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26화
148. 갑질 빌런(2)
목적지에 도착해 차량에서 내렸다.
평범한 일식당이 보였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 고개를 들자 근사한 건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멋진 건물에 썩 어울리지 않는 내, 외관을 지닌 일식당은 1층의 극히 일부만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이 좋네.”
순간 욕심이 났다.
안 그래도 건물 하나가 더 필요하긴 했는데.
가능하면 사버릴까.
고민하면서 일식당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내가 맞았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저 기억 안 납니까?”
“예? 누구시더라?”
말을 하던 사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 그, 아파트 단지……?”
“음식물 쓰레기를 막 버리던 사람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네요?”
“아니, 당신 여긴 어떻게 온 건데!”
“지나가다가?”
“허, 참. 그래서, 뭐 어쩌시려고?”
뻔뻔한 태도에 류성이 웃었다.
“제가 좋은 사람들 돕는 거 참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만큼 짜증 나는 사람들 혼내주는 것도 좋아해서요.”
“뭔 헛소리야!”
“사과할 마음은 없으시고요?”
“사과는 무슨. 아, 당장 나가! 내 식당에서 나가라고!”
류성은 고개를 저으며 식당을 나섰다.
마지막 기회였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기대해.”
“기대는 무슨. 에이, 소금이나 뿌려야지.”
류성은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구만.
“네. 요즘 몸은 괜찮으시고요?”
-클클, 아주 좋아. 안 그래도 마침 믹스커피가 생각났는데 가서 한 잔 마셔도 되겠나?
“그럼요.”
-좋아, 그럼 내 지금 가겠네.
박순흠 회장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류성도 RS건물로 이동했다. 휴게소에 들러 인스턴트커피를 챙기고서 1층 카페로 내려왔다.
“엇, 이사장님. 커피 타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손님이 오거든요. 그때 제가 직접 커피 두 잔만 좀 타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미리 바리스타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빈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여유를 즐겼다. 마침 카페의 문이 열리더니 기다리던 박순흠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바로 류성에게 다가갔다.
“직접 보니 좋구만.”
“저두요. 일단 앉으세요.”
“좋지.”
“바로 커피부터 타드릴게요.”
“기대해도 되겠지?”
“그럼요.”
류성은 곧바로 궁극의 커피를 제조해 박순흠 회장에게 건넸다.
후르릅.
회장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으음, 좋구만. 아주 좋아.”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킨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늙은이는 왜 부른 거야?”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뭔데?”
류성이 주소를 찍어서 보여줬다.
“혹시 여기 건물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거기는 왜?”
“살 수 있으면 사려고요.”
안 그래도 후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는데 해당 건물이라면 충분할 거 같았다. 당연히 거기서 장사하는 갑질 빌런은 쫓아낼 계획이었다. 아주 쉽게 돈의 힘을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긴 한데…….”
“네.”
“힘들어. 건물 안 팔기로 유명한 친구라서.”
“음. 많이 어려울까요?”
“죽을 때까지 하나라도 더 많은 건물을 들고 가는 게 꿈인 친구야. 그 친구가 건물 파는 걸 본 적이 없어.”
황순흠 회장이 이 정도로 말한다면 확실히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별수 없지.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그럼 어쩔 수 없죠.”
“괜찮겠어?”
“네. 그냥 혹시나 싶었던 거라서요.”
“클, 그랬구만.”
건물 생각은 잠시 날려 버리고 오랜만에 만난 황순흠 회장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내 영화는 잘 봤어.”
“보셨어요?”
“당연하지. 특히 그 검찰총장은 정말 재밌더구만.”
“감사합니다.”
“평행우주 머시기도 재밌었어. 판타지를 안 좋아해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는 좋더구만.”
“하하.”
“다음 영화도 기대하겠네.”
“네, 재밌을 겁니다.”
수다를 조금 떨던 회장님이 시계를 확인했다.
“그만 가봐야겠구만. 약속이 있어서.”
“벌써요?”
“늙으면 더 많이 돌아다니는 법이지. 다들 심심하거든. 다음에 보자고.”
“네, 살펴가시구요.”
황순흠 회장을 보내고 류성은 갑질 빌런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다시 움직였다. 마침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임대를 내놓은 상태였기에 계획에 큰 차질은 발생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래, 온 김에 처리해야지.
곧바로 임대를 문의했다.
-여보세요?
“여기 후암동 건물 1층 임대 문의 좀 하려고요.”
-아, 리스텐 건물이요?
“네, 거기 맞네요.”
-지금 어디신데요?
“앞이에요.”
-그럼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한 5분 정도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거기서 잠깐 기다리자 부동산 중개업자가 나타났다.
“어휴,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자, 일단 내부부터 보실까요? 여기가 솔직히 위치가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장사가 나쁘진 않아요.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도 손님이 꽤 오거든요.”
바로 옆이, 류성이 노리는 식당이었다.
“많이 오나 봐요?”
“네, 생각보다 오더라고요. 무엇보다 여기 건물이 시세가 상당히 싸거든요. 보증금도 낮은 편이고 월세 부담도 덜할 겁니다.”
중개업자가 내부를 꼼꼼하게 확인시켜줬다.
사실 볼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류성의 목적은 단 하나였으니까.
“괜찮네요. 계약하죠.”
“예? 아이고, 시원시원하시네요!”
“계약금 먼저 치르죠.”
“알겠습니다, 건물주인한테 연락해서 계약할 날짜 조율해 보겠습니다.”
“네.”
바로 계약금을 전달하고 슬쩍 옆에 있는 식당을 눈에 담았다.
평범한 초밥집이었다.
훨씬 더 좋은 퀄리티의 횟감과 재료를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아주 값싸게 초밥을 제공할 계획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갑질 빌런이 운영하는 식당은 머지않아 망하게 될 것이다.
“그걸로 끝내면 아쉽고.”
착한 영향력 스티커를 악용하는 부분도 증거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자료가 충분히 모이면 너튜브에 올릴 작정이었다. 그러면 맛이 평범해도 ‘돈쭐’을 내주기 위해 찾아오던 손님들이 비난하며 걸음을 돌릴 것이다. 순식간에 망조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자고.”
차가운 표정과 함께 몸을 돌렸다.
* * *
갈성후, 그는 오늘도 아파트 단지를 나가면서 경비 아저씨를 괴롭혔다.
“아저씨, 쓰레기 좀 버려줘요.”
“허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 모르겠고. 난 여기 두고 가요. 귀찮으면 그냥 냅두시든가.”
쓰레기를 대충 창문 너머로 던진 뒤에 액셀을 밟는 갈성후. 그는 당황한 채 허둥지둥거리는 경비 아저씨를 사이드미러로 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아침마다 재밌다니까.”
식당을 운영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아주 제대로 해소되었다.
그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가게로 향했고 문을 열기 전, 음식을 준비했다.
“재료도 대충 싼 거로 하고.”
그래야 마진이 남으니까.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착한 스티커 덕분에 돈쭐 내려는 멍청한 너튜버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주문을 해주곤 했으니까.
“병신들.”
피식 웃으며 시간에 맞춰 장사를 개시하려는데.
“어……?”
바로 옆에 비어 있던 건물에 사람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인테리어를 하는 중이었는데 음식점이 들어설 모양이었다.
카페는 아니고.
괜히 경쟁상대가 생겼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쯧, 뭐. 곧 망하겠지.”
그렇게 며칠이나 더 흘렀을까. 바로 옆에 들어온 식당의 간판이 보였다. 생선 모양에 스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름이 동공이 콱하고 박혀 들어왔다.
<류스시>
지금 갈성후가 하는 동일한 업종이었다.
“시X, 뭐야!”
욕을 내뱉은 그가 다급히 옆 건물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 주인 누구야!”
“접니다만?”
“바로 옆에 초밥집을 하는데 무슨 정신으로…….”
고함을 지르던 갈성후가 입을 다물었다.
“너, 너……!”
상대가 누군지 알아본 까닭이었다.
바로 류성이었다.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뭐 하자는 걸까?”
류성도 더는 존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면…… 이런다고 뭐 되는 줄 알아?”
“그거야 두고 보면 아는 거고.”
“시X……!”
“뭐, 생각 바뀌면 알려주고. 경비 아저씨들한테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하면 혹시나 봐줄 수도 있으니까.”
“미친놈.”
갈성후는 본인의 식당으로 돌아갔다.
젠장, 제기랄……!
바로 옆에 초밥집이라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임대료만 해도 얼만데…….”
이대로 수익이 떨어지면 손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당장 방법이 없었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냈다.
“아냐, 괜찮아. 그래, 어차피 착한 영향력 스티커도 있으니까.”
그저 괜찮을 거라고 위로할 수밖에.
* * *
류스시가 오픈하면서 동네에 입소문이 났다.
“와, 우리 동네에서 이런 퀄리티라니.”
“미쳤다, 여기.”
“진짜. 밥알은 적고 회는 큼직하니 싱싱하고. 어우, 식감 봐.”
“심지어 싸잖아.”
“정말, 이렇게 팔아도 남으려나?”
“손해 볼 거 같은데…….”
게다가 간간이 동네 아이들까지 찾아왔다. 식당 바로 앞에 엄청나게 큰 홍보물로 착한 영향력 스티커를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홀린 많은 아이가 조심스레 들어오고는 했다.
딸랑-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오렴.”
“저, 여기…… 쿠폰 써도 되나요?”
“당연하지.”
“와, 감사합니다!”
“뭐로 줄까?”
“어, 제, 제일 싼 거로…….”
“싼 거는 무슨. 모듬 초밥으로 줄 테니까 기다려 봐. 먹고 갈래? 아니면 포장?”
“머, 먹고 갈게요.”
“그래, 빈자리에 앉아 있어.”
“네에!”
두 명의 아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행이다.”
“응, 옆에는 쿠폰을 안 받아줘서 슬펐는데. 헤헤, 이제 괜찮아.”
“나두!”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주변 손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기 들었어?”
“어. 옆에도 착한 스티커 붙인 식당 아닌가?”
“거기 그걸로 유명하잖아.”
“맞아, 영상도 봤었는데…….”
의심이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좀 이상하네.”
“그러게.”
그때 모듬 초밥이 아이들 앞에 차려졌다.
“우와아아!”
“맛있겠다……!”
두 눈이 댕그래진 채로 인사를 하는 아이들.
“잘 먹겠습니다아!”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네에!”
식당을 운영하는 셰프가 흐뭇하게 웃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초밥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슬쩍 다가왔다.
“근데 셰프님.”
“응?”
“진짜 이렇게 팔아도 괜찮아요? 저 여기 알바하는 거 너무 좋아서요.”
“망할까 봐 걱정하는 거냐.”
“그, 그게…….”
“괜찮아. 여기 망할 일 없으니까.”
“정말요……?”
“그래. 여기 가게 사장님이 아주 부자거든.”
“부자요?”
“응. 엄청나게 돈이 많으시지. 이것도 전부 사장님이 요청한 부분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해.”
“정말요?”
“그래, 정말.”
“옙! 그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기 빈자리 생겼다. 어서 치우기나 해.”
“예, 셰프님!”
류스시 손님들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진짜 좋다, 여기.”
“응. 분위기도 좋고. 아이들한테 내주는 초밥도 장난 아니야.”
“퀄리티가 더 좋은 거 같은데?”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
“그러니까.”
덕분에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후암동 류스시, 정말 역대급 초밥 맛집!
-류스시, 모듬 스시 퀄리티!
-류스시,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그와는 반대로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갈성후의 일식집은 그나마 있던 손님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는 지금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비어 있는 식당 내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피크타임이었는데 한 팀도 없었다.
정말, 단 한 팀도.
물론 배달이 몇 건 들어오긴 했지만 매출이 지난달과 비교하면 반의반 토막이 나버렸다. 거의 5분의 4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문득 예전 그의 말이 떠올랐다.
-경비 아저씨들한테 무릎 꿇고 사과라도 하면 혹시나 봐줄 수도 있으니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개소리. 내가 왜?”
류스시도 저렇게 팔면 분명 손해가 막심할 터였다.
조금만 더 버티자.
개업 초기라 이벤트로 싸게 파는 모양인데 그것도 한계가 있을 터였다. 견디다 보면 한결 나아지리라.
멍청하게도.
갈성후는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