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돈과 재능이 쏟아져-235화 (235/277)

돈과 재능이 쏟아져 235화

153. 천부적인 재능(1)

최민철이 힘겹게 입을 뗐다.

“수술, 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술 일정 잡겠습니다.”

“네, 선생님. 잘 부탁드릴게요.”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수술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의사가 문득 생각났는지 몸을 돌렸다.

“아, 그런데 보호자님.”

“네, 선생님.”

“환자분이 의병 제대를 했다고 하셨던가요?”

“네, 맞아요.”

“음, 내일 공지사항으로 내려가긴 할 텐데요. 그래도 수술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알려드리는 게 좋을 거 같네요. 현재 우리 병원이 RS재단과 협업 중이거든요.”

“재단, 이요……?”

의사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화면을 보여줬다.

“여기 보이시죠? 최근 의가사 제대 및 의병 제대를 한 이들을 대상으로 지원 서류를 받고 있어서요.”

갑작스럽게 희망이 날아들었다.

“그, 그 말씀은…….”

“서류를 보내 보세요. 아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RS 재단입니다.”

“RS 재단. 네, 꼭, 꼭 서류 제출해 볼게요.”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병실을 나서고서야 최민철은 정신을 차렸다.

“RS 재단.”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검색부터 했다.

떠오르는 기사들.

[RS재단, 후원 범위를 차츰 넓혀가기로.]

[RS재단의 후원 매달 100억 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

[RS엔터 신인 가수, 예지은의 활약…….]

[RS재단, 다음 공모전 준비?]

[연이은 흥행, RS엔터의 영화! 대박 비결은?]

[최근 RS투자사의 수익률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

[RS재단의 후원비용, 전액 RS투자사에서 나오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 모금 받을 계획 없다고 밝혀]

[RS재단, 모금을 받는 순간 의미가 퇴색되거나 간섭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

기사 제목만 훑어봐도 정말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제발.

손을 바들거리며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렇다 할 대단한 서류도 필요가 없었다. 이름과 나이를 비롯한 신상, 그리고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면 병원의 이름과 입원실 호수 정도가 끝이었다.

“이걸로…… 된다고?”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 일정까지 이미 잡힌 상태였기에 기댈 곳은 RS재단뿐이었다.

“후우, 엄마. 거기서 답장이 언제 올까.”

“며칠 걸리지 않겠어?”

“그렇겠지?”

“그리고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엄마의 말에 최민철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하는데.

너무 기대했다가 안 된다고 하면 실망만 커질 게 뻔했다. 그럼 달라진 게 없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더 힘들어질 것이다.

“알았어.”

“우리 힘내자, 아들.”

“응.”

간신히 RS재단을 잊어버렸을 즈음이었다.

해가 지고 저녁을 먹기 직전.

낯선 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좌우를 훑던 남성이 침대에 붙은 신상을 확인하고서 최민철에게 다가왔다.

“최민철 님, 맞으세요?”

“네? 아, 네.”

“반가워요. RS재단 외부현장팀장 김만호라고 합니다.”

밝은 웃음을 지닌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RS재단이요?”

“네. 지원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왔거든요.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 그럼요. 물론입니다.”

커튼을 치고서 최민철,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전후 사정을 꼼꼼하게 들었고 몇 가지 서류를 모바일로 확인했다.

“음, 국가유공자가 까다롭긴 하죠.”

“네.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알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가지만 더 알아본 뒤에 내일까지 확답 드리도록 할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번호 좀 찍어주시겠어요?”

“네, 여, 여기요.”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시고요.”

“네.”

병실을 나선 김만호는 곧바로 최민철이 복무했던 부대를 직접 찾아갔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움직였기에 어렵지 않게 간부를 만날 수 있었다.

“최민철 일병이 행군하다가 다쳤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 이후 어떻게 지냈죠?”

“제대로 걷지 못하더라고요. 평소에 게으름 피우던 녀석도 아니라서 훈련에서 빼고 쉬게 했죠. 근데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는지 많이 아파하기에 군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십자인대파열을 확진 받고 수술도 했던 거군요?”

“네.”

성실하다는 의견에 행군 중에 다친 것도 확실했다. 의사와 상담을 해보니 상태가 악화된 것도 맞았고.

“하지만 결국 지원은 없는 거군요. 훈련하다 다친 건데도 말이죠.”

“……그러게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상대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도 윗선 눈치를 봐야 하는 일개 간부일 뿐이었다.

“이만 가보도록 하죠.”

“아, 네.”

환자가 거짓을 말한 게 아니었으니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최민철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달했다.

-여, 여보세요?

“RS재단 김만호 팀장입니다.”

-네……!

“앞으로 RS재단은 최민철 님의 병원 비용을 전액 지원할 예정입니다.”

-저, 정말인가요?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푹 쉬세요.”

통화를 끊는 김만호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흐아, 좋네.”

하지만 쉴 수는 없었다.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점심시간에는 여자친구인 이미나를 만나서 함께 밥을 먹었다.

“오빠, 어제 그 일은 잘됐고?”

“그럼.”

“지원해 주기로 한 거야?”

“응. 그 사람이 말하던 그대로더라고. 군대에서 아무런 지원도 못 해주는데 우리라도 해줘야지.”

“잘됐다.”

“넌?”

“나도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지!”

“힘들지는 않고?”

“어휴, 동사무소에 출근해서 욕만 듣던 때보다 훨씬 즐겁고 좋아! 다들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고 해주시고. 나도 그분들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고.”

이미나의 말에 김만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꿈꾸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나도.”

“우리 더 열심히 하자!”

“좋지.”

들개를 보살피다가 류성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이제 RS재단에서 없어선 안 될 인재로 자리매김했다.

* * *

오늘 오전에는 심사에 통과한 한 명의 학생을 만나기로 했다.

“갔다 올게요, 부사장님.”

“직접 안 가셔도 되는데…….”

“이런 쪽은 그래도 제가 직접 전문가랑 같이 들어보고 싶어서요. 제가 예술에 관심이 많잖아요.”

“잘 알죠. 이사장님 고집도 잘 알구요.”

둘은 서로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류성은 건물을 벗어나 약속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오늘의 주인공인 14살의 여학생과 부모님을 만났다.

“반갑습니다. RS재단 이사장입니다.”

“네? 이, 이사장님이 직접…….”

“한 아이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래서 두 분도 오늘 일 쉬시고 여기 같이 계시는 거 아닌가요.”

“자격은 없지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요. 같이 있어 줘야죠.”

오늘 만남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첼로를 배우는 여학생.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님의 경제 사정.

남은 길은 두 가지였다.

꿈을 포기하거나 혹은 재능이 확실한 것인지 제대로 확인해 올인하는 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여학생은 의외로 덤덤한 표정이었다.

“예슬이라고 했지?”

“네.”

“긴장되지는 않고?”

그 말에 정예슬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씩씩하네.”

그러면서 그 아이의 재능을 확인해봤다.

[잠재력]

리듬감(A+급) 절대음감(A+급) 창의성(A+급) 균형(A급) 열정(A급) 노력(A급)…….

[총평]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준다. 거기에 노력과 열정까지 더해졌으니 세기의 천재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허, 이 정도면.

아무리 봐도 재능은 확실해 보였다.

“그럼 출발하실까요?”

“아, 네……!”

그렇게 정예슬과 그녀의 부모님을 대동하고서 예술종합대학교로 향했다. 확실히 예술대학교라 그런지 곳곳을 꾸민 조경부터가 남달랐다. 화려한 조각상은 물론이고 정원의 저택 같은 웅장한 느낌이 곳곳에서 물씬 풍겼다.

“학교가 참 좋군요.”

“그렇죠? 저도 처음 오는데 멋지네요. 예슬이는 어때?”

슬쩍 쳐다보자 의외로 눈이 반짝거렸다.

“조각상이…….”

“조각상이 왜?”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음?”

류성은 다시 조각상을 쳐다봤다.

예술가의 감각이 반응한다.

하지만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괜찮은 작품이구나.

딱 그 정도의 감정이 올라올 뿐이었다.

사실 정말 뛰어난 조각상을 이렇게 드러난 공간에, 그것도 대학교 조경으로 아무렇게나 놓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예슬에게는 어떤 감흥을 전해준 모양이었다.

“더 뛰어난 조각상을 보면 놀라겠는데?”

“더 뛰어난 조각상이요?”

“그래.”

“……보고 싶어요.”

“아마 볼 수 있을 거다.”

조금 더 이동하자 정말 괜찮은 조각상이 나타났다.

저건, 좋은데……?

예술가의 감각이 크게 반응했다.

“저기 조각상도 괜찮네. 어때?”

“아……!”

순간 동공이 확장되더니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뭘 생각하는 걸까.

어떤 영감이라도 받은 걸까.

알 수 없는 와중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정예슬을 데리고 실용음악과 건물로 들어갔다. 미리 약속을 잡은 서강욱 교수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똑똑.

그러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강욱 교수가 보였다.

안경을 쓴 40대의 교수.

평생을 음악에 바친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교수님. RS재단 이사장입니다.”

“직접 오셨군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그리고…… 뒤에 있는 학생이 정예슬 양인가?”

“네. 안녕하세요.”

“그래, 반갑구나.”

서강욱 교수가 안경을 치켜들며 정예슬의 뒤에 있는 부모님을 응시했다.

“예슬 양 부모님이시죠? 두 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늘 솔직한 제 감상을 듣고 싶어서 찾아오신 거겠죠? 냉정하고 정확하게 말입니다.”

“……네, 맞아요.”

“좋습니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얘기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러면 정예슬 양, 한번 들어보자고.”

정예슬은 말없이 가방에서 첼로를 꺼냈다. 준비된 의자에 앉은 뒤에 첼로를 다리 사이에 세우고 활을 들었다.

“……시작할게요.”

오른손으로는 활을 움직였고 왼손으로 현을 켜기 시작했다.

♪♩♩♬♩-

첼로 특유의 음색이 공간을 채웠다.

무슨 노래지?

함께 듣고 있던 류성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하지만 잡념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내 연주에 몰입했다.

으음……!

빨려 들어가는 곡이었다.

예술가의 감각이 극단적으로 외쳐댔다.

이건 환상적이라고.

잠자고 있던 영감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스윽.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교수가 손을 들어 연주를 멈췄다.

“그만. 처음 듣는 곡인데 제목이 뭐지?”

“모르겠어요.”

“모른다?”

“네. 그냥…… 오는 길에 조각상을 봤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노래가 떠올랐어요.”

“그걸 즉흥적으로 표현했다는 건가?”

“네.”

교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류성도 내심 크게 놀랐다. 애써 표정을 수습하고는 있지만 팔뚝에는 이미 닭살이 오소소 돋아난 상태였다.

미쳤잖아, 이건.

이 정도면 솔직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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