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28화
149. 한 아이의 다짐(2)
배영화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 나 왔어.”
그래도 어제보다는 안색이 한결 좋아 보였다.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희망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제 그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해버린 게 컸다.
“나 있잖아. 사실 그 아저씨가 엄마한테 뭐 먹이는 것도 봤다? 근데 엄청 중요한 순간인 거 같아서 말리진 않았어. 그러니까…… 나 그만 불안하게 만들고 일어나 주면 안 될까.”
배영화가 중얼거리며 고백하던 순간이었다.
꿈틀.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어, 엄마?”
분명히 움직이는 걸 봤다.
“엄마, 엄마!”
몇 번 더 부르니 다시 한번 손이 꿈틀거렸다. 고개를 돌리자 엄마가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후욱- 후욱-
산소호흡기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커졌다.
“엄마, 이, 일어난 거지? 잠깐만! 선생님 불러올게!”
배영화가 다급히 병실을 나서 안내데스크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가 일어났어요! 901호요!”
“901호? 정말이니?”
“네, 빨리요!”
“어어, 알았어. 잠시만! 정 간호사는 선생님 모셔오고!”
“네, 그럴게요!”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간호사가 상태를 살폈다.
“정신이 드세요? 제 말 이해되면 눈 한 번만 깜빡여보세요.”
배영화의 어머니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정말로 정신을 차린 것이다.
“곧 선생님 오실 거예요. 잠시만요.”
마침 의사 선생님이 병실로 들어왔다.
뛰어온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셨다고?”
“네, 선생님!”
“허어, 이럴 수가……!”
의사가 다급히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수치를 일일이 확인하던 그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솔직히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수술은 마쳤지만 생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이렇게 컨디션이 좋아지다니.
“선생님, 우리 엄마 괜찮은 건가요?”
“아, 그래. 괜찮구나.”
“저, 정말요?”
“그래, 정말로 괜찮아. 기적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기적…….”
그 단어에 배영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장면이 스치듯 지나갔다.
이사장이 엄마에게 무언가를 먹이는 장면.
“음? 무슨 일 있나요?”
마침 그 사람이 등장했다.
“아, 이사장님. 정연희 환자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요?”
“네.”
“후우, 다행이네요.”
류성은 안도하며 웃었으나 크게 놀라진 않았다. 물약을 4개나 썼으니 효과가 있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배영화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 시선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상태는 괜찮으신 거죠?”
“네, 아주 좋습니다.”
“최대한 신경 좀 써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연희 환자는 빠르게 쾌유되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허, 벌써…….”
어느새 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살려주셔서.”
“아닙니다. 이건 정연희 환자분의 의지라고밖에는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요.”
“그런가요.”
“네.”
“그래도 고맙습니다.”
곧이어 잠깐 들른 류성에게도 인사했다.
“이사장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뭘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치료하세요. RS재단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저는 다른 곳에 또 가봐야 해서.”
“네, 살펴 가세요.”
그런 류성의 뒤를 배영환이 쫓아갔다. 복잡미묘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불렀다.
“아저씨.”
“음?”
“우리 엄마, 살려줘서 감사합니다.”
“어, 그래. 근데 그런 건 의사 선생님한테 말해야지.”
“그런가요?”
“그럼.”
“뭐, 그렇다고 칠게요. 그보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데?”
“아저씨한테 도움이 되려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나 싶어서요.”
“뭐?”
류성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왜? 도와준 게 고마워서 그래?”
“네.”
“그런 생각 안 해도 돼.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그 부분도 RS재단에서 도와줄 테니까. 약속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진짜 가봐야겠다.”
배영화는 멀어지는 류성을 가만히 바라봤다.
“신기한 아저씨.”
도대체 뭘 먹였던 걸까. 뭐기에 이런 기적이 벌어진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보는 게 바보 같은 행동이란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기심을 풀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뭘 해야 할까. 저 높은 사람을 도우려면 어떤 직업을 지녀야 할까.
……검사.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검사가 될게요.”
강한 권력을 지닌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아니.
어리기에 더욱 강한 무언가가 배영화의 가슴에 깃들었다.
평생 잊히지 않을 은혜가 새겨졌다.
* * *
갈성후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내 돈……!”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였다.
아무리 견뎌도.
바로 옆에 새롭게 오픈한 류스시는 한 달이 훌쩍 넘어가도록 싼 가격에 미친 퀄리티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 재력가라 이거지.”
뒤늦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다 보니 간간이 등장하는 그를 알아본 손님들의 이야기가 들려온 까닭이었다.
“돌겠네, 진짜.”
하필이면 그 사람이 재단 이사장이라니.
거물도 이런 거물이 없었다.
30대로 보이는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건만.
“하아…….”
근데 이대로 빌고 싶지는 않았다.
지고 싶지 않았다.
물러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거칠게 분노를 표한 갈성후가 생각에 잠겼다. 오히려 상대가 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에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재단이면 좋은 일 하는 곳이잖아.”
근데 지금 저 재단은 사람을 죽이려고 들었다.
그러니.
이건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다.
“그래, 내가 이길 수도 있어.”
언론이 정답일 터였다.
하나씩 해보자고.
먼저 RS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민원을 넣어보기로 했다.
[제목 : 재단 이사장의 횡포.]
[민원 내용 : 일단 언론에 뿌릴 생각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당 사건을 언급해 보자면, 그쪽 RS재단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분명 반응이 오리라 믿었다.
* * *
류성은 해당 민원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지.”
혹시나 잘못했다고 빌면 난감할 뻔했는데.
이제 끝을 내야겠네.
지금까지 모아놓은 증거 영상을 너튜브에 풀어버리기로 했다.
“시작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슈 채널을 운영하는 너튜버에게 몇 개의 영상을 주면서 광고를 넣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편집은 다 끝내놨으니 지금 바로 업로드하겠습니다.
“좋군요. 기다리겠습니다.”
류성은 통화를 종료하고서 이슈 채널에 접속했다.
구독자도 100만이 넘고.
영상 하나를 올리면 당일에만 50만 조회수가 기본적으로 찍히는 대단한 너튜버였다.
언제 올라오려나.
그간 올라온 영상을 살펴보다가 새로고침을 눌렀다.
“아직이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다시 새로고침을 눌러봤다.
“오.”
의뢰했던 영상이 업로드된 상태였다.
<쓰레기나 버려! 입주민 갑질 영상 대폭로 1탄!>
제목부터 아주 자극적이었다.
물론 류성이 쓰레기봉투에 맞는 장면은 아쉽게도 없었다. 경비실 CCTV의 영상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제공받을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 이후 몰래 조금씩 촬영을 해놓은 다양한 영상이 존재했다.
[아, 진짜 말 많으시네. 그냥 쓰레기나 버려요.]
지금 나오는 영상이 바로 그것들이 쌓인 결과물이었다.
[오늘도 쓰레기나 버립시다, 예?]
[아, 귀찮네. 아저씨, 쓰레기 좀 대신 버려주세요, 크흐흐.]
[아니, 경비 잘리고 싶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던져 버리는 모습이 나왔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었다.
[말 더럽게 많으시네, 진짜. 확!]
[여, 쓰레기요.]
[아, 귀찮다. 아저씨, 받아요. 패스! 오, 나이스!]
다른 날, 다른 날씨, 다른 경비원을 상대로 각종 갑질 행동이 재생되었다.
[구독자 여러분, 보이시죠?]
그제야 채널 주인공이 등장했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다 있네요. 와, 진짜 영상 만지면서 얼마나 열이 받던지. 이런 놈은 그냥 아주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야 해요. 솔직히 뭘 잘못한 건지도 모를걸요? 그냥 뇌 구조 자체가 다른 놈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니까요. 이게 끝이 아니거든요. 계속 보자고요.]
이어지는 갑질 영상을 하나씩 분석했다.
[허, 이젠 들어오면서도 쓰레기를 던지네요. 전 여기 농구공인 줄 알았어요. 패스니 뭐니, 진짜 기가 막힙니다.]
경비원을 향한 각종 패악질이 도를 넘어섰다.
[후, 지금 다시 봐도 열 받네요. 시청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댓글 기다리면서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이거 1탄이거든요. 아직 2탄 남았으니까 내일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영상을 본 류성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영상은 단 하루 만에 실시간 순위에 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오르는 조회수.
각종 게시판에 공유가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한층 더 강력해졌다.
-와, 무슨 저런 놈이 다 있냐?
-진짜 최악ㅠㅠ
-쓰레기봉투 던지는 거랑 말투 보세요, 와씨
-겁나 열받네 진짜
-신상 알 수 있는 방법 없음?
-네티즌 수사대 출동하라!
-진짜 누구임?ㅋㅋ
-저기, 아파트 어딘지 알 거 같은데...
-너무 정문 위주로 보여줘서ㅠ
-2탄 기대합니다!
-2탄에 뭐가 더 나오겠죠?
-존버!
-빨리 뭐라도 나오길!
-진짜 짜증 나는 인간이네, 하, 젠장
-우리 아버지 경비실에서 일하시는데 개같네 진심
-ㅅㅂ...
-모자이크 처리라 잘 보이진 않네요
-정체를 밝혀주세요!
관심은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착한 스티커도 거짓말? 사기 행각 대폭로 2탄!>
그리고 올라온 두 번째 영상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다.
[자, 어제 갑질 영상 1탄 올렸었죠? 오늘은 2탄인데요. 제가 수소문 끝에 저 갑질남이 뭘 하는지 알아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식집 하나가 등장했다.
[네, 바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경비 아저씨한테 그렇게 갑질을 해놓고는 착한 영향력 스티커까지 붙여놨네요? 제가 이거 보고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그래서 몰래 촬영을 해봤습니다. 결과물부터 일단 보시죠.]
해당 식당에 들어서는 아이가 보였다.
[저, 여기…… 쿠폰 사용되나요?]
구도로 보아 식당 외부에서 촬영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들어가면서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말소리가 약하게나마 들려오는 상태였다.
[쿠폰? 아니, 안 돼.]
[어, 착한 영향력 스티커 있던데…….]
[안 된다고, 꼬맹아. 어서 나가!]
[네에…….]
비슷한 내용이 두 번 더 이어졌다.
[꼬맹아, 쿠폰은 딴 데서 써라.]
[네…….]
[어휴, 점심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나가, 인마! 요즘 왜 이렇게 거지새끼들이 많이 등장하는 건지, 원.]
그리고 나타나는 채널 주인.
너튜버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쯧,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해당 사건에 대한 반응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