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재능이 쏟아져 232화
152. 영향력(1)
-추억에 빠진 날 미워할래
-너무 멀리 떠나버린 너
-다시 오지 않을 너
-생각만으로 가슴이 미어져
예지은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감정을 끌어내는 힘.
그로 인해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무대를 감싼 사람들이 멍하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고마워, 많이 미안해
-미안해, 많이 사랑해
-너라서 즐거웠어
-너여서 행복했어
클라이막스를 지나고 음악이 끝났다.
고요한 적막.
그러나 이내 깨지며 함성이 퍼졌다.
-자, 제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죠? 혼자 알고 있으려니까 진짜 죄짓는 기분이었다고요! 다들 동의하시나요?
-네에에에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음, 근데 도대체 무슨 노래에요?
-아, 방금 부른 노래 제목은 ‘나만 추억하는 사람’이에요
-크으, 제목도 좋네요. 누구 노래죠?
-제 노래요.
-어우, 가수였군요?
-네. 얼마 전에 음원만 냈어요.
-크, 멋지네요. 한 곡만 듣기는 너무 아쉽거든요. 혹시 다른 노래도 있을까요?
-네……!
-좋습니다, 바로 들어보죠!
그렇게 두 번째 노래까지 부르게 되었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서호와 매니저가 놀란 듯 서로를 쳐다봤다.
“엇, 부대표님. 한 곡만 부르는 거 아니었어요?”
“맞아. 간신히 부탁해서 한 곡 정도는 부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는데. 설마 두 곡이나 부르게 될 줄이야…….”
예정에 없던 긍정적인 일이었다.
“대박 터지겠다, 이거.”
그 정도로 예지은의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는 뜻이리라. 벌써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참으로 기대되었다.
* * *
예지은이 노래를 부른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왔다.
채널명 : 길거리 라이브
구독자 : 280만 명
1시간 만에 조회수 57만을 찍으며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
“대단하군요.”
“맞습니다, 대표님. 대단한 만큼 정말 깐깐하더라고요. 물론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요. 이번에는 노래도 두 곡이나 부르게 해줬으니까요.”
“한 마디로 실력 우대네요.”
“그게 또 그렇게 되네요.”
부대표의 말에 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이제 나오네요. 같이 보시죠.”
둘은 함께 해당 영상을 시청했다.
흘러나오는 노래.
예지은의 감성이 영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해졌다. 물론 실제로 듣는 것보다는 조금 아쉬웠지만 말이다.
“괜찮은데요?”
“노래 실력이야 말할 게 없죠.”
조용히 노래를 들었다.
정말 좋았다.
노래가 끝나고서 예지은은 너튜버와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호기심을 유발한 채로 바로 두 번째 노래가 이어졌다.
“이것도 참 좋죠.”
“흐흐, 대표님이 작사하신 노래니까요.”
“크흠,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두 번째 노래가 오히려 더 영상으로 듣기에는 조금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요.”
“아아. 뭔지 알겠네요.”
산뜻함이 한껏 강조되는 모습이었다.
[하얀 머리끈을 손에 쥐고서]
[머리를 쓸어넘기며]
어쩐지 경쾌한 느낌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곡이 끝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 실력이면 분명 댓글에도 언급이 되었으리라. 기대하면서 확인해보니 확실히 반응이 있었다.
[댓글]
50마일 : 예지은? 누구임? 신인가수인 거 같은데
└얼음 : 모르겟음ㅋㅋ
└닉변경 : 음원 사이트에 노래가 있긴 하더라고요
└50마일 : 감사요, 들으러 갑니다!
허리나감 : 와, 노래 좋다...!
물주먹 : 오늘도 실력자가 많구만ㅋㅋ 근데 7분 17초에 등장한 가수가 최고인 듯
└잠수복 : ㅇㅈ합니다ㅠㅠ
주먹빨 : 오랜만에 감성에 젖었네요, 예지은 가수님? 응원할게요!
한강안가 : 오랜만에 추억에 빠졌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부대표님, 이제 제대로 홍보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예지은을 위한 홍보가 시작되었다.
해당 이슈를 최대한 키웠다.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하거나 인터뷰를 하면서 신인 가수로서 이름을 조금씩 알려 나갔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신생 엔터에 신인 가수인 만큼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어느 날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 * *
대형 케이블 방송사에 소속된 예능 PD 공염철은 오늘도 병원에 들렀다.
“아빠아아아!”
“아이고, 우리 딸. 기운도 넘치지.”
“히히, 좋아.”
그는 딸을 품에 안고서 웃고 있는 여인을 눈에 담았다.
“아침부터 힘들었지?”
“아니야, 당신이야말로 일하느라 힘들지. 들어가자.”
“그러자.”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딸과 수다를 떨었다.
“오늘은 재밌는 일 없었어?”
“있었어!”
“있었어? 무슨 일일까? 아빠 너무 궁금한데?”
“히히, 나 친구 생겼어!”
“친구? 정말로?”
“응! 조금 있다가 친구랑 또 놀 거야.”
“어휴, 좋은 친구네.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알지?”
“응, 알아!”
“착하다, 우리 딸.”
예전에는 비관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많은 게 달라졌다.
RS재단에서 도와준 덕분이었다.
“이번 달 치료비는 괜찮았고?”
“그럼. 재단에서 85퍼센트나 지원해주는걸.”
“응? 85프로나?”
“응. 이번 달부터 지원 비용을 더 높여줬더라고. 나도 이번에 치료비 내면서 들은 소식이라서 깜짝 놀랐다니까.”
“허어…….”
거기서 더 지원을 해주다니.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다행이네, 정말.”
“고마운 곳이지. 말로는 표현도 못 할 만큼.”
RS재단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세상이 변했다.
절망은 희망이 되었고.
비관은 낙관이 되었다.
힘겨웠던 삶에 빛이 내려왔다.
단 하나의 동아줄이었다.
“참 고마운데 갚을 길이 없네.”
“언젠가 기회가 생기겠지.”
“그래, 거기도 엔터 사업을 하더라고. 언젠가 도우려면 내가 더 힘을 내야지. 말 나온 김에 다시 방송국에 가봐야겠다. 점심 먹고 잠깐 들른 거라서.”
“바로 가려고?”
“미안. 미뤄두고 있던 아이템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회의를 제대로 해봐야 할 거 같거든. 나도 이제 인기 있는 예능 하나는 찍어야지.”
“알았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
공염철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빠 일하고 저녁에 올게.”
“빨리 와야 해.”
“알았어. 그러면 뽀뽀.”
“쪽!”
힘찬 뽀뽀를 받은 덕분에 힘을 내서 방송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 회의실로 들어가려는데 근처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단어가 들려왔다.
“RS엔터? 거기 소속이야? 흐음, 그래, 일단 알았어.”
공염철은 자리에 멈춰 고개를 돌렸다.
N넷, 음악방송 PD가 보였다.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서 친하게 지내는 후배였다.
“RS엔터?”
“아, 선배.”
“거기서 왜? 무슨 일이야?”
“응? 아니, 이번에 거기 소속 가수가 너튜버에서 조금 언급이 돼서요.”
“부르게?”
“뭐, 대형이면 불러볼까 싶었는데 RS엔터면 신생이잖아요. 굳이 먼저 연락할 이유는 없죠.”
순간 공염철의 눈이 빛났다.
“부탁 하나만 하자.”
“네? 무슨 부탁이요?”
“RS엔터 소속 가수 말이야. N넷에 불러주면 안 되겠냐?”
“선배?”
“내가 이런 말 하는 사람 아닌 거 알잖아. 근데 내 딸, 후원해 주는 곳이 RS재단이야. 너도 알잖아. 내가 지금 네 이야기 듣고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냐.”
“아니, 그건 아는데…….”
딸 이야기가 나오니 후배도 기가 죽었다.
“내 딸 살려준 곳이야.”
“크흠…….”
“나중에 나도 꼭 너 도와줄게. 내가 인기 예능 피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력까지 무시당하는 건 아니다.”
“알죠, 그럼요.”
“인맥도 나쁘지 않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결국 N넷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좋습니다. 솔직히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거절할 수가 있나요.”
“고맙다.”
“됐어요. 뭐, 다른 건 괜찮은데 그냥 나중에 제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도와주는 정도면 됩니다.”
“당연히 도와야지.”
“오케이. 거래 성립이요. 나중에 소주에 삼겹살이나 먹자고요.”
“좋지. 정말 고맙다.”
확답을 받고서 회의실로 돌아가는 공염철. 그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걸렸다.
그간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크게 뭔가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랐다.
* * *
최서호는 업무를 보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아무리 체크를 해봐도 이건 선을 넘어가 버린 상황이었다. 홍보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크게 화제가 될 일은 아니었으니까.
[RS엔터, 신인가수 예지은! 엄청난 실력 선보여!]
[대형 신인 가수 등장! 예지은!]
[RS엔터는 가수도 범상치 않았다!]
[예지은의 데뷔는 언제?]
[데뷔 초읽기. 신인 가수 예지은!]
기사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너무나 편향적이었다.
신인 가수의 등장치고는 관심이 과했다. 물론 긍정적인 건 사실이었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무슨 영향인 거지……?”
노래가 그 정도로 좋았던 걸까.
그래도 기사가 너무 많은데.
이건 누군가가 개입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은이를 좋게 본 누군가가 손을 쓴 거 같은데.”
혹은 RS엔터를 좋게 본 누군가일 수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RS재단이라는 배경 때문에 행동했을 가능성도 있었고.
“허, 너튜브는 또 왜 이래?”
대형 너튜버 몇 명이 예지은을 언급했다.
홍보도 아니었다.
정말 그들이 자의적으로 해버린 일이었다. 덕분에 뮤직비디오 영상의 조회수가 무섭게 솟구쳤다.
“……이건 안 될 수가 없겠구만.”
멍하니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이고, 피디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대표님? 아니. 이제는 부대표님이죠?
“하하, 맞습니다. RS엔터 부대표죠.”
-다름이 아니라 요즘 예지은 가수가 언급이 많이 되더라고요. 해서 데뷔를 우리 N넷에서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허어,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럼 출연하는 거로 확정을 짓고 일자만 조율해 보죠.
“알겠습니다. 근데, 저…….”
-네. 말씀하세요.
“좋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니 당황스러워서 말입니다. 사실 N넷은 신인 기획사에는 연락을 안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왜…….”
-흐음, 이런 말 해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잠깐 고민하던 N넷 피디가 입을 열었다.
-실은 RS재단에 도움을 받은 선배가 있어서요. 저한테 부탁하더라고요. 물론 저도 예지은 가수의 가능성을 좋게 봤고요.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겠죠?
“무, 물론입니다.”
-그럼 일정 조율은 스케쥴 확인하고 연락 주시죠.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되었다.
“……생각보다 더 영향력이 있었어.”
기사 내용과 너튜버들의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들도 높은 확률로 RS재단에 도움을 받았거나 혹은 받은 이들의 지인일 터.
“하, 하하.”
RS재단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평소보다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RS재단에 도움을 받는 이들이 훨씬 더 늘어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려나.”
마치 세상이 RS재단을 위해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