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27화
149. 한 아이의 다짐(1)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었다.
<최연수>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여보세요?”
-작가님! 잘 지내고 계시죠?
“잘 지내죠.”
-안 그래도 이모티콘 연계 사업으로 전화를 드리려고 했었는데 마침! 딱! 새로운 이모티콘 심사를 넣으셨더라고요?
“아아, 그랬죠.”
-그래서 조금 참았거든요. 오늘 결과가 나와서 제가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사업 이야기도 하구요!
“통과했나요?”
-네! 두 개 전부요! 정말 이모티콘이 재밌더라고요.
“다행이네요.”
-그래서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데요. 시간은 언제 괜찮으세요?
“음, 뭐. 크게 바쁜 일은 없어서요.”
-그러면 내일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같이 점심 먹어요!
“그래요.”
그렇게 약속을 잡고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음 날.
류성은 오전 업무를 보다가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요!”
오랜만에 보는 최연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들어가시죠.”
“네!”
예전에 정체가 드러났을 때 최연수에게서도 연락이 왔었다. 그때 정말 많이 놀란 듯한 음색이었는데.
“A코스로 할게요, 저는.”
“저는 B코스요.”
“네, A코스 하나랑 B코스 하나 준비하겠습니다.”
주문하고서 대화를 시작했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두근두근해요. 이모티콘 작가님이 재단 이사장님이었다니……! 심지어 제 주변에 너튜브 구독자도 꽤 많은 거 알아요?”
“그래요?”
“네. 워낙 투자를 잘하시니까요.”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어휴, 제 친구들이 고마워해야죠. 만날 때마다 돈복사 시켜준다고 얼마나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아, 하하.”
가볍게 수다를 떠는 사이 음식이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음식을 먹으면서 기존 이모티콘 신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는 식기 업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식기 업체요?”
“네. 접시나 그릇에 해당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으음, 좋네요.”
“저도 괜찮아 보였어요. 그러면 진행해도 될까요?”
“그러죠.”
“음, 신규 이모티콘 계약도 해야 하니까 밥 다 먹고 카페에서 계약하실까요? 아무래도 여긴 자리가 불편하다 보니.”
“좋습니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기존 이모티콘 사업 계약과 새롭게 통과한 이모티콘 두 작품의 계약을 진행했다.
“홍보 빵빵하게 해드릴게요!”
“네, 고맙습니다.”
이제 시작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도 찌그러진 고양이의 다른 버전 1개를 심사에 넣어뒀다.
이것도 통과되겠지.
그렇게 이모티콘, 그러니까 캐릭터의 네임드를 쌓아나갈 생각이었다. 기반이 충분히 쌓이게 되면 해당 캐릭터를 활용해 다양한 수익을 낼 수 있을 테니까.
* * *
검찰총장은 누적 관객수 376만 명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한국극장에서는 여전히 상영되고 있었기에 볼 사람들은 꾸준히 찾아왔다. 평행우주의 살인마는 누적 관객수 431만 명을 달성했다. 처음부터 스크린을 많이 할당받은 게 유효했다.
이후 RS엔터에서 영화 두 개가 더 개봉되었다.
역시 인기가 좋았다.
사이사이에 틈틈이 작사도 했다. 나온 결과물을 마이유에게 넘기거나 기획사에 투고했다. 주기적으로 이모티콘을 그려 심사에 넣기도 하고 또 통과도 되었다.
RS재단 업무도 순조로웠다.
서서히 RS재단의 후원에 적응한 아이들이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움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갈수록 기대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무언가 요구하는 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말 최소한의 요구만 하는 수준이었다.
“더 원해도 될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뭐, 우리가 더 잘해야죠.”
“맞습니다. 힘내자고요.”
최근에는 심상치 않은 보육원 몇 곳에 관한 보고도 받았다. 감찰할 수 있는 권한을 거부하고 RS재단의 후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보육원들. 분명 무언가 꺼리는 게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기에 몰래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이사장님, 증거 몇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그래?”
외부 현장의 팀장, 김만호의 말에 류성이 미간을 좁혔다.
“증거는 충분하고?”
-한 곳은 충분한데 나머지는 아직입니다.
“음, 그러면 나머지 보육원에 집중해 봐. 괜히 일 터트렸다가 다른 보육원들 비리 증거 숨기면 큰일이니까. 모아서 단번에 처리해야겠어.”
-알겠습니다.
“이번 일 잘되면 보너스 제대로 쏠 테니까 힘내고.”
-감사합니다!
김만호의 목소리에 힘이 깃들었다.
“그래, 고생해라.”
통화를 끊고서 책상에 올라온 서류를 확인했다.
<보답받아야 할 사람들>
해당 프로젝트 진행 상황이었다.
1. 한석호 의사 선생님
현재 대한한성 종합병원과 함께 일하는 중으로 그가 원하는 무료 진료 봉사를 마음껏 실천하는 중. 재활 치료에도 힘을 쓰면서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음. 더불어 RS재단에서 지원하는 호텔에서 지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중.
2. 여정아 중학교 선생님
항암치료를 무사히 끝내고 다시 학교로 복귀한 상태. 어려운 학생을 여전히 도와주고 있으며 RS재단도 해당 사안을 충분히 파악하며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수십 명의 사람이 서류에 있었다.
“잘 지내고 계시네.”
정말 많은 이들이 보답받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류성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더 많은 이들이 좋은 일을 한 만큼 제대로 보상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 * *
여정아는 전화를 받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머님이?”
-네…… 그래서, 당분간 학교에는 못 갈 거 같아요.
“어디니? 선생님이 갈게!”
-여기…….
“그래, 금방 갈게. 기다리고 있어!”
담당하고 있는 학급의 학생 어머니가 심각한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놀란 마음에 주임 선생님께 상황을 알리고 다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
“그래, 괜찮아. 괜찮을 거야.”
여정아 선생님은 황급히 남학생을 안아줬다.
그래서일까.
참고 있던 둑이 무너지고야 말았다.
“엄마가, 엄마가…….”
배영화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제야 마음을 추스른 남학생이 상황을 설명했다.
“수술 중이에요.”
“그래?”
“네. 근데 너무 심하게 다쳤대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출근하다가…… 교통사고 당했어요.”
“으음, 괜찮으실 거야.”
그렇게 얼마나 함께 기다렸을까.
수술실 불이 꺼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서, 선생님. 엄마는요?”
“그게…….”
의사의 표정이 심각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이어질 말이 불안하게 상상되기 시작했다. 여정아는 다급히 배영화의 옆으로 다가가면서 의사를 쳐다봤다.
“후우, 일단 수술은 어떻게든 끝내기는 했습니다만.”
“그럼, 괜찮은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
듣고만 있던 배영화가 떨리는 음색으로 물었다.
“우리 엄마, 죽어요……?”
“……장담할 순 없구나.”
배영화가 고개를 숙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요.”
“최선을 다해보마.”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이야.
여정아 선생님도 정신이 멍해졌다.
그때 떠오른 한 사람.
왜 하필 지금 RS재단의 이사장님 얼굴이 생각난 걸까.
그래. 혹시 모르니까.
어떻게든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급히 연락을 넣었다.
-바로 이사장님한테 전해드릴게요. 잠시만요.
신호음이 몇 번 이어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이사장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되었다. 여정아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설명했고 류성은 이미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는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제가 바로 병원으로 갈게요.
“고맙습니다, 정말.”
-중환자실 위치만 문자로 좀 알려주세요.
“네, 그럴게요.”
통화를 끊고서 남학생과 함께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수술이 끝난 그의 어머니는 각종 기계장치로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
아버지는 어릴 적 돌아가셨다.
친척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직 한 사람, 유일하게 엄마와 함께 살아왔다.
그래도 행복했다.
부유하진 않아도 외롭지 않았으니까.
“내가, 내가 호강시켜 준다고 했잖아.”
목표를 정하고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언젠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효도하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었다. 언제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매일 밤 마음에 새겼었다. 고생한 젊은 날의 시절을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끝없이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런 불행이 또다시 찾아오다니.
“그러니까 제발, 제발…….”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둠에 집어삼켜져 정신이 멍해지고 삶이 암담해졌다.
“여기요, 이사장님!”
그때 낯선 남성이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그가 배영화를 바라봤다.
“받아.”
힘없이 고개를 들어 낯선 남성을 쳐다봤다.
손에 들린 명함.
멍하니 내용을 확인했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제대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사장 류성>
정말 높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엄마, 살 수 있는 거예요?”
“그래.”
단호한 그 대답에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 * *
여정아 선생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저도…….”
배영화도 함께 병실을 나섰다.
혼자가 되었다.
류성은 허공을 조작해 상점에서 물약을 구매했다.
[체력 강화 물약(최하급)을 구매합니다.]
[5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피로 회복 물약(최하급)을 구매합니다.]
[2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치료제(하급)를 구매합니다.]
[100포인트를 사용합니다.]
단번에 170포인트를 써버렸다.
상관없었다.
눈앞에 닥친 사람 한 명을 구하는데 이런 포인트 정도야. 이걸 아끼는 게 도리어 우스운 일이었다.
노화 회복 물약은 아직 남았으니 현재 총 4종류의 물약이 손에 들린 상태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으리라.
서둘러 물약의 뚜껑을 땄다.
일단 체력 강화 물약부터 조심스레 먹였다. 이어서 피로 회복 물약과 노화 회복 물약을 먹인 뒤 마지막으로 하급 치료제를 사용했다.
“후우.”
모든 물약을 먹이자 선생님과 학생이 들어왔다.
“이사장님, 전 수업 때문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러셔야죠. 나머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떠나고 배영화와 둘이 남게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배영화는 묵묵히 어머니를 지켜보다가 류성을 쳐다봤다.
“진짜로 살 수 있는 거죠?”
“그래. 오늘 하루 푹 쉬면 내일은 오늘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지실 거다.”
“……고맙습니다.”
“내일이 중요하니까 오늘은 너도 제대로 먹고 쉬어. 그래야 제대로 버틸 거 아냐.”
“네, 그럴게요.”
“밥 먹으러 가자.”
배영화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
병동 안내데스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간호사에게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앗? 이사장님?”
“중환자실, 901호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희는 밥 좀 먹고 올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여기도 협업 중인 병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원장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은 물론 간호사도 류성을 알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는 길.
생각보다 많은 의사가 류성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해왔다.
“어라, 이사장님 아니세요?”
“하하, 네. 고생하십니다.”
“아이고, 바쁘신데 괜히 붙잡았네요.”
“괜찮습니다.”
한 병원의 직원을 전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사는 했다. 배영화는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가자.”
“네.”
병원에서 나와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 백반 둘이요.”
“네, 금방 준비해 드릴게요!”
음식이 나오자 녀석이 숟가락을 들었다.
푸욱.
깨작거리지 않고 밥을 크게 뜨면서 힘차게 먹었다. 지금 배영화의 머리에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내일이 중요하다는 말.
그러니.
오늘 제대로 먹고 쉬어야만 했다.
“한 그릇 더 먹을래요.”
“그래, 많이 먹어라.”
두 그릇을 든든하게 먹고서 병원으로 향한 배영화는 저녁까지 병실에서 대기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걱정은 되지만 내일을 위해서라도 억지로 잠을 청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