 맞아요? 6.2퍼센트요?

물통 : 심각한데요?

점점점 : 와, 아니ㅁㅊ 저번에 발표된 게 1.1퍼센트였는데 갑자기 6.2요? 오류는 아니죠?

회사맨 : 허얼...!

짝발 : 미친, 이거 찐인가요?ㄷㄷ?

알탕 : 와, 상상 초월ㅠㅠ

류성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오류는 아닐 겁니다.”

증시나 인플레이션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치 차이가 컸다.

1.1퍼센트와 6.2퍼센트.

단순하게만 봐도 5.1퍼센트나 오른 거고. 배수로 따지면 무려 여섯 배나 증가한 거니까.

“앞으로 증시가 어떻게 흘러갈지 한층 더 명확해졌네요.”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다.

“금리 인상이 곧 시작될 겁니다. 어디까지 금리가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큰 충격이 되어 돌아올 테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건 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증시의 하락.

어쩌면 경기침체까지 다가올지도 모를 현실이기도 했고.

“기사가 떴을 거 같은데 한번 볼게요.”

슬쩍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CPI.

그러자 인터넷 기사가 꽤 떠오른 상태였다.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 CPI 발표 6.2%]

[미국 물가 6.2%나 올랐다!]

[미연준, 인플레이션 아니라고 부정하더니 끝내……!]

[러시아의 원자재, 에너지 수출 감소 이어져]

[실질 물가는 어느 수준?]

어조가 전부 부정적이었다.

“오늘 미국 증시부터 난리 나겠네요.”

물론 류성이야 인버스 ETF를 들고 있으니 엄청난 수익이 발생할 터였다.

국내도 마찬가지.

내일부터 운성, 한월사료, 미래사료가 오를 것이다.

인플레이션 찾아와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식자재 가격은 쉽게 올릴 수 없지만 곡물 가격이나 사료 가격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만큼.

해당 기업들의 매출이 올라갈 거라는 기대감 말이다.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올라갈 기업에 투자하는 게 진정한 고수 아니겠어요? 내일부터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특히 RS ETF 매수하신 분들, 미리 축하드립니다.”

류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오늘의 대사건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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